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잔뜩 운 것처럼 다 갈라졌지만 앳된 목소리,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유야.”
“보고 싶었어. 기다리고 있었어.”
물기가 잔뜩 어린 목소리가 마음을 파고들었다. 누군가 가슴을 후벼파는 것처럼 심장 부근이 아려왔다.
―짝!
양손으로 뺨을 내리쳤다. 얼얼한 통증이 볼에 퍼질수록 지유의 목소리가 크게 다가올 뿐이었다.
‘정신 차려.’
관객석에 있는 지유가 가짜란 건 알고 있다. 나를 둘러싼 모든 현상이 음악가의 정신계 스킬의 일부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관객석 쪽으로 자꾸만 발이 움직이고, 링거가 꽂힌 연약한 팔과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걸린 걸까.’
주위를 둘러보니 이 공간엔 나와 음악가, 그리고 지유의 목소리뿐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언니, 혹시 내가 안 보여?”
“그래, 안 보여. 보여서도 안 되고.”
가짜 지유에게 건성으로 대답한 후 스킬을 해제할 방법을 찾았다. 정신계 스킬을 해제하는 법은 외부의 큰 충격을 받거나 아니면 스스로 스킬임을 인식한 후 내부에서 물리적인 힘을 가해 깨는 것뿐이다.
뺨 때린 걸로 깨지 않을 정도면 자아의 힘이라도 빌려야…….
“당연히 안 보이겠지. 언니는 내 마지막 모습을 모르니까.”
“…뭐?”
그때 가짜 지유가 말을 덧붙였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발언에 관객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링거줄이 꽂힌 손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어. 엄마랑 아빠는 손을 잡아주고, 모르는 사람들까지 와서 기도를 해줬는데 거기에 언니는 없었어.”
“……”
“그러니까 언니는 평생 내가 어떤 모습으로 죽었는지 모를 거야.”
―콰직.
어두운 객석에서 링거줄이 날아와 내 목을 졸랐다. 그것을 떼어 놓으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가짜 지유의 말에 조금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아이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건 내 평생의 죄고, 무뎌지나 싶을 때면 다시 내 기억 속에서 살아났다.
“컥, 윽… 허억……!”
숨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겨우 자아를 손에 쥐었고 내 허벅지 쪽으로 조준했다.
―탕!
“아아악!”
“신지의 헌터!”
호흡이 자유로워지자 허벅지가 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스킬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아 좀 과격한 방법을 썼더니 묵직한 고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지?’
울고 있다는 감각도 없이 눈에서 눈물만 주르륵 흘러내린 탓에 물속에서 눈을 뜬 것처럼 시야가 흐리고 울렁거렸다. 소매로 눈을 벅벅 닦은 후 주위를 둘러보자 사색이 된 한진우 헌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 한진우 헌… 윽!”
“지금 바로 치료할게요. 잠시만 참으세요!”
한진우 헌터의 약손이 허벅지 위로 내려앉았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한진우 헌터가 눈물을 훔친 후 입을 열었다.
“녹두의 배리어 안이에요.”
“아, 어쩐지.”
주변이 조금 고요하다 싶더니 녹두가 연주자들을 마주 보고 선 채로 배리어를 유지하고 있었다. 녀석의 뒤에는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는 조슈아가 누워 있었다.
“전 신지의 헌터의 능력 덕분에 정신계 스킬인 걸 인지하자마자 깨어났어요. 저 다음으로는 비스 씨가 일어났고요.”
“…저 기절해 있었나요?”
“아니요. 다들 뭐에 홀린 것처럼 그냥 서 있던 상태였어요. 저랑 녹두가 억지로 바닥에 눕혔죠.”
한진우 헌터가 다시 한번 약손을 소환해 내 허벅지를 덮었다. 나뭇잎이 상처에 스밀수록 고통이 가시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상급 정신계 스킬 같아요. 제가 일어나자마자 여러분들을 거의 때리다시피 해서 깨워 봤는데 꿈쩍도 하지 않더라고요.”
“비스는 어떻게 깨어났어요?”
“칼리 씨가 깨운 것 아닐까요? 아, 그러고 보니 비스 씨도 손바닥에 피가 났었어요!”
“어떻게든 피를 봐야 하나 보네요.”
―사락.
치료가 끝났는지 상처가 말끔히 나았고 허벅지에서 느껴지던 고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나저나 이 눈물도 스킬의 여파인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시야를 방해받아 영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눈물을 대충 닦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조슈아에게로 다가가자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이 들렸다.
“미안해… 조.”
“…….”
조슈아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 채 눈물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그도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조의 환영을 보며 죄책감에 짓눌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하겠지.
―철그럭.
난 조슈아의 앞에 앉아 바닥에 굴러다니는 그의 검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한진우 헌터, 조슈아 깨면 바로 치료 준비해 주세요.”
“네!”
한진우 헌터가 제 주변으로 약손을 소환한 걸 확인한 후 검으로 조슈아의 손바닥을 그었다.
―지익.
“윽!?”
흐릿했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러자 초록빛의 나뭇잎이 조슈아의 손바닥을 덮었고 빠르게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허어, 헉… 어?”
눈물을 잔뜩 머금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됐는지 조슈아가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난 그의 옆에 검을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자세한 설명은 한진우 헌터한테 들어.”
한진우 헌터와 조슈아를 두고 배리어 밖으로 발을 옮겼다.
[“내 연주에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어.”]
[“이별의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그런 힘이 생긴 거야.”]
[“다 의미 있는 고통이었어.”]
