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19화 (319/366)
  • 319화

    ―투웅.

    내 탄환이 아더의 방패에 닿자마자 그대로 반사돼 내 몸을 관통했다. 당연하게도 탄환은 바람이 훑고 지나간 것처럼 내 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시선은 내가 끌게! 넌 방패 뒤쪽에서 기습 타이밍을 봐줘!”

    “알겠어!”

    ―탕, 탕, 탕.

    세빈이에게 부탁한 후 나는 더욱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녀석이 공격을 막으며 나를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오만’의 손에 들린 거대한 메이스는 수십 킬로그램은 족히 되어 보였지만, 녀석은 그것을 야구 배트처럼 가볍게 다루고 있었다.

    ‘완전 난전이야……!’

    레일리가 싸우는 방식은 길드전과 소설가와의 전투를 거치면서 대충 알고 있었다. 아더의 방패를 내세워 상대의 공격을 전부 무력화하는 동시에, 메이스로 상대의 방어를 무너트리는 무차별적인 공격.

    ―쿵, 쿵.

    그러니 지금은 방어를 무너트리는 단계일 것이다. 레일리가 일격을 가하는 순간은 아마 조금 더 뒤, 그러니까…….

    ―콰과광!

    ‘땅 자체를 엎어 상대가 방심한 때다.’

    내 예상대로 ‘오만’이 내가 서 있던 땅을 갑자기 끌어올렸다. 몸이 휘청거림과 동시에 녀석의 메이스가 내 머리를 향했고, 나는 곧바로 쉴드를 펼쳐 메이스를 막았다

    “큭………!”

    쉴드 너머로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머리가 깨지는 것은 막았지만, 이대로 녀석의 공격을 더 버티다간 온몸의 관절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

    ―쿵.

    쉴드를 놓자마자 곧바로 메이스에 밀려 뒤로 날아갔다.

    ―콰드득!

    오만의 중심이 앞으로 기울어진 틈을 타 녀석의 그림자에서 새카만 손 수십 개가 튀어나왔다. 손들은 녀석의 턱을 잡아 뒤로 꺾었고 나머지는 사지를 단단히 옭아맸다.

    ―서걱.

    [현재 체력 : 673,482]

    세빈이의 ‘영’이 아더의 방패를 피해 오만의 복부를 벴다. 휘날리는 백색의 머리카락과 대비되는 검붉은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커흑……!”

    ‘레일리랑 똑같이 생겨서 거북해.’

    가짜라는 걸 알아도 레일리의 괴로워하는 얼굴을 보는 건 힘들었다. 애써 이 불쾌감을 외면하며 오만을 향해 바주카를 들었다.

    ―펑!

    한 발은 녀석의 몸을 직격으로 들이받은 후 공기를 진동시키며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방아쇠를 당긴 순간 거대한 방패가 눈앞에 소환되었다.

    “쳇.”

    두 번째 포탄은 다시 내게 날아와 무의미하게 몸만 떨리게 하곤 사라졌다.

    ―투쾅!

    뒤로 물러나 오만과 거리를 벌리기 무섭게 녀석이 아더의 방패를 뚫고 나왔다. 몸을 숙여 메이스를 피하자 녀석의 무릎이 기다렸다는 듯 내 가슴을 쳐올렸다.

    “컥!”

    ―콰과광!!

    강제로 호흡이 멈춰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본능적으로 자아의 방아쇠를 당기자 시야가 돌아오기 전에 커다란 폭발음부터 귀에 꽂혔다.

    “허억, 컥, 윽……!”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들자 세빈이의 코트 자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세빈이는 녀석의 그림자에서 검은 손을 뽑아내 상처가 난 복부를 후벼팠고, 오만은 얼굴을 있는 대로 구기며 뒤로 물러났다.

    [현재 체력 : 625,885]

    레일리가 방어계 헌터라는 걸 보여주듯 저런 부상으로도 체력이 크게 줄지 않았다. 박격포 포격을 적어도 한 번은 성공시켜야 체력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아?”

