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17화 (317/366)
  • 317화

    ―파아앗.

    주위 풍경이 다시 화병이 있는 장소로 바뀌자 피를 토하던 김강희의 모습이 사라졌다.

    세 번째 문이 열려 우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지만 방금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느라 누구 하나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김강희 회장이 불치병……?”

    그때 센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센과 시선이 맞닿았다.

    “센, 전혀 몰랐나? 우리 중에선 네가 그나마 저 녀석이랑 오랫동안 왕래한 걸로 알고 있는데.”

    “전혀 몰랐습니다. 저까지 협회를 설립하고 나서는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거의 못 만났으니까요.”

    센은 레일리에게 대답한 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세빈이도 몰랐나?’

    세빈이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세빈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협회 간부이다 보니 김강희가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걸 혹시라도 눈치챘을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나와 마찬가지였나 보다.

    “일본 헌터 협회를 설립했을 때 상당히 많이 도와줬던 사람이었는데, 세상을 멸망시키는 주축에 불치병까지 있었다니.”

    “그래서 뭐, 안쓰러운 마음이라도 생긴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센이 미간을 살짝 구긴 채 비스를 향해 말을 건넸다.

    “그냥 제가 알고 있는 김강희 회장과 너무나 달라서 괴리감을 느꼈을 뿐입니다.”

    김강희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센은 그를 완전히 신뢰한 듯했다. 센의 씁쓸한 미소를 뒤로 한 채 나는 세 번째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일단 들어가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후 문을 더욱 활짝 열어 안으로 발을 들였다.

    ―탁.

    “아까와 연결되는 장면이네요.”

    광활한 공간의 한가운데 김강희가 외딴 섬처럼 혼자 서 있었다. 그의 손엔 여전히 피가 고여 있었고, 그런 그의 주위로 붉은 글씨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파괴자는 자신의 몸이 던전에 취약하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던전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그의 세포 하나하나에 영향을 주고 있었고, 결국 비정상적인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주치의마저 장기를 썩게 만드는 이 병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1년, 그가 살 수 있는 기간은 딱 1년뿐이었습니다.]

    “X발…….”

    김강희가 욕을 뱉었다. 악에 받친 푸른 눈이 뜨거운 불꽃처럼 이글거렸고 꽉 쥔 손바닥에선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곤란해 보이네에~”

    “헉……!”

    그때 그의 뒤로 검푸른 도마뱀이 나타났다.

    ―철컹.

    창조자의 등장이었다. 김강희는 물론 우리도 반사적으로 무기를 들었고,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넌, 뭐지?”

    “창조자~”

    “…신이라는 소리야?”

    “절대자!”

    창조자의 가벼운 어투에 김강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치자. 근데 날 왜 찾아왔지?”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을 가진 각성자라길래 한번 보고 싶었거든~”

    “…….”

    “얼마나 먼 미래까지 볼 수 있어? 이 세상은 어떻게 돼?”

    “절대자씩이나 되는 녀석이 그거 하나 몰라?”

    “모르지~”

    ―후웅.

    김강희가 테이저건을 든 손으로 창조자를 내리쳤다. 하지만 그의 팔은 허무하게 창조자의 몸을 관통했고, 창조자는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생글생글 웃었다.

    “응? 이 세상이 어떻게 되냐니까?”

    “몰라. 어차피 X 같겠지. 난 죽을 거고.”

    “어어~ 강희가 죽는 건 싫은데…”

    창조자는 곤란한 듯 울상을 짓다 곧 다시 히죽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럼 나랑 같이 그 X 같은 세상을 바꿔보는 게 어때?”

    ‘사도들에게 제안하는 것과는 달라.’

    창조자는 각성자에게 ‘세상이 망하니 도와달라. 대신 소원을 들어주겠다.’라는 말로 사도가 되도록 설득했다.

    하지만 김강희는 아니었다. 창조자는 김강희에게 명백히 자신의 동료가 될 것을 제안하고 있었다.

    “강희, 네가 그렇게 고군분투하면서 싸우는 이유도 세상을 바꾸기 위한 거 아니야아?”

    “맞아. 이렇게 무질서한 세상은 인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거든.”

    “응. 나도 세상을 좀 바꾸고 싶거든~ 정확히는 새로 창조하고 싶달까~”

    창조자의 주위로 검은 구체가 날아들었다.

    ―콰직!

    그는 한 손으로 구체를 돌리다 이내 부숴버렸다.

    “하지만 창조하려면 파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잖아?”

    “…그래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단 세상을 부수겠다는 거야?”

    “일단은 그렇지~?”

    “그럼 뭐가 남지?”

    “으음… 새로운 창조를 하겠다는 의지?”

    무책임한 말이었다. 김강희는 어이없다는 듯 그를 노려보다 곧 입을 열었다.

    “인류의 미래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방법이로군.”

    “그럼 강희 네가 꿈꾸는 세상은 뭔데~? 어떻게 인류를 보호하고 싶은 거야아?”

    김강희가 눈을 감았다 뜨는 동안 피 묻은 그의 입가엔 미소가 걸렸다.

    “불확실성을 제거하겠어. 세상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해 그 어떤 돌발 상황도 벌어지지 않게 하는 거지.”

