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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256화 (256/366)
  • 256화

    ―쾅!!

    “도대체, 왜……?”

    센은 눈앞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 희생하는 화가를 찌를 준비를 하던 지의가 불로 된 돔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주변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고요하고 적막했다. 그는 새하얘진 머리를 겨우 굴려 지의의 돌발 행동을 이해하려 애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론은 쉽게 내려졌다.

    ‘이 사람도 나처럼 희생하려 한 거구나.’

    거대한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센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른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렇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괴로워하고 있었고, 입을 다문 채 센의 시선을 피하기만 했다.

    “이시카와, 사와구치.”

    “…….”

    “알고 있었군요.”

    “…SS급이 센 님께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해서요.”

    이시카와가 우물쭈물 대답하자 센이 보기 드물게 인상을 찡그렸고 그에 이시카와가 깜짝 놀라 몸을 움찔 떨었다.

    ‘무서워……!

    어떤 일이 있더라도 늘 온화함을 유지했던 센이 지금은 싸늘하게 얼굴을 굳혔다. 이시카와는 낯선 그의 모습에 카디건 소매만 만지작거리며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센의 시선이 이번엔 민과 세빈을 향했다. 민은 약간 긴장한 얼굴로 자신이 만든 방공호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따금 미간을 구겼다.

    반면 세빈은 텅 빈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그림자는 희생하는 화가의 작업실 전체를 집어삼킬 것처럼 야금야금 영역을 넓혀 갔다. 그 그림자엔 그의 불안과 불만이 녹아 있었다.

    ―또각.

    센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그에 사와구치가 그쪽으로 발을 옮겼다.

    “센 님……!”

    “어째서…….”

    ―탁.

    센은 자신을 가로막는 사와구치를 한 손으로 밀며 민과 세빈의 바로 앞에 섰다. 네 개의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건 일본 헌터들의 정신이자 아마테라스의 현신이라 불리는 헌터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혼란스러워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어째서 말리지 않은 거죠?”

    “신지의 헌터가 제안한 방법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방법이죠? 공격하다가 죽기 직전에 아이테르의 로브의 치유 스킬을 쓰는 방법?”

    센이 민을 향해 말을 쏘아붙이곤 이를 아득 갈았다.

    “중간에 치유 스킬을 쓴다고 하더라도 15만이라는 체력을 신지의 헌터 혼자서 소진시키는 건 무리예요. 사지를 잘라내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할 거라고요.”

    “…….”

    “이렇게 될 거란 걸 예상했어야 했는데. 어째서 내가 아니라 신지의 헌터가…….”

    “센 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지의가 저희에게만 말한 거죠.”

    세빈의 말에 센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매서운 눈으로 세빈을 응시했지만 세빈은 그의 시선 따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눈동자만 굴려 방공호를 노려보았다.

    “분명 센 씨가 혼자서 해결하려 할 테니 자신과 몬스터를 방공호 안에 가둬 달라고 말하더군요.”

    “신지의 헌터가 그런 말을……?”

    “뭐, 아까 말씀 들어보니까 지의가 정확히 맞혔네요.”

    세빈은 눈을 살짝 감은 채 미간을 구겼다. 그러곤 방금 전 지의가 센을 제외한 네 사람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지의가 혼자서 해결하겠다는 말에 모두가 반대했지만 그는 완강한 태도로 대답했다.

    “센 씨라면 죽을 각오를 했겠지만, 나는 아니야. 동료들 두고 죽을 생각 전혀 없어.”

    센의 말대로 말리지 않은 게 아니라, 말릴 수 없었다. 확신에 가득 찬 그 눈을 향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빈도 마찬가지였다.

    ‘무사할 거야. 멀쩡하게 내 눈앞에 나타날 거라고.’

    세빈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의가 방공호에서 무사히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또각.

    센은 민을 향해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섰다. 민은 그의 탁한 잿빛 눈동자가 이글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어 고개를 뒤로 뺐다.

    “스킬을 해제해 주세요.”

    “안 됩니다.”

    “그러다 신지의 헌터가 목숨을 잃으면 어쩌려고 그러시는 거죠?”

    “신지의 헌터는 돌아올 겁니다.”

    ―쾅!!

    그때 센의 뒤로 후광이 생겼다. 그의 주위로 빛무리가 위협적으로 일렁였고 손에는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아마테라스를 시전한 그를 보자마자 사와구치와 이시카와가 그의 양팔을 붙잡았다.

    “센 님!”

    “제 눈앞에서 누군가 죽는 모습은 절대로 못 봅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안 됩니다.”

    민과 센 사이에 팽팽한 기류가 흘렀다. 긴장감에 당장이라도 무언가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계속해서 이어질 무렵.

    ―치지직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작품명은 ‘희생의 결말’입니다.]

    [“이걸로 만족해.”]

    [희생하는 화가는 본인 스스로가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만족하여 이번 생에 더는 미련이 없습니다.]

    [현재 체력 : 0]

    모두의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헉……!”

    반사적으로 센이 방공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타닥.

