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27화 (327/366)
  • 327화

    ―쿠구구구궁.

    방아쇠로 석상을 맞히자 내가 알고 있는 창조자의 파편 보스 몬스터의 크기로 변했다. 지평선의 김강희만큼이나 커진 녀석은 반듯하게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체력 한번 징글징글하구나.”

    칼리가 질린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동의하는지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칼리의 말에 동조했다.

    [예술가의 역린]

    [현재 체력 : 3,250,000]

    [*예술가의 역린 파괴 시 예술가를 제거할 수 있다*]

    [*예술가 제거 시 파■자 김강희를 각성자로 돌려놓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325만, 지금껏 만났던 몬스터들 중 가장 체력이 높았다. 대충 계산해 보니 저 녀석들 체력의 총합인 것 같았다.

    ‘그래서 머리가 다섯 개인 건가…….’

    몸 하나에 파편들의 머리가 빠듯하게 꽂혀 있었다.

    ―우드득.

    예술가는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들을 잡더니 곧 힘을 주어 그것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러자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단정한 양복 차림과 잉크병 머리, 바로 소설가였다.

    “하, 봤던 얼굴이군.”

    ―쿵.

    레일리가 아더의 방패를 꺼내 가장 전방에 섰다. 이미 싸워본 적 있는 최민 헌터와 세빈이도 저마다 자리를 찾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조슈아, 비스, 센 씨. 지금부터 소설 내용 같은 문장이 계속해서 뜰 거예요.”

    세 사람의 시선을 느끼며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 문장대로 행동해서 공격하면 돼요. 그렇게 공격하지 않으면 피해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요.”

    “문장 속에서 너희들의 역할도 파악해야 한다. 뭐, 빛의 구원자인가 뭔가 하는 이상한 별명으로 부르더군.”

    ‘기억력 끝내주네.’

    레일리는 내 설명을 거들며 픽 웃었다. 전투가 급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여유를 부리는 레일리를 보니 나까지 긴장이 풀려 버렸다.

    “까다롭군요. 이해했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오만한 소설가를 처음 만난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쿵.

    소설가의 뒤에 어느 틈엔가 의자가 생겨 있었다. 소설가가 의자에 앉은 후 품에서 작은 소설책을 꺼냈다. 표지에 핏자국이 묻어 있어 본능적인 불쾌감이 느껴졌다.

    [오만한 소설가는 숨겨두었던 책을 펼칩니다.]

    [자신이 언제 썼는지 모를 책입니다.]

    [부활한 마왕을 쓰러트리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퍼버벙!

    소설가의 책 대신 김강희의 공격이 우리를 덮쳤다. 허공에 폭발이 일자 푸른색 연기가 여기저기서 피어올랐다.

    “최민 헌터!”

    “알겠습니다.”

    ―쾅!

    최민 헌터가 불로 된 벽을 높게 세워 김강희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분리했다. 레일리도 김강희 쪽을 흘긋 보며 당장이라도 공격을 튕겨낼 기세로 움직였다.

    [불의 지배자와 용암 암살자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제가 마왕의 시야를 가리겠습니다.”]

    [불의 지배자에 말에 용암 암살자가 질 수 없다는 듯 마왕의 아킬레스건을 끊어 놓았다.]

    [현재 체력 : 3,250,000]

    ―투쾅!

    별명이 조금 바뀐 것 같긴 하지만, 불의 지배자는 누가 보아도 최민 헌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최민 헌터는 상태창이 나타나자마자 소설가의 눈에 폭발을 일으켰다.

    “체스터.”

    “아, 이해했어요.”

    최민 헌터의 행동과 상태창을 번갈아 보던 조슈아가 곧바로 소설가의 다리 뒤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콰득!

    곧이어 쌍검으로 정확하게 소설가의 발목에 깊은 자상을 남겼다. 상처에 용암까지 들이부어 흘러나오던 피를 틀어막자 발목이 서서히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마왕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분노했다.]

    [현재 체력 : 3,093,184]

    녀석의 체력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게 닳았다.

    “젠장할…….”

    불의 벽 너머로 김강희의 중얼거림이 귀에 꽂혔다. 녀석을 처음 소환할 때만 해도 자신만만했던 그가 욕을 하는 걸 보니, 방어력이 이 정도로 약할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창조자의 파편들은 창조자와 함께 사라졌다. 그러니 지금 우리를 상대하고 있는 건 그들을 흉내 내는 파괴자 김강희의 힘일 것이다.

    ―쾅!!

    그때 최민 헌터의 방어벽이 무너졌다. 그러자 김강희가 팔을 횡으로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고, 물로 만든 화살이 그의 손끝에서 생겨나 일제히 우리를 향해 쏟아졌다.

    ―콰과과광!

    ‘무슨 화살이 이렇게 묵직해……!’

    화살보단 창에 가까운 위력이었다. 쉴드로 막자마자 몸이 뒤로 밀렸고 재빠르게 뒤로 굴렀다. 오히려 팔에 힘을 주고 버텼다간 팔이 먼저 으스러질 것 같았다.

    ―쿠구궁.

    화살들이 땅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제법 깊은 웅덩이 수십 개가 생겼고, 난 그것들을 피해 공중을 디뎠다.

    [“내 분노를 느껴라!”]

    [마왕은 영웅들을 향해 운석을 쏟아냈다.]

    [현재 체력 : 3,093,184]

    ―콰광!

    소설가의 잉크병 머리에서 검은 잉크 방울이 솟아오르더니 정말로 운석처럼 우리를 향하기 시작했다.

    “성가시게 구는군!”

    ―쾅!!

    레일리가 앞으로 뛰어나가며 아더의 방패를 높이 들었다. 잉크는 방패에 맞고 반대편으로 튕겨 나가 소설가의 새하얀 셔츠를 더럽혔다.

