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79화 (279/366)
  • 279화

    2악장은 첼로의 묵직한 선율로 시작됐다. 음악가는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린 채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고, 그동안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펑, 펑.

    ‘그래도 안 움직이니까 편하네.’

    방어력이 끔찍하게 높긴 했지만, 음악가가 공격을 피할 생각도 없는 녀석이라 그 점 하나는 다행이었다. 녀석을 향해 바주카를 여러 번 발포했고 그럴 때마다 몸이 진동해 전신이 조금씩 저려 왔다.

    [피아노 협주곡 1번 ‘비탄’의 2악장 ‘좌절’은 비탄의 음악가가 꿈을 좌절당했을 때 느낀 감정을 표현한 곡입니다.]

    [끝이 없는 비난의 구렁텅이 속에 빠지는 듯한 기분이었죠.]

    [불투명하다 못해 캄캄해진 미래, 사람들의 손가락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초래한 자신에 후회가 담겨 있습니다.]

    [현재 체력 : 258,993]

    체력이 미세하게 줄고 있었다. 아직 음악가로부터의 별다른 공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덜그럭.

    “쳇.”

    목소리가 전부 소진됐는지 바주카가 묵묵부답이었다. 확성기 형태로 바꿔 목소리를 주입하는 동안 재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1악장에서 우리를 끈질기게 쫓았던 음표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는 1악장 때보다 작은 소리로 연주를 이어갈 뿐이었다.

    ―쉬이익.

    그때 관객석에서 무언가 맹렬한 속도로 날아왔다.

    ―쨍그랑!

    그게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자아를 배트로 만들어 튕겨냈다.

    “윽?!”

    배트에 닿자마자 사방으로 유리 조각이 터져나가 기어코 얼굴과 손등을 긁어 놓았다. 고개를 돌려 내가 부순 물건의 정체를 확인했다.

    ‘유리로 된 장미……?’

    [비탄의 음악가의 연주에 감동을 받은 관객이 갑자기 장미를 던지기 시작합니다.]

    [아직 마지막 악장이 아닌데도 말이죠.]

    “시, 시, 신지의 헌터 괜찮으세요?!”

    “네. 크게 다친 건 아니에요.”

    ―사락.

    내 얼굴을 보고 기겁한 한진우 헌터가 약손 서너 장을 얼굴과 손등에 붙여 주었다. 피부에 스미는 차가운 기운을 느끼며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장미를 경계했다.

    [“정말로 내 음악을 즐겨주고 있구나.”]

    [비탄의 음악가는 제게 쏟아지는 관심을 즐기며 건반을 두드립니다.]

    [좌절을 연주하고 있는 그는 어느새 해방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탄의 음악가의 방어력이 소폭 감소합니다.]

    반가운 상태창이다. 방어력이 감소했다는 말에 고통도 잊은 채 곧바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콰과광!!

    바주카의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커다란 창으로 변한 칼리가 음악가의 머리에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진 녀석의 몸에서 검은 잉크가 뿜어져 나왔다가 곧 원래대로 붙었다.

    [현재 체력 : 257,591]

    방어력이 감소한 덕에 아까보다는 빠른 속도로 체력이 줄었다.

    ―퍼버벙!

    바주카를 빠져나온 포탄이 너덜너덜해지는 녀석의 몸을 또다시 관통했다. 녀석의 몸은 공격을 받을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연주만큼은 2악장이 시작된 이후 내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들 조심하세요!”

    조슈아의 경고와 함께 관객석 쪽에서 또다시 장미 세례가 쏟아졌다. 양동이로 퍼다 붓는 것처럼 피할 틈도 없이 쏟아진 탓에 쉴드를 뽑아낼 수밖에 없었다.

    ―쨍그랑!

    “큭!”

    아무리 쉴드로 막아봐도 그것이 받아낼 수 있는 장미의 개수는 한정되어 있었다. 힘을 버티지 못하고 깨져버린 쉴드는 날 지키기 역부족이었고, 결국 날카로운 장미 줄기는 내 몸 여기저기에 박혔다.

    ―푹.

    쇄골 밑을 후벼파는 고통에 눈앞이 순간 점멸했다. 그 이후로 얼마나 많은 장미가 내 복부와 다리를 파고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모두에게 괜찮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누가 수건이라도 입에 쑤셔 넣은 양 목소리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스틱스…….’

    ―탁!

    스틱스 강을 시전하려 마음먹은 순간, 누군가의 어깨가 내 팔 밑으로 슥 들어왔고 그 상태로 몸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누구지……?’

    흐려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시야의 한가운데 새하얀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날리고 있었다.

    “레일리……!”

    “상처 벌어진다, 입 다물고 있어. 이봐 꼬맹이!”

    “다들 조금만 참으세요!”

    한진우 헌터의 목소리까지 들으니 마음 한구석에 쌓여 있던 불안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이제 보니 관객석과 무대 사이에 거대한 아더의 방패가 세워져 있었고, 관객석에서 날아오던 장미는 완전히 반사되어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레일리는 날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힌 후 메이스를 들어 전투 태세를 취했다.

    ―사라락.

    “윽!”

    “상처가 너무 깊어요… 조금만 더 참으면 금방 치료될 거예요.”

    나를 달래는 듯한 한진우 헌터의 말을 들으며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폈다.

    ‘레일리랑 한진우 헌터는 멀쩡한 것 같고… 비스랑 조슈아도 나랑 비슷한 상황인가.’

    두 사람 모두 바닥에 엎드린 채 한진우 헌터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칼리가 한껏 불안한 얼굴을 한 채 비스 주위를 떠다녔다.

    일단 레일리가 돌아왔으니 한숨은 돌린 셈이다. 음표 공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차별적인 공격이다 보니 제대로 된 방어 스킬 하나 없는 우리가 상대하기엔 영 껄끄러운 상황이었으니까.

