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15화 (315/366)

315화

[신세계의 핵―통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힘]

[현재 체력 : 300,000]

“드디어 나타났군.”

―쿵.

레일리가 픽 웃으며 중얼거리더니 아더의 방패를 꺼내 들곤 가장 전방에 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근접 전투계 헌터들이 핵을 에워싸며 하나둘씩 자리를 잡았고, 나는 가장 후방에서 자아를 고쳐 쥐었다.

[신세계의 핵―통제]

[속성 없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힘]

[신세계의 핵―통제는 공격한 대상의 행동을 통제한다.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애초에 공격 자체를 당하면 안 되겠네.’

감았던 오른쪽 눈을 다시 뜨며 구원자의 눈동자를 해제했다. 그리고 나는 자아를 입가로 가져와 숨을 들이마셨다.

“공격당하면 행동을 통제받는다고 나와 있어. 우리가 머릿수도 훨씬 많으니까 다치지 말고 침착하게 가자.”

“알겠어요!”

“그래.”

―콰그작.

다양한 대답을 들으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을 때쯤 갑자기 구체에서 가시 사슬이 밑으로 떨어졌다. 땅을 파고든 사슬이 다시 위로 솟구치는 바람에 지면에 있던 모든 헌터들이 위로 피하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펑!

바주카로 바꾼 자아의 방아쇠를 당기자 묵직한 포탄이 녀석의 몸 한가운데 박혔다. 가시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고, 단단히 얽혀 있던 철조망의 사이가 살짝 느슨해지다 이내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현재 체력 : 285,471]

방어력은 무난한 편이었다. 이대로 방심하지 않고 차근차근 공격을 넣으면 손쉽게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쿵, 쿵.

조슈아가 녀석의 바로 위에 용암을 들이부었다. 끈적한 액체가 폭포처럼 밑으로 떨어지자 바닥을 헤집던 사슬까지 집어삼켰고, 곧 신세계의 핵과 완전히 분리되었다.

‘구원자의 가호 아래.’

―파지직

발 아래로 세빈이가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곧장 세빈이의 특성인 ‘몰살’을 활성화한 후 공격력을 올렸다.

‘아, 눈 마주쳤다.’

몸에 일어난 변화를 눈치챈 건지 세빈이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런 말 없이 신세계의 핵을 가리키자 세빈이는 이해했다는 듯 웃어 보이며 그림자와 함께 핵과의 거리를 좁혔다.

―후웅.

하지만 신세계의 핵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녀석은 다시 가시 사슬들을 촉수처럼 밑으로 주렁주렁 내렸다. 이번엔 몸체 자체를 움직여 사슬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허공을 가르는 사슬을 피하느라 공격을 할 틈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쾅!!

어차피 지금은 세빈이가 온 힘을 다해 공격해 줄 테니까.

―쿠구구궁.

세빈이의 그림자가 신세계의 핵을 옭아매 바닥까지 끌어 내렸다. 핵은 사슬로 바닥을 지탱하며 일어나려 애썼지만, 그림자의 힘이 더욱 강해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네 음침한 친구 녀석, 역시 실력은 만만치 않군.”

“음침하다니… 지금 걔 친구인 내가 빤히 듣고 있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 그러니까 친구랑 동료는 다르다?”

“유치한 소리 그만하고 전투에나 집중해라.”

비스가 질색하는 얼굴로 레일리를 흘긋 보더니 곧 대낫을 높이 들고 핵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런 말 할 여유가 있는 걸 보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쾅!

낫이 철조망 서너 개를 끊어놓았다. 포장지를 벗겨내듯 철조망을 하나씩 뜯어낼수록 그 속에 관절이란 관절은 전부 접힌 김강희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불확실성은 인간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요소입니다.]

[파괴자는 불확실성이야말로 인류를 위협하는 요소이며,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영향 범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편했습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는 늘 좋았으니까요.]

