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10화 (310/366)

310화

―철컥.

일단 궁병을 향해 자아를 겨눈 후 녀석이 활시위를 놓기 전에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녀석도 쉽게 맞아주진 않았다. 민첩하게 옆으로 굴러 공격을 피하더니 곧 자세를 잡고 다시 시위를 당겼다.

―피잉!

화살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순식간에 수를 불리더니 일제히 내 뒤를 쫓았다. 쉴드로 화살을 막자마자 쉴드째로 바닥을 향해 던져 버렸고, 덕분에 밑에 있던 보병 하나가 파편에 맞고 뒤로 물러났다.

―우우웅

잠깐 주춤한 틈을 타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새하얀 소리의 파도가 사방으로 퍼져나가자 녀석들이 크게 휘청거렸고, 나를 향해 달려들던 보병이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아우우!”

이번엔 녹두가 울음소리를 길게 뺐다. 새하얀 빛줄기가 녀석들의 몸에 꽂히자 갑주가 종이처럼 갈기갈기 찢겼고 먹물 같은 액체가 바닥에 피처럼 뿌려졌다.

‘역시 방어력은 낮네.’

탄환을 맞히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공격만 성공하면 제법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콰과광!

자아를 바주카로 바꿔 쓰러져 있는 녀석들을 향해 발포하자 녀석들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녀석들이 허우적대는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읏!”

하지만 녀석들도 노련한 투사들이었다. 보병이 내 눈앞까지 검을 들이밀어 거리를 확보하자, 뒤에 있던 궁병이 추락하는 와중에도 내게 화살을 날렸다. 고개를 꺾어 화살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나서야 녀석들이 바닥 위로 떨어졌다.

―퍼버벙!

녀석들이 다시 공격 태세를 취하기 전에 방아쇠를 당겼다. 새하얀 포탄이 가장 먼저 궁병의 가슴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갔고, 보병들이 당황한 틈을 타 녹두가 녀석들을 강하게 물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녹두야, 이쪽!”

내 외침과 동시에 녹두가 내 쪽으로 보병들을 던졌다. 거대한 송곳니 자국이 난 몸과 크게 뜬 눈을 바라보며 포구를 녀석들에게 고정했다.

―콰과광!

녀석들의 몸이 정확히 하나로 겹쳐졌을 때 소리 포탄이 한 번에 관통했다. 풍선이 부풀 듯 팽창하던 몸은 곧 터졌고 검은 액체만이 바닥에 흩뿌려져 녀석들의 흔적을 남겼다.

―쿵, 쿵,

“…젠장할.”

결국 마주하지 않길 바랐던 녀석이 게이트를 비집고 밖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내가 해치운 녀석들처럼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먹으로 그린 거대한 말 한 마리가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녀석의 주위로 하얀 구름과 바람이 넘실거렸고, 그럴 때마다 주위에 있던 가로등이 우수수 뽑혀 나갔다.

국내 S급 보스 몬스터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보스 몬스터, ‘천마’였다.

―콰과광!!

천마가 앞발을 높이 든 후 발을 구르자 순식간에 땅이 꺼지고 사방으로 돌조각이 튀었다. 낮말을 듣는 새로 빠르게 피했지만 맞은 편에서 날아온 바람에 중심이 흔들려 천마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푸르르르.”

“윽!”

천마가 고개를 흔들며 숨을 토해 내자 엄청난 폭풍이 몸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뒤흔들린 시야에 멀미가 일었지만 한 손으로 머리를 잡은 채 겨우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탄환이 폭풍의 허리를 뚫고 나와 바람을 없애 버렸다.

―후웅.

그와 동시에 녹두가 나를 낚아채 녀석과 거리를 벌렸다.

‘언니, 괜찮아?’

‘괜찮아…….’

마음속으로 대답했지만 입 밖으론 구역질이 멈추지 않았다. 녹두의 등에 엎어진 채로 숨을 고르며 천마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광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곤 고고하게 서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방심하면 바로 당한다.

방금도 녹두가 아니었으면 녀석의 후속 공격이 이어졌을 것이고, 순식간에 목숨을 내줄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우우웅.

음파 공격으로 출력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을 뽑아냈다. 커다란 소리의 파도가 위협적으로 천마를 집어삼키자 녀석의 새하얀 몸에 자잘한 실금이 생겼다. 녀석이 발을 구르며 고통스러워했고 지면에 있는 모든 것이 쓰러질 것처럼 강하게 흔들렸다.

―쿵!

“젠장……!”

녀석이 기어코 일을 쳤다. 마구 흔들던 고개가 이순신 동상을 들이받았고 결국 동상은 그대로 앞으로 쓰러져 반으로 쪼개졌다.

“히히잉!”

그게 전투의 신호탄이라도 된 듯 울음소리를 크게 내더니 바람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녀석의 머리엔 어느새 커다란 뿔이 솟아나 고개를 흔드는 것만으로 큰 범위로 공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마가 공중을 딛고 선 채 다리를 구르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달려갈 것처럼 다리에 힘을 주었다.

‘설마…….’

등골이 오싹해졌다. 녀석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자 수많은 고층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이 이대로 돌진한다면 아무리 배리어겔이 씌워진 건물이더라도 피해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운이 좋으면 쉴드만 깨질 것이고, 안 좋으면 그대로 붕괴될 것이다.

―타닥!

녹두의 등에서 내려와 녀석을 향해 달려가며 크게 소리쳤다.

“녹두야, 이 앞으로 배리어 펼쳐! 그리고 ‘시민 1’ 상대할 때 사용했던 방어형 고리도 이 녀석한테 둘러줘!”

“아우우우!”

