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25화 (325/366)

325화

―치지직.

[파괴자]

[세상의 적, 신세계의 주인]

김강희의 머리 위로 유려한 필기체의 글씨가 나타났다.

‘완전히 세상에 편입됐어.’

절대자가 되었다고 보기엔 애매하지만 적어도 세상이 김강희를 인간으로 인식하는 건 포기한 것 같았다.

“…몬스터로 봐야 하는 걸까요.”

“차라리 그랬다면 좋겠군. 그럼 저 녀석의 체력이라도 보이겠지.”

조슈아의 말에 비스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비스 말대로 차라리 몬스터였으면 더 편하게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리가 싸워온 건 몬스터였지 인간이나 절대자가 아니었으니까.

김강희의 정체가 보일까 싶어 조심스럽게 오른쪽 눈을 감자 김강희의 얼굴과 몸에 새빨간 글씨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파괴의 충동]

[예술가]

[파괴자의 업을 지닌 인간]

의미불명의 단어들이었다. 딱 한 가지 이해할 수 있는 건 김강희 역시 업을 지닌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것뿐이었다.

더 보고 있다간 시야 전체가 붉게 물들 것 같아서 다시 오른쪽 눈을 떴다. 김강희는 느긋하게 우리를 내려다보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지금의 김강희가 도저히 뭔지 모르겠어.”

“일단 부딪혀볼 수밖에 없겠군요.”

―후웅.

센이 김강희 쪽으로 검을 높이 들었다. 우리가 전투태세를 취할수록 김강희의 입꼬리가 더욱 위로 찢어졌다. 그 얼굴이 꼭 창조자와 닮아 있었다.

―콰과광!!

“윽!”

허공에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폭발을 피하기 무섭게 이번엔 칼바람이 연속적으로 불어왔고 순식간에 우리를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다.

‘아직 비스의 부상이 다 낫지 않았을 텐데……!’

비스가 있던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칼리가 그를 품에 안은 채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쾅, 쾅, 쾅.

이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할 기세였다. 예쁘게 가꿔진 꽃과 나무가 송두리째 뽑혀 나가 허공을 수놓았고, 처참한 잔해만이 바닥에 수북이 쌓여갔다.

―우우웅!

최대 출력으로 음파를 내보내자 김강희의 공격이 잠시 더뎌졌다. 그 틈을 탄 세빈이와 조슈아가 동시에 김강희 쪽으로 몸을 날렸고, 그림자 손들이 가장 먼저 그의 목을 향했다.

“쳇.”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손은 그대로 김강희의 목을 통과했고, 곧이어 떨어진 용암 폭포는 김강희의 얼굴을 따라 밑으로 주르륵 흘러내릴 뿐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박격포.’

―끼리릭.

만약 파괴력의 문제라면 내 공격엔 반응할지도 모른다. 포구를 정확히 김강희에게 맞추자 자아는 몸체를 진동시키며 거대한 소리 포탄을 날려 보냈다.

―콰과광!!

김강희가 일으킨 폭발만큼이나 커다란 폭발음이 울렸다. 먼지바람 때문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를 잠시, 곧 드러난 김강희는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급, 아니 최상급의 헌터들이 모여도 안 될 걸세. 이미 자네들은 너무 늦었어.”

“글쎄. 너도 아직 절대자가 된 것 같진 않은데?”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파괴자 ‘김강희’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분노]

이 상태창이 말해주고 있었다. 김강희가 각성자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은 확실하지만 아직 절대자가 된 것은 아니란 것을. 이미 절대자가 되었다면 창조자와 조율자가 그러했듯 동요한다는 설명이 나타나지 않았겠지.

―쾅!!

김강희가 또다시 폭발을 일으켰다. 아더의 방패가 위협적으로 날아오는 사물들을 막자 그것들은 방향을 바꾸어 김강희를 향했다.

―타닥.

낮말을 듣는 새로 날아올라 주위를 살폈다. 아름다웠던 정원이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쑥대밭이 된 상태였다.

‘김강희를 공격할 방법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야.’

뭔가 보일까 싶어 오른쪽 눈을 감고 주변 풍경을 조용히 담았다. 수상해 보이지 않도록 김강희를 향해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기자 그는 따분하다는 듯 손등으로 내 탄환을 쳐냈다.

―파지직.

‘방금 동쪽에서 뭐가 보였는데……!’

글자가 나타난 건 아니었지만 이질적인 스파크가 생겼던 것은 확실했다. 곧바로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콰과과광!!

“컥……!”

“지의!”

“신지의 헌터!”

그러자 살을 에는 바람이 날 덮쳤다. 순식간에 내 몸이 뒤로 날아갔지만 그림자 손이 허리를 낚아채 세빈이 쪽으로 끌어당긴 덕에 추락하는 일은 피했다.

―후두둑.

‘그냥 바람이 아니었군.’

조금 따갑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팔을 타고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이테르의 로브가 치료해 주길 기다리며 고통을 참아내자 세빈이가 사색이 된 채 입을 열었다.

“지의……!”

“세빈아, 여기서 동쪽으로 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뭔가 있어.”

그런 세빈이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넸다. 말을 뚝 멈춘 세빈이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텁.

“고개는 돌리지 말고. 김강희가 눈치채면 안 돼.”

“아, 알았어.”

