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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308화 (308/366)

308화

“그럼 작전대로 제가 게이트 위치를 먼저 확보할게요.”

“그리고 저희는 지의가 게이트를 찾을 때까지 숨어서 대기! 아셨죠?”

“알겠습니다.”

파편을 처리하느라 바빠서 한동안 보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보는 지호 언니는 늘 그렇듯 긍정적이고 활기 넘쳤다. 다른 헌터들도 지호 언니의 응원을 받으며 저마다 의지를 다졌다.

‘그러니까 98번째 회귀 때 언니를 위해 울어준 사람들이 많았던 거겠지.’

과거의 내가 기억하고 있는 탓에 모든 회차의 기억이 선명하다. 지옥도를 잠깐 소멸시키고 느꼈던 허무함과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내 안에서 떠돌고 있었다.

“지의야?”

“아.”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겨 멍하니 있었나 보다. 헌터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꽂혔고 지호 언니는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말을 덧붙였다.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응, 괜찮아. 준비되셨으면 들어가겠습니다.”

―끼이익.

헌터들을 향해 이야기하며 저택의 문고리를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전에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부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헌터들과 시선을 교환한 후 길을 비추는 자를 내려다보았다.

‘일단 위층으로 가야겠군.’

낮말을 듣는 새로 바닥에서 살짝 발을 띄운 채로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액자가 걸린 복도를 따라 쭉 나아간 후 계단을 오르자 위쪽에서 녀석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끼익.

보스 몬스터, ‘신사’가 한 걸음씩 내딛자 나무가 서로 부딪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공중을 조심스레 내디뎠고 녀석이 계단을 완전히 내려갈 때까지 숨을 참았다.

시야 밖으로 녀석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나는 반지가 가리키는 대로 2층 복도로 발을 들였다.

―우웅.

달 장식 위의 화살표가 맹렬하게 복도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고개를 드니 우리가 열고 온 게이트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복도에 있는 다른 문인 척하고 있었지만, 확연히 다른 생김새에 누구라도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빨리 해결하고 다음 던전도…….’

―쾅!!

그때 아래층에서 커다란 파열음이 들렸다.

‘꼭꼭 숨어라’라는 목소리가 얼핏 들린 것을 보니 아무래도 들킨 모양이었다.

‘일단 게이트부터 잡자!’

위치가 바뀌기 전에 게이트에 손을 대면 된다. 나는 복도 안쪽으로 빠르게 달려가 게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파스슥.

“젠장……!”

하지만 게이트는 간발의 차로 사라져버렸고, 길게 뻗었던 손 위에는 모래만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 싶었다. 아무리 던전 공략법을 달달 외우고 숙지했다고 해도 변수는 늘 존재하니 한 번에 클리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단 따돌리고 몸부터 숨기세요!”

자아를 입가로 가져와 아래층을 향해 소리친 후 나도 1층으로 빠르게 발을 옮겼다.

―콰과광!

내가 도착함과 동시에 지호 언니가 고유 스킬인 ‘수룡’으로 신사를 가둔 채 녀석과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다른 헌터들은 먼저 몸을 숨긴 듯 1층에 있던 건 지호 언니뿐이었다. 언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복도 쪽으로 턱짓을 했고, 언니는 내 의도를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도망쳤다.

―탕, 탕, 탕.

수룡이 사라지기 전에 방아쇠를 당겨 녀석의 움직임을 한 번 더 묶었다. 녀석이 물 안에 갇힌 채 괴로워하는 동안 나는 거실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쿵.

얼마 지나지 않아 수룡이 사라지고 녀석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녀석은 잠시 파르르 떨다 지팡이에 의존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재킷의 물기를 손으로 툭툭 털었다. 언제 공격을 당했냐는 듯 우아하고 고상한 움직임이었다.

“꼭꼭 숨어라…….”

하지만 목소리는 그 몸짓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쇳조각이 서로 부딪히는 듯 거친 목소리가 저택 전체에 울려 퍼져 소름이 끼쳤다.

―삐걱, 삐걱.

녀석은 도망친 헌터들의 흔적을 쫓으려는 건지 주위를 둘러보다 복도 쪽으로 발을 들였다. 이대로 가다간 오래 버텨 봤자 5분 안에 발각되어 게이트의 위치가 또다시 바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내려 길을 비추는 자를 살폈다.

‘부엌?’

화살표가 방금까지 녀석이 엎어져 있던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숨을 참고 부엌 쪽으로 조심스레 이동하자 반지가 더욱 반응했고 난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을 유심히 살폈다.

정갈한 부엌 한구석에 놓여 있는 오븐의 문이 게이트로 바뀌어 있었다.

―텁.

망설임 없이 손잡이를 잡았다. 숨 막힐 정도로 무거운 적막이 이어지던 중, 문득 등골이 서늘해졌다.

“끼야아아악!!”

“큿!”

어느 틈에 녀석이 소리를 지르며 내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고막을 파고드는 괴성에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녀석이 지팡이를 높게 드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자아를 배트로 바꿔 양손으로 들었다.

―쾅!!

내려치는 공격을 막은 후 발로 녀석의 얄팍한 배를 찼다. 신사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난 틈을 타 다시 확성기 형태로 바꿔 방아쇠를 빠르게 당겼다.

“나가, 나가, 나가!”

녀석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민첩하게 탄환을 피했다. 녀석과의 거리가 또다시 가까워진 그때.

―쏴아아아.