[비탄의 음악가는 눈물을 흘리는 관객을 보며 보람을 느낍니다.]
[비탄의 음악가의 방어력이 감소합니다.]
절호의 찬스다. 이 눈물이 그치기 전에 녀석에게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여야 해.
―투웅.
자아로 쉴드를 뽑아 한 손에 든 후 피아노 위로 날아올랐다. 나를 향한 연주자들의 음표를 쉴드로 튕겨 내며 피아노 보면대 위에 착지했고 곧바로 자아를 건반 위로 떨어트렸다.
―끼리릭.
내 손을 떠나간 자아가 박격포로 바뀌어 건반 위로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다들 머리 조심해!”
―콰과과광!!
경고와 함께 엄청난 진동이 일었다. 박격포에서 빠져나온 포탄이 정확히 녀석의 가슴을 관통하고 객석 쪽에 있던 기둥을 맞혔다. 기둥이 무너지고 공연장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지만,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건반 위에서 춤을 추는 음악가의 손도 멈추지 않았다.
[현재 체력 : 399,861]
하지만 녀석에게 10만에 가까운 피해를 주었다. 시야를 방해하던 눈물이 이 정도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서걱!
박격포가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사이, 비스가 나타나 음악가의 목을 벴다. 곧이어 녀석의 몸 주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모든 급소에 낫을 깊게 찔러 넣었다. 검은 잉크가 피 대신 흘러나와 무대 위로 뚝뚝 떨어졌다.
―퍼버벙!!
비스의 공격이 끝나자 박격포가 또다시 포탄을 뽑아냈다. 비스가 상처를 냈던 명치에 포탄이 박혀 그대로 터졌고 그제야 녀석의 움직임이 잠깐 멎었다.
[현재 체력 : 301,994]
“좋았… 윽!”
“지의!”
‘머리가……!’
‘구원자의 가호 아래'와 박격포로 연속으로 공격한 탓에 또다시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보면대 위에 주저앉은 채 업적창을 열어 비스와 조슈아의 방어력을 원 상태로 돌려놓았다. 빙빙 돌던 눈앞이 서서히 또렷해지고 공기가 폐 안에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타닥.
“괜찮나?”
“응. 방어력 수치 원래대로 돌려 놨으니까 아까보다 좀 아플 수 있어.”
“애초에 공격당하지 않으면 해결될 일이다. 너는 네 몸이나 신경 써.”
―퍼버벙!!
그때 새빨간 용암이 음악가의 머리 위에서 쏟아졌다. 폭포처럼 흘러내린 붉은 용암은 녀석의 몸을 전부 다 집어삼키더니 이내 피아노까지 흘러넘쳤다.
[현재 체력 : 278,139]
“후~ 속이 다 후련하네요.”
조슈아가 음악가의 어깨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검으로 녀석의 쇄골에서부터 복부까지 찢으며 내려오더니, 곧 나와 비스가 있는 쪽으로 몸을 날려 가볍게 착지했다.
“손은 다 치료했어?”
“물론이죠. 한진우 헌터의 실력이 엄청나던데요.”
그는 싱긋 웃으며 양손을 펼쳐 보였다. 그의 눈에서도 여전히 눈물이 떨어지고 있어 그 모습이 조금 우습게 보였다.
―♬♪♬
음악가가 건반을 몇 번 세게 두드리더니 이내 손을 내렸다. 연주자들도 악기를 살짝 내린 채 일제히 음악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 조용해진 분위기에 오싹함까지 느껴졌다.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려는 것 같죠?”
“눈, 눈물도 멎었어요.”
행운의 토끼발을 타고 날아온 한진우 헌터가 말을 얹었다. 눈물을 여러 번 닦은 탓에 모두의 눈가가 붉게 물들고 묘하게 부어 있었다.
“…그나저나 레일리 녀석이 좀 늦군.”
“아.”
비스의 말대로 악보를 찾으러 간 레일리의 행방이 여전히 묘연했다. 이유 모를 불안함의 원인을 그제야 눈치챘다.
레일리가 들어간 어두컴컴한 무대 뒤를 빤히 바라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무사하길 빌어야지.’
만약 2악장이 끝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다면 직접 찾으러 가는 수밖에 없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연주를 준비 중인 음악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파사삭.
탄환은 녀석의 몸에 눌어붙은 용암을 뚫고 손목을 정확히 관통했다.
[현재 체력 : 273,111]
눈물은 멎었지만 여전히 방어력 감소 효과가 지속되는 듯했다. 그것을 눈치챈 비스와 조슈아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동시에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콰과광!!
비스가 날아다니며 낫으로 음악가의 온몸을 찢는 동안 조슈아의 용암이 상처에 깊게 스몄다. 상처가 봉합될 여지조차 주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현재 체력 : 272,461]
[현재 체력 : 268,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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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체력 : 259,942]
30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체력을 빠르게 줄여 놓았고, 어느새 녀석의 체력은 절반에 가까워졌다. 방어력이 다시 상승한다고 해도 이만하면 큰 성과다
―탕!
두 사람이 폭풍 같은 공격을 마치고 뒤로 물러난 틈을 타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녀석은 탄환이 날아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건반 위로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파직.
[현재 체력 : 259,038]
“쳇.”
녀석의 방어력이 다시 상승했다. 1악장에서 얻은 효과가 전부 끝난 것이다.
[피아노 협주곡 1번 ‘비탄’ 제2악장, ‘좌절’이 연주됩니다.]
레일리 없이 두 번째 악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