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92화 (292/366)

292화

―쿵, 쿵, 쿵.

쉴드로 이몽룡의 검을 막았다. 녀석은 지치지도 않는지 궤도를 바꿔가며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결국 내 중심이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자마자 녀석의 검이 내 볼 바로 옆을 스쳤다.

“큿!”

―탕!

녀석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탄환은 쉴드를 부수며 녀석의 이마를 뚫었고, 부서진 쉴드 조각들은 녀석의 두루마기를 마구 찢어 놓았다.

“흡!”

―콰앙!!

이몽룡이 주춤한 틈을 타 자아를 바주카로 바꿔 발포했다. 탄환이 녀석을 밀어내는 동시에 복부를 파고들었고, 녀석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신지의 헌터! 와 주셨군요!”

“두 분 다 괜찮으신가요?”

“전 괜찮은데 권기윤 헌터의 부상이 좀 심각해요…….”

뒤를 흘긋 돌아 방금까지 이몽룡과 전투를 치르던 공격계 헌터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목 부근을 움켜쥔 채 숨을 겨우 몰아쉬고 있었다.

“성춘향은 쓰러트리신 거죠?”

“네. 처치했더니 곧바로 이몽룡이 폭주하는 바람에… 이렇게 됐네요.”

‘이몽룡의 상태를 보고 어렴풋이 추측하긴 했는데, 진짜로 그랬군.’

나는 오른쪽 눈을 감고 그들의 상태창을 빠르게 살폈다. A급 공격계와 B급 보조계 헌터였다. 저 A급 헌터가 혼자서 S급 몬스터 둘을 상대하고, 심지어 한쪽은 쓰러트리기까지 했으니 그가 살아남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쾅!

그때 쓰러져 있던 이몽룡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검을 양손으로 쥔 채 검은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또 그 스킬을 쓰려고 그러는구나……!’

폭주한 이몽룡의 필살기, '일도양단'이었다. 나는 곧바로 쉴드를 두껍게 뽑아내 헌터들의 앞에 세운 후 보조계 헌터를 향해 빠르게 말을 뱉었다.

“혹시 모르니까 방어계 스킬 있는 대로 다 써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기를 모으는 이몽룡을 향해 자아를 던졌고 자아는 허공에서 박격포로 조립되기 시작했다. 포구가 정확히 이몽룡의 머리를 향한 그 순간.

―콰과과광!!

간발의 차로 이몽룡의 ‘일도양단’보다 박격포가 먼저 발포되었다. 녀석의 검기는 우리에게 닿지 못한 채 허공으로 날아갔고 동시에 이몽룡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바닥에 차곡히 내려앉았다.

“후…….”

일단 이걸로 큰불은 껐다. 사람들 비명이 조금 줄어든 걸 보니 일반 몬스터 정리 작업도 어느 정도 끝난 모양이었다.

―쿠구궁!

그렇게 한숨 돌리려던 그때, 갑자기 위쪽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등골이 서늘해져 곧장 고개를 들자 방금 이몽룡의 검기가 날아간 방향의 가로등이 맹렬한 속도로 헌터들을 향해 넘어지고 있었다.

‘젠장할……!’

자아로 맞힐 시간이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문 채 그들을 향해 달려갔고 몸을 날리다시피 두 사람의 위로 엎어졌다.

―쾅!!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했다. 고통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데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물속에서 소리를 듣는 양 먹먹한 말소리만이 귓가에서 웅웅거릴 뿐이었다.

<업적>

[생명의 은인]

[본인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구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업적]

[업적 효과 : 누군가를 대신하여 물리적 공격, 또는 상태 이상에 걸릴 때 절대 사망하지 않는다. 단, 고통은 느껴진다.]

새하얗게 물들었던 시야가 서서히 돌아오고 눈앞에 뜬 상태창이 또렷하게 보일 때쯤 복부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허억, 헉……! 윽!”

“시, 시, 신지의 헌터!!”

이몽룡의 공격으로 이미 가로등의 윗부분이 날아간 탓에 가로등의 끝은 창처럼 날카롭게 잘린 상태였다.

다시 말해서 나는 단순히 가로등에 깔린 것이 아니라, 그 가로등에 꿰뚫린 것이었다.

‘어떡하지? 일단 뽑아야 하나? 생명의 은인 때문에 죽진 않을 텐데. 지금 바로 스틱스 강을 써도 되나?'

고통 때문에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숨을 쉴 때마다 눈앞의 풍경이 빙글빙글 돌았다.

―철컥.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아를 잡아 가로등에 딱 붙였다.

‘정신 놓으면 죽는다. 가로등을 없애자마자 바로 스틱스 강을 쓰는 거야.’

속으로 3부터 숫자를 거꾸로 세어가며 타이밍을 쟀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상태로 방아쇠를 당겼다.

―파사삭.

“아아악!!”

다시 한번 눈앞이 새하얘졌다. 순간적으로 모든 감각으로부터 정신이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에서 내게 마구잡이로 경고 신호를 보냈다.

‘스틱스 강……!’

―우득.

“컥!”

뼈가 제자리를 찾고 몸에 피가 도는 기분이 들었다. 점멸하던 시야도 다시 돌아와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도감에 숨을 길게 내쉬자 잔뜩 긴장했던 근육이 순식간에 풀어졌는지 오히려 온몸이 쑤셔왔다.

―후웅.

고통이 완전히 가실 때까지 멍하니 하늘을 보고 누워 있자 세빈이와 최민 헌터의 얼굴이 갑자기 시야에 들어왔다.

“지의야…….”

