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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296화 (296/366)
  • 296화

    ―쿵.

    모두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게이트가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양재 B급 던전은 거대한 온실 내부처럼 보였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예상대로 사방이 꽃과 식물로 가득했다.

    바닥엔 화분과 분재들이 한가득 있었고 정원 도구도 곳곳에 놓여 있었다. 천장을 뒤덮은 덩굴 식물들의 틈으로 햇살이 들어와 이 공간의 분위기를 더욱 은은하게 만들었다.

    “꽃향기가 장난 아니네요…….”

    “머리가 아플 정도네.”

    헌터들이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긴장을 풀었다.

    ‘자기 등급보다 높은 던전에 들어왔으니 떨릴 수밖에 없겠지.’

    지옥도라는 미지의 공포를 이겨내려는 시도처럼 보여서 어딘가 모르게 처절함이 느껴졌다. 말은 가볍게 했지만, 무기를 쥔 자세와 주변 사물들을 꼼꼼하게 훑는 시선은 그들이 당장이라도 싸울 준비가 되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일반 몬스터는 덩굴, 나무뿌리들이에요. 기습을 주로 할 테니 중간 보스 몬스터 만날 때까지 조심하면서 갑시다.”

    “네!”

    “중간 보스 몬스터는 인간형인데, 이건 제가 가서 설명드릴게요.”

    헌터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공략법을 줄줄 읊으니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쉬이익.

    그때 옆쪽에서 맹렬한 속도로 무언가 기어 나왔다. 쌓인 화분의 틈에서 긴 나무뿌리가 우리 전체를 휘감을 것처럼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탕!!

    신체 면적이 넓으니 역시 타격할 수 있는 부위도 컸다. 조준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바로 방아쇠를 당겼는데, 탄환이 뿌리에 정확히 맞고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B급이라서 꽤 버티는군.’

    확실히 C급과는 차이가 있었다. 제 기능을 못 할 정도로 부서지긴 했지만 단번에 소멸하진 않았다.

    ―탕, 탕, 탕!

    일단 다가오는 녀석들을 향해 전부 탄환을 날린 후 방아쇠를 길게 당겨 음파로 한 번에 제거했다. 풀이 짓이겨질 때 나는 냄새가 온실 내부를 가득 채웠다.

    몬스터들을 한 차례 정리한 후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서서히 길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방어계인 최상식 헌터가 기다렸다는 듯 내 앞으로 발을 옮겼다.

    “한 사람씩 가야 할 것 같으니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곽소윤 헌터도 맨 뒤에 서주시고 김현석 헌터는 제 뒤로 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맨 앞과 뒤는 방어계 헌터를 배치, 그리고 가운데엔 공격계와 치유계. 길이 좁아졌을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석적인 대열이다.

    ―우우웅

    방아쇠를 미리 당긴 채로 좁은 길을 헤치고 나아갔다. 음파가 멀리 퍼져 한껏 우거진 식물들을 가볍게 흔들었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다 보니 헌터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주변의 변화에 온 감각을 곤두세우는 듯했다.

    “신지의 헌터! 뒤!”

    ―두두두두.

    곽소윤 헌터가 소리치자마자 큰 진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 진동이 시작되는 곳을 확인하자 커다란 해바라기가 우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저런 몬스터가 있었나?!’

    ―탕!

    녀석이 우릴 덮치기 전에 방아쇠부터 당겼다. 머리를 정확히 맞히자 녀석의 몸이 뒤로 넘어갔고 꿈틀거리며 다시 일어나려고 하기에 탄환 몇 개를 더 날려 녀석의 몸을 완전히 터트려 놓았다.

    마지막 발악을 하듯 해바라기 씨가 총알처럼 날아왔다.

    “뒤로 물러나세……!”

    ―쨍그랑!

    곽소윤 헌터가 얼음벽을 세운 그 순간, 해바라기 씨가 너무나 쉽게 벽을 뚫고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쳇……!”

    ―콰과광!

    두 사람을 밀어내고 가장 뒤에 서 곧바로 쉴드를 뽑았다. 다행히 씨가 내 미간을 뚫기 전에 쉴드가 그것들을 막았다. 오히려 쉴드의 단단함을 이기지 못한 해바라기 씨가 먼지처럼 부서질 뿐이었다.

