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98화 (298/366)

298화

<창조와 파괴>

“부상자 당장 이동시켜요!”

“임슬아 헌터, 이쪽으로 합류하세요!”

게이트를 통해 빠져나온 몬스터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헌터들은 그것들에 대적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 김현석 헌터부터 치료소로 옮겨 주세요! 다음 공략 신호 올 때까지는 여기서 대기합시다!”

“알겠습니다……!”

곽소윤 헌터가 김현석 헌터를 업고 치료소 쪽으로 달려 나갔다. 난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로 주변 상황부터 살폈다.

사당역과 방배역 주변에 떨어진 게이트들은 대부분 B급이었다. C급까지는 상급 헌터 없이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었지만, 지금부터는 얘기가 조금 달랐다.

지금 현장에 있는 헌터들은 대부분 C급, 그리고 소수의 B급과 A급이다. 몬스터의 공격을 방어하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몰라도 녀석들을 없애려면 B급 이상의 헌터가 공격을 넣어 주어야 한다.

즉, 공격을 넣을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몬스터도 너무 많이 유출됐어.’

설상가상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몬스터들의 수가 헌터들보다 더 많았다. 이 근처 지역에 배치된 헌터들은 몬스터가 건물을 부수지 않도록 녀석들의 움직임을 묶는 데 열중했고, 공략팀과 상급 헌터들이 올 때까지 버티는 듯했다.

―타앙!

일단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부터 처리했다. 방배역으로 기어가는 연꽃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그것은 제법 날렵한 움직임으로 탄환을 피했다. 오히려 화를 돋운 듯 내 쪽으로 방향을 틀어 칼날 같은 잎사귀를 날려 보냈다.

―쨍그랑!

쉴드로 거대한 연잎을 막자 연잎은 속도를 잃고 바닥으로 추락해 산산조각이 났다. 연꽃의 몸에도 덩달아 큰 흠집이 생겼다.

“신지의 헌터, 이쪽도 부탁드립니다!”

“6, 6번 출구 근처 시립 미술관 앞도 급합니다!”

내가 공략을 끝냈다는 걸 알아챘는지 헌터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2인 1조로 나누어 몬스터들을 가로막고 있는 헌터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탁.

낮말을 듣는 새로 높은 곳에 올라선 채 자아를 밑으로 조준했다.

―우우웅.

방아쇠를 길게 당겨 소리 파도가 주변을 집어삼키게 두었다. 그러자 파도에 맞은 몬스터들이 일제히 공격을 멈췄고 그중 방어력이 높지 않은 몇몇 녀석들은 몸이 터져 나갔다.

“지금입니다, 다들 공격하세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모든 생명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자신감]

몬스터가 자신들을 공격할 수 없는 상태임을 인지하자 헌터들은 한결 긴장이 풀린 얼굴로 몬스터들을 향해 온갖 스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남은 건 다섯 마리 정도군…….’

―펑!

창원 B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만 바주카포로 한 발 맞혀 놓은 후, 다시 음파 공격을 이어갔다. 그리고 한 손으론 핸드폰을 꺼내 빠르게 헌터넷에 들어갔다. 파괴자의 의지에 대한 걸 한시라도 빨리 하미준 헌터에게 전달해야 하니까.

―어, 무슨 일이…….

“전에 없던 몬스터가 생겼어요. 몬스터의 이름은 ‘파괴자의 의지’, 총 다섯 개체예요. 그중 하나는 제가 없앴고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하미준’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약한 충격]

하미준 헌터가 전화를 받는 동시에 말을 쏟아내자 그의 반응이 곧바로 나타났다.

―등급은?

“측정 불가예요. 직접 싸워 보니까 적어도 A급 이상인 것 같아요.”

―제기랄. 어디서 만난 거야? 던전 안?

“보스 몬스터 대신 소환됐… 윽!”

―휘익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모를 석상 몬스터가 나를 향해 돌을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굴러 머리가 깨질 뻔한 건 겨우 면했고, 다행히 땅에 있던 헌터들이 녀석을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괜찮아, 신지의 헌터?

“네. 아무튼 제가 위치를 알고 있으니까 그 던전으로 들어가 녀석들을 해치울…….”

‘잠깐, 뭔가 이상한데?’

‘파괴자의 의지'는 분명 보스 몬스터 소환 장소에서 나타났다. 그걸 해치우고 던전 밖으로 나왔을 때 게이트가 무사히 사라진 걸 보면 보스 몬스터 대신에 녀석이 소환된 것은 확실하다.

[*파괴자의 의지가 둘 이상 모이면 새로운 개체가 탄생한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알려준 ‘파괴자의 의지’에 대한 정보는 이 상황과는 조금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둘 이상이 모이려면 한 던전 안에서 보스 몬스터가 적어도 둘 이상 소환되어야 하는데, 이는 던전의 규칙에서 벗어난다.

성춘향과 이몽룡도 각각 다른 개체처럼 보이지만 사실 ’연인‘이라는 하나의 보스 몬스터의 구성 요소다.

던전 내 보스 몬스터는 무조건 하나. 그 사실을 감안했을 때 ‘파괴자의 의지가 둘 이상 모이면’이라는 문장이 성립하려면 결론은 딱 한 가지다.

‘이 녀석들은 게이트 밖으로 나올 수 있어.’

―쿵,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강릉 A급 게이트 폭발 때 만났던 히든 몬스터처럼, 이 녀석들도 게이트 밖으로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둘 이상이 만날 일이 없다.

“파괴자의 의지들은 던전 밖으로 나올 수 있어요.”

―…뭐라고?

