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99화 (299/366)

299화

―우우웅.

방아쇠를 길게 당기자 소리 파동이 공원 전체를 집어삼켰다. 공기가 진동하는 탓에 ‘파괴자의 의지’의 몸이 파르르 떨렸고, 녀석을 구성하는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럼에도 내게 다가오는 걸 멈추진 않았지만 아까보다 움직임이 확연히 느려진 것이 보였다.

‘일단 어떤 공격을 쓰는 녀석인지 확인해 볼까.’

지금까지 알아낸 것이라곤 녀석이 근접 전투에 매우 능하며 속도가 빠르다는 것뿐이다. 녀석이 다른 스킬을 갖고 있다면 최대한 빨리 그것을 알아내서 전투를 유리하게 끌고 가야만 한다.

―타닥.

방아쇠를 계속 당긴 채로 공중을 디뎠다. 녀석도 나를 따라 뛰어올랐지만 비행 스킬은 없는지 금방 땅으로 추락했다.

녀석과 한참 거리를 벌리고 나서 방아쇠에서 손을 뗐다.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파괴자의 의지가 자세를 고치더니 이내 나를 향해 빠르게 창을 던졌다.

꽤 위협적이긴 했지만 직선으로 날아오는 창은 몸을 숙여서 가볍게 피했다.

‘원거리 스킬도 따로 없나 보…….’

―촤아악.

그때였다. 내 뒤로 날아갔던 창이 물방울이 되어 흩어지더니 갑자기 날카로운 얼음 바늘이 되어 나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쳇……!”

빠르게 쉴드를 펼쳐 바늘들을 막았고, 날아온 방향으로 쉴드를 아예 던져 버렸다. 얼음은 산산조각 나 유리 부스러기처럼 반짝거리다 곧 사라졌다.

―쉬익.

그 틈에 녀석이 제 몸에서 또다시 창을 뽑아내 내게 날렸다. 날아간 창은 방금과 마찬가지로 바늘 형태로 분산되어 내 목을 노렸고 이번엔 위로 뛰어올라 그것들을 피했다.

“신지의 헌터! 앞!”

“헉……!”

―콰직!

위쪽으로 착지하자마자 끈적거리는 창이 눈앞까지 들이밀어졌다. 나를 엄호해 주던 헌터의 얼음 배리어가 창을 막아 줬기에 망정이지, 이게 없었다면 그대로 머리가 뚫렸을 것이다.

‘내가 이쪽으로 피할 걸 예상한 건가?’

나는 고개를 내려 녀석을 바라보았다. '파괴자의 의지―시간'의 몸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넘실거리고 있었지만 녀석의 고개는 정확히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녀석이 아무리 빨라도 방금 전의 공격은 내가 움직이기도 전에 창을 던져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까 녀석에게 멱살이 잡혀 바닥으로 끌어 내려졌을 때, 그리고 방금 던진 창. 녀석의 모든 공격이 꼭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행동하는 듯했다.

―탕, 탕, 탕.

생각에 잠기기도 잠시, 녀석이 또다시 창을 던질 자세를 취하자마자 자아의 방아쇠를 빠르게 당겼다. 마음 같아선 바주카나 박격포로 공격하고 싶었지만 녀석의 이동 속도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그런 묵직한 공격은 어려울 것 같았다.

‘일단 한 대라도 맞히는 게 먼저야.’

녀석의 붉은 핵을 조준한 채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기는 동안 녀석은 내 탄환을 피해 이리저리 공원을 뛰어다녔다. 녀석이 발을 뗄 때마다 투명한 점액이 보도블록 위에 떨어져 움직인 경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녀석이 반격하지 않고 한참 피하기만 하자 이동 패턴이 슬슬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 발자국을 가고 나서 무조건 방향 전환을 하는군.’

