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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266화 (266/366)

266화

다행히 마을 사람들의 관심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우리를 마을을 구경하러 온 외지인 정도로 생각하며 다들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음악가처럼 보이는 녀석은 없었던 것 같은데.’

광장 분수 앞 벤치에 앉은 후 마을을 돌아다니는 검은 인영들을 한참 눈으로 훑었다. 먼지를 뭉쳐놓은 것 같은 외형인 탓에 누가 누군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응?”

그때 분수가 쏟아지는 소리 사이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을 옮기자 광장에서 떨어진 작은 가게 앞에 다다랐다.

―♬♪♩

그리고 그곳엔 낡은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음악가가 있었다.

혹시라도 녀석이 내 기척을 느낄까 싶어 가게 옆쪽 골목으로 몸을 숨긴 후 고개만 살짝 빼 다시 녀석을 눈에 담았다.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체구 위로 악보집으로 된 머리가 얹혀 있었다. 그동안 파편 속에서 만난 보스 몬스터들과 비슷한 생김새라 녀석이 행복한 음악가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녀석, 또 왔구나.”

“앗, 좋은 아침이에요!”

음악가는 피아노를 치다 말고 가게에서 나온 인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인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피아노 쪽으로 손짓했다. 그러자 음악가는 손가락을 움직여 아까와 다르게 경쾌한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밝은 음악 소리 위로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어우러졌다. 선선한 공기까지 피부에 닿자 평화롭다는 말은 이런 상황을 두고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 평화가 곧 내 손에 의해 사라지게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누가 피아노를 가르쳐준 적도 없다고 했죠?”

“그렇다니까요! 저 애는 천재예요, 천재.”

어느새 음악가의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한마디씩 말을 얹었다.

“우리 마을의 유일한 아이니까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비단을 납품했던 귀족 중에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 양반이 하나 있소. 그 사람에게라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군.”

“저 아이는 무조건 수도에 보내야 해요.”

나는 골목에서 나와 음악가를 구경하는 사람들 틈에 섞였다. 그들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단하네요. 저는 저 아이가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웠는 줄 알았어요.”

“하하, 이 마을에 온 외지인들은 다 그런 소리를 하더라고요.”

여자 목소리를 가진 인영이 내 말에 대답해 주었다.

“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죠.”

“…혹시 저 아이에 대해 조금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네?”

얼굴까지 전부 먼지를 뭉쳐놓은 형태이기 때문에 인영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되묻는 목소리에서 경계심이 느껴졌다. 나는 머릿속으로 적당한 핑계를 떠올린 후 살짝 웃으며 입을 뗐다.

“아, 저는 사실 수도의 음악 학교에서 온 교사입니다.”

“네?!”

“쉿.”

입을 틀어막는 인영을 보며 입가로 검지 손가락을 올리자 그가 어깨를 흠칫 떨더니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전혀 의심하지 않네.’

얕은 거짓말 한 마디에 인영과 주변에 있던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기세를 몰아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 말을 덧붙였다.

“시골에 있는 재능 있는 아이들을 찾아 입학시키기로 했거든요. 소문이 나면 안되니 꼭 여기 계신 분들만 아셔야 합니다.”

“세상에… 알겠습니다, 선생님.”

“저, 그…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저 아이는 어떻습니까?”

음악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녀석은 가벼운 손놀림으로 건반을 두드리며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재능이 있어요. 저 아이는 제가 적극적으로 추천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저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궁금하시다고 하셨죠?”

경계심을 드러냈던 인영이 이번엔 신난 듯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의 유일한 어린 아이예요. 부모한테 버림받아서 저희 마을이 다같이 힘을 합쳐 키웠죠.”

“올곧은 아이예요. 정도 많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도 아는 아이죠.”

이후로도 마을 사람들은 음악가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으로 묘사된 음악가는 음악에 있어서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는 천재이자 사람들을 사랑하는 천사였다. 보일리가 없는 그들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웃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음악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교 측에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부디 저 아이가 수도에서 뜻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인영들은 허리까지 숙여가며 내게 인사했다. 내가 자신들의 삶을 파괴할 사람이라는 걸 모른 채로 말이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더이상 그들의 선한 말을 듣고 있다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아 그 장소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슬슬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 언덕 위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숨이라도 차면 이 찝찝한 기분이 조금은 날아갈 것 같아서.

―타닥.

풍차 앞에 도착하자 조슈아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와 있었다.

“음악가는 찾았나?”

“응. 광장 옆에 있던 가게에서 피아노 치고 있었어.”

“다행이군. 아무도 그 녀석을 못 찾은 줄 알았는데.”

레일리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타닥.

“제가 마지막이군요?”

“그래. 얼른 와서 이야기부터 하지.”

조슈아는 비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말문을 텄다.

“음악가를 만났어. 부모는 없고 이 마을의 유일한 어린애라서 사람들이 많이 아끼고 있더라.”

“재능이 출중한 것 같더군. 농장 쪽에 있던 녀석들한테 물어보니 칭찬뿐이었다.”

비스가 턱짓으로 마을 아래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이번엔 한진우 헌터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는 이 마을에 대해 조금 알아봤어요. 대부분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고 도시로 나갈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비단이랑 보석상만 가끔 수도로 가더군요. 사람들의 행동 반경은 이 마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조슈아도 한진우 헌터의 말을 거들었다.