녹두가 울음소리를 내자 새하얀 고리가 천마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가 녀석의 몸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와 동시에 난 녀석의 미간에 작살을 꽂아 넣어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콰그작!

천마의 머리 위에 올라서자마자 자아로 창을 뽑아 녀석의 이마에 박아넣었다. 그걸 기둥 삼아 단단히 몸을 고정한 후 녀석의 뿔을 향해 자아를 조준했다.

―탕, 탕, 탕

‘쓸데없이 단단해 가지곤…….’

―쿵!

뿔의 밑 부분을 향해 미친 듯이 난사를 하고 나서야 그것이 겨우 밑으로 떨어졌다. 곧바로 몸을 돌려 반대편 뿔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순간.

―두두두두!

“윽!”

녀석이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탕! 탕!

창을 한 팔로 끌어안다시피 한 후 양손으로 자아를 잡아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조준점이 계속 흔들려 탄환은 엉뚱한 곳을 가르거나 뿔의 가장자리에만 맞을 뿐이었다.

녹두가 녀석의 몸에 둘러놓은 고리가 몸에 마구잡이로 상처를 냈고, 그 덕에 새하얀 몸에서 먹물 같은 피가 줄줄 흘렀다. 체력 소모를 많이 했겠지만 녀석의 속도를 줄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쾅!!

결국 녀석의 몸이 녹두의 배리어에 먼저 부딪혔다.

“큿……!”

온몸이 진동해 하마터면 뒤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배리어를 살펴보니 아슬아슬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을 뿐, 한 번 더 들이받으면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창을 꽉 끌어안으며 하나 남은 뿔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한 발, 또 한 발. 녀석의 몸이 다시 배리어를 들이받을 준비를 하는 동안 내 탄환은 뿔의 뿌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쿵!

마침내 존재 자체만으로 흉기였던 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히이잉!”

“윽!”

그리고 동시에 녀석이 다시 배리어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콰그작!

‘젠장!’

배리어가 부서졌다.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슬로모션 비디오처럼 보였다.

―철컥.

나는 곧바로 녀석의 목을 향해 바주카를 조준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부디 이곳에 있는 모든 빌딩들의 배리어겔 상태가 튼튼하기를 바랐다.

―콰아앙!!

방아쇠를 당긴 순간 녀석의 몸이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혔고 그 반동으로 몸이 앞으로 날아가는 게 느껴졌다.

“어……?”

분명 끔찍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질끈 감았던 눈을 떴지만, 시야에 보이는 건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빌딩이 전부 멀쩡해…….’

광장에 있던 가로등과 화분들만 부서졌을 뿐 주위에 있던 건물들은 흠집 하나 없이 멀쩡했다. 분명 천마가 어딘가에 강하게 부딪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 부서진 빌딩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의문과 함께 고개를 앞으로 돌리자 눈앞엔 거대한 방패… 아니, 아더의 방패가 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텁.

방패에 부딪히기 전에 누군가 내 허리를 낚아채 땅으로 부드럽게 착지했다. 날 데려온 주인공을 확인하자마자 이글거리는 황금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레일리!”

“딱 맞게 온 것 같네.”

―쿠구구궁.

방패가 다시 흙이 되어 사라지자 그 너머에 있던 천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쓰러진 채로 몸을 파들파들 떨고 있었고 녹두의 고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자신의 공격을 그대로 돌려받았으니 한동안 일어나기엔 힘들어 보였다.

‘여기서 만날 줄이야…….’

레일리는 나를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오만함과 자신감, 그 사이의 어떤 감정을 담은 얼굴을 보니 정말로 레일리가 내 앞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감사 인사는 됐고, 얼른 저 녀석부터 끝내지 그래?”

“아, 그렇지.”

―쿵.

나는 곧바로 자아를 바닥에 떨어트려 박격포 형태로 바꿨다. 포구가 쓰러져 있는 천마를 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약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그리고 온 지축을 뒤흔드는 포탄이 녀석의 전신을 관통했다. 새하얀 몸은 반으로 갈라져 순식간에 검은 액체로 뒤덮이며 볼품없이 녹아가는 밀랍 인형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녹아 땅과 하나가 되었다.

“…고마워.”

“감사 인사는 됐다고 했을 텐데.”

레일리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긴 후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였다.

“너는 몇 번이고 나를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유일한 애송이니까.”

“레일리…….”

“길드장님!”

감동을 느끼기도 전에 갑자기 웜홀에서 알렌이 튀어나왔다. 방금 레일리를 이곳으로 데려다주자마자 잠시 몸을 숨겼다 다시 이곳으로 나타난 모양이었다.

“위험했잖아요, 길드장님! 조금만 늦었으면 냅다 치일 뻔했어요!”

“그럼 건물들 부서지게 두냐? 생각보다 이기적인 구석이 있군, 알렌.”

“절 그런 사람으로 몰아가지 마세요… 전 그냥 안전한 다른 방법을 좀 생각해 보라는 뜻이었다고요.”

―우웅.

알렌이 툴툴거리는 동안 나는 인벤토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하미준 헌터]

‘…아니겠지.’

다른 일로 전화를 건 것일 수도 있다. 이 전화가 세빈이와 관련된 일이라고 확신할 수 없으니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쿵, 쿵.

하지만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고, 통화 버튼을 누르는 손도 마찬가지였다.

“네, 하미준 헌터.”

―어, 일단 경주 S급 게이트 파견은 다른 헌터들에게 맡길 거야. 해결해줘서 고마워.

“…세빈이는요?”

전화기 너머로 아무런 말이 들리지 않았다. 주위의 소리보다 내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릴 때쯤 하미준 헌터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강세빈 헌터의 신호가 방금 끊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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