방향을 바꾸면 필연적으로 속도가 줄기 마련이다. 그럼 그 틈을 노려서 공격하면 녀석에게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일 수 있다. 눈으로 녀석의 움직임을 쫓으며 공격 타이밍을 속으로 쟀다.

―탕!

파괴자의 의지가 몸을 돌리는 그 순간 녀석이 이동할 방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녀석은 이미 방향을 바꾸고 첫발을 내딛기 직전이었고 몸을 굴려서 피하거나 막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파지직!

그리고 보기 좋게 내 탄환은 녀석의 핵을 맞혔다.

‘명중은 아닌가 보네.’

맞히긴 했지만 아쉽게도 핵을 완전히 깨트리진 못했다. 핵 주위에서 붉은 스파크가 일어나는 동안 녀석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고 그 틈에 나는 방아쇠를 몇 번 더 당겼다. 녀석이 정말로 내 행동을 예측했든 하지 않았든, 나는 내 방식대로 이 자식을 제거할 것이다.

―콰직.

녀석의 양 발목부터 부숴 놓았다. 파괴자의 의지는 그 자리에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고, 투명한 액체가 벽돌의 홈을 따라 멀리 퍼져 나갔다. 녀석이 멈칫거리는 틈을 타 마지막으로 머리를 조준했다.

“쳇.”

하지만 녀석이 목을 뒤로 꺾어 탄환을 피하곤 양손에 다시 창을 들었다. 나는 쉴드를 미리 뽑아 한 손에 든 채 다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우우웅.

‘두 번은 안 당하지.’

방아쇠를 길게 당겨 녀석의 움직임을 막았다. 공기가 아까보다 훨씬 강하게 진동하자 파괴자의 의지가 그대로 멈췄다. 녀석의 몸이 위협적이던 창까지 당장이라도 흩어질 것처럼 흔들리며 형체만 겨우 유지 중이었다.

지금이라면 녀석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힐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후웅.

쉴드를 단단히 쥔 후 녀석의 머리 위로 빠르게 하강했다. 녀석은 파동을 이겨내며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발로는 그저 꿈틀거리는 것밖엔 하지 못했다.

가속을 제대로 받아 내 쉴드가 녀석의 머리를 가르고 붉은 핵에 닿은 그 순간.

―파바박.

모든 감각이 마비되었다.

―끼긱, 끼기긱.

분명 녀석의 몸을 가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쉴드는 핵의 모서리에만 겨우 닿아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었고 팔에 힘을 줘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팔에 힘이 들어갔는지조차 느낄 수 없었다.

“컥…….”

머릿속의 의문은 곧 전신의 고통에 집어삼켜졌다. 몸에 힘이 완전히 풀려 자연스럽게 고개가 떨어지자 땅 위에 뿌려졌던 녀석의 점액이 전부 얼음 가시가 되어 나를 찔렀다는 걸 깨달았다.

―쿵.

얼음이 녹아 없어지는 동시에 내 몸도 땅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분명 떨어졌는데 아프지 않았다. 정말로 모든 신경이 끊어져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자꾸 멀어지려는 의식을 겨우 잡고 녀석을 노려보았다. 파괴자의 의지의 흐물거리는 얼굴이 나를 응시했다. 표정이 보일 리가 없는데 나를 비웃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치지직.

오른쪽 얼굴이 바닥에 눌린 탓에 자연스럽게 왼쪽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녀석의 정보가 눈앞에 떴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파괴자의 다섯 가지 의지 중 시간을 다루고자 하는 힘]

“제…기랄.”

‘시간을 다루고자 하는 힘’이라는 문장을 보자마자 지금까지의 녀석이 했던 모든 공격이 이해됐다.

‘미래를 볼 수 있었던 거야.’

‘생명을 다루고자 하는 힘’이었던 파괴자의 의지―생명은 체력이 가장 높은 개체, 다시 생각하면 생명과 관련된 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지금 내 눈앞의 이 녀석은 시간과 관련된 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미래를 보고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위협적인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거야.

