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94화 (294/366)

294화

―끼기기긱.

차도윤 헌터의 화살이 내 다리를 꿰뚫는 것보다 내가 쉴드를 펼치는 게 더 빨랐다.

―휘이잉.

화살은 내 쉴드에 커다란 금을 낸 후 바람이 되어 흩어졌다. 화살 하나가 사라진 것만으로 엄청난 바람이 불었고 난 쉴드를 버리며 뒤로 물러났다.

“차도윤 헌터, 잠깐 얘기 좀 해요!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파바바박.

차도윤 헌터는 아무런 말 없이 활시위를 다시 한번 당겼고 초록색 화살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살들은 땅을 움푹 파이게 만든 후 그대로 사라졌다. 단 1초라도 늦게 피했다면 저 화살들은 내 몸에 박혔을 것이다.

‘화살 속도가 평소보다 좀 느리지 않나?’

원래 속도라면 내가 피하기 전에 이미 화살들이 바닥에 꽂혔어야 했다. 회피는커녕, 쉴드로 막는 게 고작이었겠지.

하지만 차도윤 헌터의 공격은 어딘가 모르게 허술했고, 그 이후로 발사한 화살도 전부 팔이나 다리 근처로 날아왔다.

“말로 해요, 말로! 진정해 보라고요!”

그에게 고래고래 소리치며 말을 걸어봐도 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그저 텅 빈 눈으로 내게 스킬을 쏟아낼 뿐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의 머리카락과 함께 눈에 맺혀 있던 눈물이 흔들려 허공을 떠다녔다.

‘일단 눕히고 생각하는 수밖에……!’

―우우웅.

방아쇠를 꾹 당겼다. 새하얀 음파가 공사장 전체로 퍼져나가고 차도윤 헌터까지 집어삼켰다. 그는 크게 휘청거리더니 곧 활에 의지해 겨우 똑바로 섰고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콰광!

바람이 갑자기 소용돌이치며 나를 쫓았고 난 자아를 바주카로 바꿔 그 바람을 향해 발포했다. 완전히 소멸시킬 순 없었지만 아까보다 한껏 기세가 죽었다.

차도윤 헌터는 다시 시위를 당겨 나를 조준했다. 바람 화살이 그의 손을 떠나자마자 화살은 초록빛 궤적을 남기며 나를 향해 날아오다 곧 수십 개로 갈라졌다.

“쳇……!”

―콰과광!

화살이 사방에서 날아온 탓에 결국 쉴드로 막지 못했던 아킬레스건에 화살이 스쳤다. 욱신거리는 고통에 얼굴이 반사적으로 찌푸려졌다. 그는 활을 잠시 내려놓더니 내게 겨우 들릴만한 크기로 중얼거렸다.

“저를 따라오셔야 한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일단 대화로……! 윽!”

―휘이잉.

돌풍이 내 몸을 집어삼켜 또다시 허공으로 띄웠다.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풍경에 속이 울렁거렸지만,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오히려 힘을 주었다. 바람은 금방 흩어졌고 나는 공중에 안정적으로 착지해 차도윤 헌터를 다시 조준했다.

―탕, 탕, 탕.

당연히 그는 쉽게 맞아주지 않았다. 잽싸게 몸을 굴러 탄환들을 피한 후 이따금 나를 향해 시위를 당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새 흰색과 초록색의 궤적이 허공을 빼곡하게 수놓은 상태가 되었다.

‘이래선 끝이 없겠군.’

차도윤 헌터와 나는 둘 다 원거리 전문 공격계다. 충분한 거리만 확보되어 있으면 안정적으로 공격을 퍼부을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의 움직임을 묶어 놓았을 때의 얘기다.

즉, 지금처럼 공격을 주고받고 회피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이 교착 상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그와의 거리를 좁혀 이 전투를 근거리 전투로 바꾸는 것이다.

―콰그작!

차도윤 헌터의 바로 앞에 작살총을 발사했다. 작살이 바닥에 제대로 박히자마자 방아쇠를 당겨 순식간에 그의 바로 앞으로 이동했다. 차도윤 헌터와 가까워질수록 그의 눈이 서서히 커다래졌다.

―뻐억.

“윽!”

차도윤 헌터가 시위를 당기기 전에 내 무릎이 그의 갈비뼈를 강타했다. 그의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지자마자 내가 멱살을 잡아 다시 상체를 들게 했다.

“정신 차려요! 차도윤 헌터를 따라가야 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이거 놔요……!”

―후우웅.

묵직한 바람이 나를 밀쳐내는 바람에 나는 보기 좋게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대로 굴러 몸을 다시 일으킨 후 차도윤 헌터에게로 달려갔다.

―쾅!!

차도윤 헌터의 활과 배트로 바꾼 자아가 맞부딪쳤다. 그는 시위를 당기는 대신 양손으로 활을 꽉 움켜쥔 채 나를 서서히 밀어냈다.

‘역시, 날 죽일 생각은 없나 보네.’

내가 눈앞에 있음에도 시위를 당기지 않는 것, 그리고 일부러 느리게 시전하는 스킬. 내 목숨이 목적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저를 따라와야… 그래야 당신이…….”

차도윤 헌터는 나를 제압해서 어딘가로 데려갈 생각인 것이다. 그 행선지는 알 수 없지만 어렴풋이 그곳에 김강희가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쾅!!

그때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이 버거울 정도로 강한 바람에 결국 내 몸은 다시 공사장 벽을 향해 날아갔다.

“그래야 당신이 산다고요!”

여전히 조심스러운 공격이지만 아까보단 확실히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화살은 불과 몇 분 전에 비해 훨씬 빨라졌고 이따금 아슬아슬하게 옆구리를 스쳤다.