세빈이는 제 볼에 얹힌 내 손 위로 자기 손을 겹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무아 써서 그게 뭔지 확인 좀 하고 와 줘. 어쩌면 김강희를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몰라.”

“응. 알겠어.”

―사아아.

세빈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김강희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다행히 레일리와 조슈아에게 정신이 팔린 탓에 내 쪽으론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청춘이군.”

“뭔 소리야? 아, 비스는 어디 있어?”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숨겨뒀다. 아이템에 치유 기능이 딸려 있으니 조금만 더 쉬면 싸울 수 있을 정도는 될 거다.”

칼리는 그렇게 대답하곤 거대한 창을 빼 들었다. 나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 공격을 퍼부을 준비를 했다.

방금 김강희가 날 공격한 이유는 아마 내가 그쪽으로 이동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겠지.

지금 보니 폭발로 인해 생긴 나무의 잔해와 흙더미가 동쪽으로 묘하게 더 높이 쌓여 있었다. 마치 벽을 세운 것처럼 말이다.

―탕!

‘일단 시간부터 벌자.’

어차피 이런 탄환으로는 그를 절대로 해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김강희의 시선을 세빈이에게로 향하지 않도록 막는 게 이 전투의 목표였다.

―퍼벙!

용암이 김강희의 눈을 가리자 수십 개의 광휘가 그의 전신을 꿰뚫었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센 협회장.”

“…이제 와서 그런 말을 나눌 사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쾅!

김강희가 아쉬운 표정을 하자 센이 이를 악물고 그를 향해 검기를 날렸다. 나도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부어 김강희의 주의를 분산시켰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섭섭하군요. 당신이 절 처음 찾아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데요.”

“……….”

“국가를 지키기 위해 삶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된 당신이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김강희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을 접어 웃었다.

“그래서 당신을 사도 후보로 가장 먼저 떠올렸죠.”

“윽……!”

“센 씨!”

―쾅!!

센이 아마테라스를 시전하며 김강희 쪽으로 높이 도약했다. 검에 두른 빛무리와 광휘가 공간 전체를 찢을 기세로 김강희의 몸을 횡으로 갈랐다. 바닥으로 착지하는 센의 위로 나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과광!

간발의 차로 최민 헌터의 방공호가 먼저 열렸다. 방공호는 센을 보호하는 동시에 나무들을 전부 태웠고, 최민 헌터는 아예 김강희와 센 사이에 높은 불의 벽을 세워 그가 도망갈 틈을 만들어 주었다.

센이 방공호에서 빠져나와 다시 뒤로 발을 옮기자 불의 벽도 곧 사라졌다. 김강희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옥도부터 시작해서 김강희의 아틀리에까지. 몇 주를, 아니 아마 몇 달을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하고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체력적으로 다들 지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 한 줄기, 그거라도 있어야 몸 깊은 곳에 있는 체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그때 김강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자네들 중 세 사람, 딱 세 사람만이라도 내 신세계로 데려가 주겠네.”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조슈아 군, 만약 자네가 나를 따라온다면 그 귀여운 꼬맹이도 함께…….”

―쿵.

‘어?’

굉음과 함께 생글생글 웃던 김강희가 갑자기 정색하더니 고개를 천천히 내렸다. 우리를 향했던 손가락, 아니 손 전체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이게, 뭔…….”

―콰드득.

산산조각난 파편의 개수만큼 작은 손이 생겨나더니 곧 구의 형태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파지직.

[파괴자의 역린]

[현재 체력 : 400,000]

[*파괴자의 역린 파괴 시 파괴의 충동을 제거할 수 있다*]

[*파괴의 충동 제거 시 파괴자 김강희를 각성자로 돌려놓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공격할 수 있는 개체가 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안 돼!!”

―콰과광!!

김강희가 발작하며 ‘파괴자의 역린’ 주위로 폭발을 일으켰다. 어떻게든 우리가 저것에 닿지 못하게 만들 속셈인 듯했다.

상태창에 나타난 파괴의 충동이란 이름은 아까 구원자의 눈동자로 본 적이 있었다. 난 다시 왼쪽 눈동자로 김강희를 바라보며 정체불명이었던 단어를 찬찬히 살폈다.

파괴의 충동, 예술가, 그리고 파괴자의 업을 지닌 인간. 이에 해당하는 역린이 존재할 것이고, 그것들을 모두 파괴하면 김강희를 다시 각성자로 돌려놓을 수 있음을 확신했다.

“지의야!”

“세빈아!”

그때 세빈이가 환하게 웃으며 나타났다.

―콰과광!

김강희가 세빈이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무아와 함께 가볍게 피하곤 내 옆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강세빈 헌터, 어떻게 된 거죠?”

“지금 보이시는 저게 정원 안쪽에 숨겨져 있었어요.”

세빈이는 파괴자의 역린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공격하니까 갑자기 사라졌는데, 아무래도 김강희에게 영향을 준 모양이네요.”

“아마 이런 게 두 개 더 있을 거야. 전부 찾아서 파괴하면 분명 저것도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겠지.”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아까까지만 해도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는데, 이젠 속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내 동료들도 마찬가지인지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입가에 미소를 걸고 있었다.

난 고개를 돌려 지평선 너머의 김강희를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사라진 제 몸의 일부에 당황하다, 곧 얼굴 근육을 파르르 떨며 나와 눈을 맞췄다.

반격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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