먼저 입을 연 쪽은 세빈이었다. 세빈이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내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자, 잠깐! 손대지 마.”

“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강세빈’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충격]

내 말을 들은 세빈이가 몸을 흠칫 떨며 손을 거두더니 이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오해했나 보네…….’

누가 손대면 더 욱신거릴 것 같아서 급하게 이야기한 건데, 세빈이는 다른 의미로 이해했는지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긴장이 좀 풀린 상태라 그래. 누가 만지면 아플 것 같아서.”

“그, 그런 거였구나.”

세빈이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풀이 죽은 눈치였다. 그때 최민 헌터가 내 옆에 쪼그려 앉아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네. 권기윤 헌터가 성춘향을 먼저 쓰러트려 주셨고, 이몽룡이 폭주한 상태였어요.”

최민 헌터의 말에 대답해 주며 상체부터 천천히 일으켰다. 잠깐 숨을 돌린 것일 뿐인데 아까보다는 좀 괜찮아진 것 같았다.

‘피 한 번 살벌하게 흘렸네.’

내가 쓰러졌던 바닥에 피가 웅덩이 수준으로 고여 있었다. 하지만 아이테르의 로브는 먼지가 살짝 붙은 걸 제외하곤 평소와 다름없이 새하얬다.

“그럼 신지의 헌터는 몬스터와 싸우다 부상을 입은 겁니까?”

“아니요… 이몽룡은 쉽게 잡으셨는데 녀석이 날뛰다 가로등을 부쉈거든요. 신지의 헌터께서 저희를 보호하다가 그 가로등이…….”

보조계 헌터가 울먹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가지지 않아도 되는 죄책감을 느끼는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텁.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가 잔뜩 눈시울을 붉힌 채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요. 저도 방어구를 믿고 벌인 행동이었거든요. 이제 멀쩡해요.”

“그래도 몸이 완전히 뚫렸었잖아요…….”

“…그 정도였습니까?”

이번엔 최민 헌터의 시선이 따가웠다. 주제를 환기시키지 않으면 걱정 어린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우웅, 우웅.

마침 업무용 핸드폰이 울렸다. 재빠르게 인벤토리에서 꺼내자 화면엔 하미준 헌터의 이름이 떠 있었다.

“네, 무슨 일이에요?”

[혹시 그쪽으로 차도윤 헌터 갔어?]

“차도윤 헌터요?”

주위를 둘러봐도 그의 금색 머리카락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최민 헌터와 세빈이에게도 시선을 보냈지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니요. 여기 없어요.”

[하아… 골치 아프게 됐는데.]

“왜 그래요?”

하미준 헌터가 뜸을 들일수록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헌터넷에서 차도윤 헌터의 위치 정보가 갑자기 사라졌어.]

“…전화는요?”

[전원은 켜져 있는데 안 받아. 일부러 끊는 것 같아.]

하미준 헌터는 혀를 차더니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헌터들이 경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이상 위치가 전부 떠야 정상이거든? 아니, 경계에 들어가더라도 마지막 위치는 볼 수 있으니까 사실상 안 보일 수가 없는 시스템이야.]

“그런데 차도윤 헌터는 완전히 사라졌다는 거죠?”

[그래.]

안 좋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동안 봐왔던 차도윤 헌터는 지옥도 상황에서 꽤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모친에게 당해 심하게 다쳤을 때를 제외하곤 나보다 오래 생존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자취를 감춘 건 너무나 이례적인 일이다.

[일단 이건 내가 더 조사해 볼게. 신지의 헌터는 남은 S급 게이트를 먼저 공략해 줘.]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인벤토리에 핸드폰을 던지다시피 넣었다. 아직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어 손이 덜덜 떨렸다. 최민 헌터와 세빈이를 흘긋 본 후 입을 열었다.

“…다시 공략하러 가요.”

“알겠습니다.”

몸을 단번에 일으켜 게이트 쪽으로 발을 옮겼다. 두 사람도 어느새 내 양옆에 서서 나를 따라왔다.

“몸은 좀 괜찮아졌어? 스틱스강이 완전 치유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건 아닐 텐데…….”

“괜찮아. 정말로.”

―끼익.

게이트를 연 채로 세빈이를 향해 돌아보았다. 괜찮지 않다는 말을 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세빈이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후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였다.

* * *

―퍼버벙!!

최민 헌터의 불꽃이 자객 떼를 집어삼켰다. ‘돌격’ 특성이 활성화된 덕에 모든 자객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고 그동안 나는 바주카로 녀석들을 향해 포탄을 날렸다.

‘얼추 정리된 것 같네.’

딱 한 번의 자객 떼가 덮쳐오면 이 지긋지긋한 디펜스전이 끝난다. 나는 고개륻 들어 최민 헌터에게 신호를 줬고, 그러자 그가 소환된 자객 틈을 파고들어 그대로 세빈이 쪽으로 몰아왔다.

세빈이의 특성을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자객들 중 가장 처음에 있던 녀석이 세빈이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세빈아, 지금이야!”

―콰그작!

내 외침이 끝나자마자 커다란 그림자가 녀석들의 사지를 비틀었다.

―콰아아앙!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와 마찬가지로 자객들의 몸이 터졌다. 초가집 앞은 가루가 된 자객들의 몸이 안개처럼 흩뿌려지고 있었다.

“욱…….”

내가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는 걸 내 몸이 귀신같이 알아챘다. 속이 뒤집힐 것 같은 감각에 곧바로 ‘구원자의 가호 아래’를 끄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최민 헌터의 눈까진 속일 순 없었는지 그가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른 갑시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최민 헌터는 고개를 돌리며 보스전 장소로 먼저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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