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55화 (255/366)
  • 255화

    ―쏴아아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얼마나 많은 괴수들을 해치웠는지 레이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하늘을 보고 누운 채로 비처럼 쏟아지는 독을 맞고 있을 뿐이었다.

    몸은 서서히 마비되었고 점점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밤색의 눈동자는 어느새 빛을 잃어 흙탕물처럼 뿌연 색이 되었다.

    레이가 혼자 문 안으로 들어갔을 땐 난생처음 보는 숲 속 공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자신이 해치웠던 묘목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고, 레이는 검 한 자루에 의지해 묘목들을 베어나갔다.

    그러다 마주친 것이 자신을 이 상태로 만들어 놓은, 거대한 연꽃이었다. 크기만 크고 묘목들과 큰 차이가 없어 레이는 일격에 그것을 잘랐다. 그랬더니 갑자기 하늘에서 독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독이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그의 눈이었다. 딱 한 방울이 들어갔을 뿐인데 그의 양쪽 눈은 순식간에 제 기능을 잃었다. 그는 그 순간 절망을 처음 느꼈고 결국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사람들은 전부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으려나.’

    숨을 쉴 때마다 송곳으로 폐를 찌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레이의 머릿속엔 계단을 내려가던 사람들만이 가득했다. 여기서 죽는 운명이라면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사람만이라도 무사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안심했다. 만약 이곳에 토우야까지 함께 들어왔다면 그까지 이 독에 휘말렸을 테니 말이다.

    “커헉……!”

    레이가 고통스러운 듯 숨을 토해냈다. 몸이 독을 거부해 억지로 게워 내려 했지만 이제 더는 토할 것도 없었다. 그저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외엔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걸로 누군가를 지킬 수 있었다면, 그걸로 족해.’

    고통스러운 감각이 서서히 무뎌지기 시작했다. 레이는 희미한 미소까지 지으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파아앗.

    [각성자 아마노 레이]

    [빛 속성 개방]

    [고유 스킬 ‘아마테라스’ 개방]

    [S급 강화계 스킬 ‘아마테라스’]

    ['아마테라스’ :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가호를 받아 일정 시간 동안 공격력, 방어력, 회복력, 이동 속도가 대폭 상승한다. 지속 시간은 시전자의 체력에 따라 달라지며, 재사용 대기 시간은 1시간이다.]

    [연계 패시브 스킬 ‘야타노카가미’ 개방]

    [‘야타노카가미’ : 시전자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시전자의 시신경에 전달한다.]

    “어……?”

    그런 그를 축복하듯 빛의 힘이 그를 찾아왔다. 갑자기 돌아온 시력에 레이는 눈을 깜박거렸다. 죽음을 인정하고 차분해졌던 감정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의 눈앞을 가득 채운 단어 중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건 단 한 글자도 없었다. 스킬이니 속성이니 하는 것들은 그에게 있어 낯선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이 힘이 자신에게 두 번째 삶을 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던 레이는 어느새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사명 해금>

    [아마테라스의 의지]

    [네가 태어난 땅을 네 손으로 지켜라.]

    [보상 : 고유 스킬 ‘아마테라스’의 지속 시간 무제한]

    희망으로 가득 찬 그에게 사명이 주어졌다.

    “네가 태어난 땅을… 네 손으로 지켜라.”

    레이는 입 밖으로 사명을 되뇌었다. 독 때문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완벽하게 문장을 끝마쳤다.

    ―쿵, 쿵.

    두근거리던 심장은 전력 질주를 한 것처럼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내가 힘을 갖게 된 이유야.’

    누군가를 지키는 삶을 살고자 한 그에게 딱 맞는 사명이었다. 생사기로에서 자신을 살린 이 힘은 ‘아마테라스의 의지’라는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아마테라스.”

    ―콰과광!

    그가 나지막이 읊조리자 그의 주위로 빛무리가 날아들었다. 독으로 절여졌던 폐와 장기들은 스스로 정화되기 시작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던 몸은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레이는 자신의 몸에 이렇게 힘이 넘칠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레이는 이가 나간 ‘텐노카타나’를 다시 쥐었다.

    그리곤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푸른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 * *

    “누나,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헌터 협회를 만들 거야.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레이의 목소리가 도장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토우야와 진의 앞에 앉은 그는 담담하게 이야기하곤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토우야는 화가 난 듯 식식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제 부친의 눈치를 보며 다시 털썩 앉았다.

    최초의 게이트가 생긴 지 한 달이 지났다. 전 세계적으로 각 국가들을 제각각 아수라장이 되었다. 전시 상황보다 더 큰 긴장이 온 나라를 집어삼켰고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예지 스킬을 가진 한국인 각성자가 스스로를 ‘헌터’라고 부르며 헌터 협회를 설립하여 국가 차원에서 각성자들과 던전을 관리하겠다는 발표가 뉴스를 통해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발표는 레이를 설득시켰다.

    일본을 지키겠다,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자신의 능력을 국가를 위해 쓰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레이, 네가 엄청난 힘을 얻게 됐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기관이 네 뜻대로 잘 설립될 것 같으냐?”

    “한국에 있는 그 예지 스킬의 각성자를 만나보려 합니다. 좋은 조언을 구할 수 있겠죠.”

    “왜 그렇게 급하게 행동하는 거야? 어느 정도 체제가 갖춰진 다음에 누나의 힘을 보여줘도 괜찮지 않을까?”