    “다들 괜찮으신가요?!”

    “네, 네……!”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특히 눈앞에서 자신의 스킬이 파훼되는 것을 본 곽소윤 헌터는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아무리 등급 차이가 있다고 해도 B급 몬스터의 공격으로 C급 헌터의 스킬을 이렇게 쉽게 뚫을 수는 없다. 저 얼음벽을 깨트리더라도 어느 정도의 교착 상태는 벌어졌어야 한다.

    난 쉴드 너머로 보이는 해바라기의 잔해를 바라보며 오른쪽 눈을 감았다.

    [정보 없음 / 고급 부산물]

    ‘정보 없음?’

    ―지지직.

    글씨에 커다란 노이즈가 생겼다. 마치 저 해바라기가 이 던전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 주듯이 말이다.

    “시, 신지의 헌터… 저런 몬스터가 양재 B급 던전에 있었나요……?”

    “…아니요, 없었습니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모든 생명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불안]

    거짓말로 안심시킬 순 없다. 저 몬스터가 양재 B급 던전에, 아니 그 어떤 던전에도 없는 몬스터라는 건 DG 허브를 잠깐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니까.

    나는 자아를 거두며 헌터들에게 말했다.

    “지금처럼 게이트가 불안정할 땐 이상한 몬스터가 나오기도 합니다.”

    “으…….”

    “제가 책임지고 제거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모든 생명체가 동요한다.]

    동요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하자 헌터들은 조용히 눈치만 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발언 결과 : 수용]

    다행히 아직 이성을 놓는 사람은 없었다. 벌써부터 그런 사람들이 나오면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이 상황은 영 좋지 않은 신호다.

    김강희가 던전을 자유자재로 불러오는 것이 가능하다 보니, 던전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상 현상들이 전부 그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의심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어떠한 형태로든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던전을 제 맘대로 주무르고 있을 것이다.

    곽소윤 헌터 대신 내가 후방을 맡은 채 길을 따라 나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간 보스 포인트에 도착했다. 화분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터, 이곳에서 중간 보스 몬스터인 정원사를 쓰러트려야 한다.

    “곧 중간 보스가 나올 거예요. 수풀에서 튀어나오는 덩굴들 조심하시고… 아, 정원사가 쓰는 물 호스 공격도 주의하세요.”

    ―쿠구궁.

    내가 설명을 마치자마자 수풀 깊은 곳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3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키와 거대한 몸집, 그리고 양손에 가득 든 정원 관리 도구들.

    중간 보스 몬스터, ‘정원사’다.

    ―쾅!!

    파악을 끝내자마자 녀석이 들고 있던 모종삽으로 우리가 서 있던 곳을 내리쳤다. 헌터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녀석과 거리를 뒀다.

    그리고 약속한 것처럼 곽소윤 헌터는 치유의 김현석 헌터 쪽으로, 최상식 헌터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구원자의 무기 창고.’

    ―철컹.

    시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자아를 바주카로 바꿔 양손에 들었고 최상식 헌터의 방패에 몸을 숨긴 채 ‘정원사’를 향해 포구를 옮겼다.

    ―펑!

    묵직한 울림과 함께 소리 포탄이 허공을 갈랐다. 정원사는 육중한 몸을 움직여 잽싸게 포탄을 피했고 아까보다 더욱 위협적인 자세로 도구를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녀석의 모종삽이 화분에 닿을 때마다 도자기 깨지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신지의 헌터 발 조심하세요!”

    ―콰직

    곽소윤 헌터가 경고와 함께 불로 만든 방패를 내 바로 앞에 떨어트렸다. 그 덕에 뱀처럼 기어와 내 발목을 노리던 덩굴 하나가 바닥에 박혀 꿈틀대고 있었다. 방패를 들어 올리며 끈질기게 나를 공격하려는 덩굴을 탄환으로 찢은 후 다시 ‘정원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쳇……!”

    ―콰과광!!

    녀석의 손에 총 모양 물 호스가 들려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세기의 물줄기가 나와 최상식 헌터를 향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폭포처럼 쏟아진 물줄기는 바닥을 뚫다 못해 지대 전체를 주저앉게 만들어 제법 큰 웅덩이를 만들었다.

