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67화 (267/366)
  • 267화

    “허억!”

    “아아, 드디어……!”

    “수도? 수도라고 했어요 지금?”

    내 말에 사람들은 더 큰 소리로 말을 뱉었다. 이제 말을 조심할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음악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녀석의 대답을 기다렸다. 음악가는 나와 제 손에 들린 낡은 바이올린을 번갈아 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도의 음악 학교에서 온 선생님이야. 너처럼 재능 있는 아이들을 찾고 있어.”

    “제가 재능이 있는 아이예요?”

    “그럼.”

    억지로 웃느라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도, 음악가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음악가는 나를 향했던 시선을 마을 사람들 쪽으로 옮겼다. 나도 함께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얼굴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들이 기뻐하고 있는 건 알 수 있었다.

    양손으로 입을 가리는 사람과 옆에 있던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제 일인 양 좋아하는 사람, 진짜 사람처럼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을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어 결국 시선을 돌렸다.

    ―텁.

    음악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시선을 바닥에 두다시피 한 채로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간단한 입학 시험을 치를 예정입니다. 마을 밖에 있는 숲에서 진행할 예정이고, 교칙에 따라 보호자들과 완전히 분리된 상태여야 합니다.”

    “그, 그럼 저희는 마을 안에서 기다려야 하나요?”

    “네. 다른 아이들도 똑같이 진행했습니다. 규정 위반 시 실격 처리되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한 보람이 있었다. 내 입에선 꽤 정돈된 문장이 나왔고,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숲 쪽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 잘하고 올게요!”

    그때 음악가가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긴장한 듯 목소리가 살짝 떨렸지만 의욕이 느껴졌다. 음악가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조금 안심한 건지 그에게 한발 다가서며 따스하게 말을 건넸다.

    “그래, 우리는 너를 믿는단다.”

    “네가 하고 싶은 걸 전부 이룰 수 있도록 우리가 도울게.”

    ―까득.

    나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었는지 서로 마찰되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음악가의 손목을 조심스레 잡았다.

    “이제 시험 보러 가도 될까?”

    “아, 네!”

    음악가는 내게 잡힌 손을 조심스럽게 빼더니 곧 스스로 내 손을 잡았다. 손가락 세 개를 겨우 잡는 작은 손이 정말로 사람처럼 느껴져 덜컥 겁을 먹었다.

    “잘 다녀오거라!”

    “힘내!”

    “다녀올게요~”

    음악가가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만약 녀석에게 얼굴이 있었다면 분명 환하게 웃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이 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모르겠지.’

    어린 음악가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숲을 향해 걸어나갔다. 마을 입구를 빠져나갈 때까지 사람들의 응원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나무가 우거진 비탈길을 따라 걸어 나갔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밭을 가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새의 지저귐이 더욱 크게 들렸다. 가끔 부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 파도치는 듯한 소리까지 만들어 냈다.

    ―우지끈.

    바닥만 보며 한참 걸어갈 때쯤 나뭇가지가 밟혀 부러지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고개를 살짝 들자 시선 끝에 검은 부츠의 코가 보였고, 완전히 고개를 들어 비스의 망토를 뒤집어쓴 레일리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신장 차이 때문에 망토는 레일리의 허벅지까지 밖에 내려오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가리기엔 충분했다.

    “안녕하세요, 길 좀 묻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음악가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곤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망토 모자 밑으로 레일리의 웃고 있는 입가가 보였다. 레일리는 연습한 대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혹시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저도 외지인이라 잘은 모르겠군요.”

    “아!”

    그때 음악가가 입 밖으로 큰 소리를 냈다. 나와 레일리가 동시에 음악가를 바라보자 녀석이 가느다란 팔을 천천히 들어 우리가 걸어온 길 너머를 가리켰다.

    “이 길 따라서 쭉 가면 저희 마을이 나와요!”

    그리고 녀석의 입에서 우리가 원하던 대답이 나왔다. 음악가의 죄책감과 좌절감을 키우기 위한 도화선이 마을을 향해 뻗어가자 레일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음악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맙구나. 덕분에 잘 찾아갈 수 있겠어.”

    “안녕히 가세요~”

    음악가는 처음 보는 어른에게 조금의 경계도 없이 마을의 위치를 알려주곤 고개를 꾸벅 숙였다. 녀석은 레일리의 얼굴을 흘긋 보다 이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아, 네. 가죠.”

    뒤를 흘긋 보자 레일리와 눈이 마주쳤다. 늘 맹수처럼 형형한 황금색 눈동자가 지금은 조금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괴로워하고 있나 보네.’

    그는 조금 거친 성격을 가졌을 뿐 냉혈한이 아니었다. 레일리도 죄 없는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에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다.

    ―터벅, 터벅.

    레일리의 발 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음악가의 손을 잡고 숲 안쪽으로 한참 더 들어갔다.

    “아.”

    누가 갖다 놓기라도 한 것처럼 햇볕이 드는 나무 사이로 의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의자에 앉은 후 음악가에게 비나를 내밀었다. 음악가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양손으로 가져와 들었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입학 시험은 네 마음대로 이걸 연주하는 것이란다. 네가 만든 곡도 좋고 원래 있던 곡도 괜찮아.”

    “이렇게 생긴 악기는 처음 봐요.”