    “윽!”

    “레일리?!”

    그때 레일리가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내리자 그가 신고 있던 전투화의 발목 부근이 녹아 있는 것이 보였고, 동시에 새빨갛게 익어버린 그의 아킬레스건이 드러났다.

    “다들 조심하거라! 방금 저 자식이 뿌린 물, 아무래도 염산인 것 같구나!”

    “별 구질구질한 수를 다 쓰네.”

    칼리의 말에 레일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후방으로 잠시 빠졌다.

    “녹두야!”

    ―쿠웅.

    주위를 날아다니며 공격을 보조하던 녹두가 레일리의 주위로 배리어를 펼쳤다. 낮말을 듣는 새를 해제하며 배리어 안으로 들어가자 레일리의 발목에 새하얀 빛이 모여들었다.

    “별것도 아닌데 유난은.’

    “나중에 큰일 날까 봐 그렇지.”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기쁨]

    겉으론 틱틱거려도 내 걱정이 내심 좋았나 보다. 웃음이 터질뻔한 것을 겨우 참은 후 다시 소설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빛의 구원자가 영웅들의 선봉에 서 그들을 이끌었다.]

    [빛의 구원자가 쏜 탄환은 마왕의 눈과 심장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현재 체력 : 3,093,184]

    이번엔 내 차례였다. 레일리와 한번 시선을 교환한 후 동시에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 앞에 생긴 아더의 방패가 김강희의 공격을 막아줄 때쯤, 나는 높이 뛰어올라 소설가의 눈앞에 바주카 형태의 자아를 들이밀었다.

    ―펑.

    포탄이 소설가의 두 눈에 명중하자 녀석은 얼굴을 감싸며 고통스러워했다.

    ―쾅!

    문장이 사라지기 전에 심장을 향해서도 한 발 날렸다. 피해가 제대로 들어간 듯 녀석의 몸이 뒤로 넘어갔고 결국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옥좌에서 떨어진 마왕은 크게 분노했다.]

    [“역시 이 몸을 한번 봉인시켰던 영웅들은 다르군.”]

    [마왕은 힘의 한계를 느끼지만 투지를 불태웠다.]

    [현재 체력 : 2,742,992]

    ―콰광!

    소설가는 의자를 부수고 일어나며 우리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부글부글 끓던 잉크가 화산처럼 폭발해 사방팔방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빛의 무인이 마왕의 공격을 피하며 그의 복부를 파고들자, 어둠의 대리자와 그림자 검사가 마왕의 양팔을 벴다.]

    ―쿵!

    센이 아마테라스를 시전하며 땅을 박차고 소설가에게 달려들었다. 새하얀 검이 소설가의 허리를 십자로 베자 그 틈에서 검은 잉크가 쏟아져 나왔다. 센을 자신을 향해 쏟아지던 잉크를 광휘로 지진 후 가볍게 착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센은 녀석의 오금도 깊게 찔렀다. 다리에 힘이 풀린 녀석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앉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번엔 비스와 세빈이였다. 세빈이가 그림자로 먼저 녀석의 양팔을 뒤로 꺾어 강하게 묶은 후 오른팔 쪽으로 달려갔다. 비스는 왼편으로 날아가며 낫을 높게 들었다.

    ―콰과광!!

    비스의 낫이 녀석의 팔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은 순간, 세빈이는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쳐 녀석의 양팔을 끊었다.

    [영웅들은 여유가 넘쳤다.]

    [이미 마왕을 봉인해 본 적 있었기에, 그들은 자로 잰듯 완벽한 공격을 펼쳤다.]

    [“끝은 내가 낼게.”]

    [빛의 구원자가 마왕의 머리를 노렸다.]

    ―철컥.

    소설가와 거리를 좁혀 잉크병 머리의 한가운데 바주카를 장전했다.

    ―퍼버벙!

    둔탁한 폭발음과 함께 녀석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산산조각 난 잉크병 조각과 함께 검은 잉크가 잔디를 완전히 적셔버렸다. 나는 아더의 방패 뒤에 숨어 녀석의 요란한 소멸 과정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현재 체력 : 2,146,829]

    “저 녀석, 체력이 100만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력도 좋다.”

    “그럼 다음 몬스터로 넘어가겠네.”

    “응. 아무래도 그렇겠네.”

    레일리와 세빈이를 향해 차례로 대답해준 후 무너져 내리는 녀석의 몸을 바라보았다.

    “남은 몬스터들 중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있나요?”

    그때 센이 내게 물었다. 머릿속으로 녀석들과의 전투를 잠깐 되짚어 보다가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연기자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긍]

    조슈아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지 나를 슬쩍 보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희의 행동, 스킬, 생각까지 전부 연기할 수 있거든요. 다른 사람들을 연기하면 제가 바로 구별할 수 있지만.”

    “신지의 헌터를 연기하면 곤란해지겠군요.”

    ―콰드득.

    최민 헌터가 대답하는 동시에 예술가의 역린이 서서히 크기를 줄여 평범한 성인의 형체가 되었다.

    “…마침 나타났네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조슈아의 말을 듣고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저 크기는 틀림없이 연기자였다. 녀석은 팔짱을 낀 채로 우리 중 누구를 연기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연기자가 저를 연기하기 시작하면 제가 김강희 쪽으로 탄환을 발사할게요. 그게 진짜 저라고 생각해 주세요.”

    “알겠다.”

    “좋은 방법이네요.”

    ―탁.

    연기 준비를 끝낸 듯 주위가 잠깐 암전되었다 금방 돌아왔다. 그러자 연기자가 서 있던 곳에 기모노를 입은 센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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