[현재 체력 : 219,825]

김강희가 과한 통제 성향을 가진 인간이라는 건 아까 모니터를 봐서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가장 궁금한 건 그것이 어떤 계기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겠다는 야심으로 이어졌느냐다.

“큿.”

―탱그랑!

생각에 잠기기도 잠시, 세빈이의 검이 촘촘한 철조망에 걸려 공격의 흐름이 잠깐 끊겼다. 세빈이는 아예 검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 틈에 가시 사슬이 세빈이의 목을 노렸다.

―쿵!

아더의 방패가 세빈이의 앞에 나타나 사슬을 막았다. 하지만 사슬은 이미 세빈이의 팔뚝을 찢은 후 그의 뒤쪽 바닥에 박혔다.

세빈이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무기를 다시 소환하며 아더의 방패를 훌쩍 뛰어넘었다.

세빈이가 다시 달그림자를 시전하면 신세계의 핵에게 엄청난 폭발 대미지를 줄 수 있을 것이다. S급 몬스터들을 한 번에 날려 보낼 위력이니 이 녀석에게도 통하겠지.

―탁!

세빈이는 폭발과 동시에 녀석과의 전투를 끝낼 셈인지 검 끝을 녀석에게 향한 채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땅에 있던 그림자를 끄집어 올렸다.

“…뭐?”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신세계의 핵은 터지지 않았다. 그리고 세빈이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던 그림자는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쉬이익.

벙찐 채로 추락하는 세빈이를 향해 사슬 하나가 맹렬하게 날아왔다. 난 곧바로 쉴드를 날려 보내며, 있는 힘껏 소리쳤다.

“세빈아, 피해!”

―퍼버벙!!

세빈이의 주변으로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내 쉴드가 세빈이를 잘 보호해 줬는지 확인되지 않을 만큼 시커먼 연기가 자욱하게 꼈다.

‘왜 스킬을 안 쓴 거지?!’

그 상황에서 세빈이라면 무아를 써서 공격을 피했을 것이다. 저렇게 당황한 얼굴로 날아오는 사슬을 보고만 있는 건, 내가 아는 강세빈이 아니었다.

―후우웅.

소리 탄환으로 연기를 날려 보내자 시뻘건 불로 만들어진 방공호가 눈에 들어왔다. 그 너머에 있던 최민 헌터가 놀랐는지 숨을 헐떡였고,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빈이가 무사하다는 뜻일 거였다.

―서걱!

그때 새하얀 검이 바닥에 있던 사슬들을 일격에 산산조각 냈다. 아마테라스 상태의 센이 내 앞으로 불쑥 나타나 큰 목소리로 말했다.

“신지의 헌터, 정신 차리세요! 아직 전투 중입니다!”

“아, 아… 네!”

“강세빈 헌터는 무사하니, 일단 눈앞의 적부터 생각 하세요!”

―쾅!

그는 빛으로 된 궤적을 남기며 다시 공중으로 도약 했다. 자신의 몸 주위로 광휘를 쏟아내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성공시키더니 곧 검으로 철조망 사이를 파고들었다.

[현재 체력 : 189,599]

그 속에 있던 김강희에게까지 날이 들어가자 체력이 크게 떨어졌다. 그가 공격을 퍼붓는 동안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쓸데없는 걱정을 떨쳐냈다.

―퍼버벙.

헌터들이 시선을 끌어준 덕에 안정적으로 바주카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다. 포탄이 녀석의 몸을 관통할 때마다 체력이 빠르게 떨어졌다.

―휘잉.

“아, 세빈아!”

그때 방공호에서 세빈이가 뛰어나왔다. 세빈이는 검으로 제게 날아오는 가시 사슬을 쳐내며 내 옆으로 부지런히 달려왔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지?”

“응. 최민 헌터 덕분에 살았네.”

나는 그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는데, 정작 당사자인 세빈이는 너무나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빈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신세계의 핵을 흘긋 보더니 곧 입을 열었다.