    토우야는 쏘아붙이듯이 질문하곤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지금 상황에서 누나한테 S급 스킬이 있다는 걸 알면 정부 놈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어떻게든 누나를 붙잡고 그 던전인지 뭔지 하는 공간에 계속 보낼 거라고.”

    “응. 그러려고 하는 거야.”

    “뭐?!”

    “아마노 토우야.”

    레이가 음절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동생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잿빛 눈동자에 기가 눌린 그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레이는 다시 진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이 힘을 얻게 된 이유는 괴수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일본 전역에 퍼진 그 문을 없애고 저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 싸우고자 합니다.”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네 뜻은 존중하마. 하지만 나 역시 토우야랑 같은 부분을 염려하고 있다.”

    진이 제 딸을 바라보았다. 시력을 잃은 잿빛 눈동자가 저를 향하자 진의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스킬 덕에 앞이 보인다고 해도 레이가 받았을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진은 울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후 입을 열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너와 같지 않고, 우리 도장의 사람들처럼 선하지도 않다. 네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걸 바친다고 해도, 네가 바랐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부분은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뜻을 펼치려는 이유는 무엇이느냐?”

    “사명입니다.”

    진의 질문에 레이가 단번에 대답했다.

    ―휘잉.

    도장 안으로 불어온 바람이 레이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세 사람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사명……?”

    그 정적을 깨고 토우야가 입을 열었다. 레이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덧붙였다.

    “아마테라스의 의지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태어난 땅을 지키라는 말을 하더군요.”

    “…신이라도 만난 것이냐?”

    “아니요. 그저 문자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토우야와 진이 서로를 슬쩍 바라보았다. 레이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말장난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며 레이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문과 도장을 이어받지 못하는 걸 용서해 주세요.”

    ―바스락.

    레이가 절을 하다시피 허리를 숙이자 진은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됐다.

    ‘너를 담기엔 이 가문도 너무 작구나.’

    진은 사람들이 레이를 보며 아마테라스를 떠올릴 때마다 지나친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와 세상을 지키겠다고 하는 제 딸을 보니, 우습게도 그들의 말에 조금 동의하게 됐다.

    영웅을 넘어선, 모든 것을 초월한 신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진은 자포자기한 듯 픽 웃곤 레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붙잡지 않으마.”

    “아버지!”

    토우야가 입을 쩍 벌리며 소리쳤지만 두 사람의 결정을 뒤집을 순 없었다. 레이가 몸을 일으켜 도장 밖으로 나가자 진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동안 키워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훌륭하게 커 주어서 고맙다.”

    ―또각.

    레이가 출구를 향해 한 걸음 내딛자 게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몸을 돌려 진의 옆에 있는 제 남동생을 향해 입을 열었다.

    “토우야, 너도 나와 함께 후계자 교육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야. 너라면 훌륭한 가주가…….”

    “난 인정 못 해!”

    토우야는 입술을 꽉 깨문 채 레이를 노려보았다. 밤색 눈동자엔 원망이 가득 차 있었고 주먹 쥔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아마노 가문을 두 번이나 버릴 수가 있어?”

    “두 번? 아니, 그보다 버린 적 없……!”

    “날 두고 혼자서 그 문 안으로 들어갔잖아!”

    레이가 눈을 크게 떴다. 토우야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고 악에 받친 채로 레이를 향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목숨을 잃을 걸, 끅, 각오하고 들어갔잖아……! 그건 가문을 버린 거나 마찬가지라고!”

    “…토우야.”

    “왜 남아 있는, 흑, 사람들은, 생각 안 하는 건데…….”

    토우야가 소매로 눈을 벅벅 닦았지만 그럴수록 눈물이 더 터져 나올 뿐이었다. 붉어진 눈가가 쓰라릴 법도 한데 그는 눈물이 채 흐르기도 전에 닦아서 없애 버렸다.

    토우야는 수풀 속에서 홀로 눈을 떴을 때를 떠올렸다. 자신이 존경하는 레이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비참함과 그런 레이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걸 막지 못했다는 절망감. 두 끔찍한 감정이 자신의 목을 졸랐다.

    그 후 레이가 살아 돌아왔을 때, 다시는 레이 혼자서 모든 짐을 떠안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마저 지금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래, 가 버려. 나도 이제 신경 안 쓸래.”

    토우야가 다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렇게 쉽게 목숨을 포기하는 가주 따위 되지 않을 거니까.”

    “토우야 이 녀석이……!”

    “괜찮아요, 아버지.”

    진이 토우야를 향해 언성을 높이려 하자 레이가 바로 저지했다. 토우야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레이를 노려보다, 이내 몸을 돌려 도장 안으로 들어갔다. 레이는 구석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제 이런 사사로운 감정도 버려야 하는 거겠지.’

    그는 시큰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출구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레이.”

    “네.”

    진이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레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저 다정한 눈동자 때문에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건강하거라.”

    레이 대신 진이 눈물을 떨어트렸다. 레이는 입술을 꽉 깨문 채 허리를 숙였다.

    ―투두둑.

    그러자 돌바닥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레이는 그 상태를 한참 유지하다 곧 몸을 틀어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또각.

    그는 자신이 사랑한 여명 검도장과 아마노 가문,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떠났다.

    오직 아마테라스의 의지를 잇겠다는 이상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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