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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320화 (320/366)
  • 320화

    ―퍼버벙!

    조슈아와 최민 헌터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해변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뜨거운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불 속성 헌터 둘에 불 속성 몬스터 하나, 이곳만 공기의 온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긴 했다.

    ―후웅.

    그때 최민 헌터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그는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곧 입을 열었다.

    “해치우고 오신 겁니까?”

    “네. 이쪽은요?”

    “아직까진 큰 부상 없이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쾅!!

    시뻘건 용암이 갑자기 내 발밑에서 치솟았다. 최민 헌터가 내 허리를 낚아채다시피 끌어당긴 후 날아올랐고, 난 재빨리 자아의 방아쇠를 당겨 소리 파도를 내보냈다.

    “방심하면 안 돼… 앗, 신지의 헌터?!”

    “도우러 왔어!”

    지면에 있던 조슈아가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표리부동을 향해 달려가 춤을 추듯 검을 휘둘렀다.

    [신세계의 핵―표리부동]

    [현재 체력 : 141,099]

    ‘절반 정도 깎은 건가.’

    표리부동은 소환된 녀석 중 체력은 가장 낮았지만, 몸놀림이 민첩한 탓인지 생각보다 체력이 더디게 줄고 있었다.

    ―타닥.

    최민 헌터의 품에서 벗어난 후 자아로 ‘표리부동’을 조준했다.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잠시 뗀 틈을 타 표리부동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가장 가까이 있던 조슈아와 검을 맞부딪혔다.

    날붙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조슈아와 붙어 있는 탓에 표리부동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고, 그 사이에 녀석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퍽!

    날아간 탄환은 녀석의 팔뚝에 맞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검붉은 피가 바닥에 흩뿌려지자마자 표리부동이 인상을 찌푸렸다. 곧 녀석은 발로 조슈아를 찬 후 한 손을 높이 들었다.

    ―콰과광!!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허공에 가느다란 용암 줄기 수십 개가 생성됐다. 그것들은 비처럼 쏟아져 모래사장을 순식간에 새카맣게 굳혀 버렸다.

    폐부로 들어오는 뜨거운 공기를 이겨내며 용암들을 피한 후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역시 인간형 몬스터에겐 이게 제일 효과적이구나.’

    표리부동의 움직임이 또다시 멎었다. 녀석은 진흙 속에서 움직이는 듯 느릿하게 다리를 움직였고, 그 틈을 노린 조슈아가 이도로 녀석의 가슴팍을 찔렀다.

    [현재 체력 : 138,274]

    ―쾅!

    최민 헌터가 ‘방공호’로 지붕을 세워 용암 비를 막았다. 움직임이 훨씬 자유로워져 자아의 방아쇠를 당긴 채로 표리부동과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

    공기의 떨림이 강해지자 녀석이 크게 휘청거렸고, 이내 분한 듯 이를 악문 채로 다시 용암 기둥을 세웠다.

    ―쿵, 쿵, 쿵.

    “윽!”

    기둥에서 튄 용암이 내 쪽으로 떨어졌다. 쉴드를 펼칠 틈이 없어 로브 소매로 대충 막자 팔을 타고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쾅!

    방아쇠를 누르던 손가락에 힘이 풀리자 표리부동은 기다렸다는 듯 나와 조슈아의 뒤로 용암을 떨어트려 퇴로를 차단해 버렸다. 그러고는 팔을 벌린 채로 우리에게 달려들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크읏……!”

    ―끼기기긱.

    나는 쉴드로, 조슈아는 두 자루의 검으로 각각 공격을 막았다. 표리부동은 텅 빈 눈으로 나와 조슈아를 번갈아 보다 곧 타깃을 정했는지 조슈아 쪽으로 몸을 돌렸다.

    ―탕!

    쉴드를 용암 쪽으로 날려버린 후 녀석의 등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표리부동이 몸을 돌려 빗맞긴 했지만, 옆구리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와 녀석이 한 손으로 상처를 움켜쥐었다.

    ―푹!

