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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316화 (316/366)

316화

―콰아아앙!!

“윽!”

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엄청난 폭발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공간 전체가 크게 진동해 자세를 낮추며 중심을 잡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은 황무지의 한가운데, 두 무리가 대치하고 있었다. 둘 다 격렬한 전투를 치른 듯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고 여전히 서로를 향해 무기를 들고 있었다.

“무기 내려놓으세요! 이러다간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안 끝납니다!”

“그럼 그 X같은 각성자 의무 등록제부터 철회해라!”

젊은 김강희가 가장 앞으로 나와 소리쳤지만, 잔뜩 날 선 대답만이 돌아왔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분노로 조용히 타오르는 듯했다.

―치지직.

[파괴자는 이 모든 상황에 분노했습니다.]

[던전, 몬스터, 부산물. 그의 예상에서 한참 벗어난 존재들의 등장에 세상 전체가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믿을 것은 미래의 참사를 볼 수 있는 그의 스킬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무질서한 인간들을 통제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혼란스러운 시기였죠.”

그때 설명창을 가만히 보던 센이 중얼거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센은 나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각성자 관리 문제가 대두된 건 부산물이 갖고 있는 경제적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부터였어요.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믿은 각성자들이 누구의 관리도 없이 던전을 독식하려고 했거든요.”

“하여간 전부 돈이 문제군.”

센의 말에 레일리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각성자 의무 등록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초기엔 여러 잡음이 있다고 했다.

그 탓에 등록 각성자와 미등록 각성자 간의 갈등이 고조되었고, 결국 던전 안에서 본격적으로 싸우게 된 것이 일명 ‘각성자 전쟁’이었다. 우리는 이 각성자 전쟁의 한가운데 떨어진 것이고.

“아무튼 그 등록제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우린 이 던전에서 나가지 않을 거야!”

“무리해서 부산물을 채집하면 던전의 균형이 깨집니다.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고요!”

“걱정 마~ 몬스터든 뭐든 우리가 해치우면 그만이야.”

“전투계 스킬도 없는 누구랑은 달라서 말이지.

그들은 대놓고 김강희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늘 차분한 얼굴을 유지하던 그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조용히 분노했다.

결국 그의 뒤에 있던 다른 헌터가 김강희의 어깨를 두드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오늘은 일단 들어가시고, 내일 기습으로 체포하죠.”

“…알겠어요.”

―휘이잉.

김강희가 뒤를 돌아 게이트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콰과광!

김강희 쪽 무리의 앞에 갑작스러운 폭풍이 휘몰아쳤다. 대열을 지키며 돌아가던 무리가 뿔뿔이 흩어졌고, 김강희 역시 바람에 밀려 바닥 위로 엎어졌다.

“지금이다, 얘들아. 잡아!”

매복해 있던 미등록 각성자들이 한꺼번에 뛰어나와 김강희 무리와 우리를 에워쌌다. 엉겁결에 포위당한 우리는 서로 말없이 시선만 교환하다 일단 무기부터 꺼냈다.

―콰드득.

그와 동시에 하늘을 찢고 거대한 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라색 꽃을 주렁주렁 늘어뜨린 등나무였다. 아름다운 풍경에 순간 시선을 뺏길 뻔하자, 등나무의 뿌리가 밑으로 길게 떨어졌다.

뿌리는 곧 미등록 각성자들의 등과 연결되었다. 마치 영양제를 주입하는 호스처럼 보였다.

[신세계의 핵―갈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갈등]

[남은 시간 : 00:30:00]

이 공간에도 역시 신세계의 핵이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디펜스전이네요.”

조슈아의 말대로 디펜스전이라는 점.

남은 시간이 나와 있으니 아마 100% 맞을 것이다.

“아주 귀찮은 시간이 되겠구나. 쯧쯧.”

칼리가 혀를 차며 대답하더니 곧 비스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고, 김강희 무리를 흘긋 바라보았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당황하며 허둥지둥 무기를 꺼내는 동안 김강희는 감정 없는 얼굴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것마저도 그의 예상했던 건가.’

김강희는 습격이 벌어질 걸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태연하게 테이저 건을 손에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미등록 각성자들의 수를 셌다.

“최화연 헌터, 잠깐 이쪽으로.”

“네, 회장님.”

그러고는 다른 헌터를 불러 조용히 무언가를 지시하는 듯했다.

최화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헌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눈을 크게 떴다. 엄청난 정보를 들은 눈치였다.

최하연 헌터는 심각한 얼굴로 김강희에게 고개를 숙이다 이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시간 : 00:29:59]

―퍼버벙!

시간이 흐르기 무섭게 미등록 각성자들이 일제히 우리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전방에 있던 레일리가 아더의 방패로 1차 공격을 튕겨내자마자 내가 그 방향을 향해 바주카포의 포구를 겨눴다.

주위 공기를 진동시킨 포탄이 헌터들 사이를 헤집자 헌터들의 몸이 부풀다 이내 폭발했다.

하지만 부서진 파편들이 핵의 뿌리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어 녀석들의 몸은 다시 빚어져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이 전부 갈 때까지 계속해서 부활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체력 크게 소모하지 않는 선에서 처리해라!”

“비스 씨도 칼리랑 체력 분배 잘하세요~”

“하, 주제넘게 참견은.”

―쾅!!

