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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261화 (261/366)

261화

“이게 아니야……. 이게 아니란 말이야…….”

패턴은 지난번과 똑같았다. 에르제베트의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가 거울을 보며 절망했고, 자신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손으로 헤집기 시작했다. 자아로 쉴드를 뽑아놓은 후 대기하자 녀석이 몸을 덜컥 멈추더니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젊은 피는 구해왔나?”

“아이언 메이든이 미친 듯이 쏟아질 거다. 다들 바보처럼 당하지 마라.”

―쾅!!

레일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하늘에서 묵직한 철 덩어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들의 사이로 뛰어다니며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아이언 메이든 안의 가시들을 쉴드로 막았다.

‘다른 사람들도 잘 싸우고 있네.’

조슈아가 아이언 메이든들을 한 곳에 몰아 용암으로 단숨에 녹여 버리는 동안, 칼리를 몸 안에 빙의시킨 비스는 아이언 메이든의 사이를 날아다니며 거대한 낫을 휘둘렀다.

―쿵, 쿵.

낫이 한 번 공중을 가를 때마다 위협적이었던 아이언 메이든이 순식간에 반으로 쪼개졌다.

“흡……!”

―서걱.

센은 아직 아마테라스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의 공격은 충분히 파괴적이었다. 새하얀 검이 커다란 아이언 메이든을 베는 동시에 광휘가 마구 쏟아져 그것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쾅, 쾅, 쾅

레일리도 아더의 방패로 공격을 튕겨내며 손쉽게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내 예상대로 정말로 잘해 주고 있어 더욱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럼 나도 이 업적을 한번 써볼까.’

자아로 음파를 내보내 방에 남아 있던 아이언 메이든을 전부 집어삼킨 후 상태창을 열어 업적 ‘구원자의 가호 아래’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구원자의 가호 아래]

[다른 사람으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업적]

[업적 효과 : 활성화 시 구원자의 시야에 들어온 생명체 중 지정한 대상의 신체 능력이 대폭 상승한다. 대상이 많을수록 체력이 많이 소비된다.]

[활성화하시겠습니까?]

‘네.’

―파지직.

업적을 활성화하자마자 사람들의 머리 위에 눈을 감은 것처럼 아래로 휘어진 포물선이 나타났다.

[업적 적용 가능 생명체]

[조슈아 체스터]

[아마노 레이]

[비스 바즈라차르야]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

일단 가장 위에 있던 조슈아의 이름을 눌렀다.

―치직.

[공격력]

[방어력]

[기동력]

[체력]

[특성 ‘암살’ : 활성화 시 적의 약점을 빠르게 포착한다. 특성 ‘돌격’과 상성이 좋다.]

“…이게 뭐야?”

“신지의 헌터, 조심하세요!”

―콰앙!

센의 경고와 함께 아이언 메이든이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입을 쩍 벌리고 나를 집어삼키려던 그것의 내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뒤로 굴렀다. 그러자 철 덩어리가 터져 가시가 여기저기 튀어 나갔다.

빠르게 몸을 일으켜 중심을 잡은 후 다시 눈앞의 상태창을 읽었다.

‘상위 4개는 일반 신체 능력인 것 같고, 특성은 속성이랑 비슷한 건가?’

직접 써본 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각성자가 지니고 있는 능력을 개별적으로 올려줄 수 있는 엄청난 기능이란 건 알겠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조슈아의 기동력과 방어력을 높여 보았다. 그러자 조슈아의 머리 위에 있던 황금색 포물선이 이내 사람의 눈 모양이 되어, 업적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쾅!!

조슈아가 양손에 든 검으로 아이언 메이든을 바닥에 메다꽂은 후 공중으로 높이 도약해 비스의 뒤를 노리던 녀석의 머리를 찼다.

“깜짝이야…….”

“아, 놀라게 했군요. 죄송합니다.”

“…뭐야, 얼까지 빠졌네.”

비스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다시 전투에 집중했고, 조슈아는 자신이 찬 아이언 메이든의 숨통을 끊어 놓으며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아무래도 제 몸에 일어난 변화를 실감하고 있는 듯했다.

