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09화 (309/366)
  • 309화

    차도윤 헌터의 말을 듣자마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김강희가 경복궁에 없다고? 어디로 간 거지? 우리 작전을 눈치챘나? 아니면 벌써 죽었…….’

    ―신지의 헌터?

    “아, 아, 네… 듣고 있어요. 확실해요? 주위까지 다 살펴본 것 맞아요?”

    ―네. 전부 살펴봤어요. 향원정에 계셨던 흔적은 발견했는데 회장님은 못 찾았어요.

    차도윤 헌터가 한숨을 길게 내쉰 후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일단 본부로 왔고, 하미준 헌터를 찾아온 거예요.

    “…일단 알겠어요. 저도 그쪽으로 갈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녹두를 불러 녀석의 등 위에 올라탔다. 내 통화를 듣고 있던 녹두가 곧바로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우뚝 솟은 협회 본부 건물을 향해 달려 나갔다.

    사실 침착하게 다시 생각해 보면 김강희가 사라진 건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늘 지옥도가 열릴 때마다 자취를 감추고 모두가 죽어갈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움직이는 순간은 오직 자기 뜻대로 일이 굴러가지 않을 때였다.

    즉, 그가 자신의 거점에서 벗어난 건, 어떻게 보면 그가 궁지에 몰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휘이잉.

    어느새 발밑으로 경복궁의 전경이 펼쳐졌다. 녹두가 빠르게 하강해 지면에 착지하는 동안 나는 오른쪽 눈을 감고 궁 전체를 훑었다. 김강희의 상태창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타닥.

    궁 가장 안쪽의 향원정에 들어서자 돌가루 같은 부스러기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 …부서지고 있다는 것 정도?”

    세빈이가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건 김강희의 일부분이나 마찬가지인데, 김강희가 폭삭 무너졌다고 하기엔 가루의 양이 턱없이 적었다.

    그리고 건물 중앙에서부터 입구까지 떨어진 걸 보면 그는 제 발로 걸어서 여기를 나간 것이다.

    ‘일단 하미준 헌터 쪽으로 잠깐 합류하는 수밖에.’

    ―바스락.

    다시 녹두의 등 뒤에 올라타며 입을 열었다.

    ‘녹두야, 본부로 가 줘.’

    ‘응.’

    녹두는 빠르게 가속해 금방 본부 건물 입구 앞으로 데려다주었다. 배리어겔은 완전히 굳어져 건물 외벽을 단단히 막아주고 있었다.

    “야, 멍청아. 이쪽이야!”

    “미래 씨!”

    앞에서 서성거릴 무렵 반가운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1층 카페 문 앞에 미래 씨가 손짓하고 있었다. 그 문만 배리어겔을 뿌리지 않아 비상 출구로 이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 SS급 값은 하나 보네. 껍데기 멀쩡한 걸 보니까.”

    “걱정 감사해요. 크게 다친 곳은 없어요.”

    “걱정은 무슨.”

    독설로 포장된 미래 씨의 걱정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의 이상한 시선을 뒤로 한 채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하미준 찾는 거지? 지금 김강희 방에 있어.”

    “…네?”

    “어? 하미준 찾는 거 아냐?”

    “아니, 그 방금…….”

    내가 미래 씨를 바라보며 버벅대자 그가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 나를 빤히 올려다 보았다.

    ‘방금 분명 김강희라고 한 거지?’

    아무리 미래 씨가 입이 험한 편이라고 해도 김강희만큼은 꼬박꼬박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런 그가 김강희라고 부른 이유는 그가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이 김강희에게 있음을 안 것이 분명했다.

    “방금 김강희라고… 하신 거죠?”

    “그래.”

    “…어떻게 알았어요?”

    “뭐?”

    내 질문에 오히려 미래 씨가 역으로 되물었다. 그는 타투로 범벅된 목을 벅벅 긁다 말을 덧붙였다.

    “도대체 뭘 어떻게 알았단 건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난 조직 버리고 튄 비겁한 X끼들은 상사로 안 본다.”

    “아…….”

    ‘그 뜻이었구나.’

    그가 이 재앙의 원인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김강희가 자신의 가치관에 크게 벗어난 인간임은 확신하는 듯했다.

    “죽은 거라곤 생각 안 하시나 보네요.”

    “당연하지. 일부러 전화를 꺼놨더라고. 죽었으면 위치 추적이라도 했겠지.”

    미래 씨가 얼굴을 구기며 강하게 혀를 찼다.

    “어떻게 상황이 이 지경이 되고 나서 귀신같이 사라질 수가 있지? 그 잘난 예지 스킬인지 뭔지로 미리 보고 쳐 튀었다는 게 사람 개 빡돌게 한다고.”

    “…그렇죠.”

    “그 X끼, 내 앞에 낯짝 비추는 순간 머리 한 대 치고 사표 써야지.”

    ―띵.

    그가 김강희를 향해 악담을 쏟아붓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나는 최상층을 누른 후, 미래 씨를 향해 말을 건넸다.

    “죗값을 치르는 날이 올 거예요.”

    ―쿵.

    내 말을 끝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갈수록 복잡한 감정들이 스쳤다.

    ‘정말로 김강희는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걸까.’

    그와 단둘이 식사했던 때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힘을 합치는 모습이 아름답다며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맴도는 듯했다. 마치 연극이라도 보는 것 같은 말투였지.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수라장이 따로 없는 협회장실이 눈에 들어왔다. 컴퓨터 수십 대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며 몇 번이고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 신지의 헌터!”