    ‘무사히 돌아온 것도 다행이고.’

    레일리는 조금 지쳐 보일 뿐 눈에 띄는 상처는 없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자 황금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방어 신경 쓰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방심했나 보군.”

    “어쩔 수 없었어요! 공격이 엄청 촘촘했다고요. 레일리 씨도 그 상황이었으면 당할 수밖에 없었을걸요?”

    “허?”

    “힉……!”

    레일리가 나를 매도한다고 생각한 건지 한진우 헌터가 대신 해명해 주었다. 레일리의 표정이 험악해지자 곧바로 꼬리를 내렸지만 말이다.

    “괜찮아요, 한진우 헌터… 레일리가 말은 저렇게 해도 사실 저 걱정하는 거예요.”

    “지나친 자신감이군.”

    그는 어깨를 으쓱한 후 제 오른쪽 눈을 가린 안대를 고쳐 썼다.

    ‘이제 좀 살 만하네.’

    치료가 어느 정도 된 건지 전신을 짓누르던 끔찍한 통증이 사그라들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레일리를 향해 물었다.

    “악보는?”

    “찾았다. 1악장부터 3악장까지.”

    “정말?! 윽!”

    “아앗, 신지의 헌터 아직 상처가 다 아문 건 아니에요……!”

    복부에서 또다시 아찔한 통증이 느껴져 몸이 안쪽으로 말렸다. 레일리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 어깨를 잡아 앞으로 고꾸라지는 걸 막아 주었다. 머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따가운 시선이 꽂혔다.

    ―탁.

    상처가 완전히 봉합될 때까지 다시 자리에 앉자 약손이 상처 부위에 여러 겹 얹혔다.

    “무대 뒤쪽에 제법 큰 연습실들이 있더군. 거길 전부 다 뒤지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

    “하도 안 와서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거 보니 머리도 다쳤나 보군, 체스터. 이봐 꼬맹이, 쟤 머리도 한번 봐봐.”

    “네에?!”

    “자꾸 유치하게 싸우지 마라. 머리 울린다.”

    조슈아와 비스가 여전히 바닥과 하나가 된 채로 말을 얹었다.

    ‘좀 진정되네.’

    세 사람의 유치한 실랑이가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달래는 듯했다. 그들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던 칼리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

    ―사락.

    그때 몸에 붙어 있던 약손이 전부 사라졌다. 복부와 쇄골을 만져도 아무런 흉터도 느껴지질 않는 걸 보니 치료가 완벽하게 끝난 것 같았다.

    “레일리, 이제 슬슬 공격 준비하자.”

    “그래. 아직도 1악장인가?”

    “아니요, 이제 2악장으로 넘어왔어요.”

    한진우 헌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레일리 쪽으로 다가갔다. 레일리는 코트 안쪽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더니 악보를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음악가의 연주에 귀 기울이며 악보에 있는 음을 흥얼거리는 그의 모습은 음악가보다 더 음악가처럼 보였다.

    “아, 이 부분인 것 같군. 2악장도 슬슬 끝이겠어.”

    “레일리 씨가 제 옆에서 음을 가르쳐 주세요. 그럼 제가 따라서 부를…….”

    ―콰직.

    순간 세상이 고요해졌다. 음악가의 연주도, 아더의 방패에 부딪치던 유리 장미들이 깨지는 소리도 전부 멀어졌다.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무거운 정적이 갑자기 이 공간을 덮쳤다.

    [“찾았다. 내 꿈을 좌절시킨 자식.”]

    [비탄의 음악가가 연주를 멈췄습니다.]

    [그의 눈은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눈앞에 뜬 글자의 뒤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상상하지 않았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레…일리?

    음표가 잔뜩 붙은 오선이 레일리의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해 있었다.

    ―후두둑.

    악보가 힘없이 떨어지고 그 위로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그를 꿰뚫은 오선의 끝은 음악가의 머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길게 늘어났던 오선은 다시 녀석의 머리를 차지한 악보 위로 돌아왔고 태연하게 연주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쿵.

    “레일리!!”

    그의 몸이 악보 위로 떨어지고 나서야 멈춰 있던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 일단 엎어진 그의 몸을 바로 돌렸다. 빛을 잃은 황금색 눈동자를 바라보자마자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가슴이 저려 왔다.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

    “정신 차리세요, 레일리 씨!”

    푸른 나뭇잎이 레일리의 상처를 덮었다. 하지만 레일리의 가슴에 고인 피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약손이 핏물에 녹아갈 뿐이었다.

    ‘숨만 붙어 있으면 돼. 숨만 붙어 있으면 한진우 헌터가 어떻게든 해줄 거야.’

    몸이 덜덜 떨렸다. 분명 5분 전만 해도 우스운 대화를 나누던, 내게 서툰 걱정의 말을 전하던 레일리가 미동도 없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숨을 쉬는 법을 잊었다. 어느새 귓가에 들리는 어지러운 이명은 점점 주변 소음을 삼켜 버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

    ‘도망가고 싶어.’

    비겁한 나는 이 끔찍한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비탄의 음악가의 복수가 이루어졌습니다.]

    [비탄의 음악가는 완전히 만족했습니다.]

    [비탄의 음악가의 방어력이 대폭 감소합니다.]

    한진우 헌터가 오열했다. 소리가 들린 건 아니지만 레일리의 몸 앞에서 입을 쩍 벌린 채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는 걸 보니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조슈아와 비스도 그 자리에 선 채 레일리를 멍하니 내려다볼 뿐이었다. 입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했는데 여전히 이명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자세히 들어보니 이명이 아니었다.

    “아아아아아악!!”

    좌절감에 목이 졸린 내 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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