    그러자 불의 장벽 밖으로 빠져나오는 지의와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허무하게 떠나보낼 거라 생각했던 생명이 멀쩡하게 살아남아 자신을 보고 있었다.

    “뭐, 뭐야. 왜 스킬 썼어요……?”

    “지의야!”

    “신지의 헌터, 괜찮습니까?”

    “SS급!!”

    지의는 아마테라스 상태의 센을 보며 두 눈을 크게 떴고, 센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네 사람이 동시에 지의를 향해 달려 나갔다.

    “몸은 괜찮아?”

    “뼈가 좀 울리는 것 빼곤 멀쩡해.”

    “죽은 줄 알았다 네 녀석!”

    “어, 어떻게 해치운 거야? 센 님도 없이 너 혼자서…….”

    센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지의를 바라보았다. 지의가 이야기한 대로 그는 크게 다친 곳 없이 멀쩡했다. 그저 조금 지쳐 보일 뿐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센은 아마테라스를 해제하며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의문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제대로 된 사고가 되지 않았다. 지의는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센과 눈을 마주쳤다.

    ―타닥.

    그러곤 그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설명 없이 갑자기 행동해서 미안해요.”

    “어떻게… 살아남으신 거죠?”

    “팔레트 나이프에 제 스킬을 둘렀어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아마노 레이’가 동요한다.]

    센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지의가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당한 공격을 그대로 돌려준다고 하길래 팔레트 나이프 자체에 제 스킬을 덧씌워 봤어요. 그걸로 몬스터를 치면 공격이 되겠지만, 저한테는 아무런 영향도 없으니까요.”

    센이 지의의 행동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호령여산’이 둘러진 팔레트 나이프가 그대로 반사되어 지의의 몸에 닿는다면, 그 스킬은 그를 해칠 수 없으니 다시 튕겨 나올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외부 공격에 해당하는 팔레트 나이프의 공격을 막게 된다.

    [발언 결과 : 깨달음]

    그제야 지의가 자신하며 들어갔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오히려 실드 역할을 해줬겠군요.”

    “맞아요.”

    지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센은 그런 지의를 바라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지의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보다 한 수 더 위의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저 몬스터를 혼자서 해결할 거라는 건 어떻게 안 건가요.”

    “같이 화가를 찌르자고 했을 때 저한테 거짓말하셨잖아요.”

    센이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는 걸 들켰던 것이다. 마음을 훤히 읽힌 기분에 센은 다시 한번 자신의 무지에 부끄러워졌다.

    ‘사실은 발언력을 보고 확인한 거지만.’

    지의는 화가와의 전투가 시작될 때부터 센이 묘하게 목숨을 던질 각오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예감은 마지막으로 그의 각오를 들을 때 확신으로 바뀌었다. ‘죽음을 각오한 결의’, 그런 발언 결과는 처음 보았으니 말이다.

    “센 씨, 제가 아까 했던 말 기억나요?”

    “…절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말이요?”

    “네. 그리고 숭고한 희생은 없다는 말도.”

    ―텁.

    지의가 센의 손을 잡았다. 그러곤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남았다고 해도 그건 몸만 산 거예요. 정신은 죽은 거나 다름없을 거라고요.”

    “…아.”

    센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어린 토우야의 목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꽂혔다.

    회상“왜 남아 있는, 흑, 사람들은, 생각 안 하는 건데…”

    울면서 이야기하던 그 말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너무나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방금 느낀 감정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감정이었구나.’

    센의 삶에서 희생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았다. 큰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는 생각이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게 만들었다. 오히려 자신이 희생으로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완벽한 죽음은 없다고 생각했다.

    센에게 있어 남은 이들의 마음은 그의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끔찍한 기분이라는 걸 알았다면 토우야를 강제로 기절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어느 쪽도 희생하지 않는 새로운 대안을 찾았을 거라 생각하며, 센은 지난날의 자신을 조금 원망했다.

    “전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었네요.”

    “어리석은 게 아니에요. 지나치게 선했던 거지.”

    “어떤 선한 사람이 세상이 망해도 자기 나라만 살려 달라고 해요.”

    “그럴 수도 있죠.”

    “어머.”

    지의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자 센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이내 싱긋 웃었다.

    ‘정말 반짝이는 사람이구나.’

    그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 방법,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준 지의에게 센은 마음을 완전히 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고마워요, 신지의 헌터.”

    ―치지직.

    [각성자 ‘아마노 레이’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비책은 절대자의 힘이 아니라, 당신의 힘이에요’의 씨앗 개화]

    [각성자 ‘아마노 레이’는 각성자 ‘신지의’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고유 스킬 ‘호령여산(號令如山)’의 파괴력 증가]

    <사명>

    [사령탑]

    [‘말의 씨앗’을 개화시켜 동료로 만들어라]

    [달성도 상승]

    [달성도 : 100%]

    [달성 완료]

    [업적 ‘구원자의 가호 아래’ 개방]

    ‘뭐?!’

    센의 마음에 심어 놓았던 말의 씨앗이 개화하자 지의의 눈앞에 한동안 보이지 않던 상태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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