    “하아, 응… 난 괜찮으니까 저 녀석 좀 지켜봐…….”

    “아, 알겠어.”

    내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세빈이의 어깨를 밀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갈비뼈에 금이 간 것 같지만 이 정도는 아이테르의 로브 효과로 금방 회복할 것이다.

    “진짜 레일리가 저렇게 싸우는진 잘 모르겠지만, 저 방패 스킬을 자기 몸처럼 다루고 있어.”

    세빈이는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오만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모양과 형태를 제각각으로 만들다 보니 그림자만 겨우 밀어 넣는 정도야.”

    “…방패를 내 쪽으로 쓰도록 유도할게. 넌 무아로 저 녀석이랑 거리를 좁혀서 목을 쳐.”

    “알겠어.”

    ―바스락.

    세빈이가 허리를 숙여 나와 눈을 맞췄다. 왠지 모르게 위압감이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뒤로 빼자 세빈이는 내 어깨를 잡고 나지막이 말을 뱉었다.

    “대신 네가 위험해지면 널 먼저 구할 거야.”

    “…그럴 일 없게 할 테니까 걱정 마.”

    ―쾅!

    그때 오만이 세빈이의 그림자를 전부 떼어내고 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그림자가 다시 치솟아 녀석을 노렸지만, 아더의 방패에 튕겨 나와 세빈이의 코앞에 들이밀어졌다.

    하지만 세빈이가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감추는 바람에 그림자까지 함께 사라졌다.

    갑자기 목표를 잃은 오만의 메이스는 다시 나를 향했고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방어 태세를 취했다.

    ―쿵, 쿵, 쿵.

    쉴드를 뽑아내는 족족 메이스가 그것을 내리쳐 순식간에 파괴했다. 모래사장엔 쉴드의 잔해가 쌓여가고 어느새 내 발도 바다 쪽으로 계속 향하고 있었다.

    “흡!”

    ―콰앙!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바주카로 공격하자 아더의 방패가 다시 튕겨내 애꿎은 바다에 포탄이 빠졌다.

    바닷물이 소용돌이쳐 위로 크게 치솟더니 곧 무지개를 만들어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만과 나는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순식간에 젖었다.

    ―탕!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새하얀 궤적이 허공을 수놓았다. 아더의 방패가 탄환들을 내 머리 바로 앞으로 튕겨냈고, 오만의 메이스는 더욱 공격적으로 나를 향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녀석이 지휘하듯 메이스를 휘두르다 이내 지면을 다시 치솟게 해, 내 몸을 위로 뜨게 만들었다.

    ―쾅!

    내 갈비뼈를 향하던 메이스를 쉴드로 막자마자 아더의 방패를 뛰어넘어 녀석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오만은 그제야 자신의 방어가 뚫렸음을 눈치챘지만 이미 늦었다.

    ―콰그작!

    “아아악!”

    탄환은 뒤늦게 올린 손바닥을 뚫고 오만의 이마에 박혔다. 검붉은 피가 얼굴을 타고 내리기 무섭게 그의 등 뒤에서 새카만 검과 함께 세빈이가 나타났다.

    ―서걱.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할 정도로 날카로운 검이 녀석의 목을 파고들었다.

    [현재 체력 : 436,284]

    성공시킨 공격이 전부 녀석에겐 치명상이었다. 오만은 목과 머리를 팔로 감싸며 휘청거렸고, 그 틈을 타 녀석의 바로 앞에 박격포를 밀어 넣었다. 부품이 서로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포구가 녀석을 향했다.

    ―콰과과광!!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포탄이 녀석의 복부를 뚫고 공기를 뒤흔들었다. 잔잔했던 파도가 요동치더니 해일이 되어 모래사장을 덮쳤고 나는 바다에 집어삼켜지기 전에 위로 올라와 피했다.

    [신세계의 핵―표리부동]

    [현재 체력 : 174,079]

    [신세계의 핵―비탄]

    [현재 체력 : 312,570]

    [신세계의 핵―희생]

    [현재 체력 : 319,506]

    다른 몬스터들에게도 영향을 줬는지 체력 상태창이 떴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휘이잉.

