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23화 (323/366)
  • 323화

    “큭……!”

    쉴드를 펼친 채 매서운 바람을 피해 옆쪽으로 달렸다.

    ―탕!

    바람의 영향권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자마자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깃을 찾아 헤매는 푸른 눈동자에 탄환이 닿았다. 그제야 녀석이 날갯짓을 멈추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다들 괜찮아?!”

    “멀쩡하다!”

    “지의 너는?”

    다행히 세빈이와 레일리가 평소와 똑같은 투로 대답했다.

    ‘그럼 센은 어디 있는 거지?’

    주위를 둘러보며 센의 흔적을 찾자 신세계의 핵 바로 앞에 서 있는 남색 기모노가 보였다. 아마테라스 상태는 풀렸지만 큰 부상은 입지 않은 것 같았다.

    “센 씨, 괜찮…….”

    ―콰과광!!

    그때였다. 센이 나를 향해 고개를 들자마자 익숙한 열기가 느껴졌고, 나는 본능적으로 뒤쪽으로 쉴드를 뽑아 공격을 막았다. 굳이 몸을 돌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센의 ‘광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레일리가 메이스로 센을 향해 휘두르자 그는 가볍게 몸을 돌려 피하곤 양손으로 검을 고쳐 쥐었다.

    “이봐, 도대체 뭐하는 짓이지?”

    ―끼기긱!

    레일리의 말에도 센의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교류전보다도 더 진심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설마 저게 선동 상태인 건가?’

    지금 보니 센은 신세계의 핵 쪽으로 등을 보이고 있었다. 센 같은 베테랑 헌터가 적에게 등을 보이는 멍청한 실수를 할 리가 없다.

    즉, 그는 지금 우리를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쾅!

    센의 그림자에서 커다란 손이 튀어나와 그를 바닥에 처박았다. 하지만 센이 광휘로 단번에 그것들을 끊어낸 후 뒤로 굴러 몸을 일으켰다.

    아마테라스 상태가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그 스킬까지 활성화된 상태였다면 상황은 지금보다도 더 급박하게 돌아갔을 것이다.

    “지의, 뭐 알고 있는 것 있나?”

    “저 녀석의 바람에 맞으면 선동 상태가 돼. 아무래도 센은 그걸 맞은 것 같고.”

    “선동이라. 그래서 우리로부터 저 핵을 보호하려고 하는 건가.”

    “정신계 스킬이면 물리적인 공격으로 풀 수밖에 없겠네.”

    세빈이가 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검을 고쳐 들었다.

    “…아니, 내가 할게.”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모든 생명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문]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신체적 충격 없이 푸는 방법이 있단 말인가?”

    “응. 더 확실한 방법일 거야.”

    “자신만만이군.”

    ―쿵.

    레일리가 아더의 방패를 꺼내 센 쪽으로 성큼 다가갔다.

    “내가 시선을 끌어줄 테니 마음껏 해 보라고, 지의.”

    “고마워.”

    “그럼 난 핵을 상대하고 있을게.”

    세빈이에게 말없이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콰광!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상대를 향해 튀어 나갔다. 센의 검이 아더의 방패에 닿자마자 곧장 반사되었고, 센은 몸을 흠칫 떨며 곧바로 뒤로 물러나 광휘를 시전했다. 새하얀 빛줄기로 레일리를 밀어내며 한 차례 거리를 벌렸다.

    [잃을 게 많은 사람은 흔들리기 쉽습니다.]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키듯,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습니다.]

    [현재 체력 : 647,589]

    세빈이는 자신의 그림자와 협공을 이어갔다. 날개가 달린 푸른 눈동자가 세빈이를 향해 바람을 불어 봤지만 세빈이의 정신을 무너트리기엔 너무 연약한 바람이었다.

    ―철컥.

    나는 상태창을 켜 센에게 날릴 만한 탄환을 눈으로 훑었다.

    [사출 가능 탄환]

    <자각> 표적이 자각하게 만든다.

    이걸로 저 상태 이상까지 파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시도해서 나쁠 건 없었다.

    ―탕!

    [자각의 탄환 사출]

    [표적 : 각성자 ‘아마노 레이’]

    그의 몸에 생긴 표적에 내 탄환이 정확히 꽂혔다.

    “윽?!”

    센이 머리를 감싸 쥐며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하지만 상황을 완전히 자각한 건 아닌지 광휘로 레일리를 막으며 아마테라스를 쓸 준비를 했다.

    ―탕!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다. 자각의 탄환이 똑같은 궤도로 날아가 센의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했다. 그러자 센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크게 휘청거리더니 곧 땅 위로 엎어졌다.

    잔뜩 긴장한 채로 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몇 시간 같은 몇 초가 흐르고 나서야 센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뭐죠?”

    “센 씨!”

    ―탁.

    센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그의 앞에 착지했다. 센은 몸을 완전히 일으키며 나와 레일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정신계 스킬에 당했었어요. 저 녀석의 바람에 닿으면 신세계의 핵에게 선동되거든요.”

    “하, 바보 같은 수에 당했군요.”

    센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곧 극복하곤 핵 쪽으로 검을 들었다.

    “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머릿속에 안개가 낀 기분이었는데, 이젠 또렷하네요.”

    ―투쾅!

    그때 녀석의 촉수가 또다시 땅속에서 밖으로 튀어나왔다. 급하게 피하느라 아슬아슬하게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고 쓰라린 통증과 함께 바닥에 피가 흩뿌려졌다.

    [이 발악의 끝엔 분명히 파괴자가 바랐던 일이 있을 겁니다.]

