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38화 (338/366)
  • 338화

    [다음 소식입니다. 대한민국 헌터 협회 소속 S급 헌터, 하미준 헌터가 이사회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아 제2대 협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하미준 헌터는 재앙 ’지옥도‘ 기간 중 실종된 김강희 전 협회장을 대신하여 헌터들의 공략을 지휘함으로써 시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했습니다. 김진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오늘 오전 10시, 대한민국 헌터 협회 이사회는 정기 이사 회의를 통해 하미준 헌터의 협회장 임명을 공식으로 승인했습니다. 하미준 헌터는 10년 차 S급 헌터로, 창조계 고유 스킬 ’도깨비 방망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미준 헌터는…….]

    “라디오 소리 너무 큰가요?”

    “아, 괜찮아요.”

    나는 택시 기사에게 짧게 대답한 후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울 외곽으로 빠졌을 뿐인데 꽤 시골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전 세계를 덮쳤던 재앙 ’지옥도‘는 열린 지 33일 만에 완전히 소멸했다. 부상자는 계산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내가 빌었던 소원 덕에 사망자만큼은 0명이었다.

    ‘비명의 구원자’라는 상태창 때문에 각종 매체와 인터넷 커뮤니티는 한바탕 뒤집어졌지만 그게 나인지는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다.

    ‘뭐, WHDB에 등록된 내 이름 때문에 나라고 추측한 글들은 몇 개 있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모두 세상을 복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용해된 배리어 겔의 잔해를 치우고, 무너진 건물을 보수하고, 갈라진 도로를 재정비했다.

    지옥도가 나타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헌터와 공무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팔을 걷고 나섰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지옥도가 사라졌어도 던전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옥도 생성 전에 비해 확연히 적은 수이긴 했지만, 던전이 완전히 사라지길 바랐던 탓에 이 부분은 조금 아쉽긴 했다.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인데, 더 바라면 욕심이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애써 잡념을 지웠다.

    “도착했어요.”

    “감사합니다.”

    택시는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와서 좀 헤맬 줄 알았는데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지 익숙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발이 닿는 곳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신지유]

    그러자 유리장 안에 들어 있는 지유의 유골함과 액자 앞에 다다랐다.

    “미안. 너무 오랜만에 왔지.”

    액자 속 지유는 환자복 대신 샛노란 색 티셔츠를 입은 채로 활짝 웃고 있었다. 집에서 보낸 시간보다 병원에 있던 시간이 더 길었던 아이라 환자복을 벗고 찍은 사진이 없었기에, 이 사진이 거의 유일한 지유의 사복 사진이었다.

    ―달칵.

    잠금장치를 열고 안에 넣어뒀던 조화 장식을 새것으로 바꾸는 동안 지유를 향해 중얼거렸다.

    “많은 일이 있었어. 같은 삶을 몇 번씩 반복하고,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사람들과도 싸우고, 또…….”

    ―쿵.

    유리장에 이마를 기댔다.

    “죽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영화처럼 머릿속을 떠다녔다. 과거의 ‘나’들을 완전히 보내버렸기 때문에 기억이 선명하진 않았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만큼은 생생했다.

    난 다시 지유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전부 바로잡았어. 이번 생은 아무도 죽지도, 죽이지도 않았고 예정된 종말도 막았지.”

    ―후두둑.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이 바닥을 향하더니, 곧 신발 코에 떨어졌다.

    “결국 우리 지유 마지막 모습만 못 봤네……?”

    한번 터진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학교 끝나자마자 병원에 와 달라는 그 부탁이 뭐가 그렇게 어려워서 못 갔을까. 그것이 아픈 동생의 마지막 소원이 될 줄 알았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뛰어갔을 텐데.

    후회가 또다시 내 목을 졸랐다. 감당되지 않는 슬픔에 몸 전체가 서서히 잠기는 듯했다.

    “미안해, 미안해, 지유야. 너만큼이나 소중한 사람들이 생겨버려서, 진짜로 미안해…….”

    사실 알고 있었다. 만약 소원을 빌었던 순간이 다시 온다고 해도, 나는 동료들을 살려 달라는 소원을 빌 것이라는 걸.

    지유만큼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 천사 같은 지유가 날 원망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나 스스로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멈출 순 없었다.

    “하아아…….”

    아이테르의 로브 소매로 눈을 벅벅 닦자 눈가가 따끔거려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봉안당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난 코를 훌쩍이며 다시 눈을 떴고 지유의 사진을 보며 애써 웃었다.

    ‘그러고 보니 지유 그림 공책도 같이 넣었었구나.’

    액자 옆에 손바닥만 한 무지 공책이 끼워져 있었다. 지유의 물품들은 대부분 함께 화장해 버렸지만, 지유가 열심히 쓰던 그림 공책은 차마 태울 수가 없어, 봉안당에 함께 넣어둔 것이다.

    지유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라 지유가 떠나가고 난 직후엔 자주 보곤 했지.

    ―사락.

    공책을 꺼내 조심스럽게 첫 장을 넘겼다.

    “하하…….”

    첫 장부터 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다. 나랑 말다툼하고 그렸던 그림인 건지 내 얼굴에 악마 뿔을 그려놓은 상태였다.

    [언니가 날 바보라고 부름]

    그림 밑엔 짤막한 일기까지 적혀 있었다. 난 그것들을 읽으며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꼈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행복감은 그리움으로 바뀌었고, 지금 바로 지유를 끌어안고 싶은 헛된 바람이 생겼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액자 속 지유의 얼굴을 보는 것뿐이었다.