“강릉 A급 게이트 폭발 기억하시죠?”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하미준’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깨달음]

하미준 헌터도 히든 몬스터의 존재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파괴자의 의지는 두 개체가 모이면 새로운 개체로 탄생한다고 했어요. 녀석들이 보스 몬스터 대신 소환된 거라면 한 던전에서 둘 이상 나올 수 없으니까요.”

―…즉 녀석들이 던전 밖에서 만난다는 이야기군.

파괴자의 의지가 소환됐을 때 게이트 근처에 있던 김현석 헌터가 부상을 입은 것도 말이 된다. 던전 밖으로 나와 다른 개체들과 합쳐져야 하는데,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그가 방해돼서 그랬겠지.

―일단 신지의 헌터가 하는 말 알아들었어. 어디 못 가게 하고, 해치울 수 있으면 해치우라는 얘기지?

“네. 부탁드려요.”

―알겠어. 그럼 신지의 헌터는 파견팀에서 빼고 현장 관리를 맡아줘. 그 정체불명의 의지부터 없애주고.

“알겠어요.”

전화를 빠르게 끊고 추적의 나침반을 살펴보았다. 바늘이 10시 방향의 물방울 문양과 12시 방향 불꽃 문양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물방울 쪽이 조금 더 가까우려나.’

몬스터가 어느 정도 정리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 바늘이 물방울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타다닥.

한참 달리자 방송국 건물들과 함께 저 멀리 한강 공원이 보였다. 평화로웠던 풍경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저 참상에 휘말린 사람이 아무도 없길 바랄 뿐이었다.

―우우웅.

그때였다. 여의나루역 근처로 달려가자 나침반이 강하게 반응했다. 이 주위에 분명 파괴자의 의지가 있을 것이다.

“다들 대열 지켜!”

―퍼버벙!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폭발이 일었다. 소란의 중심엔 방어진을 펼친 헌터 무리가 게이트와 대치하고 있었다.

“저건……!”

그리고 그 게이트 앞엔 물로 빚은 인간이 있었다.

―투쾅!

생각하기도 전에 녀석의 바로 앞에 작살총을 발포했다. 방아쇠를 당겨 단번에 착지했고 흙먼지가 날려 녀석의 모습이 잠깐 사라졌다 금방 돌아왔다.

“시, 신지의 헌터?”

“뭐? 신지의 헌터라고?”

웅성거리는 헌터들을 뒤로한 채 왼쪽 눈으로 파괴자의 의지를 바라보았다.

[‘파괴자의 의지―시간’]

[파괴자의 다섯 가지 의지 중 시간을 다루고자 하는 힘]

[다섯 가지 의지 중 전투 능력이 가장 높다]

[*파괴자의 의지가 둘 이상 모이면 새로운 개체가 탄생한다*]

[*파괴자의 의지 전체 소멸 시 지옥도 생산력 대폭 하락]

‘아까는 생명, 이번엔 시간…….’

전투 능력이 가장 높다는 말 때문에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후두둑.

“욱…….”

파괴자의 의지가 한 걸음 나아가자 헌터 무리에서 누군가 역겹다는 듯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났다.

‘그럴 만한 생김새이긴 하네.’

녀석의 전신은 전부 물보다 끈적하고 투명한 액체로 이루어져 있어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점액질 같은 것이 죽 늘어났다. 몸 한가운데 핵처럼 보이는 붉은 보석까지 있어 경계 몬스터를 처음 본 것 같은 불쾌감이 느껴졌다.

녀석에게서 시선을 고정한 채 입만 열어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여러분, 이 몬스터는 히든 몬스터입니다. 지금쯤 비슷하게 생긴 녀석이 세 개 더 있을 거예요.”

“세, 세 개나요……?!”

“곧 헌터넷 공지가 나갈 겁니다. 그러니 제 방어 보조와 남은 게이트 관리를 부탁…….”

―쾅!

“큿……!”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파괴자의 의지가 달려들었다.

‘창?!’

급하게 자아를 배트로 바꿔 녀석의 공격을 막고 나서야 녀석이 제 몸과 똑같은 성질의 창을 들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분명 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팔에서 느껴지는 힘은 쇳덩이와 다름이 없었다.

―챙!

녀석이 팔에 힘을 주어 나를 밀어낸 후 곧바로 창을 던질 자세를 취했다.

―콰과광!!

간발의 차로 쉴드를 먼저 펼쳤지만 얼마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렸고 창은 내 어깨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근접전은 피해야겠어.’

완력으로는 승산이 없다. 녀석과 거리를 벌리면서 탄환으로 차근차근 피해를 입히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낮말을 듣는 새로 뛰어오르며 녀석을 향해 자아를 들었다.

“뭔……!”

―쾅!!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분명 몇 초 전만 해도 땅 위에 서 있던 녀석이 코앞까지 다가와 내 멱살을 움켜쥐었고 곧바로 땅에 처박았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드는 동시에 전신이 마비된 것처럼 찌릿했다.

―콰과광!!

시야가 돌아오기 전에 자아를 바주카로 바꿔, 마구잡이로 발포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주위를 경계했고, 누군가의 방어계 스킬이 나를 감싸고 있음을 알아챘다.

“신지의 헌터, 괜찮으신가요?!”

“괜찮습니다……! 계속 엄호해 주세요!”

나를 보호한 헌터를 향해 소리친 후 다시 파괴자의 의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보통 수준이 아니야.’

전투 능력이 가장 높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파괴자의 의지―시간’은 모든 신체 능력이 나보다 우수했고, 내가 녀석과 거리를 두려는 걸 눈치챈 것처럼 행동했다.

―철컥.

나는 자아를 고쳐 쥐며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이 녀석이 다른 개체와 만나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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