    녀석이 호스를 집어넣는 틈을 타 방아쇠를 당겼다. 정원사가 뒤늦게 공격을 알아채고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녀석의 복부를 정확히 관통한 후였다.

    ―퍼버벙!

    결국 녀석의 몸은 풍선 부풀 듯 터졌고 흙더미가 사방으로 튀었다.

    “신지의 헌터, 이쪽으로 오세요!”

    “감사합니다.”

    최상식 헌터가 만들어준 방패 뒤에 서서 머리와 몸을 보호하며 흙이 완전히 소멸하길 기다렸다.

    ‘B급 맞아?’

    그때 자아가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내 공격 한 번에 완전히 나가떨어질 정도면 A급 이상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방금 봤던 물 호스 공격은 B급 몬스터의 파괴력을 훨씬 넘긴 수준이었다.

    ‘이 던전만 이런 거면 그나마 괜찮은데…’

    ‘다른 던전이 그대로일 보장이 없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자아가 해주었다. 흙 세례가 잦아들자 최상식 헌터가 스킬을 거뒀다.

    어딘가에 숨어 있던 곽소윤 헌터와 김현석 헌터도 나를 보고 살짝 웃으며 다가왔다.

    “다들 다친 곳 없으시죠?”

    “한 번에 처리돼서 다행이네요! 역시 신지의 헌터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다들 괜찮으시면 바로 이동해도 될까요?”

    내가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대답한 후 되묻자 다들 아까보다 편안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실력을 믿어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다른 던전의 상태가 신경 쓰여서 적당한 인사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스락.

    길을 비추는 자가 가리키는 대로 이동할수록 풀과 흙냄새가 진동했다. 게이트를 찾아가는 경로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여전히 길이 좁은 탓에 기습을 계속해서 경계해야만 했다.

    ―탕, 탕!

    몇 번의 습격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소리가 들린 곳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게 어느 순간 익숙해졌다고 느꼈을 때쯤 햇살이 내리쬐는 넓은 공간이 우리를 반겼다.

    “아, 저기 안쪽에 있네요!”

    김현석 헌터가 화분이 수북이 쌓인 곳을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화분 뒤쪽으로 우리가 열고 들어온 게이트가 숨겨져 있었다.

    ‘게이트를 건드리고 다시 복귀하기까지 좀 시간이 걸리겠네.’

    게이트와 몬스터 추정 장소의 거리를 대충 계산한 후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보스 몬스터는 대형 화분이에요. 이 몬스터도 빠르게 해결할 테니까 아까 중간 보스 몬스터 때처럼 움직여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문에 손대는 건 김현석 헌터한 부탁드릴게요. 아무래도 그게 안전할 것 같아서요.”

    “네. 그럼 지금 바로 갈게요!”

    김현석 헌터는 고개를 끄덕인 후 게이트 쪽으로 달려갔다. 두 방어계 헌터가 각자 공격 태세를 취하는 동안 나는 자아를 미리 박격포로 바꿔놓은 후 소환 장소 근처에 포구를 돌려놓았다.

    “준비되셨죠?”

    “네! 시작해 주세요!”

    멀리서 들리는 김현석 헌터의 목소리에 크게 답한 후 보스 몬스터가 소환되길 기다렸다.

    ‘…왜 아무런 반응이 없지?’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몬스터가 소환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전혀 엉뚱한 곳에 소환됐다고 하더라도 녀석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 큰 소리가 들렸어야만 한다. 곽소윤 헌터와 최상식 헌터가 나와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을 때쯤.

    ―콰과광!

    김현석 헌터가 있는 게이트 주위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화분이 깨지고 흙먼지가 일어 순식간에 시야가 차단됐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매캐한 공기가 폐에 스몄다.

    “콜록, 컥……! 김현석, 헌터! 괜찮아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섬뜩한 기분에 자아를 다시 확성기로 바꿔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우우웅.

    공기가 진동해 흙먼지가 단번에 사라졌다. 엉망진창이 된 게이트 주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저게 대체 뭐야……?”

    바닥을 굴러다니는 화분 잔해와 흙더미의 한가운데, 인간 형태의 식물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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