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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332화 (332/366)
  • 332화

    ―저들이 죽으면? 그럼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해?

    ―아니, 그럴리 없어. 김강희가 어떻게 그걸 해내겠어.

    ―하지만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시끄러워……!”

    번뇌라는 말에 걸맞게, 내면의 갈등이 멈추지 않았다. 김강희가 진짜로 내 동료들을 죽일지 모른다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 그것이 내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자 갖고 있는 불안이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는 탓에 전투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고 아까 조슈아가 녀석에게 멱살을 잡혔던 것처럼 아슬아슬한 상황이 계속 벌어졌다.

    [사출 가능 탄환]

    <부정> 표적이 부정하게 만든다.

    또다시 탄환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모든 문장들을 부정할 힘, 그런 정신력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철컥.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자 주변에 있던 모든 동료들에게 새하얀 과녁 표시가 나타났다.

    ―쿵!

    내 움직임을 눈치챈 건지 중생의 역린이 이번엔 내게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새에 내 코앞에 나타난 녀석은 손톱 끝으로 내 허리를 노렸고 난 아슬아슬하게 쉴드를 펼쳐 막았다.

    ―우득.

    “윽……!”

    급하게 만든 탓에 쉴드가 견고하지 못했는지 손톱 끝이 기어코 쉴드를 뚫고 내 옆구리를 찢었다.

    ―탕!

    눈앞을 새하얗게 물들이는 고통을 이겨내며 녀석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역린이 목을 옆으로 훅 꺾어 탄환을 피하곤 다리를 들어 찔린 부위를 강하게 찼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자마자 비스가 나와 녀석의 사이에 대낫을 꽂아 거리를 벌려주었다.

    “허세일 뿐이야. 아니, 만약 정말로 죽는다 하더라도 저 자식의 옆에 설 순 없어.”

    비스의 중얼거림이 귀에 꽂혔다. 그 역시 나와 비슷한 번뇌에 빠진 듯했다. 본능적인 생존 욕구가 그의 이성을 서서히 마비시키고 있을 것이다.

    ―철컥.

    망설일 틈이 없었다. 전투 현장에서 조금 멀어진 틈을 타 다시 말의 탄환을 골랐고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부정의 탄환 사출]

    [표적 : 각성자 ‘강세빈’]

    [표적 :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

    [표적 :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

    [표적 : 각성자 ‘최민’]

    [표적 : 각성자 ‘아마노 레이’]

    [표적 :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

    한 번에 많은 탄환을 발사하니 눈앞이 순식간에 동료들의 이름으로 가득 찼다. 새하얀 탄환이 그들의 몸을 관통하자마자, 휘청거리던 레일리가 아더의 방패를 높이 든 채 중생의 역린 바로 앞에 섰다.

    ―쾅!!

    녀석의 손톱을 막는 동시에 메이스로 머리를 내리쳤다. 전보다 훨씬 민첩해진 움직임이었다.

    “후, 이제야 조용해졌군."

    “다행히…….”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간다고 해도, 그다음은? 내 희생 없이 지옥도를 제거할 수 있는 게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젠장할…….’

    다른 사람들의 번뇌는 풀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여전히 이 목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탄환을 스스로에게 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쾅!

    불안이 내 정신을 갉아먹는 동안, 다행히 동료들은 잘 싸워주고 있었다. 레일리가 전방에서 단단하게 막아주자 조슈아가 방패를 뛰어넘은 후, 역린의 양어깨 위로 착지했다. 붉은 손톱은 세빈이의 그림자에 꽁꽁 묶여 조슈아의 털끝에도 닿지 못했다.

    ―콰직!

    [현재 체력 : 68,330]

    잭나이프의 날이 역린의 목 양쪽을 후벼 파자 녀석이 세빈이의 그림자를 뿌리치곤 양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콰과광!

    조슈아가 불꽃 궤적을 남기며 녀석에게서 멀어지자 이번엔 새하얀 빛줄기가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승부수를 띄우려면 지금이야.’

    중생의 역린이 또 다른 공격을 구사하기 전에 공격을 퍼부어야 했다. 나는 구원자의 가호 아래를 여는 동시에 자아를 입가로 가져왔다.