    “……”

    “그런 세상이면 인류의 안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거야.”

    푸른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마치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눈빛이었다.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세상을 새로 구축해야 하는데 말이지이.”

    “그럼 지금 존재하는 세상은 없애야 하는 건가?”

    “응.”

    “아…….”

    김강희가 잠깐 생각에 잠기듯 입을 다물다 이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고작 그거면 돼?”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창조자를 포함한 이곳에 있는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그를 이해하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김강희는 이상한 방향으로 올곧은 선(善)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그의 뜻만큼은 성인(聖人)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은 불순물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 악 그 자체였다.

    “에엥? 세상을 부수는 게 싫은 거 아니었어?”

    “너는 목표 없이 그냥 부수기만 하겠다는 거잖아. 나는 불확실성을 제거한 세상을 위한 밑 작업인 거고.”

    “…어쨌든 부수겠다는 결론은 똑같네?”

    “단순히 생각하면 그렇네.”

    창조자가 김강희의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좋아~ 네가 꿈꾸는 세상을 내가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줄게에~ 내가 가진 힘도 네게 나눠줄게.”

    “……”

    “아마 네 몸속을 잡아먹은 그 이상한 병도 나을 수 있을 거야.”

    “저, 정말로?”

    “대신 나도 조건이 있어~”

    ―툭.

    창조자의 짤막한 팔이 김강희의 어깨를 눌렀다.

    “세계를 부수고 나서 나를 대신해서 창조자가 되어줘.”

    “…그게 가능해?”

    “일단 세계를 부수면 가능해.”

    ―파지직.

    창조자가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자 커다란 먹색 보석이 튀어나왔다. 사도들이 갖고 있던 파편보다 두세 배는 더 큰 생김새였다.

    “이게 나의 핵이자 힘 그 자체나 마찬가지야아. 세상을 부수는 데 성공하면 이 힘의 소유권을 네게 넘길 수 있어~”

    “창조자가 되면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거야?”

    “그러엄~ 모든 법칙을 새롭게 만들 수 있지.”

    김강희의 입꼬리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 밝은 미소에 소름이 끼쳐 등골이 오싹해졌다.

    창조자는 자신의 후계를 위해, 김강희는 자신이 원하는 신세계의 구축을 위해 서로의 손을 잡았다. 이 동맹의 끝엔 세상의 파멸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무조건 막아야 해.’

    ―쨍그랑!

    두 사람이 손을 마주 잡은 순간 주위의 풍경이 반으로 쪼개졌고, 두 번째 공간이었던 황무지로 바뀌었다.

    김강희 무리와 미등록 각성자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투항한다면 여기서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겠습니다.”

    “닥쳐! 내가 힘이 있는데 왜 국가의 관리를 받아야 하지?”

    미등록 각성자들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이야기 했지만 무기를 든 손이 벌벌 떨리는 걸 보니 사실상 마지막 발악이나 마찬가지임을 알아차렸다.

    ―쿵, 쿵, 쿵.

    하늘에서 마주 잡은 거대한 손이 뚝 떨어졌다. 얇은 피부를 사이에 두고 훤히 비쳐 보이는 혈관이 손등 밖으로 튀어나와 미등록 각성자들의 등과 이어졌다.

    [신세계의 핵―협력]

    [이 세상을 이루는 모든 형태의 협력]

    [남은 시간 : 00:05:00]

    “똑같은 방식이군.”

    “5분이니까 적당히 버텨보죠!”

    조슈아가 힘차게 소리치며 양손에 무기를 쥐었지만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는 쉽게 풀리질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순수한 악이라 압도된 걸까.’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더 거대한 악의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느꼈을 것이고, 사람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남은 시간 : 00:04:59]

    ―쾅!

    전투가 시작됐다. 날카로운 화살 비들을 쉴드로 막아낸 후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소리 파도가 날아 다니는 모든 흉기들을 무력화시키자마자 용암 폭포가 녀석들을 집어삼켰다.

    “1팀 공격 시작하세요. 2팀은 대기하시고, 원거리 포격만 경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김강희가 이끄는 헌터 무리도 전투에 나섰다. 승기는 전투의 시작부터 우리의 것이었다. 공격들이 자로 잰 듯 딱 맞아 들어갔다.

    녀석들이 회복되는 속도보다 우리가 해치우는 시간이 더 빨라, 각성자들이 다시 소환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준에 이르렀다.

    [파괴자는 협력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습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쳐 싸우는 인간은 늘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파괴자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인류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창조자와 세운 목표를 반드시 이루고자 합니다.]

    [설사 그것이 인류가 머물고 있는 이 세상을 파괴하는 일이더라도 말이죠.]

    [남은 시간 : 00:00:00]

    ―콰그작!

    김강희의 궤변과 함께 '신세계의 핵―협력'이 소멸했다. 각성자들끼리의 길었던 전투에서 승리하자 협회에 소속된 헌터들이 소리를 지르고 기뻐했다.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합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지. 그렇지 않나?”

    김강희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문득 우리가 그와 맞서 싸우는 이 모습을 어딘가에서 즐겁게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마저 그의 계획이 아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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