파괴자의 의지는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붉은 핵 주위의 스파크가 당장이라도 내게 뻗어 나올 것처럼 튀고 있었다.

―쿵!

그때 나와 녀석 사이에 커다란 나무 방패가 떨어졌다. 동시에 내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곧 뒤로 쭉 빠졌고 금세 주위가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빨리 치료부터 해!”

“신지의 헌터, 정신 차리세요!”

나를 엄호해 주던 헌터들이었다. 목소리가 웅웅 울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내 몸을 치료하고 있다는 건 대충 알 수 있었다.

‘저 자식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상대가 누구든 전투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 아마 세빈이가 와도 이기기 힘들지도 모른다. ‘구원자의 가호 아래’의 효과를 받은 센이라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본에 있는 그를 지금 당장 불러올 순 없다.

이 시간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저 녀석을 이길 순…….

“아…….”

순간 누군가의 뒷모습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시간선에서 벗어나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말이다.

―탁.

인벤토리에서 힘겹게 핸드폰을 꺼내 헌터넷을 열었다. 손에 힘이 풀려 몇 번이고 엉뚱한 버튼을 눌렀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결국 통화 버튼을 누르는 데 성공했다. 이명 때문에 상대가 전화를 제대로 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화면에 통화 시간이 뜬 걸 확인하고 나서야 전화가 제대로 연결된 걸 알아차렸다.

“…여의, 윽. 컥!”

‘여의나루’라는 고작 그 네 글자를 말하는 게 힘이 들었다. 볼 안쪽에 피가 고였는지 입을 열 때마다 비릿한 액체가 튀어나왔고 폐는 누군가 쥐어짜듯이 욱신거렸다. 스틱스 강의 재사용 대기 시간에 이런 치명상을 입은 업보가 너무나 컸다.

[통화가 종료되었습니다]

눈치 빠른 사람이니 헌터넷에서 내 위치를 확인하고 올 것이다. 그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서 의식을 잃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우우웅.

이를 악물고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방어였다. 새하얀 소리의 파도가 공간에 널리 퍼져 파괴자의 의지에게도 닿았다. 녀석도 발목이 잘린 탓에 우리 쪽으로 다가올 순 없지만, 창을 던지는 건 가능할 테니, 그 행동을 반드시 막아야 했다.

[5%]

목소리의 충전량까지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파동 공격을 오래 이어간 탓에 목소리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고 아마 얼마 후면 녀석의 공격은 아까와 같은 속도가 될 것이다.

[3%]

‘이렇게 되는 것마저 저 녀석이 예상한 대로인 걸까.’

파괴자의 의지는 억지로 몸을 움직이거나 공격을 시도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렸다. 헌터들이 배리어와 쉴드를 펼치며 방어선을 구축하는데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1%]

이젠 정말로 도박이다. 헌터들이 만든 방어벽으로 녀석의 공격이 막아질 것인지, 아니면 내가 기다리던 그 사람이 먼저 도착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여기서 모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나는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0%]

―콰과과광!!

소리 파동이 더 이상 나오지 않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창을 던졌다. 수십 개의 방어벽을 뚫느라 속도는 많이 줄었지만 기세는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이런 X발……!”

“스킬 있는 대로 다 써요, 빨리!”

“으, 으아아악!”

몇몇 헌터들 사이에서 적나라한 욕설이 들리고 그나마 이성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든 힘을 쥐어 짜내 벽을 세웠다.

그렇게 마지막 방어벽이 뚫리고 끈적거리는 창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쾅!!

공간 전체를 찢는 듯한 거대한 굉음과 함께 피부 위로 열기가 쏟아졌다. 주위의 풍경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지만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왔구나.’

난 고개를 겨우 들어 시선을 위로 옮겼다. 그러자 내 시야의 한가운데, 온몸에 불을 두른 채 나를 내려다보는 시간의 이탈자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