    “최민 헌터, 레일리! 두 사람은 방어에 집중해줘!”

    “알겠다!”

    “다른 사람들은 저 두 사람 믿고 공격만 퍼부어! 휘말리지 않게 조심하고!”

    “알았어요!”

    ―쾅!

    레일리와 최민 헌터의 특성을 켜고 방어력을 최대로 올렸다. 반면 그 외 동료들은 공격력을 최대치로 상승시켰다. 그러자 센을 쫓던 중생의 역린이 방향을 바꿔 레일리와 최민 헌터 쪽으로 발을 돌렸다.

    ―콰과광!

    훤히 드러난 역린의 등에 온갖 스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옥에서 올라온 듯한 붉은 용암과 지축을 뒤흔드는 그림자 손. 공간을 절단하는 낫과 악한 것들을 전부 심판하는 듯한 새하얀 빛줄기까지.

    모든 공격이 정확하고 파괴적인 위력으로 들어갔다.

    “으극, 큭…….”

    난 이를 악문 채로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현재 체력 : 45,593]

    [현재 체력 : 39,992]

    역린의 체력이 조금씩 줄어들고 신체 일부가 깎여 나갈 때마다 내 의식도 흐려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이 싸움의 끝이 있을까?

    ―지옥도를 없애는 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지?

    사도들의 죽음을 걱정하던 내 불안은 어느새 지옥도와 회귀했던 내 삶 전체로 확장되었다. 애써 무시해 왔던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자 나는 스스로 세뇌하듯 중얼거렸다.

    “이길 수 있어, 끝낼 수 있어, 살아남을 수 있어…….”

    ―쾅, 쾅, 쾅

    [현재 체력 : 21,572]

    정신을 겨우 붙잡아 놓은 와중에 역린의 체력이 무서운 속도로 떨어졌다. 동료들이 역린을 에워싼 채로 공격을 퍼붓고, 반격할 틈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센!”

    “알겠습니다.”

    ―콰과광!

    [현재 체력 : 17,162]

    이름을 부른 것만으로 서로의 의도를 알아채고 한 몸처럼 움직이며 공격을 이어갔다.

    ‘그래, 괜찮을 거야.’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번뇌로 인한 나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내 동료들은 파괴자, 지옥도 이깟 것들한테 질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이들은 내가 겪은 어떤 시간선에서도 만들어 내지 못했던 최강의 팀이자, 내가 그릴 수 있는 최선의 미래였다.

    ―쾅!!

    “지의!”

    “신지의 헌터!”

    “지의야!”

    중생의 역린이 갑자기 아더의 방패를 박차더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녀석의 팔은 관절이 꺾여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고, 발목도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져 있었다.

    ―철컥.

    그런 녀석을 향해 바주카를 들었다. 죽음을 앞둔 것도 아니고 지옥도를 소멸시킨 것도 아닌데, 우습게도 주마등이 스쳤다.

    여기저기 흩어진 기억들을 되찾고, 지난 시간선의 ‘나’들이 쌓았던 업보를 청산하며 모든 것을 바로 잡았다.

    비겁한 절대자들에게 이용당한 사도들을 자유롭게 했고, 내 죽음에 얽매인 채 스스로의 존재를 잃었던 소꿉친구도 인간으로 남게 했다.

    나의 회귀로 만들 수 있는, 사상 최고의 결말이다.

    ―퍼버버벙!!

    포탄이 녀석의 머리를 관통하자마자 녀석의 온몸에 금이 갔다.

    ―쨍그랑!

    역린의 몸이 수십, 수백 개의 파편이 되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머릿속에 울리던 목소리도 완전히 사라졌고, 우리의 목숨을 몇 번 앗아갈 뻔한 붉은 손톱 역시 가루가 됐다.

    [현재 체력 : 0]

    마침내 이 길었던 전투가 막을 내렸다.

    [파괴자의 아틀리에가 무너집니다.]

    [창조자가 되어 세상을 재구축하겠다는 그의 야심도, 절대자라는 역할에 질린 신도 전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파아아앗.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석촌호수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레 펼쳐진 평화로운 풍경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됐다!”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아이처럼 기뻐하는 조슈아의 목소리를 듣자 정신이 확 들었다. 센까지 평소보다 더 밝게 소리쳤고, 승리감에 취해 피로까지 잊은 듯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겼다. 김강희의 영역에서 무사히 빠져나왔고, 창조자도 사라졌다.

