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90화 (290/366)

290화

‘왜 이게 지금 나타난 거지?’

지금 시점에서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는, 그리고 나타나서도 안 되는 게이트다. 두 번째 페이즈에서 제일 높은 등급이라고 해 봤자 B급이 끝이었는데 두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남원 S급 게이트였다.

―타다닥.

패닉이 됐던 정신을 다잡고 일단 게이트 신고부터 했다. 등급과 게이트 종류를 입력하자 지도에 곧바로 표시되었고 몇몇 헌터 아이콘들이 방향을 바꿔 내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아직까지 다른 지역에서 S급 게이트가 발견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남원 S급 게이트인 게 문제예요.”

남원 S급 게이트는 중간에 디펜스 전이 껴 있다. 일반 몬스터들을 전부 뛰어넘고 보스전으로 바로 돌입할 수 없는 던전이라 조금도 쉬지 않고 달린다고 한들 클리어하는 데 던전 밖 시간으로 적어도 3일은 걸릴 것이다.

그런 던전이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나 생겼으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웅웅.

그때 헌터넷 화면 상단에 붉은 글씨로 공지가 나타났다.

[긴급] 하미준(S) 헌터 통솔권 임시 위임 안내

김강희 협회장의 뜻에 따라 현재 재난 상황 (게이트 경보 5단계)에 대한 헌터 통솔권을 하미준(S)에게 임시 위임합니다.

헌터넷을 통해 던전 공략 지시가 안내될 예정입니다.

헌터 여러분들의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협회 직원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나 보다. 하미준 헌터는 존재하지도 않는 김강희의 뜻에 따라 그의 권한을 건네받았고 모든 헌터들을 마음대로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웅웅.

핸드폰이 한 번 더 울렸다. 지도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헌터 아이콘이 어느새 게이트 아이콘과 점선으로 연결되었다. 딱 봐도 그들이 공략해야 하는 던전을 나눠놓은 것이다.

S급 게이트에 대한 공략팀은 아직 고민하고 있는 건지 아무런 표시가 뜨지 않았다.

“저희 먼저 공략 시작하겠습니다!”

“네, 네…….”

헌터들이 D급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이는 동안 나는 남원 S급 게이트에 시선을 고정했다. 두 게이트는 우리가 먼저 들어오길 기다리는 듯 굳게 닫혀 있었다.

한쪽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다른 한쪽이 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석적인 공략은 불가능하다. 체력과 안전을 포기하고 오직 공격에만 집중한 토벌이 지금 상황에선 더 적합하겠지.

그러기 위해선 넓은 범위로 공격할 수 있는 헌터, 아니면 파괴력 자체가 압도적으로 높은 헌터가 필요하다.

‘공략팀은 정해져 있군.’

머릿속으로 내가 아는 헌터들의 얼굴을 떠올린 후, 하미준 헌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남원 S급 게이트는 저, 최민 헌터, 그리고 세빈이 이렇게 셋이서 공략하겠습니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하미준’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긍]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최민’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지]

내 옆에 있던 최민 헌터가 고개를 내려 나와 눈을 맞췄다. ‘의지’라는 발언 결과에 맞게, 그의 눈빛엔 묘한 비장함이 담겨 있었다.

―하나 공략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이틀 안으로 해결해 볼게요.”

―근거는?

“제 시야에 들어온 헌터들을 강화할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A급 보스 몬스터를 페이즈 스킵을 시킬 정도로 성능이 좋으니까 셋이서 들어가면 금방 끝낼 수 있을 겁니다.”

업적에 대해 말하자 핸드폰 너머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최민 헌터도 이 이야기는 처음 듣는 터라 눈을 살짝 크게 뜬 채로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성능 확실하네. 아직 다른 지역은 S급 게이트가 나타나지 않은 것 같으니까 그렇게 셋이 공략해.

―우웅.

귓가에서 핸드폰을 떼고 헌터넷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하미준 헌터가 바로 게이트를 배정했는지 지도 위에 남원 S급 게이트 아이콘과 내 헌터 아이콘이 동시에 깜박거렸고, 화면 상단엔 ‘지금 바로 이동해 주세요. (남원 S급)’라는 문장이 가로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게이트 주위로 방어계 헌터들 대기 시킬게. 혹시라도 몬스터 유출되면 큰일이니까.

“알겠어요. 세빈이만 합류하면 공략 바로 시작할게요.”

―다치지 말고, 무사히 잘 다녀와.

걱정 어린 말에 대답한 후 핸드폰을 다시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그러자 이번엔 최민 헌터가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헌터들을 강화할 수 힘이라는 건 대체 뭡니까?”

“사명 달성 보상이에요. 공격력, 방어력, 기동력… 뭐, 이런 걸 상승시킬 수 있고요.”

그는 놀랍다는 듯 또다시 눈을 크게 떴다.

‘생각난 김에 한번 봐야겠네.’

업적 창을 열어 최민 헌터를 눈에 담았다.

[업적 적용 가능 생명체]

[최민]

[공격력]

[방어력]

[기동력]

[체력]

[특성 ‘돌격’ : 활성화 시 방어력이 대폭 상승하며 적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특성 ‘암살’과 상성이 좋다.]

S급 방어계 헌터들의 특징인 건지 최민 헌터 역시 레일리와 마찬가지로 '돌격' 특성을 갖고 있었다. 최민 헌터의 기동력과 방어력을 이용해 몬스터들의 주의를 집중시킨 후 세빈이와 내가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면 큰 문제 없이 금방 정리될 것이다.

“지의야!”

