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35화 (335/366)

335화

[카르마 : 회귀자가 파괴되었습니다.]

‘없앨 수 있는 거였어.’

상태창이 뜨자 지의는 미소 지었고, 강희의 얼굴엔 그늘이 졌다. 갑자기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 지의의 행동부터 후련해 보이는 미소까지, 강희가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단 하나도 없었다.

지의가 방아쇠를 당겼을 때, 강희는 그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물드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일시적인 속성 전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절대자. 강희는 황금색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 창조자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각성자의 수준을 넘어선 어떤 거대한 힘 그 자체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기 힘들었고, 입을 움직이는 게 강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지금 대체…….”

“말해도 이해 못 할걸. 아니, 애초에 너한테 말할 생각도 없었고.”

지의가 자아를 피어싱 형태로 돌려놓자 지옥도의 앞에 뜬 글씨가 이리저리 깨지기 시작했다.

[회귀자 사망 시 ‘지옥도’ 완전 소멸]

[회귀자의 업 확인 불가]

[회귀자가 존재하지 않음]

[치명적인 오류 발생]

―치지지직.

여기저기서 뜯어내어 억지로 붙인 것마냥 삐뚤빼뚤한 설명창이 만들어졌다.

‘회귀자가 존재하지 않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지?’

강희가 지의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눈앞에 있는 지의의 존재와 상태창 사이의 괴리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다, 지의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 원인이라는 걸 눈치챘다.

“업이라고 들어봤어?”

“…한때 불교에 관심이 있었으니 당연히 알고 있네.”

“이 세상은 업을 나 스스로의 행위로 인해서, 또는 절대자와의 계약을 통해 짊어지게 된 것으로 보고 있어.”

지의는 손가락으로 지옥도 옆의 설명창을 가리켰다.

“세상은 이 업을 가진 사람들을 놓치지 않아. 어떠한 형태로든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거나, 아니면 희생시켜서 세상의 밑거름이 되도록 만들어.”

“자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치지직.

[‘지옥도’ 소멸 조건 변경]

[학살자 사망 시 ‘지옥도’ 완전 소멸]

지의의 예상대로 세상은 업을 가진 다른 이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업을 가졌다는 건 사실상 세상의 예비 목숨이 된 것을 의미했다.

‘짜증 나는 자식들.’

인간을 수단으로밖에 보지 않는 듯한 세상의 태도에 지의는 속이 끓었다.

―파지직!

[학살자의 업 확인 불가]

[학살자가 존재하지 않음]

[치명적인 오류 발생]

하지만 지의는 그런 세상보다 한 수 앞섰다. 그는 한결 여유로운 얼굴로 그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만약 이 세상의 모든 업을 없앴다면 세상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지 않아?”

[‘지옥도’ 소멸 조건 변경]

[오만한 소설가 사망 시 ‘지옥도’ 완전 소멸]

[오만한 소설가의 업 확인 불가]

[오만한 소설가가 존재하지 않음]

[치명적인 오류 발생]

[표리부동한 연기자의 업 확인 불가]

[표리부동한 연기자가 존재하지 않음]

[치명적인 오류 발생]

지옥도 주변으로 상태창 수십 개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세상은 어떻게든 희생양을 찾기 위해 한때 존재했던 모든 업들을 찾아봤지만, 지의가 전부 제거해버린 탓에 계속해서 오류만 낼 뿐이었다.

강희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지의를 바라보았다.

‘저 얼굴이 이토록 무서운 적이 있었나.’

지옥도를 뒤로한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앳된 얼굴에서 원초적인 공포가 느껴졌다.

“근데 세상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평생 모를 것 같긴 해.”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야…….”

―치지직.

[‘지옥도’ 소멸 조건 변경]

[파괴자 사망 시 ‘지옥도’ 완전 소멸]

[재창조까지 남은 시간 : 2시간 43분]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업이 하나 있을 테니까.”

지의가 입을 다물자 강희의 눈에만 보이는 상태창이 하나 더 나타났다.

[파괴자의 업]

[절대자 ‘창조자’가 각성자 ‘김강희’에게 씌운 파괴자의 업. ‘창조자’의 힘을 계승한다.]

“아, 아아…….”

“…….”

“아하하하하하!!”

강희의 메마른 탄식이 곧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되었다. 웃음은 곧 오열이 되어 광장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고 김강희를 제외한 이들은 그를 무감정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후두둑.

강희가 몸을 일으키자 한쪽 팔이 뚝 떨어졌고 그것은 바닥에 닿자마자 한 줌의 재가 됐다. 가볍게 부는 바람에도 그의 몸이 모래성처럼 깎여나갔고, 입과 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의 형체는 더 이상 인간으로 볼 수 없었다.

“영리하군. 신지의 헌터, 자네는 아주 영리하고… 그래, 아하하…….”

강희는 문장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횡설수설했다. 지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지의가 강희를 진심으로 믿었을 때도 있었다. 그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 헌터 시스템의 기반을 다지고, 예지 능력으로 사람들을 큰 위기로부터 구할 때마다 그가 한국의 헌터 수장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비참한 끝이로군.’

하지만 다 옛이야기다. 지의는 강희가 완전히 소멸해 지옥도의 제거 조건을 충족하길 기다릴 뿐이었다.

―끼익.

강희가 광장의 난간에 기댔다. 그의 잔해는 석촌호수에 쌓이더니 곧 가라앉았다. 강희는 물을 보며 피식 웃곤 다시 고개를 들어 지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이 말 한마디만 하지.”

“…….”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창조자의 역할을 할 존재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걸.”

―첨벙!

강희의 몸이 난간 뒤로 넘어가더니 그대로 호수에 빠졌다.

“저게……!”

“괜찮아, 세빈아.”

