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95화 (295/366)
  • 295화

    ―우웅.

    [긴급] 공략 재개 안내

    공략을 재개합니다. 공략팀으로 배정된 헌터분들은 지금 바로 던전에 입장해 주시길 바랍니다.

    차도윤 헌터가 하늬바람으로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을 무렵 헌터넷 알림이 울렸다. 대충 지도를 확인하니 A급 이상의 상급 헌터는 던전 밖에서 대기해, 다음 페이즈를 준비하는 듯했다.

    “그나저나 헌터넷에서 위치 정보를 지운 건 김강희가 시킨 건가요?”

    “네. 좀 무식한 방법이긴 했죠.”

    그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보여 주었다.

    ‘진짜 무식한 방법이네…….’

    차도윤 헌터의 손엔 산산조각 난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내부 부품이 훤히 드러나 있어 핸드폰보다는 고철 덩어리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넣는 동안 나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세 사람까지 살려 준다고 했죠? 저하고 또 누구 데려갈 생각이었어요?”

    “강세빈 헌터와 한진우 헌터요.”

    가족을 데려가지 않을 거란 건 당연히 예상했지만 그 두 사람을 데려갈 생각일 줄은 몰랐다.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자 차도윤 헌터가 말을 덧붙였다.

    “한진우 헌터는 치유계 스킬 때문에 데려오려고 했죠. 그리고 강세빈 헌터는…….”

    “강세빈 헌터는?”

    말을 하다 말길래 끝말을 따라 했더니 차도윤 헌터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적으로 만들면 큰일 날 것 같아서요.”

    “아…….”

    합리적인 이유이긴 하다. 강한 사람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아무래도 생존 확률을 높이기 좋을 테니까 말이다.

    ‘근데 머리는 왜 염색한 거지.’

    속성 전염으로 인해 그의 머리카락은 원래 금색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차도윤 헌터는 금색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건지 차도윤 헌터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앞머리를 정리했다.

    “저인 걸 숨기려고 그랬어요.”

    “그것도 김강희가 시킨 거예요?”

    “네. 아무래도 원래 머리 색은 눈에 띄니까요.”

    뭐, 김강희의 작전은 어느 정도 통한 것이나 마찬가지긴 하다. 처음 그를 발견했을 땐 정말로 민간인인 줄 알았으니까. 부끄러워하는 것 같으니 머리에 대한 건 그만 물어봐야겠다.

    차도윤 헌터가 나를 공격했던 이유와 김강희의 속셈까지 알았으니 이제 제일 필요한 정보는 하나밖에 없다.

    “김강희는 지금 어디 있어요?”

    “마지막으로 만난 건 석촌호수 근처였어요. 지금은 어디 계신지 잘 모르겠네요…….”

    그는 눈을 내리깐 채로 잠시 생각에 잠기다 곧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퍼뜩 들었다.

    “일단 한 사람이라도 포섭하는 데 성공하면 경복궁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했었어요.”

    “경복궁이요?”

    “네. 아무래도 배리어 겔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그곳을 거점으로 삼은 게 아닌가 싶어요.”

    “일리 있네요.”

    웬만한 건물엔 배리어 겔이 설치된 상황이다. 배리어가 한번 생성되면 외부의 공격을 막아주긴 하지만, 그렇다는 건 결국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는 걸 말한다.

    유적지는 훼손 문제 때문에 일부 문화재에 한해서만 설치가 이루어졌는데 경복궁은 그 대상이 아니었다. 건물 안에 갇히지 않으면서 본부 근처에서 우리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을 테니, 그가 경복궁에 있는 것도 조금 이해가 갔다.

    “차도윤 헌터.”

    “다시는 김강희 편으로 안 돌아설 거죠?”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차도윤’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억울]

    차도윤 헌터가 사색이 된 채로 눈을 크게 떴다.

    “당연하죠! 비, 비록 제가 못미더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 알겠어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

    “그냥?!”

    ‘진짠가 보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떠봤더니 물어본 게 미안할 정도로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뭐, 나로선 잘된 일이다. 잔뜩 성이 난 차도윤 헌터를 겨우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차도윤 헌터가 이중 스파이 역할을 해 주세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차도윤’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문]

    고개를 갸웃거리는 차도윤 헌터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마지막 페이즈가 어느 정도 진행됐을 때쯤에 김강희가 게이트 몇 개를 더 풀 거예요.”

    “S급인가요?”

    “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거예요.”

    그 게이트들은 난생처음 보는 것들도 몇 개 있었다. 그가 게이트를 꺼내기 전에 제거하든, 아니면 그 힘을 쓸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네 번째 페이즈가 끝나기 직전에 김강희를 이 공터로 데려오세요. 그전까지는 김강희 몰래 거리로 빠져나온 몬스터들을 처리해 주시고요.”

    “스킬을 보면 다른 헌터들이 저인 줄 알 텐데, 회장님께서 눈치채지 않을까요?”

    “다른 헌터들은 애초에 차도윤 헌터가 사라진 줄도 몰랐어요. 저랑 하미준 헌터, 그리고 일부 직원들만 아는 사실이었거든요.”

    차도윤 헌터는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헌터들이 차도윤 헌터가 나타났다는 걸 인지해도 그 사실이 김강희의 귀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다들 눈앞의 몬스터를 잡기 급급할 테니까.”