    그리고 그 난장판의 한가운데 있던 하미준 헌터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늘 세팅되어 있는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셔츠도 단추 몇 개를 풀어헤친 상태였다. 그가 얼마나 무리해서 일을 수행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차도윤 헌터는요?”

    “방금 5번째 페이즈 시작돼서 S급 게이트 주변으로 보냈어.”

    “하아… 하필 이런 상황에서 다음 페이즈까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미준 헌터는 셔츠 소매를 걷으며 중얼거렸다.

    “신지의 헌터는 던전 밖 대기조로 뺄게. 게이트 밖으로 나온 몬스터들 처리하고, 김강희도 좀 찾아줘.”

    “알겠어요. 아, 그리고 하미준 헌터.”

    “왜?”

    나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신 후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세빈이의 위치 신호가 끊기거나 걔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저한테 바로 알려 주세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하미준’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문]

    그의 눈썹이 으쓱거렸다. 말없이 의문을 표하는 그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세빈이의 존재가 사라졌던 것 기억하시죠?”

    “잊을 리가 있나.”

    “전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지옥도가 열렸을 때부터 행방이 묘연해지거나, 해치우던 중에 갑자기 사라진 적이 있었거든요.”

    “혹시 그거, 김강희랑 관련이 있어?”

    “일단 그렇게 보고 있어요.”

    하미준 헌터가 입술을 비틀더니 곧바로 대답했다.

    “이번에 그 작전은 거하게 실패했잖아. 그 양반이 바보도 아니고 똑같은 방법을 또 쓸까?”

    “궁지에 몰려 있으니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죠.”

    ―쿠구궁.

    그때 갑자기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아악!”

    “다, 다들 머리 보호해!”

    자세를 낮춘 채로 창문 밖을 내다보니 광화문 광장에 떨어졌던 게이트에서 갑자기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녀석 중 하나가 본부 건물을 공격한 것 같았다.

    ―타닥.

    나는 곧바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려가며 하미준 헌터를 향해 소리쳤다.

    “제가 처리할게요!”

    “알겠어! 신지의 헌터가 부탁한 건 들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고마워요!”

    ―띵.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1층으로 내려가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드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카페 출구 쪽으로 달려 나갔다. 창문 너머의 풍경은 이미 몬스터들로 아수라장이 된 후였다.

    “야, 조심해. 벌써 세 마리 튀어나왔어!”

    “알겠어요! 미래 씨도 얼른 피하…….”

    미래 씨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내장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끓어 넘치는 듯했다. 피범벅이 되어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얼굴이 된 미래 씨의 모습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한진우 헌터의 울음소리도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다.

    이제 완전히 내 것이 된 과거의 어떤 기억이 목구멍을 통해 천천히 올라오더니, 곧 정제된 문장이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대피한 시민들, 지하 주차장에 있죠?”

    “어. 그런데, 왜.”

    “지금쯤 많이 지쳐 있을 거예요. 엄청 예민하고, 사소한 걸로 싸우기도 할 거고요.”

    “갑자기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턱.

    출구에 있던 미래 씨의 어깨를 잡고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그 사람들 사이에 절대로 가지 마세요. 괜히 중재하려다 미래 씨만 휘말립니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비각성자 ‘안미래’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문]

    미래 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못 볼 걸 본 듯한 얼굴로 인상을 한번 찌푸리더니 내 손을 잡아 내렸다.

    “뭔 무당도 아니고,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원…….”

    “…아무튼 전 가 볼게요.”

    “그래.”

    ―타닥!

    미래 씨를 뒤로한 채 광화문 광장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어느새 팔찌 밖으로 튀어나온 녹두는 앞서나가 본부 건물을 향해 돌진하는 몬스터들을 긴 빛줄기로 막았다.

    ‘미래 씨라면 내 말을 그냥 넘겨 듣지 않겠지.’

    그건 명백히 사고였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예민해진 사람들이 겪는 일상적인 갈등이었고, 그곳에 재수 없게 미래 씨가 있었을 뿐이었다. 미래 씨는 싸움을 말리려다 밀쳐졌고 하필 주차 블럭에 머리를 부딪혀 즉사했다.

    미래 씨가 그 사고로 사망한 건 끽해야 3번이었지만 4번이 영영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경고해서 나쁠 건 없었다.

    ―쾅!!

    “큿……!”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옛날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생김새의 인간형 몬스터들이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녀석의 어깨를 잡고 뛰어넘어 낮말을 듣는 새로 공중을 디뎠다.

    ―피잉!

    자아를 제대로 장전하기도 전에 이번엔 화살이 날아왔다. 내 팔을 아슬아슬하게 스친 화살 때문에 날카로운 고통이 팔에서부터 번져갔다.

    공중에서 자세를 잡은 후 몬스터들을 눈으로 훑었다.

    ‘경주 S급 게이트의 일반 몬스터들이군.’

    보병 둘과 궁병 하나. 인간형이다 보니 공격을 맞추는 게 쉽지 않겠지만 방어력이 낮으니 음파 공격으로 한 번에 쓸어 버리면 전투를 유리하게 풀 수 있을 것이다.

    ―철컥.

    보스 몬스터인 ‘천마(天馬)’가 나오기 전에 이들부터 해치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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