“스킬을 봉인 당했어.”

“아. 아까 공격당한 것 때문에?”

“그런가 봐.”

그제야 세빈이의 팔뚝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검은 뱀의 허물이 상급 방어구이니 자가 치유 능력이 붙어 있겠지만 이 상처로 인해 신세계의 핵에게 스킬 사용을 통제받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난 세빈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절대로 너 혼자서 공격하지 마. 무모하게 파고들지도 말고.”

“…걱정해 주는 거야?”

“당연하지.”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강세빈’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기쁨]

스킬을 봉인 당한 상황에도 내가 자신을 신경 써주는 게 내심 기분 좋았나 보다. 하여간 가끔 이해 안 갈 때가 많다니까.

상태창을 열어 세빈이의 특성을 해제했다. 스킬을 봉인 당한 상태라서 켜두고 있으면 그저 내 체력만 빠르게 소모될 뿐이었다.

―쾅!

그때 신세계의 핵이 한 번 더 가시 사슬을 휘둘렀다. 나와 세빈이가 동시에 고개를 숙이자 그 위로 아슬아슬하게 사슬이 지나갔다. 사슬은 텅 빈 공간을 가로지르다 이내 바닥을 찍었다. 깊게 팬 바닥은 무너질 것처럼 금이 쩍 갔다.

―타앙!

그 틈을 타 자아의 방아쇠를 당겨 바닥에 박힌 사슬들부터 제거했다. 녀석이 가진 무기가 하 둘씩 사라지자 공격의 패턴이 확실히 단순해졌다.

레일리가 녀석의 공격을 튕겨내며 무력화시키는 동안 센과 세빈이가 동시에 달려들어 녀석을 벴다. 대비되는 색을 가진 두 개의 궤적이 허공을 수놓는 듯했다.

“다들 물러나세요!”

조슈아가 경고하며 신세계의 핵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러자 핵의 근처에 있던 센이 광휘로 한 번 더 녀석을 공격한 후 뒤로 물러났다.

―콰과과광!!

눈앞이 새빨갛게 물드는 동시에 폐부에 뜨거운 공기가 들어찼다. 용암 폭포 서너 개가 동시에 소환되어 신세계의 핵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확실히 아까보다는 폭발의 범위도 넓고 파괴력도 높아 경고할 만한 수준이었다.

[현재 체력 : 98,482]

―쿵, 쿵.

철조망이 한 겹씩 벗겨지고 움직임은 완전히 무거워졌다. 제대로 된 공격 한 번으로 저 핵을 파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난 숨을 한번 들이마신 후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퍼버버벙!!

녀석의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포탄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결국 핵 가운데 있는 김강희를 보기 좋게 맞혔다.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마 절대자들도 그들을 통제할 수 없겠지요.]

[현재 체력 : 0]

머릿수로 밀어붙이니 상황은 금방 종료됐다.

녀석의 설명창이 사라지자마자 우릴 둘러싼 검은 공간이 물에 씻겨나가듯 사라지더니, 곧 화병이 있던 장소로 바뀌었다. 우리가 들어갔던 게이트는 흰 가루만 남긴 채 사라지고 없었다.

“시시했군.”

“계속 이 정도 수준이라면 할 하겠는데요?”

조슈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미소 띤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확실히 아직은 거뜬했다.

‘세빈이의 상태도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네.’

상태 이상이 풀린 걸 확인하는 중인지, 세빈이는 구석에서 그림자를 조종하고 있었다.

―끼이익.

이번엔 줄기가 꽂힌 화병 뒤의 문이 열렸다. 쪽지의 내용으로 봤을 땐 각성자들끼리 싸우던 시점일 것 같은데 말이지.

―텁.

문과 가장 가까이 있던 센이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럼 바로 들어가죠.”

“좋아요.”

우린 김강희의 다음 기억을 향해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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