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콰드득.
온몸을 뒤덮은 덩굴과 꽃, 그리고 머리 대신 얹어진 화분. 인간 형태였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곳에 있을 존재는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원초적인 본능과 불안감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심장 소리 때문에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김현석 헌터는 어디 있는 거지?!’
그제야 김현석 헌터의 존재를 떠올렸다. 곧바로 시선을 돌려 게이트 주위를 살피자 화분 파편 밑에 깔린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콰그작!!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나는 정체불명의 몬스터를 작살을 날린 후 녀석을 내 쪽으로 끌어왔다. 다행히 내 무게보다 가벼웠는지 녀석은 내 쪽으로 질질 끌려왔다.
“저는 괜찮으니까 두 사람 다 김현석 헌터 상태부터 살펴 주세요! 그리고 본부에 신고해 주시고요!”
“아, 알겠습니다……!”
―쾅!
잠깐 말을 뱉는 사이에 녀석이 제 몸에 박힌 작살을 뽑아냈다. 뻥 뚫린 가슴 사이로 다시 식물이 자라나 금세 몸의 빈틈을 채웠다. 말없이 녀석과 대치하는 동안 나는 오른쪽 눈을 감았다.
[정보 없음]
‘제기랄.’
이번에도 어떤 녀석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잘만 작동하던 구원자의 눈동자가 비추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딱 한 가지일 것이다.
이 녀석이 이전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투쾅!
그때 녀석의 양손이 사마귀의 앞발처럼 변했다. 커다란 낫 형태의 팔을 높이 들고 내게 튀어왔고, 나는 뒤로 물러나 녀석과의 거리를 벌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공기가 진동하고 녀석의 움직임이 잠시 둔해졌다. 곧바로 자아를 바주카로 바꿔 녀석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발포했다.
“쳇.”
하지만 소리의 파도가 잠시 잦아든 그 틈을 타 녀석이 다시 빠르게 움직였고, 이번엔 땅 밑으로 손을 넣어 두꺼운 나무뿌리들을 뽑아냈다.
―콰드드득.
내 발 바로 앞에서 치솟은 뿌리는 온실 천장까지 높이 올라가더니 곧 내 쪽으로 맹렬하게 내리꽂혔다. 녀석은 바닥에 손을 처박은 채로 나를 한참 노리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직접 공격에 나섰다.
―쾅, 쾅, 쾅.
배트로 바꾼 자아와 녀석의 팔이 부딪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녀석은 왼팔과 오른팔을 번갈아 가며 묵직하게 휘둘렀고, 그 때문에 배트로 그 공격을 막을 때마다 팔이 덜덜 떨렸다.
―탕!!
녀석의 공격을 강하게 받아친 후 곧장 화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은 화분의 윗부분을 맞히며 공기로 흩어졌고, 그와 동시에 녀석의 몸이 뒤로 휘청거렸다.
“흡!”
―퍼버벙!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바주카로 바꾼 자아를 발포했다. 이번엔 녀석의 복부에 포탄이 제대로 박혔고 녀석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 바닥 위를 한참 굴렀다.
“하아, 하…….”
―치지직.
잠시 숨을 돌릴 때쯤 눈앞에 노이즈가 잔뜩 낀 상태창이 나타났다.
[이질■인 존재■이 갑자기 생■는 중이■]
[정체■ 우리가 밝■낼게]
[■단 저 ■석을 제거■]
‘나다……!’
이전 생의 ‘나’들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빠진 글자가 많았지만 그들이 저 몬스터의 정체를 밝혀내겠다는 뜻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드득.
사라지는 상태창 너머로 몬스터가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였다. 내 탄환으로 너덜너덜해진 녀석의 몸은 뒤틀린 관절을 제자리에 끼워 넣는 게 전부였다. 녀석은 이가 나간 낫 팔을 높이 들며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낮말을 듣는 새로 공중을 디디며 방아쇠를 당겼다. 다행히 비행 능력은 없는지 녀석은 땅에서 강하게 도움닫기를 한 후 팔을 휘두르기만 했다.