‘이 틈에 빨리 다른 사람들도 확인해 봐야겠네.’

1페이즈도 슬슬 끝이 보이니 에르제베트와 본격적으로 싸우기 전에 각자의 특성을 살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펑.

내 뒤로 떨어진 아이언 메이든을 바주카로 날려버린 후 바로 상태창을 열었다. 업적 밑에 있던 사람들의 이름을 전부 눌러 특성부터 살폈다.

[아마노 레이]

[특성 ‘조화’ : 활성화 시 반경 100m 내의 모든 생명체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해당 특성을 활성화 할 시 각성자 ‘신지의’의 체력이 대폭 하락합니다.]

[비스 바즈라차르야]

[특성 ‘암살’ : 활성화 시 적의 약점을 빠르게 포착한다. 특성 ‘돌격’과 상성이 좋다.]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

[특성 ‘돌격’ : 활성화 시 방어력이 대폭 상승하며 적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특성 ‘암살’과 상성이 좋다.]

비스와 조슈아의 특성이 똑같았다. 그리고 레일리는 이 두 사람과의 상성이 좋고.

‘센의 특성은 성능 자체는 엄청나지만 내 몸에 무리가 가겠네.’

―쿵.

대충 파악을 끝내자 마지막으로 소환된 아이언 메이든이 산산조각 나며 1페이즈의 막이 내려갔다. 그러자 레일리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 2페이즈로 넘어갈 준비를 했다.

“잠깐만. 2페이즈부터는 팀을 좀 나눠 보자.”

“팀?”

그의 팔을 잡아 움직임을 저지하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2페이즈는 에르제베트, 3페이즈는 에르제베트와 시종장, 그리고 마지막 페이즈는 다른 소환체까지 나타나.”

“아주 성가시군.”

“레일리가 전방에서 방어를 맡아주고, 녀석이 레일리한테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비스랑 조슈아가 공격을 퍼부어줘. 그리고 센 씨는 일단 저와 같이 다녀 주세요.”

내 지시가 갑작스러웠는지 다들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누군가 의문을 제시하기 전에 아무래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방법을 써야 할 것 같다.

‘수긍의 탄환.’

상태창을 향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자 사람들의 가슴 한가운데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과녁이 생겼다. 자아를 통해 발포하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된다는 상태창을 무시하고 탄환을 발사하자 새하얀 말의 탄환이 그들의 몸을 관통했다.

[발언 결과 : 수긍]

그들은 잠시 몸을 움찔거리더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네요. 신지의 헌터의 말 대로 하죠.”

“네 부탁이라면 기꺼이 들어주지.”

“…….”

조슈아와 레일리, 그리고 비스가 나를 흘긋 보곤 에르제베트 앞에 나란히 섰다. 센도 검을 고쳐 쥐며 말없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조금 양심에 찔리네.’

그들의 사이를 조금이나마 가깝게 만들고 싶어서 한 행동인데, 아무래도 마음이 영 불편했다. 찝찝한 기분을 이겨내며 나도 자아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럼 2페이즈 시작하겠다.”

―후두둑.

레일리가 단검으로 손바닥에 살짝 피를 내곤 그대로 바닥을 향해 털었다. 피 냄새를 맡은 에르제베트가 그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더니 이내 레일리의 피가 떨어진 곳을 향해 얼굴을 파묻었다. 녀석은 한참 바닥을 핥다 곧바로 그 커다란 몸을 일으키며 울부짖었다.

“더 많은 피를 내놔!!”

―콰과광!

에르제베트가 긴 팔을 휘두르며 주위에 있던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2페이즈가 시작됨과 동시에 나는 센을 제외한 세 사람의 특성을 활성화했다.

“윽…….”

“신지의 헌터?”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활성화하자마자 순간 머리가 핑 돌았지만 금방 원 상태로 돌아왔다. 비스와 레일리의 머리 위에도 황금색 눈이 나타난 것을 확인한 후 숨을 골랐다.

‘무리하지 않게 조심해야겠네.’

나는 에르제베트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고, 센 역시 광휘로 녀석의 커다란 몸을 뚫어 놓으며 차근차근 체력을 깎아갔다.