    음악가는 비나를 이리저리 살피며 새로운 악기에 대한 호기심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나는 녀석이 악기를 연주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다. 마을을 공격하기까지 3분 정도가 남았으니 그때에 맞춰서 연주를 시작하게 할 생각이었다.

    ―♬♪♩

    녀석이 비나 줄을 튕기자 신비로우면서도 청아한 소리가 숲에 울려퍼졌다. 그러더니 음을 파악하는 듯 줄을 하나하나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얼굴을 들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준비됐니?”

    “네.”

    “그래. 시작하렴.”

    내 말에 음악가는 기다렸다는 듯 비나 줄을 하나 씩 튕겼다. 어떤 노래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녀석의 연주가 잔뜩 긴장한 내 마음을 진정시킬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하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펑.

    커다란 폭발음이 미약하게 들려왔다.

    ‘시작됐구나.’

    나는 내색하지 않고 음악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녀석은 폭발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몸까지 좌우로 흔들며 자신의 연주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아름다운 선율의 사이에 누군가의 비명이 미세하게 새어 들어왔다. 음악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아마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정신은 마을을 향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가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

    ―♬♪♩

    그럴수록 비나의 선율은 나를 위로하듯 감미로워졌다. 녀석은 자신의 마을이 파괴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그렇게 한참을 연주했다.

    ‘만약 마을 사람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줄 수 있다면, 그들의 영혼은 천국에 가지 않을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녀석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잠시 눈을 감았다.

    * * *

    음악가의 연주가 끝나고 나는 가볍게 박수를 쳤다. 한 곡만으로는 평가가 어렵다는 핑계와 함께 한 곡을 더 연주하게 하니 어느새 15분이 흘러 있었다. 20분 내로 작업을 끝내겠다고 했으니 음악가가 돌아갔을 때 마을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있을 것이다.

    “훌륭하구나.”

    “감, 감사합니다! 악기 다시 드릴게요.”

    비나를 돌려받은 후 음악가를 빤히 바라보았다. 녀석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내가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합격이야. 정식 입학 통지서는 늦어도 다음주에는 도착할 거야.”

    “와……!”

    음악가는 양손을 꽉 쥐더니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그러자 머리를 대신하고 있는 악보의 오선지가 미묘하게 출렁거렸다.

    “자, 얼른 돌아가렴. 마을 어른들이 기다리고 있겠구나.”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음악가가 내게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한 후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기쁨에 겨운 웃음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난 의자에서 일어나 녀석의 모습이 점이 될 때까지 지켜보았다.

    “…녹두야.”

    ―키이잉

    팔찌에서 빠져나온 녹두가 공중에서 한 바퀴 돌더니 내 옆에 가볍게 착지했다. 아무런 말없이 녀석의 목 뒤를 긁자 내가 원하는 바를 알아차렸는지 녹두가 자세를 낮춰 내가 녀석의 등에 올라탈 수 있게 했다.

    “마을로 천천히 돌아가 줘. 웬만하면 몬스터의 눈에 띄지 않게 공중으로 이동해 주고.”

    ‘알겠어, 언니.’

    ―후웅.

    녹두는 나를 태운 채 하늘을 향해 뛰어 올라갔다. 울창한 숲을 넘어 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가슴에 대못을 박은 양 욱신거렸다.

    집집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땅이 엉망진창으로 치솟아 이미 마을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다. 칼리의 창이 유유히 허공을 떠 다니며 단 한 명의 생존자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무너진 집 잔해를 몇 번 더 찔렀다.

    ―퍼엉.

    풍차가 있는 언덕에서부터 용암이 흘러내려왔다. 바닥에 엎어진 검은 형체들을 집어삼키더니 그들을 흔적도 없이 없애 버렸다.

    고개를 내려 숲길을 바라보았다. 숨을 고르던 음악가가 다시 마을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우거진 나무 틈으로 보이는 녀석을 눈으로 좆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마을 입구에서 우뚝 멈춰 섰다.

    [현재 음악가의 정신력 : 90/100]

    그러자 눈앞에 녀석의 정신이 처음으로 무너졌다는 문장이 나타났다.

    “아, 아저씨! 아줌마!”

    음악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마을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용암에 몸이 반쯤 사라진 검은 형체와 무너진 건물을 보며 오열하더니 광장 쪽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녀석이 연주하던 피아노는 산산조각 난 지 오래였고 그 옆엔 피범벅이 된 검은 형체가 엎어져 있었다.

    “할아버지! 저, 정신 차려 보세요!”

    형체의 몸을 흔들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음악가는 형체를 끌어안고 한참 울음을 토해냈고, 결국 울다 지쳐 그 위로 쓰러졌다.

    ―쿵.

    그때 언덕 쪽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녀석과 나는 동시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풍차 앞에 서서 음악가를 내려다 보는 레일리를 발견했다. 음악가의 머리를 쓰다듬었던 그 모습 그대로, 그는 붉은 망토를 뒤집어 쓴 채 음악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 아아……!”

    [현재 음악가의 정신력 : 70/100]

    “으아아아악!!”

    볼품없이 갈라진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마을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몬스터일 뿐인데 계속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그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교육 완료]

    [행복한 음악가는 이별을 배웠습니다.]

    [음악가는 이별의 아픔을 음악을 통해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의 성장이 기대됩니다.]

    [다음 교육을 시작합니다.]

    눈앞에 나타난 문장은 음악가의 고통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녀석의 비명이 서서히 사그라듦과 동시에 우리를 둘러싼 풍경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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