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37화 (337/366)
  • 337화

    <사필귀정>

    ―탁!

    한참 허공을 헤매던 두 발이 드디어 지면에 닿았다.

    “지의야!”

    “신지의 헌터!”

    시야가 돌아오기도 전에 세빈이와 최민 헌터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곧 나를 부축하는 손길이 느껴졌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뜨자 걱정이 가득한 두 얼굴이 불쑥 들이밀어졌다.

    ‘돌아왔구나…….’

    두 사람의 얼굴을 보니 긴장이 완전히 풀어졌다.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며 세빈이를 향해 물었다.

    “…나 얼마나 오래 사라져 있었어?”

    “사라져……?”

    세빈이가 눈을 깜박거리며 고개를 살짝 꺾었다.

    “사라졌었어? 내 눈엔 스파크밖에 안 보였는데…….”

    세빈이의 대답에 동조하듯 최민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잠깐 멈췄던 건가?’

    세상의 틈에 적어도 5분 정도는 머물렀던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내가 사라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을 잠깐 멈춰 놨거나 내가 모르는 어떤 눈속임을 쓴 것 같았다.

    ―치지직.

    그때 하늘에 황금색 상태창이 나타났다.

    [비명의 구원자의 소원 수리]

    [재앙 ‘지옥도’ 등장 이후 사망한 모든 사람의 부활]

    [세상이 질서를 재정리한다.]

    ―끼리릭.

    태엽을 감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하늘에서 새하얀 빛줄기가 하나둘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빛이 쓰러진 동료들 위로 쏟아지자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흉기들이 그대로 바스라졌다.

    얼마 안 있어 상처까지 치유됐다. 검붉은색으로 말라붙었던 피는 말끔하게 없어졌고 딱딱하게 굳은 피부에도 혈색이 돌아 더 이상 죽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신지의 헌터, 혹시 이건…….”

    최민 헌터가 그 모습을 보며 내게 말을 걸었다. 놀라서 목이 멨는지 미처 문장을 다 끝내지 못한 그를 향해 조용히 미소 지었다.

    “다른 사람들한텐, 특히 이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

    “괜히 목숨을 빚졌느니, 생명의 은인이니 하는 소리는 안 듣고 싶거든요.”

    최민 헌터는 잠깐 멈칫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난 다시 고개를 돌려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들의 생명의 은인 따위가 아니다. 애초에 내가 이 소원을 빌 수 있던 것도 이들의 힘이 있어서였으니까,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구했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힘을 준 건 이 네 명뿐만이 아니었다. 내 양옆에서 목숨 걸고 싸워준 세빈이와 최민 헌터, 컨트롤 타워로서 헌터들을 지휘한 하미준 헌터, 쉬지 않고 사람들을 치료한 한진우 헌터와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김강희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 차도윤 헌터, 그리고 이 세상 어딘가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준 모든 이들.

    모두의 힘이 모여 이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소원 실현 완료]

    상태창은 그 문장을 끝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끼익.

    그때 나무판자가 맞닿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곧바로 고개를 내리자 새하얀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오, 씨, 머리가…….”

    머리카락의 주인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이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맹수를 닮은 황금색 눈동자가 오롯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오만하지만 다정한 탕자, 레일리가 돌아왔다.

    “지의… 컥!”

    ―쿵.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도 모르게 레일리를 향해 몸을 날렸고 레일리는 어정쩡한 자세로 나를 받은 탓에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어이쿠. 지의, 무슨 상황인지 설명부터 해라.”

    “…….”

    “…우나?”

    “안 울, 어.”

    “너, 거짓말에 소질 없다는 건 알고 있나?”

    레일리가 더 놀리기 전에 옷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은 후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자 레일리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보여 또다시 눈이 뜨거워졌다.

    “두 분… 뭐 하세요?”

    “뭐, 영화라도 찍는 건가?”

    “조슈아! 비스!”

    뒤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자다 깬 것처럼 머리가 부스스해진 조슈아와 조금은 지친 기색을 보이는 비스가 나와 레일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탁!

    곧바로 몸을 돌려 두 사람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온기가 그들이 진짜로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울컥했다.

    “…뭐, 이제야 좀 네 나이 같군. 전에는 좀 애늙은이 같았는데.”

    “아하하~ 비스 씨가 하시는 말씀 조금은 이해 가네요.”

    날 웃기려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나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팔을 들어 날 일으키자 대자로 누워 있던 레일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락.

    그때 센이 있던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고개를 돌리자 그가 눈을 깜박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겉옷에 달린 새하얀 털이 먼지와 흙으로 더러워졌지만 나를 보자마자 지은 미소만큼은 늘 그렇듯 빛나고 있었다.

    “신지의 헌터.”

    “센 씨…….”

    ―또각, 또각.

    센이 게타 소리와 함께 내게 다가오더니 곧 양팔을 뻗어 나를 끌어안았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센 씨도요.”

    내 등을 토닥이는 손과 센의 목소리가 결국 겨우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리게 했다. 두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난 센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한참 울음을 토해냈고, 센은 아무런 말 없이 나를 달래며 내 눈물이 멎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이제 진정됐나요?”

    “네…….”

    “저한테 이렇게까지 의지해 주다니, 조금 기분 좋네요.”

    고개를 들고 센을 바라보자, 그는 싱긋 웃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얼마나 절망했는지 센은 알까.

    또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 후 다시 고개를 내렸다. 그러자 최민 헌터와 세빈이를 포함한 사람들이 내 주위로 다가왔다.

    “그나저나 이상하군. 분명 공격을 입은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이후의 일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

    “저도요. 곧바로 기절할 정도면 엄청난 공격이었을 텐데 말이에요.”