―쾅, 쾅.

쉴드로 화살을 겨우 막아내며 다시 그를 향해 달려갔다. 근거리에서 싸우면 차도윤 헌터보단 내가 더 유리할 테니까.

“차도윤 헌터를 따라가면 제가 산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이 종말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한테 협조 좀 하세요, 제발!”

―콰과광!!

‘거의 다 왔는데……!’

그의 멱살을 잡아채기 직전 사방으로 폭풍이 일었다. 폭풍에 휘말려 몸이 붕 떴고 제대로 중심을 잡기도 전에 초록빛 세 개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지익.

“큿!”

화살 하나가 종아리를 제법 깊게 스치고 지나갔다. 화살이 지나간 부분이 타는 듯이 욱신거렸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공중에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빛을 잃은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자 그의 괴로움이 전해지는 듯했다.

‘자아야, 조금 더 세게 가도 될 것 같아.’

‘알겠어.’

차도윤 헌터가 조금 다치더라도 그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엇나가게 두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우우웅.

방아쇠를 당기자 아까보다 공기가 더 강하게 진동했다.

“읏, 큭……!”

차도윤 헌터가 활을 놓치고 한 손으로 머리를 싸맸다.

―후웅.

휘청거리는 와중에도 나를 향해 천재지변을 일으켰지만, 전혀 엉뚱한 곳에 작은 폭풍이 생기다 사라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쿵.

결국 차도윤 헌터가 몸을 뒤흔드는 감각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내려와 그의 머리 바로 앞에 섰다.

―드르륵.

그리고는 주위에 있던 활을 발로 차 멀리 보내버렸다. 그러자 커다란 활이 아스팔트 위를 가볍게 미끄러져 나갔다. 그제야 차도윤 헌터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나는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살짝 떼며 입을 열었다.

“종말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

“김강희가 그렇게 말한 거죠?”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차도윤’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착잡]

그는 침묵했다.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내 질문에 대한 답이 긍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달그락.

나는 자아에서 손을 완전히 떼고 그의 앞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차도윤 헌터의 얼굴에 서서히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나를 공격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말없이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전부 다 털어놔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망설이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탄환 창을 살폈다.

[사출 가능 탄환]

<자각> 표적이 자각하게 만든다.

김강희가 악인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할 만큼 차도윤 헌터는 멍청하지 않다. 김강희를 믿고 싶은 마음이 그의 눈을 가렸을 뿐이다.

―치지직.

내가 자아를 쥐자 차도윤 헌터의 이마에 새하얀 표식이 생겼다. 그는 자아와 나를 번갈아 보다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탕!

[자각의 탄환 사출]

[표적 : 각성자 ‘차도윤’]

그리고 그 틈을 타 방아쇠를 당기자 자각의 탄환이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하하, 하하하…….”

그가 허탈한 듯 작게 웃었다. 결국 김강희가 썩은 동앗줄이라는 걸 인정한 것처럼 보였다. 어느새 뜬 눈은 아까보다 총기가 돌았지만, 눈물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두 달 전쯤,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뭐라고 하던가요?”

“자신이 세상을 무너트릴 건데, 제가 데려온 세 명만큼은 확실하게 살려 주겠다고요…….”

“…김강희가 그런 제안을 했다고요?”

차도윤 헌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머리 좀 썼군.’

자신이 다루기 쉬운 차도윤 헌터를 공략해 헌터들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킬 셈이었다. 적어도 S급들 중에선 이 제안에 흔들릴 사람은 없겠지만 차도윤 헌터가 마음먹고 공격한다면 우리 중 한 사람 정도는 물리적으로 제압해 김강희 앞으로 데려가는 데 성공했을 수도 있다.

“신지의 헌터의 말을 믿었는데도, 회장님의 말을 거스르는 게 힘들었어요.”

“…이해해요.”

“그리고 신지의 헌터를 살리고 싶었어요.”

차도윤 헌터는 눈을 벅벅 닦으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는 나와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기가 죽어 있었고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전 신지의 헌터에게 목숨을 몇 번이고 빚졌으니까. 만에 하나 신지의 헌터가 종말을 막는 데 실패했을 때 목숨만이라도 건질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

“저는 또 잘못된 선택을 한 거네요. 순진하게 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차도윤 헌터 잘못 아니에요.”

그는 제 모친에게 살해당할 뻔한 일을 떠올린 듯했다. 작게 떨리는 그의 어깨가 안쓰러워서 쉽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나는 그저 차도윤 헌터의 머릿속이 정리될 때까지, 내가 쏜 자각의 탄환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질문 하나만 해도 되나요.”

“하세요.”

“신지의 헌터가 살아온 모든 삶 중에서, 회장님께서 저를 진심으로 아끼신 적이 있었나요?”

물기 어린 시선이 나를 응시했다. 버림받은 고양이 같은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지만 지금 필요한 건 그가 미련을 가지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그게 차도윤 헌터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내도 말이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입술을 뗐다.

“제가 기억하는 한 없습니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차도윤’이 동요한다.]

“김강희는 당신의 신뢰를 이용해 당신을 여러번 살해했으니까요.”

[발언 결과 : 절망]

차도윤 헌터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거운 진실에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짝.

오히려 양손으로 제 뺨을 내리치며 마음을 다잡는 듯했다. 그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이제 바보 같은 짓은 안 할게요.”

“좋아요.”

―바스락.

그가 먼저 일어나더니 내게 손을 뻗었다. 무슨 동맹이라도 맺는 듯한 제스처에 잠깐 웃음이 터졌지만 이내 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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