그때 허공에서 세빈이가 나타나더니 땅을 향해 뻗은 그림자 위로 미끄러지듯 착지했다. 최민 헌터와도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받은 후 곧바로 내 몸을 이곳저곳 살폈다.

“다친 덴 없는 것 같네.”

“멀쩡해. 빨리 들어가자. 최민 헌터도 준비되셨죠?”

“준비됐습니다.”

조금의 시간도 지체할 수 없었다. 난 곧바로 남원 S급 게이트의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호남의 남원이라 하는 고을이 옛날 대방국이었다!”

던전의 입장을 알리는 소리꾼의 목소리와 주위에서 벌어지는 이몽룡과 방자의 대화를 무시한 채 던전의 안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최민 헌터한테는 미리 설명했는데, 나한테 각성자들을 강화하는 힘이 있어. 그걸로 너랑 최민 헌터 모두 강화하고 공략할 거야.”

“강화? 보조계 스킬 같은 거야?”

“대충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줘.”

―탕!

시장을 통과할 때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몬스터가 내게 쪼르르 달려왔다. 난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너……!”

“두 번은 안 당하지.”

녀석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녀석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손이 몸을 갈기갈기 찢어 그 시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최민 헌터, 아마 몬스터들의 시선이 최민 헌터에게 끌릴 거예요. 비행 스킬을 가진 몬스터는 없으니 공중에서 주의를 조금 끌어주시면 저랑 세빈이가 협동해서 공격할게요.”

“알겠습니다.”

최민 헌터의 방어력과 기동력을 올린 후 특성까지 활성화했다. 그리곤 세빈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업적 창을 열었다.

[특성 ‘몰살’ : 활성화 시 공격력이 대폭 상승한다. 특정 대상에게 스킬로 피해를 입힌 후 다시 스킬을 시전할 시 해당 대상의 신체를 폭발시킨다.]

[*해당 특성을 활성화할 시 각성자 ‘신지의’의 체력이 대폭 하락합니다.]

‘생각보다 많이 살벌한데.’

센의 ‘조화’만큼이나 좋은 특성임에는 틀림없지만, '몰살'은 상대의 목숨을 반드시 끊어 놓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조금 섬뜩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얼른 가자.”

특성은 디펜스전 때 활성화해야겠다. 세빈이의 공격력만 최대로 올려놓은 후 빠르게 출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 * *

“하아, 하…….”

드디어 디펜스 포인트, 이몽룡과 성춘향이 함께 있는 초가집이 나타났다. 자잘한 전투를 끝내며 쉬지 않고 달려오니 숨이 턱 끝까지 찼다. 물로 빠르게 목을 축인 후 최민 헌터와 세빈이를 흘긋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진행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두두두두.

초가집에 손을 대자 검은 자객들이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최민 헌터는 작전대로 공중으로 날아오른 상태로 그것들을 바라보았고, 나와 세빈이는 무기를 고쳐 들며 전투 준비를 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지.”

소리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자마자 최민 헌터가 양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퍼버버벙!!

그러자 시퍼런 불꽃 기둥이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왔다. 폭발에 휘말리지 않은 자객들이 나와 세빈이를 지나쳐 최민 헌터 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지옥 불 그 자체가 된 최민 헌터를 붙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서걱.

오히려 세빈이의 그림자에 붙잡혀 단칼에 반 토막이 났다.

‘구원자의 무기 창고.’

음파 공격으로 녀석들의 움직임을 순간 멈춘 후 곧바로 바주카로 바꿔 들었다.

―퍼버벙!!

좌에서 우로 차례로 포탄을 날려 보내자 파도처럼 밀려오던 자객 떼가 순식간에 소멸했다. 꽤 많은 수의 몬스터를 처리했는데도 아직 디펜스전을 끝내기엔 녀석들의 수가 한참 남았다는 것이 징글징글했다.

‘아무래도 지금이 세빈이의 특성을 활용할 때네.’

세빈이를 흘긋 바라보자 곧바로 내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세빈아 이번에 몬스터들이 몰려오면 일단 달그림자로 최대한 많은 수를 묶어줘.”

“응, 알겠어. 그리고?”

“확실하게 제압했다 싶을 때, 스킬을 다시 한번 써.”

“그럼 어떻게 되는데?”

“몬스터가 전부 폭발할 거야.”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강세빈’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놀라움]

세빈이가 눈을 잠깐 크게 뜨다 곧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알겠어. 그럼 뒤처리를 부탁할게.”

“고마워.”

부드럽게 미소 짓는 세빈이를 뒤로 한 채 이번엔 최민 헌터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최민 헌터, 몬스터를 몰고 나서 최대한 거리를 벌려 주세요! 폭발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투쾅!

그는 불꽃 궤적을 남기며 자객 떼 위를 날아다녔고, 이에 약이 오른 녀석들은 그의 뒤를 맹렬하게 뒤쫓았다. 불씨가 튀어 자신의 몸에 불이 붙어도 최민 헌터를 향해 달려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불나방처럼 최민 헌터를 쫓는 자객들이 거의 하나로 뭉치자마자 나는 세빈이의 특성을 활성화했다.

“세빈아!”

―콰드득.

그와 동시에 녀석들의 그림자에서 수십, 아니 수백 개의 손이 튀어나왔다. 손은 자객들의 모든 관절을 움켜쥐어 녀석들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고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한참 울려 퍼졌다.

그리고 세빈이의 눈이 서늘하게 빛난 그 순간.

―퍼버버벙!

“…허.”

자객들의 몸이 종이짝처럼 터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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