    “지의, 혹시 네가 치료한 건가?”

    비스가 내게 묻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아니. 나도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어.”

    침착하게 대답하자 다들 찝찝한 눈치로 고개를 끄덕였다.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심]

    딱 한 사람만 빼고.

    “내가 일어나자마자 달려들 정도면 분명 무슨 일이 있긴 했던 건데…….”

    레일리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뼈가 있는 혼잣말에 나 혼자 찔렸지만 일단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레일리는 한참 매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곧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지의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맞아요. 일단 다들 무사한 게 다행이니까요.”

    조슈아의 말에 다들 수긍하며 잠깐의 긴장 상태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하여간 눈치가 너무 빠르다니까.’

    레일리가 더 캐묻지 않아 다행이었다. 비명의 구원자니 뭐니 하는 상태창도 못 봤으니 자기들에게 벌어진 일도 평생 모를 것이다.

    동료로서 남는 것, 난 그거 하나면 된다.

    ―끼익.

    그때 누군가의 손이 호수 밖으로 튀어나와 펜스를 움켜쥐었다. 구둣발이 광장의 나무판자를 딛자마자 사람의 형체가 쑥 올라왔고, 그는 펜스를 가볍게 넘어 우리 앞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감동의 재회 중인 것 같군. 혹시 내가 방해했나?”

    ―쿵.

    김강희가 말을 건네자마자 일제히 그를 향해 무기를 들었다. 당장이라도 전투가 시작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기세였지만 김강희는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우리들을 천천히 훑었다.

    “참 이상한 일이야… 분명히 내 두 눈으로 자네들이 죽은 걸 봤는데 어떻게 다들 살아난 건지, 원.”

    “우리가 죽었다고?”

    “그렇네. 물론 나 또한 죽었었지.”

    김강희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신지의 헌터, 이것도 분명 자네의 짓일 거야. 그렇지?”

    “마음대로 생각해.”

    “그럼 긍정의 뜻으로 이해하겠네.”

    ‘지옥도 등장 이후 사망한 모든 이들의 부활', 즉 내 소원으로 김강희도 함께 부활한 것이다.

    “지의, 저 녀석 이젠 죽여도 되나?”

    “아니.”

    내 대답에 모두가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건 김강희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놀란 기색을 보이던 그는 다시 씩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살아서 죗값을 치르라는 진부한 말을 할 셈인가?”

    “…….”

    “그것도 아니라면 자네가 직접 날 죽일 건가?”

    내가 그에게 한 발짝씩 다가갈 때마다 김강희에게 악에 받친 투로 이야기했다.

    ―탁.

    김강희의 바로 앞에 다가가고 나서야 그가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김강희도 함께 부활한다는 걸 예상하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부활한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이미 생각했고.

    난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입을 뗐다.

    “너에 대한 복수는 한번 죽이는 걸로 끝냈어.”

    “…….”

    “여기서 널 한 번 더 죽이자니 의미가 없고, 그렇다고 살려두기엔 괘씸하지.”

    ―철그럭.

    난 인벤토리에 있던 목걸이를 꺼낸 후 장식에 손을 얹었다.

    “그래서 너에 대한 처분은 또 다른 절대자에게 맡길 거야.”

    “대체 그게 무슨 소리…….”

    ―키이잉.

    김강희가 말을 다 마치기 전에 목걸이에서 새하얀 구체가 튀어나왔다. 구체, 정확히는 구체의 형태를 한 조율자는 하늘을 날아다니다 내 옆에 멈춰 섰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인간들에게 모든 걸 다 맡기고 세상이 유지되길 바랐던 게으른 너한테 역할을 좀 주려고.”

    ―파지직.

    구체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볼 바로 옆을 스쳐 따끔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김강희를 네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그리고 죽을 때까지 평생 감시해.”

    “제가 왜 그런 일을 해야 하죠?”

    “그럼 언제 세상을 무너트릴지도 모르는 인간을 이렇게 방생시켜놔?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창조자의 힘을 숨겨놨을 수도 있는데?”

    조율자는 내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솔직히 통쾌했다.

    “너보다 밑에 있다고 생각한 인간이 명령하니까 기분 나쁜가 보네.”

    “…….”

    “사실상 넌 다 된 밥에 숟가락이나 얹는 수준이야. 그렇게 잘난 절대자면 이 정도 부탁은 좀 들어.”

    ―쿠구구궁.

    내가 말을 끝내자 구체가 점점 커지더니 곧 조율자의 원래 모습으로 바뀌었다. 커다란 양이 나를 내려다보았고, 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고개를 쳐들었다.

    “당신은 그 어떤 각성자보다도 교활합니다.”

    “네 입장에선 그렇게 보일 수 있겠네.”

    “당신의 부탁대로 저 각성자는 제가 데리고 있죠.”

    조율자의 고개가 김강희 쪽으로 꺾였다. 김강희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나와 조율자를 번갈아 보았고, 믿기 힘들다는 듯 헛웃음을 몇 번 터트렸다.

    “하, 하하하…….”

    ―후웅.

    그러더니 묵직한 바람 소리와 함께 김강희가 조율자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소 시시한 마지막이었지만 오히려 김강희에게 어울리는 끝이었다.

    “…그리고 제가 당신을 만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겁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치지직.

    조율자는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그가 줬던 목걸이까지 모래처럼 바스라져 조율자를 불러낼 수단조차 사라졌다.

    세상을 무너트린 김강희에 대한 복수는 죽음으로, 세상을 유지하는 역할임에도 손 놓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조율자에 대한 복수는 과업으로 갚았다.

    100번의 시도 끝에 만들어낸 최고의 복수이자, 내가 만들 수 있던 최선의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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