비스가 조슈아를 향해 퉁명스럽게 말을 뱉는 동시에 지면을 향해 낫을 휘둘렀다. 커다란 궤적을 그리며 낫의 날이 각성자들을 파고들었다.

반 토막이 난 신체가 잠시 허공을 날아다니다 곧 뿌리에 잡혀 억지로 조립되었다. 잘못 만든 인형 같은 각성자들이 엉망진창인 몸을 이끌고 한 번 더 달려들었다.

―타닥.

낮말을 듣는 새로 날아올라 나를 향했던 무기를 피한 후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새하얀 소리의 파도가 던전 자체를 휩쓸자 핵의 뿌리가 요동쳤고, 그 때문에 뿌리와 연결된 각성자들의 신체도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앙!

그 틈을 타 조슈아의 용암이 녀석들의 몸을 집어삼켰다. 신세계의 핵이 녹아내린 몸을 다시 이어붙이는 데 실패하자 이내 땅 위로 뿌리를 박았다.

‘새로운 걸 꺼낼 셈인가.’

―쿠구궁

내 예상이 맞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신세계의 핵이 땅에서 뿌리를 꺼내자 그 끝에 새로운 각성자들이 끄집어져 나왔다.

“황도혁 헌터, 후방으로 이동하세요!”

“네!”

“권진경 헌터는 전방에 있는 헌터들 강화 상태 끊기지 않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김강희가 빠르고 정확하게 지시했다. 김강희의 지시를 받은 헌터들은 그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깍듯한 태도로 대하며 잘 따라주고 있었다. 그만큼 김강희가 협회장으로서의 능력을 잘 보여줬다는 뜻일 것이다.

“신지의 헌터!”

“읏!”

―쾅!

센의 경고에 본능적으로 쉴드를 펼쳤다. 그러자 눈 바로 앞에 거대한 화살 하나가 꽂혔다. 쉴드를 부술 정도로 강한 파괴력은 아니었지만, 하마터면 스틱스강을 허무하게 사용할 뻔했다.

쉴드를 공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던져버린 후 자아를 바주카로 바꾸었다.

―펑, 펑.

거대한 소리 포탄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각성자들의 몸이 여기저기로 터져 나갔다.

“센, 후방.”

“알겠습니다.”

―콰그작!

센이 레일리에게 대답하며 광휘로 자신의 등 뒤에 있던 각성자의 몸을 꿰뚫었다.

세빈이의 그림자가 각성자들을 한 번에 옭아매면 비스와 조슈아가 나서서 대미지를 입혔고, 가끔 각성자들이 위협적인 공격을 시도할 때마다 최민 헌터의 방공호가 그것들을 단단히 막았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호흡이 척척 맞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함께 합을 맞춘 것처럼 말이다.

[남은 시간 : 00:15:23]

절반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공중에서 공격을 이어가며 김강희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뭘 하는 거야?’

그는 이 수라장의 한가운데 서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칠 리가 없는 각성자 하나가 갑자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탕!

몸이 먼저 반응해 그를 향해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어?”

―쾅!!

하지만 탄환이 각성자의 몸에 닿기도 전에 상황이 종료됐다. 녀석의 몸을 거대한 바위로 짓누른 것처럼 납작해졌기 때문이었다.

―쿵, 쿵, 쿵.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지면에 있던 모든 미등록 각성자들이 차례로 땅에 처박혔고, 디펜스 전 종료까지 남은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빠르게 줄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 : 00:00:00]

[갈등은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할 것입니다.]

[그 속에서 세상은 발전과 쇠퇴를 반복할 것입니다.]

―파사삭.

결국 시간이 전부 흘렀고 하늘에 떠 있던 등나무가 먼지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두 번째 핵마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김강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걸린 것이 보였다.

“지금 제가 눕힌 각성자들, 자폭시킬 예정이었죠? 아마 황도혁 헌터와 저를 노렸을 것이고.”

“너, 너, 이걸 어떻게……!”

“저한테는 다 보입니다. 아, 수고했어요. 최화연 헌터.”

‘그래서 이 사람한테 기습을 시킨 거였구나.’

김강희는 최화연 헌터를 향해 가벼운 미소를 보인 후 다시 미등록 각성자들의 우두머리쯤으로 보이는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내일은 더 협조적인 태도로 나오길 바라죠.”

“크윽……!”

미등록 각성자들은 자신들이 패배했다는 사실이 분한지 주먹으로 땅을 내리치며 욕을 뱉었다.

―사아아.

김강희가 유유히 떠나가자 황무지의 풍경이 아까처럼 사라지더니 곧 검은 공간에 김강희와 우리만 남았다.

“다들 다친 곳 없지?”

“멀쩡하다. 시시할 정도군.”

“지의 넌?”

“나도 괜찮아.”

김강희의 뒤를 쫓으며 서로의 상태를 살폈다. 체력 소모만 조금 있었을 뿐 다행히 부상당한 사람은 없었다.

―치지직.

그때 눈앞에 노이즈가 끼더니 늘 그렇듯 상태창이 나타났다.

[미래를 아는 것만으로도, 남들보다 한 수만 더 많이 아는 것만으로도 전투에서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파괴자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커헉……!”

갑자기 김강희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상체를 파르르 떨고 있었고 난 발을 옮겨 그에게 성큼 다가갔다.

“뭐……?”

그의 코와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터져 나오는 기침을 막느라 입을 틀어막았던 손바닥에도 피가 흥건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습니다.]

[각성과 함께 얻은 불치병만큼은 예상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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