달그림자로 강희를 건지려던 세빈을 지의가 저지했다. 지의는 보글거리는 물거품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할 테니까.”

무미건조한 지의의 말에 세빈은 그림자를 완전히 거둔 채 강희가 빠진 호수의 안을 들여다보았다. 당연하게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어둠의 깊은 곳, 강희의 몸이 가라앉고 있었다. ‘유화의 반지’ 덕에 숨을 쉴 순 있었지만 물살에 떠밀릴 때마다 신체의 일부가 그대로 산산이 부서졌다.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강희는 실패 따위 없던 과거의 영광을 떠올렸다. 과거를 향해 되감던 기억은 어느새 그가 12살이었던 때까지 다다랐다. 강희의 병적인 수준의 통제 성향이 만들어진 때였다.

그에겐 한 살 위의 오빠, ‘강석’이 있었다. 태도와 행실, 그리고 학업적 성취나 평판으로 봤을 때 강희가 훨씬 우수했음에도 집안의 모든 관심과 지원은 강석에게만 주어졌다. 강희는 큰 불만을 갖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성정을 가졌기에, 어른들의 불합리한 판단에도 다 뜻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장손이라는 이유로 모든 특권을 취했지만 강석은 제 여동생에 대한 지독한 열등감에 시달렸다. 열등감은 강희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되었다. 강희가 그와 같은 중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비교당하기 시작하자, 폭력의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지기 시작했다.

강희는 부모에게 상처를 보여주기도 하고, 아예 경찰에게 신고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 오빠의 사과 몇 마디에 부모는 그를 용서했고, 경찰은 부모에게 모든 교육을 맡긴 후 돌아갔다.

정작 강희는 단 한 순간도 그를 용서한 적이 없었는데도.

―아예 네가 죽어야 해. 네가 죽어야 더 이상 그 지긋지긋한 소리를 안 들어도 되겠지.

남매의 부모가 외출한 어느 주말 오후, 강석은 강희의 목을 조르며 말을 쏟아냈다. 여느 때와 다른 수준의 폭력에 강희는 진심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몸부림치던 강희의 손에 잡힌 건 다름 아닌 장도리였다. 침대 헤드 밖으로 튀어나온 못을 바로잡으려 강석이 직접 가져온 것이었다. 강희는 장도리를 잡아 온 힘을 다해 강석을 향해 휘둘렀고, 그 묵직한 쇳덩이는 정확히 강석의 두개골을 부쉈다.

제 손으로 오빠를 죽인 그 순간 강희가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이제 죽을 일은 없겠네.’였다. 벌어진 상황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이 살해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자신이 빠져나올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그는 일단 장도리를 깨끗하게 닦고 제 방 옷장에 숨겨두었다. 이 사건만 무사히 수습되면 폐기할 생각으로 말이다.

그 후 강희는 강석의 방으로 돌아와 제 옷 소매를 길게 뺀 채로 강석의 몸을 들어 침대 쪽으로 질질 끌었다. 온 힘을 다해 상체를 들어 올리니 강석의 머리가 아슬아슬하게 침대 헤드까지 올라왔다.

―콰그작.

강희가 손을 놓자 강석의 깨진 두개골이 침대 헤드에 의해 한 번 더 부서졌다. 짓이겨진 머리를 보며 강희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곤 주방으로 가 소주 한 병을 들고 왔다. 옷소매로 잡았기에 당연히 그의 지문은 남지 않았다.

소주 뚜껑을 열어 강석의 입에 들이부은 후 병에 그의 지문을 잔뜩 묻혔다. 강석은 미성년자였음에도 상습적으로 냉장고에 있는 술을 마시는 사람이기 때문에 병에서 그의 지문이 나타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강희는 자신의 부모가 이 모습을 본다면 강석이 ‘술 먹다 중심을 잃고 침대 헤드에 부딪혀서 사망했다’고 생각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과하게 신경 쓰는 사람들이니 이 사건을 얼른 묻고 싶어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걸론 부족한데.’

강희는 다시 소매로 소주병을 들어 이번엔 제 얼굴에 뿌리고, 아예 한 모금 마셨다. 독한 알코올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강석이 자신에게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한 것처럼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술 때문에 쓰러져 있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고, 만약 자신이 범인이라는 걸 들켰을 땐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는 강희는 방문 앞에 엎어졌다. 그 모든 일을 끝낼 때까지 강희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마땅히 해야 할 일, 그리고 언젠가 해야 했던 할 일이라 생각했다.

그가 술기운에 잠들어 병원에서 다시 눈을 떴을 땐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였다.

강석은 술을 마신 채 강희에게 폭력을 휘두르다 이불을 밟고 미끄러져 침대 헤드에 머리를 부딪힌 걸로 받아들여졌다. 강희의 부모는 그제야 제 딸에게 괜찮냐는 말을 건넸고, 경찰도 강희를 크게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위로했다.

―학생, 그때 정말로 기절해 있던 것 맞아요?

오직 신입 경찰만이 강희를 꿰뚫어 보고 있을 뿐이었다. 강희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앞으로 큰일을 하려면 이것보다는 더 완벽하게 계획해야겠구나.’

이번엔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강희는 그 이후 더욱 강박적으로 계획을 세웠고,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모든 상황에 대처했다. ‘돌발’이란 단어는 그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를 되새기던 강희가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소멸했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내게도 두 번째 기회가 있다면, 일단 신지의 헌터부터 죽이고 시작할까.’

그렇게 생각할 때쯤 강희의 몸이 마침내 호수의 바닥에 닿았다. 그러자 전신이 조각조각 갈라져 모래 알갱이마냥 흩어졌다.

미래를 보는 눈, 파괴자, 창조자의 후계.

이 모든 재앙을 만들었던 존재가 진정으로 소멸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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