물로 된 용이 입을 쩍 벌리더니 그대로 신사를 집어삼켰다. 폭포처럼 떨어진 수룡은 신사의 움직임을 묶어 두기에 충분했고, 난 그 자리에 서서 굳은 녀석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콰그작!

파열음과 함께 녀석의 머리가 통으로 날아갔다. 더 이상 반격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긴 했지만, 확인 사살을 위해 몇 발 더 박아 넣은 후 무기를 거뒀다.

“아, 두 분이 벌써 끝내셨군요!”

“다행히 금방 끝냈네요. 다음에도 이 작전으로 가죠!"

뒤늦게 도착한 헌터들이 머쓱한 듯 미소 짓자 지호 언니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나도 그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내 뒤에 있던 게이트를 열어 밖으로 나왔다.

―파지직.

“어?”

“오!”

게이트 밖에 발을 들이자마자 내 바로 옆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더니 그 안에서 반가운 얼굴이 튀어나왔다.

“알렌 씨!”

예상치 못한 만남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크게 질렀다.

그러자 함께 던전을 클리어했던 헌터들이 한마디씩 말을 얹기 시작했고, 나는 뒤를 돌아 알렌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영국 노블레스 길드원이에요. 혹시 괜찮다면 한 5분 정도만 시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예상 클리어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했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

아직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일까, 헌터들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감사를 표한 후 알렌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 글자도 못 알아듣겠네.’

알렌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며 잠깐 멈추라는 신호를 줬다. 인벤토리에서 통역기를 꺼내 귀에 꽂고 나서야 그가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들렸다.

“무사해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알렌 씨도요.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이에요?”

“지의 씨 생사 확인하라고 길드장님이 들들 볶았거든요. 그래서 던전들이 어느 정도 클리어되자마자 바로 확인하러 왔죠.”

‘레일리도 무사하구나.’

한껏 지친 투로 말하는 알렌의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놓였다.

“지금 유럽 쪽 상황은 어때요?”

“거의 다 해결됐다고 봐도 사실상 무방해요. 저희 쪽에 있는 저 시커먼 문은 이미 소멸했거든요.”

“지옥도가 사라졌어요?!”

“네!”

알렌이 싱긋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저희 지역은 대부분 상급 던전이다 보니까 초반엔 많이 힘들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소환되는 게이트의 수가 절반으로 줄었고, 그 후엔 소환이 끝났는지 아예 사라지더라고요. 피렌체 S급 던전 2개랑 알프스 S급 던전 1개만 처리하면 끝이에요.”

알렌은 신이 난 듯 이야기했지만 내 머릿속에선 한 가지 의문이 떠나가질 않았다.

‘아직 회귀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상태창은 뜨지 않은 건가?’

내가 있는 장소의 지옥도를 제거해야 그 상태창을 띄울 셈인지 뭔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제대로 된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지의 씨, 괜찮으세요?”

“…네. 아무튼 레일리한테는 저 괜찮으니까 자기 몸부터 조심하라고 해주세요.”

“아하하, 알겠어요. 그럼 전 다시 가 볼게요!”

―파지직.

알렌이 다시 웜홀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일단 지옥도가 사라지는 지역이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나는 몸을 돌려 헌터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나를 보며 곧장 게이트 손잡이를 잡았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문을 열었다.

* * *

―쿵.

아까보다 훨씬 빠르게 클리어했다. 운 좋게 게이트가 거실 장식장에 있던 덕분에 ‘신사’를 마주하기도 전에 녀석의 무적 상태를 깰 수 있었다.

네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녀석을 단번에 제압한 후 게이트 밖으로 나왔을 땐, 고작 12시간이 흘러 있었다.

“게이트 소멸 신고했어요. 전 먼저 가 보겠습니다!”

“네, 몸조심하세요!”

“지의야, 잘 가!”

헌터들을 향해 손을 흔든 후 곧바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휘잉.

그러자 저 멀리서 녹두가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언니! 차도윤 아까 출발했어! 바람 타고 가는 거 보니까 한 시간 안에 공사장에 도착할 것 같아.’

‘고마워. 우리도 이동하자.’

‘응!’

녹두의 등에 올라타 목을 끌어안자 녀석이 바람을 가르며 공사장 쪽으로 달려갔다.

―타닥.

한참을 달려 녹두가 공사장 바닥에 착지했다. 차도윤 헌터와의 전투 흔적이 공사장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 정도면 김강희도 크게 의심하지 않겠지.

나는 조율자가 준 목걸이를 손에 움켜쥔 채로 바닥에 엎어졌다.

“하아…….”

이대로 눈을 감으면 정말로 잠에 빠질 것 같아 볼 안쪽을 씹으며 겨우 졸음을 쫓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헌터들의 고성이 이어지기를 잠시,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됐는데.’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차도윤 헌터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일으킬지 말지 고민하는 동안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우웅.

잔뜩 긴장한 순간,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혹시라도 차도윤 헌터와 김강희가 올까 봐 누운 채로 핸드폰을 꺼냈고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하미준 헌…….”

―시, 신지의 헌터. 저예요.

“…차도윤 헌터?”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발신자를 다시 확인했다. 화면엔 ‘하미준 헌터’라는 다섯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차도윤 헌터가 어떻게 하미준 헌터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 거지?’

스피커를 통해 그의 목소리가 다시 나오자 나는 의문점을 잠시 치워둔 채 황급히 귓가로 가져왔다. 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회장님이… 경복궁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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