    조슈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 부분을 칼로 한 번 더 후벼팠고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최민 헌터가 맹렬하게 떨어졌다.

    ―쾅!!

    최민 헌터의 무릎이 정확히 녀석의 쇄골을 향했다. 운석처럼 떨어진 최민 헌터에 짓눌려 표리부동이 땅에 박힌 모양새가 되었다. 우린 일단 녀석과 거리를 벌린 채 숨을 돌렸다.

    [현재 체력 : 97,382]

    녀석의 체력은 어느새 10만 밑으로 떨어졌다. 기절이라도 했을 줄 알았는데 표리부동은 여전히 몸을 꿈틀대며 일어날 준비를 했다. 파괴력과 회복력, 둘 다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아, 하… 조슈아, 너 진짜로 강하긴 강하구나.”

    “당연하지. 너 없었으면 내가 DF 랭킹 1위였…….”

    거칠게 대답하던 조슈아가 갑자기 말을 뚝 멈추곤 목을 가다듬었다.

    “1위였으니까요~ 물론 지금은 아무런 신경도 안 써요.”

    “알았어, 알았어…….”

    조슈아는 언제 날 선 대답을 했냐는 듯 사근사근하게 대답했다.

    아무튼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이대로 밀고 나가면 상황이 금방 종료될 테니 이 흐름을 끝까지 타야 한다.

    “…신지의 헌터.”

    “왜?”

    “제가 지금까지 저놈과 싸우면서 소름이 몇 번 돋았어요.”

    그때 조슈아가 갑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껏 경직된 얼굴로 표리부동을 응시하는 조슈아의 옆얼굴이 보였다.

    “정확히 제가 할 만한 행동들을 하고 있었거든요.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이나 검을 잡는 습관 같은 것들 말이죠.”

    “응. 다른 몬스터들도 그런 것 같더라.”

    “그래서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의아함에 눈을 살짝 크게 뜨자 그가 눈동자만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만약 저놈이 저를 인질로 잡으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공격하세요.”

    “뭐, 뭐? 인질?”

    ―쾅!

    바닥에 쓰러져 있던 표리부동이 다시 일어나 우리를 향해 용암을 뿌렸다. 낮말을 듣는 새로 날아올라 공격을 피하자 녀석은 조슈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슈아는 녀석과 검을 맞댄 채로 내게 말을 덧붙였다.

    “이런 말 하긴 조금 부끄럽지만, 제가 길바닥에서 생활했을 때 2:1로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거든요.”

    ―탕, 탕, 탕.

    표리부동을 향해 자아를 쏴 녀석을 조슈아에게서 떨어트렸다. 표리부동은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나더니 곧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용암 폭포를 소환했다.

    쉴드로 막아 용암의 궤도를 바꿔놓은 후 방아쇠를 당겨 녀석의 움직임을 다시 제어했다.

    “그때 제가 그중 한 녀석을 제압해서 인질로 잡고, 돈을 뜯어냈었어요.”

    “…그럼 네 말은 저 몬스터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소리야?”

    “저랑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충분히 그러겠죠.”

    ―챙!

    또다시 표리부동이 조슈아에게 달려들었다. 공기가 진동하는 탓에 움직임이 많이 둔해졌지만, 용암을 소환하는 속도만큼은 여전히 민첩했다.

    조슈아의 공격을 용암 폭포로 막아내며 폭포의 사이로 검을 휘둘러 조슈아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그러니까 절대 동요하지 마시고 공격하세요. 부탁드릴게요.”

    “알겠어.”

    내 대답을 듣고 나서야 조슈아가 안심했다는 듯 씩 웃었다.

    ‘그럴 일 없게 만들어야지.’

    ―쾅!

    이번엔 최민 헌터의 공격이 시작됐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기세의 푸른 불꽃이 순식간에 공간을 찢으며 표리부동의 눈 바로 앞에서 피어올랐다.

    “아악!”

    표리부동이 비명을 지르며 팔로 눈을 감쌌고, 그 틈을 타 나와 조슈아의 스킬이 녀석에게 퍼부어졌다.