“하! 이거 원 시시해서 못 봐주겠군!”

―콰과광!!

레일리가 방패로 에르제베트의 거대한 브로치를 튕겨내자 그것은 그대로 에르제베트의 이마에 박혔다.

“크아아악!”

“흡!”

―퍼버벙!!

에르제베트의 몸이 뒤로 넘어가는 틈을 타 녀석의 어깨에 올라탄 조슈아가 녀석의 쇄골 위 여린 살을 찢고 용암을 들이부었다. 그러자 에르제베트가 괴성을 지르며 용암을 털어내려 몸을 앞으로 숙였다.

―콰직!

녀석의 목 뒤가 무방비하게 드러나자 낫을 든 비스가 공중에서 몇 바퀴를 돌아 폭풍처럼 녀석의 목 뒤를 파고들었다.

단 몇 초 만에 이루어진 완벽한 연계 공격이었다. 세 사람의 얼굴을 슬쩍 보니 그들도 어안이 벙벙한 듯 서로를 보며 눈만 깜박거리고 있었다. 뿌듯함에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방금 공격 완벽했어. 작전 짠 거야?”

“그럴 리가. 우연이다, 우연.”

“…그런 것치곤 정말로 완벽하긴 했네요.”

레일리가 질색하며 고개를 젓자 조슈아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비스는 공중에 둥둥 뜬 채 에르제베트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가만두지 않겠다!!!”

그때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에르제베트가 진열장에 있던 티스푼과 포크를 꺼내 마구잡이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곤 눈앞에 있던 비스 대신 레일리를 향해 커다란 손을 뻗었다.

‘특성이 잘 작동하고 있나 보네.’

―쩌엉!

레일리의 손에 들린 ‘아더의 방패’는 녀석의 공격을 시시하게 막아냈다. 레일리가 가소롭다는 듯 픽 웃자 에르제베트가 몸을 움찔 떨며 고개를 들었다.

“이 몬스터는 원래 이렇게 멍청한가?”

―콰과광!!

위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비스가 중얼거리며 낫을 높이 들었고 곧바로 녀석의 눈을 횡으로 베었다. 에르제베트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양손으로 눈을 가렸고 육중한 몸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캬아아악!!”

“저도 비스 씨 말에 동감합니다~”

에르제베트가 땅에 엎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조슈아가 용암 지대를 만들었다. 용암에 파묻혀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을 앞에 둔 채 비스가 땅 위로 착지했고 그와 동시에 칼리가 그의 몸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상하게도 몸에 힘이 넘치는군.”

“칼리 님도 느껴지십니까?”

“그래. 분명 똑같이 움직이는데 공격이 훨씬 더 잘 들어가는 것 같구나.”

칼리와 비스가 대화를 나누자 조슈아와 레일리도 그들을 흘긋 바라보았다.

‘다들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으려나.’

정작 이 효과를 내가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딸랑.

그때 에르제베트가 협탁 위에 있던 종을 겨우 잡아 흔들었다. 3페이즈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에서 검은 구체가 떨어졌다. 에르제베트와 비슷한 크기로 몸집을 불린 구체는 어느새 사람의 형체가 되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의 주인에게 영원한 젊음을 바치겠습니다.”

시종장이 품속에서 거대한 식칼을 꺼내 레일리를 향해 휘둘렀다. 식칼이 그의 방패에 닿기 전 레일리의 방어력을 한 단계 더 올렸다.

―쾅!

그러자 레일리는 조금도 밀리지 않고 그 공격을 그대로 받아냈다. 황금색 눈동자가 커다래지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듯 씩 웃었고, 고개를 돌려 비스와 조슈아를 향해 소리쳤다.

“시선은 내가 끌겠다! 네 녀석들은 아까처럼 뒤통수를 쳐라. 알겠나?”

“알아서 잘할 테니 명령하지 마라.”

“레일리 씨나 잘해 주시면 될 것 같네요!”

―콰과광!!

고운 말이 오가진 않았지만 레일리의 말대로 두 사람은 동시에 시종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얼굴도 약간 미소를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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