    “그렇겠네요.”

    ―쿵, 쿵, 쿵.

    그때 지옥도에서 또다시 게이트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세 번째 페이즈가 시작되었다는 뜻이었다. 차도윤 헌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긴장한 듯한 옆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일단 가 볼게요. 네 번째 페이즈 시작 전에 한 번 더 이쪽으로 올 테니까 그때까지 몸조심하세요.”

    “신지의 헌터도요.”

    차도윤 헌터를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공사장 위쪽으로 날아올랐다. 지옥도는 이번 페이즈에 할당된 게이트를 전부 다 쏟아냈는지 검은 스파크만 내뿜으며 조용해졌다.

    ‘일단 하미준 헌터한테 알려 줘야겠지.’

    나는 곧바로 헌터넷 화면을 몇 번 두드려 하미준 헌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세 번쯤 울리고 나서야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공략팀 구성하느라 바쁠 테니까 간단하게 이야기할게요.”

    ―오케이. 5분 안에 끝내줘.

    “차도윤 헌터 찾았어요.”

    ―뭐, 뭐?!

    “서초역 근처 공사장에 있었어요. 김강희가 차도윤 헌터를 회유시켰고 저희 내부에 균열을 일으키려고 했더라고요.”

    ―그 양반도 참 가지가지 하시는군.

    ―쾅!!

    하미준 헌터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자마자 어디선가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이미 한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커다란 거미 형태의 몬스터로 보아 강릉 B급 게이트가 떨어진 듯했다.

    ―탕, 탕, 탕.

    녀석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동시에 하미준 헌터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아무튼 지금은 제가 잘 설득했어요. 차도윤 헌터도 다신 김강희 편을 들지 않겠다고 약속했고요.”

    ―다행이네. 그래서 지금은 어디 있어?

    “공사장 주변에 있을 거예요. 김강희가 눈치채면 안 되니까 전면으로 공략에 나서는 대신에 도시로 나온 몬스터들을 처리하기로 했어요.”

    ―콰그작!

    거리를 기어 다니는 거대한 거미들을 전부 해치우자 밑에 있던 헌터들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난 그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운 후 몬스터가 나타난 곳이 없는지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알겠어. 위치 추적이 안 되는 게 좀 불편하지만 그냥 믿고 싸워야겠군.

    “아, 그리고 김강희는 지금 경복궁에 있는 것 같아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하미준’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놀라움]

    생각보다 자신이 있는 위치와 가까워서일까, 하미준 헌터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건 진짜 예상 못 했네.

    “김강희는 마지막 페이즈가 시작할 때쯤에 S급 이상의 게이트를 가져올 거예요. 그 전에 차도윤 헌터가 그를 찾아가서 공사장으로 유인할 거고요.”

    ―그럼 거기서 회장님을 제거할 거야?

    하미준 헌터가 속삭이듯이 말을 뱉자 이번엔 내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를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게이트 생성을 막는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김강희가 이 일을 벌인 목적과 그의 힘을 알아내지 못한 채로 죽이는 건 왠지 모르게 찝찝했다.

    “…그건 조금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존중할게.

    하미준 헌터는 낮게 웃다 곧 말을 덧붙였다.

    ―신지의 헌터가 누구보다 많은 일을 겪었으니, 우리 공주님 판단을 믿어야지.

    김강희의 끝을 죽음으로 맺겠다는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그 과정을 허무하게 보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대답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이제 슬슬 끊어야 할 것 같네. 곧 공략 안내 나갈 거니까 대기하고 있어.

    “알겠어요.”

    전화를 끊은 후 하늘에 떠 있는 지옥도를 올려다보았다. 검은 스파크 때문에 위협적으로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데군데 깨진 곳과 자잘한 실금이 많았다. 창조자의 파편이 없어 견고함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우웅.

    그때 핸드폰이 울렸고 화면엔 예상했다시피 공략 안내가 떠 있었다.

    [공략] 신지의(SS) 대전 B급 게이트 1건, 양재 B급 게이트 1건

    사당역 근처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던전의 등급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바로 공략팀으로 배정이 되었다. 사당역 쪽으로 달려가는 동안 지도를 살피자 헌터들이 신고한 게이트들이 하나둘씩 화면에 나타나고 있었다.

    ‘지방도 아직까진 잘 관리되고 있군.'

    A급 헌터들을 미리 보내놓은 보람이 있었다. 초기 진압을 잘 시킨 덕에 두 번째 페이즈까지는 큰 피해 없이 잘 버텨주는 듯했다.

    ―타닥.

    사당역 앞에 착지해 게이트가 감지된 곳으로 달려갔다. 부서진 버스 정류장들을 지나 번화가 안으로 발을 들이자 꽃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게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양재 B급 게이트였다.

    “아, 오셨군요!”

    헌터 세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동시에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로 빠르게 훑었다.

    ‘방어계 C급 둘에 치유계 D급 하나…….’

    내게 모든 공격을 맡긴 조합이다. B급부터는 몬스터의 수준이 확연히 올라가니 최대한 빠르고 확실하게 몬스터들의 숨통을 끊는 데 집중해야겠다

    나는 게이트의 손잡이를 잡은 채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공략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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