    조슈아가 녀석의 발밑에 용암 지대를 만들어 움직임을 묶은 후 곧바로 녀석에게 달려들어 검으로 목을 그었다.

    ―퍼버벙!

    조슈아가 녀석의 어깨를 딛고 뒤로 뛰어넘은 순간 난 바주카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야말로 포탄이 표리부동의 몸에 제대로 맞았고 주위에 있던 용암까지 치솟게 만든 탓에 녀석은 용암을 흠뻑 맞은 꼴이 되었다.

    [현재 체력 : 56,382]

    녀석의 체력은 순조롭게 깎이고 있었다. 마지막 한 방을 먹이기 위해 표리부동이 있을 위치를 향해 포구를 바꾸었다.

    ―치이익.

    그때 치솟은 용암이 사라지고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윽……!”

    그리고 우려했던 상황이 결국 눈앞에 펼쳐졌다.

    몸이 반쯤 타들어간 녀석이 조슈아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그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이미 공격을 당했잖아……!’

    용암 때문에 두 사람이 시야에서 벗어났을 때 충돌이 있던 모양이었다. 조슈아의 복부에 이미 검에 찔린 듯한 자상이 남아 있었고, 두 다리 역시 용암에 파묻혀 검게 타고 있었다.

    표리부동은 말없이 조슈아의 목에 검을 갖다 댄 채 나와 최민 헌터를 번갈아 보았다. 무기를 놓으라는 듯한 무언의 압박이었다.

    “최민 헌터.”

    “네.”

    “제가 무기 던지면 바로 조슈아를 꺼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최민 헌터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한 후 다시 조슈아와 표리부동을 내려다보았다.

    ―철컥.

    내가 녀석 쪽으로 자아를 떨어트리자 녀석이 씩 웃는 반면, 조슈아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내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끼리릭.

    자아가 표리부동과의 거리를 좁혀갈수록 그것은 박격포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고, 동시에 최민 헌터의 손끝이 조슈아의 어깨에 닿았다.

    ―콰과과광!!

    엄청난 굉음과 함께 용암이 이리저리 튀었다. 간신히 몸을 돌려 날아오는 용암 덩어리를 피하자 곧이어 최민 헌터가 조슈아를 어깨에 걸친 채로 날아올랐다.

    “최민 헌터! 조슈아 상태는요?!”

    “살아 있지만 부상이 심합니다.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오겠습니다.”

    ―철컥.

    최민 헌터가 조슈아를 데리고 뒤로 빠진 틈을 타 나는 자아를 다시 손에 쥐었다.

    [현재 체력 : 937]

    녀석은 이미 소멸 직전의 상태였다. 용암 비를 뚫은 탄환이 몸의 절반이 날아간 채 그대로 굳어버린 녀석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콰그작!

    [현재 체력 : 0]

    “하아, 하…….”

    마침내 녀석의 완전한 소멸을 알리는 설명창이 눈앞에 떴다. 숨을 고르기도 전에 최민 헌터가 날아간 곳으로 몸을 돌렸다.

    한참을 달려 타는 냄새가 어느 정도 멀어지고 나서야 붉은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낮말을 듣는 새를 해제하며 모래사장 위로 착지하자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고통스러워하는 조슈아가 보였다.

    “커헉, 큭, 윽……!”

    새카맣게 타버린 발과 복부와 목의 깊은 상처.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

    ―치이익.

    조슈아가 상처 부위에 손을 올린 채 치유계 스킬을 썼지만, 그의 불꽃은 상처를 충분히 지혈해주지 못했다.

    “녹두야! 배리어!”

    “아우우우―!”

    내 외침에 녹두가 팔찌에서 튀어나오더니 곧바로 새하얀 배리어를 펼쳤다.

    조슈아의 상처 위로 새하얀 빛무리가 모여들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상처가 깊다 보니 치유 효과를 충분히 받으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 같았다.

    ―쿵.

    그때 누군가 배리어를 두드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또다시 심장이 내려앉았다.

    레일리의 등에 피범벅이 된 비스가 업혀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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