'그럼 마을 사람을 없애는 것도 이 마을 안에서 이루어져야겠네.'

생각할수록 불편해지는 감정을 억누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제 마을 사람들을 어떻게 없앨지 생각해 봐야 하는데. 혹시 괜찮은 아이디어 있어?”

내 말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정보를 모으는 동안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죄책감.’

아무리 이곳이 창조자의 파편으로 만든 가상의 세계이고, 그들이 검은 형체만 남은 존재일지라도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은 존재를 해치는 것은 그 누구도 내켜하지 않을 것이다.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정적을 뚫고 조슈아가 입을 열었다.

“음악가를 마을 밖으로 내보낸 후 전멸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원인을 음악가에게 뒤집어 씌우고?”

“하아… 네. 그렇게 하면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조슈아는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레일리도 영 찝찝한지 머리만 거칠게 쓸어 넘겼다.

“대놓고 악당이 되는 수밖에 없군.”

“방법이 좀 떠올랐나?”

“일단 음악가를 마을 밖으로 유인해라. 그리고나서 내가 녀석을 만나 가장 가까운 마을이 어디냐고 물어보겠다.”

“레일리 씨 설마…….”

레일리가 공허한 눈으로 마을을 내려다 보며 말을 덧붙였다.

“그 길로 가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다. 행복한 음악가는 아직 어린아이고 경계심도 높지 않아 보였다. 마을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분명 쉽게 자신이 사는 곳을 가르쳐줄 것이다.

그 후엔 자기 때문에 마을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겠지.

“난 그 방법 괜찮은 것 같아.”

“저도요…….”

“나도 동의한다.”

조슈아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해 하는 동료들을 쭉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유인은 내가 할게. 마을 사람들한테 내가 수도에 있는 음악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거든.”

“연기가 늘었네요.”

“칭찬인지 뭔지 모르겠네.”

조슈아가 어깨를 으쓱하곤 입꼬리만 겨우 올려 웃었다.

“내일 아침, 내가 마을 사람들을 속여서 음악가를 데리고 숲 쪽으로 갈게. 그때 누구든 마을 쪽으로 들어가는 역할을 해줘.”

“마을에서 큰 소리가 들리면 음악가가 눈치채지 않을까요?”

“나도 그 점이 마음에 좀 걸리는군.”

비스가 스스로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곧 좋은 생각이 났는지 가늘게 떴던 눈이 동그래졌다.

―치지직.

“뭐, 뭐 하는 거야?”

“큭…….”

그는 파편을 뽑아내는 것처럼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검은 스파크와 함께 그의 손에 제법 큰 무언가가 들렸다.

“…기타랑 비슷하게 생겼네. 뭐야?”

“비나다. 녀석이 내게 준 힘이지. 나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군.”

‘그걸로 꿈을 조종한 건가.’

비스는 비나 줄을 몇 번 튕기더니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이걸로 녀석의 주의를 끌어라. 학교 입학을 위한 시험인 것처럼 포장하면 금방 믿겠지.”

“고마워. 좀 빌릴게.”

“영영 쓸 일 없을테니 마음대로 해.”

비스에게서 비나를 완전히 건네받은 후 언덕 밑의 마을 풍경을 내려다 보았다. 마침 광장으로 나온 음악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분수를 가운데 두고 빙글빙글 돌며 검은 새의 형태를 쫓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비나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일이면 산산조각 날 평화로운 풍경을 나도 모르게 한참 눈에 담았다.

* * *

―탁, 탁.

여관에서 나와 비나를 손에 든 채로 광장을 향해 걸어갔다. 이 시골 마을에도 외지인이 머물 곳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그대로 노숙을 할 뻔했으니 말이다.

‘여관 주인이 지나치게 친절했지.’

내가 비밀로 해 달라고 했지만 이미 마을 사람들은 나를 수도의 음악 학교 교사로 알고 있었다. 덕분에 다른 동료들도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그럴수록 모두의 마음은 무거워질 뿐이었다.

마을을 파괴하는 외지인 역할을 할 레일리는 이미 숲으로 나간 상태고, 다른 사람들은 풍차 언덕 쪽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남은 건 내가 음악가를 유인해 그를 모든 것들로부터 강제로 이별시키는 것뿐이다.

―♬♪♩

광장에 다다르자 현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발을 옮기자 이번엔 강가 옆에 서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음악가가 보였다. 녀석의 주위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저 사람이야……!”

“쉿, 조용히 해! 모르는 척해, 모르는 척!”

내 등장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그 말을 한 사람과 일부러 눈을 맞추며 살짝 웃었고 사람들을 가로질러 음악가의 앞에 바로 섰다.

“누구세요?”

악보 머리가 한쪽으로 갸우뚱 기울어졌다. 눈이 없는데도 집요하면서도 순수한 시선이 느껴졌다.

―두근, 두근.

양심이 송곳이 되어 심장을 찔렀다. 나는 욱신거리는 감각을 애써 외면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도에서 음악을 배우고 싶지 않니?”

누군가의 행복을 무너트릴, 끔찍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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