    공책의 마지막 장, 새하얀 강아지와 나와 지유의 그림이 있었다. 그림 속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나무 구슬 안에 있을 녹두에게 말을 걸었다.

    ‘녹두야, 사실 네 이름은 지유가 지어준 거야.’

    ―우웅, 우웅.

    내 말에 팔찌가 진동했다. 착한 녹두가 내 말을 듣고 있던 것이다.

    “응?”

    공책을 덮고 다시 집어넣으려는 순간 마지막 장 뒤쪽에 무언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는 걸 발견했다. 마지막 장의 뒤편에 메모지 두 장이 덧대어 붙여져 있었다.

    ‘왜 아무도 이걸 못 본 거지?’

    난 조심스럽게 그것을 뜯어 살펴보았다.

    [이것은 깜짝 편지입니다! 우리 언니가 아니면 읽지 마시고 다시 제자리에 놓아주세요.]

    [만약 우리 언니가 맞다면 가져가! ^0^]

    “…어?”

    지유의 글씨였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 그대로 몸이 굳었다.

    ―사락.

    메모지를 뒤로 넘기자 손바닥만 한 메모지에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언니, 안녕. 혹시 몰라서 미리 쓰는 편지야.]

    [지금 마지막 수술 들어가기 10분 전이거든.]

    “헉……!”

    마지막 수술, 지유는 이 수술을 마친 후 급격히 상태가 안 좋아져 결국 세상을 떠났다. 즉, 이 편지는 내가 지키지 못했던 지유의 마지막 날 쓴 편지였다.

    [언니는 지금쯤 학교에서 오고 있겠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언니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야.]

    [언니는 내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잖아. 옆 침대에 시연이라는 애가 있는데 걔가 나 엄청 부러워했어.]

    [항상 고마워.]

    [그리고 하루 못 온다고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아니 언니는 나한테 아예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왜냐면 난 항상 언니에게 미안한 일을 하니까.]

    한 문장씩 읽어갈수록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내 부탁 들어주다가 가끔 언니가 엄마랑 아빠한테 혼났지?]

    [그거 정말 미안해. 내가 나중에 엄마랑 아빠한테 언니 혼내지 말라고 말할게.]

    ‘네 잘못이 뭐가 있다고, 사과를 하는 거야.’

    소매로 눈을 닦아가며 계속해서 편지를 읽었다.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언니는 친구도 많은데 나 때문에 맨날 병원으로 오고, 엄마랑 아빠랑 놀러 가지도 못하고.]

    [내가 나아서 같이 놀러 가고 싶은데, 의사 선생님이 나는 오래 살아도 3개월 밖에 못 산다고 하더라.]

    [만약 내가 하늘나라로 간다면 그때부터는 언니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줘.]

    [내가 하늘에서 지켜보다가 언니를 도와줄게.]

    [그리고 나중에 언니가 할머니가 돼서 오면 언니가 했던 일을 들려줘.]

    [병원에서 했던 것처럼.]

    [언니 사랑해.]

    [다음 생에는 내가 언니의 언니로 태어날게.]

    [그래서 언니보다 더 언니를 챙겨줄게.]

    [그럼 안녕!]

    ―언니 동생 지유가

    마지막 문장까지 읽자마자 난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집어삼킨 이 감정이 슬픔인지 감동인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지유가 보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지유의 작은 몸을 끌어안고 미안하고 고맙다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편지에서 지유는 내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어 했던 말을, 그 어린아이가 남기고 간 것이다.

    ―키이잉.

    그때 갑자기 부드러운 온기가 날 감쌌다. 양팔에 묻었던 얼굴을 들자 새하얀 털이 눈에 들어왔다.

    “녹두야……?”

    녹두는 아무런 말 없이 그 큰 몸을 한껏 구긴 채 내게 제 품을 내어주었다. 난 녹두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 울음을 토해냈다. 지유에게 가졌던 죄책감을 완전히 떨쳐내는 덴 아마 시간이 걸리겠지만 적어도 꿈속에서 나를 원망하는 지유와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아…….”

    숨을 겨우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 위로해준 녹두의 털이 축축하게 젖어 있어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녀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혓바닥을 내민 채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언니랑 닮았네.’

    ‘그래?’

    ‘응. 웃는 눈이 닮았어.’

    녹두는 지유의 사진과 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달칵.

    공책을 다시 유리장 안에 넣어두고 문을 닫았다. 액자 속 지유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비명(非命)의 구원자는 내가 아니라 너일지도 모르겠다, 지유야.’

    세상을 구한 건 나와 동료들일지 몰라도, 그 계기가 되어준 건 지유였으니까. 제 명을 전부 살지 못하고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죽어서도 나를 구원한 구원자.

    “…나중에 또 올게.”

    지유에게 인사를 하며 한 발짝 물러났다. 녹두도 다시 팔찌 안으로 돌려보낸 후 그대로 봉안당 건물을 빠져나왔다.

    결국 모든 일은 제자리를 찾았다. 재앙 ‘지옥도’는 소멸했고, 그 재앙의 원흉이었던 김강희는 절대자인 조율자의 감시 아래 여생을 살게 됐다.

    던전이 있는 한 이 세상이 완전히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 던전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헌터들은 남아 있었다.

    그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세상은 늘 그렇듯 돌아갈 것이다.

    ‘지유 말대로, 이젠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도 되는 거겠지.’

    세상에게 묶여 구원자로 살았던 나의 삶도 이젠 오롯이 내 것이 되었다.

    ―탁.

    회귀의 굴레에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니 두 발이 가벼워졌다. 내 삶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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