    “진짜… 진짜로 이긴…….”

    ―쾅!

    그때 석촌호수에서 물기둥이 치솟더니 안에서 검붉은 진흙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우리가 서 있던 광장 쪽으로 떨어졌고 고개를 홱 돌리자 핏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은 김강희가 나타났다.

    “…죽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와 가장 가까이 있던 최민 헌터가 그의 코 밑에 슬쩍 손가락을 갖다 대며 말했다.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덜컥 죽었으면 분노했을 테니, 오히려 살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인간으로 돌아오긴 했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른쪽 눈을 감고 그를 바라보았다.

    [각성자 김강희]

    [물 속성]

    [고유 스킬 S등급]

    [S급 점성계 스킬 ‘천명(天命)’ :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 생명체, 장소의 미래를 확인한다. 재사용 대기시간은 24시간이다.]

    [연계 패시브 스킬 ‘독심(讀心)’ : 눈 마주친 대상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A급 방어계 스킬 ‘물안개’ : 상대의 공격을 빗겨 가게 하는 물안개를 소환한다.]

    [귀속 무기 : S급 반지 ‘유화의 반지’, 사용자의 능력을 증폭시키며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한다.]

    [무기 비문 : 우리의 죄라고 할 만한 것은 인간을 너무 사랑했다는 것밖에 없구나.]

    “하아아…….”

    인간이라는 걸 확인하니 입 밖으로 자연스럽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난 시선을 내려 녀석의 업과 사명을 살폈다.

    [‘카르마 : 파괴자’ : 절대자 ‘창조자’가 각성자 ‘김강희’에게 씌운 파괴자의 업. ‘창조자’의 힘을 계승한다.]

    [세상을 구원하는 자 :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여 세상을 구하라 (미달성)]

    ‘사명의 이름만 똑같고, 내용은 정반대네.’

    김강희가 자신의 사명에 대해 말했을 때 조금 의아했는데, 궁금증이 조금은 풀렸다.

    김강희의 업과 사명을 전부 확인하고 나니 그의 일그러진 야망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세상의 파괴자가 됨으로써 그 후의 세상을 창조할 힘을 얻으려 한 것이다. 그가 이상향으로 여기는 ‘완벽하게 통제된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자신의 패배까지 예상했을까?’

    이렇게 될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발버둥 친 거라면, 참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인간이긴 하다.

    “그래서 이 자식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그때 조슈아가 내게 물었다.

    “…지옥도가 완전히 닫힐 때까진 죽이지 않을 거야.”

    “그렇군. 아직 이 녀석에게 이용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레일리는 메이스를 집어넣으며 기지개를 쭉 켰다.

    ―파사삭.

    고개를 들자 아슬아슬하게 제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지옥도가 가장자리부터 소멸하고 있었다.

    ‘드디어 사라지는구나.’

    지옥도의 소멸을 보는 건 100번의 회귀 중 이번이 두 번째였다. 98번째의 나는 저 모습을 보며 허탈함만을 느꼈는데 지금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보람을 느꼈다.

    한 10분 정도 지나고 회귀자의 업을 지닌 각성자가 죽어야 한다는 상태창이 뜨긴 하겠지만, 적어도 98번째보다 많은 사람을 살린 건 틀림 없으니 지금만큼은 이 기쁨을 즐기고 싶었다.

    “다들 여기까지 함께 해줘서 고마…….”

    ―콰그작.

    동료들에게 말을 건네며 고개를 내린 순간이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레일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니, 최민 헌터와 세빈이를 제외한 모든 동료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 눈높이에서 보이지 않을 리가 없는데.

    “어?”

    고개를 더 밑으로 내렸다. 힘들어서 주저앉은 걸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고개가 밑을 향할수록 시야의 가장 밑부분부터 붉은 액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고개가 완전히 밑으로 떨어졌을 때, 내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레일리, 센, 조슈아, 그리고 비스. 목숨을 걸고 함께 싸웠던 동료들이 전부 피범벅이 된 채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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