―탕, 탕, 탕.
녀석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 방아쇠를 당겼다. 녀석은 탄환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는가 싶더니 이내 다른 헌터 쪽으로 갑자기 경로를 틀었다.
“다들 조심하세요!”
―투웅.
화분 뒤쪽으로 몸을 숨긴 사람들을 향해 소리친 후 곧바로 쉴드를 뽑았다. 쉴드는 그들의 앞으로 날아가 우뚝 세워졌고 뒤이어 곽소윤 헌터와 최상식 헌터의 방패까지 겹겹이 서 두꺼운 벽을 만들었다.
―쾅!!
녀석이 강하게 몸을 부딪치자 두 사람의 방패가 순식간에 깨졌고 내 쉴드에도 커다란 금이 갔다. 두 사람의 스킬이 없었으면 분명히 쉴드도 쉽게 깨졌을 것 같아 등골이 서늘해졌다.
‘상황에 따라서 타깃을 바꾸는 걸 보면, 지능이 매우 낮은 건 아닐 거야.’
―콰그작.
몬스터가 쉴드를 부수려고 양팔을 높게 든 순간 작살총을 날렸다. 작살이 커다란 팔을 관통하자마자 녀석을 내 쪽으로 끌고 왔다. 녀석은 작살에 달린 끈을 끊어 놓으려 발버둥을 쳤지만, 어느새 뭉툭해진 팔로는 역부족이었다.
땅 위로 빠르게 착지해 녀석과 거리를 좁힌 후 작살총을 다시 바주카로 바꿨다.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틈을 타 녀석이 나를 공격하려 했지만 이미 포구가 녀석의 머리를 향한 후였다.
―퍼버벙!!
몸이 뒤로 밀릴 정도의 폭발이 일었다. 반동 때문에 넘어질 뻔했지만 다리에 힘을 주고 중심을 잡았다.
“으윽…….”
작살총으로 녀석의 몸을 잡아당기다 어깨라도 빠진 건지 왼쪽 어깨가 비정상적으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혼자서 대충 관절을 맞추며 바닥에 널브러진 녀석을 바라보았다.
화분 머리는 이미 산산조각이 난 채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고 줄기로 엮인 몸은 탄환 때문에 군데군데 뻥 뚫려 있었다. 뻥 뚫린 틈으로 피 대신 물이 울컥거리며 흘러나왔다. 이따금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는 걸 보니 질기게도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치지직.
[‘파괴자의 의지―생명’]
[파괴자의 다섯 가지 의지 중 생명을 다루고자 하는 힘]
[다섯 가지 의지 중 체력이 가장 높다]
[*파괴자의 의지가 둘 이상 모이면 새로운 개체가 탄생한다*]
[*파괴자의 의지 전체 소멸 시 지옥도 생산력 대폭 하락]
마침 ‘나’들이 정보 수집을 끝낸 건지 구원자의 눈동자로 보기도 전에 녀석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아쉽게도 녀석이 어떤 공격을 쓰는지는 알아내지 못한 것 같지만, 이 녀석을 없애면 지옥도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나마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파괴자라…….’
그나저나 저 ‘파괴자’의 존재가 가장 신경 쓰였다. 의지가 다섯 개로 나누어져 있는 점이나, 각 의지에게 이름이 붙어 있는 점이 창조자의 파편과 왠지 모르게 닮아 있어 불쾌감이 가시질 않았다.
만약 그 파괴자가 김강희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그는 도대체…….
―투쾅!
파괴자의 의지는 내가 잠깐 생각할 틈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다시 한번 달려든 녀석은 눈으로도 겨우 쫓아갈 만큼의 속도로 나를 몰아세웠다.
“큭……!”