    [현재 체력 : 119,995]

    모래바람과 물보라가 걷히고 나서야 오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의 몸은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상태였고 검붉은 피가 에메랄드빛 바다에 퍼지고 있었다.

    공격을 맞고 나서 뒤늦게 아더의 방패를 펼쳤는지, 그의 주위에 거대한 방패도 함께 떠 있었다.

    ―콰드득.

    지면에 있던 세빈이가 오만을 향해 손짓하자 세빈이의 그림자에서 검은 손들이 솟구쳐 나왔다. 이내 녀석의 몸을 건져 올려 모래사장 위로 내동댕이치더니 그대로 사지를 비틀었다.

    ―챙!

    “쳇.”

    “강세빈!”

    세빈이가 검으로 녀석의 목을 찌르자마자 아더의 방패가 발동됐는지 세빈이의 목 바로 앞에 검은 검이 동시에 들이밀어졌다. 세빈이는 검 방향을 돌려 그것을 쳐낸 후 뒤로 물러났다.

    엄청난 정신력이었다. 오만은 몸의 절반이 터진 상황에서도 의식의 끈을 놓지 않고 방패를 소환해 반격을 시도했다.

    ―퍼버벙!

    녀석의 주의가 세빈이를 향한 틈을 타 바주카의 방아쇠를 당겼다. 방패가 포탄이 날아온 위치로 바뀌긴 했지만, 너무 많은 체력을 쓴 탓에 포탄을 완전히 반사시키지는 못했다.

    [현재 체력 : 58,285]

    포탄의 일부는 결국 녀석의 몸을 파고들었고, 관절이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서서 공격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쾅, 쾅, 쾅.

    녀석의 앞으론 내 탄환이, 등 뒤에선 세빈이의 검과 그림자가. 사방으로 공격을 가하니 오만의 방패가 바쁘게 움직였다.

    [현재 체력 : 47,171]

    방패의 빈틈을 파고든 칼날이 오만의 등을 벴다.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땅을 뒤집어엎으며 세빈이를 공격했고,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쉬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현재 체력 : 38,582]

    휘몰아치는 공격에 오만은 더욱 분주하게 방어를 취했다. 하지만 녀석의 메이스가 닿지 않는 거리에서 탄환을 퍼부으니 녀석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쿵.

    결국 자신의 패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듯 녀석이 메이스를 놓았다. 아무런 미련도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체념한 표정. 평소의 레일리라면 절대로 짓지 않을 표정이었다.

    ‘하나도 안 어울리네.’

    역시 레일리는 야망과 투지로 이글거리는 얼굴일 때, 가장 레일리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컥.

    껍데기만 레일리일 뿐인 ‘오만’을 향해 자아를 조준한 후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퍼버버벙!

    아더의 방패를 쉽게 꿰뚫고 포탄이 녀석을 집어삼켰다.

    [현재 체력 : 0]

    ‘신세계의 핵―오만’은 수십 개의 파편이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고 곧 바다 위로 떨어져 파도와 함께 쓸려갔다.

    “하아…….”

    숨을 겨우 돌리며 지면으로 내려오자 세빈이가 오만의 잔해를 발로 쓱 차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다친 데 없지? 방금 공격 반사됐잖아.”

    “바로 막아서 괜찮아.”

    세빈이는 나를 안심시키듯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다른 곳은 아직 안 끝난 것 같네.’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서 전투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세계의 핵―희생’은 아마테라스 상태가 되어 레일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세빈아, 가서 레일리 좀 도와줘. 어둠 속성이니까 공격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거야.”

    “알겠어. 넌 어디로 가게?”

    “최민 헌터 쪽으로. 아무래도 표리부동이 상대하기 더 까다로울 것 같아서.”

    세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레일리가 있는 곳으로 발을 돌렸고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타닥!

    나도 빠르게 공중으로 도약해 최민 헌터와 조슈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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