    [세계의 재건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현재 체력 : 592,248]

    녀석의 체력이 50만 대에 접어들었다. 체감상 전투 시간이 제법 흘러 있었고 빠르게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던전 밖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국내 S급 이상 헌터가 셋이나 사라진 상황에서 전국을 뒤덮은 S급 게이트들을 전부 처리하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을 테니까.

    ―치지직.

    나는 상태창을 열어 구원자의 가호 아래를 눌렀다.

    [특성 ‘몰살’ : 활성화 시 공격력이 대폭 상승한다. 특정 대상에게 스킬로 피해를 입힌 후 다시 스킬을 시전할 시 해당 대상의 신체를 폭발시킨다.]

    [*해당 특성을 활성화할 시 각성자 ‘신지의’의 체력이 대폭 하락합니다.]

    세빈이의 특성이 필요한 순간이다.

    “레일리, 강화 해제할게!”

    “알겠다.”

    “세빈아, 남원 던전에서 했던 거 기억하지?”

    “그럼. 똑같이 해 볼게.”

    세빈이가 싱긋 웃었다. 난 곧바로 레일리의 특성을 비활성화하고 세빈이의 특성을 활성화했고, 공격력까지 최대치로 올렸다.

    “욱…….”

    내장을 뒤집는 듯 거북한 감각을 이겨내며 기절하지 않도록 버텼다.

    ―쾅!

    그때 세빈이의 그림자가 신세계의 핵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세빈이는 녀석과 거리를 둔 채 허공을 움켜쥐었다.

    ―콰과과광!!

    그러자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푸른 눈동자에서 투명한 액체가 터져 나왔다. 몰살의 효과가 제대로 작동한 듯 녀석은 움직임을 멈추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현재 체력 : 543,994]

    ‘폭발 한 번에 5만…….’

    박격포 한 발에 10만의 피해를 준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수치였다. 공격력까지 최대로 올려놓은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퍼버벙!

    움직임이 멎은 틈을 타 바주카의 방아쇠를 여러 번 당겼다. 묵직한 메이스가 핵의 허리를 횡으로 쳐올리면, 새하얀 검이 녀석의 날개를 끊을 듯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콰과광!!

    그리고 또다시 세빈이의 그림자가 녀석을 강하게 움켜쥐자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공격에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지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압도적인 힘 앞에 다시 좌절합니다.]

    [파괴자는 체념하고 맙니다.]

    [현재 체력 : 403,952]

    ―쿵, 쿵, 쿵.

    신세계의 핵이 체념 상태에 돌입하든 말든 세빈이의 공격은 멈추질 않았다.

    완전히 분위기를 탄 세빈이는 무아로 모습을 감췄다 다시 나타나며 녀석이 반격할 틈도 없이 공격을 이어갔고, 그럴 때마다 핵의 몸체 여기저기서 피를 닮은 물이 터져 나왔다.

    [현재 체력 : 319,382]

    ―끼리릭.

    박격포를 바닥에 설치하자마자 촉수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고개를 숙여 그것을 피하기 무섭게 아마테라스 상태의 센이 날아와 단칼에 촉수를 토막 냈다.

    ―콰과광!!

    곧이어 박격포가 발포됐다. 낮게 날아간 탓에 포탄의 궤적을 따라 지면이 움푹 파였고, 흐릿해진 핵의 몸에 박히자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질 수 없습니다.]

    [신세계를 건축하고자 하는 파괴자의 발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현재 체력 : 211,184]

    ―휘이잉!

    신세계의 핵이 발악 상태로 돌아온 동시에 녀석이 강하게 날갯짓을 했다.

    ―쩌적!

    다행히 가장 전방에 있던 레일리가 아더의 방패로 바람을 막았고, 나와 센은 그 틈에 옆으로 몸을 날렸다.

    “윽!”

    “신지의 헌터?!”

    몸이 무거웠다.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질 뻔했지만 센이 부축해 준 덕분에 다행히 바닥에 처박히는 일은 피했다. 그러자 세빈이가 뒤를 돌아 나와 눈을 마주쳤고 금방이라도 내 쪽으로 올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보였다.

    “괜찮으니까 계속 공격해!”

    세빈이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공격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현재 체력 : 184,389]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신세계의 핵의 공격은 체력이 떨어질수록 정확도가 떨어졌고 우리도 녀석의 공격에 어느 정도 몸이 익었다.

    완벽한 공격 타이밍, 그것 하나면 이 전투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쾅!!

    녀석의 몸이 또다시 터져나갔다. 이제 눈동자라고 볼 수도 없는 잔뜩 찌그러진 구체가 붉은 촉수를 마구 뿜어내기 시작했다.

    촉수는 마구잡이로 땅을 헤집고 우리를 향해 휘둘러졌지만, 아더의 방패와 광휘에 막혀 무의미한 공격이 되어버렸다.

    ―퍼버버벙!!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박격포에 손을 올리자 포탄이 시원하게 앞으로 쭉 날아갔다. 그림자 손들에 의해 양쪽으로 한껏 잡아 당겨진 핵의 한가운데 포탄이 뚫고 들어갔다.

    [현재 체력 : 0]

    ―콰과광!

    신세계의 핵―발악은 한 마디의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최후를 맞이했다. 완전히 으스러진 푸른 보석이 우주의 먼지가 되어 떠돌아다녔다.

    “하아, 하아…….”

    “…이제야 끝났군.”

    전투가 끝나자 순식간에 고요해진 주변은 우리들의 숨소리로 가득 찼다.

    ―쿵.

    숨을 돌리기도 전에 우리는 내쫓기듯 밖으로 이동됐고, 덕분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과 갑작스러운 재회가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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