녀석의 팔이 내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허공을 갈랐다. 중심이 뒤로 쏠리자 파괴자의 의지가 이번엔 다리를 들어 올려 내 옆구리를 노렸다.
―푹!
녀석의 발끝이 내게 닿기 전에 단도로 바꾼 자아를 녀석의 발목에 내리꽂았다. 파괴자의 의지는 주춤했지만 곧바로 날붙이가 달린 팔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쉴드를 들어 녀석의 연속 공격을 막아냈다. 왼쪽에서 오른쪽, 아래에서 위, 그리고 찌르기. 일정한 패턴으로 이어지는 공격에 서서히 몸이 적응되었다. 녀석이 찌르기 공격을 위해 팔을 뒤로 뺀 그 순간.
―끼기기긱!
자아로 소리 배트를 뽑아 녀석의 팔과 부딪혔다. 그사이에 자아는 박격포로 조립되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녀석의 가슴팍 한가운데를 향해 포구가 움직였다. 녀석은 그제야 내가 미끼였다는 걸 눈치채곤 도망가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콰과광!!
새하얀 포탄이 정확히 녀석의 심장에 박혔기 때문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커다란 굉음과 함께 형체를 이루고 있던 식물 줄기들이 무력하게 뜯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꽃잎과 몸에 맺혀 있던 이슬들이 사방으로 튀어 기묘한 풍경을 만들어 냈다. 전후 맥락을 모르고 봤다면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파괴자의 의지―생명’은 생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 치곤 무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녀석이 남긴 거라곤 풀잎 몇 장뿐이었다.
“신지의 헌터! 괜찮으신가요?!”
“괜찮……! 윽!”
큰소리로 대답하려 배에 힘을 준 순간, 이번엔 갈비뼈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부상도 남기고 갔군.’
아까 근접전을 치르다 생긴 상처 같았다. 애써 고통을 이겨내며 헌터들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발을 옮겼다.
―딱!
“악!”
그때 갑자기 누군가 머리를 쥐어박은 것 같은 묵직한 통증이 뒤통수에서 느껴졌다. 몬스터일까 싶어 자아를 들며 뒤로 몸을 돌리자 내 반응이 머쓱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어?’
아니, 자세히 보니 바닥에 금으로 된 원형 장식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자아를 집어넣고 그것을 들자 아이템 획득 창이 빠르게 나타났다.
[아이템 획득]
[추적 나침반]
[귀속자 ‘신지의’]
[파괴자의 의지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따’]
게이트의 위치를 알려주는 아이템인 ‘길을 비추는 자’와 상당히 비슷한 아이템이었다.
‘근데 저 오탈자는 대체…….’
―치지직.
[아이템 획득]
[추적 나침반]
[귀속자 ‘신지의’]
[파괴자의 의지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다]
‘수정 중이었구나.’
과거의 ‘나’들이 일부러 나를 위해 이 아이템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들이 수정한 설명창을 한 번 더 읽은 후 나침반을 살폈다.
평범하게 생긴 나침반이지만 자세히 보니 동서남북 대신 다섯 개의 문양이 테두리를 따라 그려져 있었고, 바늘 역시 화살표 모양이었다.
[파■자의 의지와 가까■■면 나침■이 반응■ 거야]
[조심■. 둘 이■이 모이■ 엄청난 존재■ 되■ 버리니■]
‘나’들은 걱정 어린 말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나는 나침반을 손에 꽉 쥔 채 다시 헌터들을 향해 나아갔다.
“클리어했습니다. 얼른 나가죠.”
“알겠습니다. 김현석 헌터,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김현석 헌터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겨우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렸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 같아.’
김현석 헌터의 머리와 얼굴이 피범벅이었다. 자신의 스킬로 고비는 넘긴 듯했지만, 아직 지혈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지 목덜미가 여전히 피로 흥건했다.
―끼이익.
“…젠장할.”
게이트를 열고 나서자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암울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