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41화 (241/366)
  • 241화

    <불사(不死), 아마테라스>

    “내가 못 살아 진짜…….”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보며 세빈이가 마른세수를 했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고 벽에 걸린 TV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범 경기에 대한 내용으로 심야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틀간 진행된 세계 헌터 교류전 한―일 시범 경기는 일본의 S급 헌터들을 상대로 3대 1 대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네 개의 경기 영상들은 전부 조회 수 1억 회를 돌파했으며, 신지의 헌터와 센 전 협회장의 경기 영상은 최단 시간 10억 회를 달성했습니다.]

    [대한민국 헌터 협회는 이번 시범 경기를 통해 규칙을 재정비한 후 내년부터 본격적인 경기 주최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틀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나를 치료하고 있던 한진우 헌터가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 이런 경기가 생긴다고 했을 땐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했는데 잘 끝나서 다행이에요. 그쵸?”

    “그렇네요. 누가 무리만 안 했어도 병원 신세 지는 사람 없이 무사히 끝날 수 있었는데 말이에요.”

    “강세빈…….”

    “아하하! 강세빈 헌터가 이렇게 걱정이 많은 사람이란 건 처음 알았네요~”

    세빈이가 끝까지 투덜거리자 한진우 헌터가 웃음을 터트렸다. TV를 끄고 다시 세빈이를 바라보자 그는 입만 삐죽 내민 채로 어린애처럼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내가 다친 게 그렇게 속상한가.’

    센과 나는 경기장에서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기장에서 한진우 헌터가 미리 치료해 주긴 했지만, 부상이 다른 헌터들에 비해 심한 편이라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자는 이유에서였다.

    내가 들것에 실려서 이송되는 동안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세빈이가 함께 구급차에 올라탔고, 그때부터 계속 걱정 섞인 잔소리를 쏟아냈다.

    “근데 강세빈 헌터도 무모하게 싸운 거 아시죠?!”

    그때 한진우 헌터가 고개를 퍼뜩 들고 세빈이를 향해 쏘아붙였다. 갑자기 날아온 날카로운 말에 세빈이 몸을 움찔 떨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어깨 너덜너덜해진 거 보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아, 그게…….”

    “아픈 티도 안 내시길래 별로 안 다치신 줄 알았잖아요! 손목이랑 어깨 신경이 거의 끊어질 뻔했는데!”

    “뭐야, 너도 그렇게 다쳤었어?!”

    “심한 건 아니었어…! 외상이니까 한진우 헌터 스킬로도 잘 치료됐고…….”

    어느새 화살은 세빈이에게로 돌아갔다. 자기도 그렇게 다쳤으면서 내색 하나 안 했다니. 세빈이도 나랑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사락.

    잠깐의 소란이 있고 난 후, 내 어깨 근처에 붙어 있던 ‘약손’이 상쾌한 향기를 남기며 바스라졌다. 한진우 헌터가 내 상처를 몇 번 살피더니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뼈도 다 붙었고 근육 파열된 것도 다 치료됐습니당~”

    “고마워요, 한진우 헌터. 밤까지 고생하셨네요.”

    “이게 제 일이고 보람인데요, 뭘. 아! 멍은 내일 정도면 다 회복되어 거예요. 아이테르의 로브 계속 입고 다니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한진우 헌터는 의사처럼 이야기하곤 간호사가 가져다주었던 진통제를 꺼내 침대 옆 선반에 올려놓았다.

    ‘확실히 심하게 싸우긴 했지.’

    로브를 걷어 보니 피멍이 여전히 팔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경기를 마친 지 서너 시간이나 지난 후인데도 아직까지 얼얼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어깨와 복부엔 여전히 붕대가 친친 감겨 있어 왠지 모르게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센 씨는 어때요?”

    “괜찮으세요! 부상 수준은 신지의 헌터랑 비슷했는데 아무래도 연세가 좀 있으시다 보니 회복력이 떨어지더라고요.”

    “아…….”

    경기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미안함에 가슴이 쿡쿡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세빈이가 입구 쪽으로 성큼 다가가 문을 열자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아, 최민 헌터!”

    “…괜찮으십니까?”

    한 손에 비타민 음료 박스를 든 최민 헌터가 내 모습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점점 미간이 깊어지는 그를 향해 살짝 웃으며 말했다.

    “한진우 헌터 덕분에 멀쩡해요. 한 며칠 자고 나면 자잘한 상처들도 전부 나을 거고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여전히 마음에 걸려 하는 눈치였지만 그는 입을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달그락.

    최민 헌터가 침대 옆 작은 선반에 비타민 음료를 올려놓는 동안 한진우 헌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럼 전 센 씨 병실로 갈게요! 상처 다시 봐 드리기로 했거든요!”

    한진우 헌터가 고개를 숙인 후 병실 문 쪽으로 발을 돌렸다.

    ‘나도 센이랑 좀 얘기하고 싶은데.’

    “아, 그럼 저도…….”

    “지의 너는 쉬고 있어.”

    “신지의 헌터는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세빈이와 최민 헌터가 팔로 나를 막았다. 어정쩡하게 상체만 일으킨 채로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둘 다 무표정일 땐 꽤 무섭단 말이지…….’

    두 사람의 단호한 태도에 그대로 다시 누울 수밖에 없었고 그 모습을 보며 한진우 헌터가 재밌다는 듯 미소 지었다.

    “강세빈 헌터랑 최민 헌터 말이 맞아요. 지금은 신지의 헌터도 푹~ 쉬어야 한다고요.”

    “알겠어요…….”

    “꼭 해야 하는 말이면 제가 전달해 드릴까요?”

    “아, 괜찮아요. 센 씨랑 직접 이야기하고 싶은 거라서요.”

    “우와~ 싸우다가 친해지신 거예요?”

    “네? 어… 친해진 건 아니고, 친해질 준비?”

    “아하하!”

    한진우 헌터가 소리 내어 웃고는 병실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럼 푹 쉬세요! 몸 상태 이상하시면 언제든 전화해 주시고요!”

    ―쿵.

    최민 헌터가 한진우 헌터가 나간 문을 흘긋 보곤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말을 망설이는 건지 입술을 잠시 달싹이다 곧 입을 열었다.

    “센과 했던 그 내기 말입니다.”

    “아, 네.”

    “그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최민 헌터의 말에 세빈이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채 그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최민 헌터도 알고 계셨어요?”

    “네. 신지의 헌터에게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왜 이렇게 탐탁지 않은 눈치지?’

    세빈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 태도가 약간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 내 대답을 기다리는 최민 헌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 저한테 협조하기로 했어요. 다행히 절 믿어 보겠다고 말했거든요.”

    “다행입니다.”

    “파편은 바로 없앨 거야?”

    “센 몸이 회복되면 그렇게 하려고. 조슈아 때처럼 파편을 부술 장소도 따로 정해야 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센을 만나려 했던 건데, 아무래도 오늘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힘들 것 같았다. 난 세빈이와 최민 헌터를 번갈아 보며 말을 덧붙였다.

    “갑자기 게이트가 나타난 것처럼 위장해서 바로 공략 들어가면 될 거예요.”

    “같이 갈 사람들은 정했습니까?”

    “아직이요. 각 파편별로 클리어 조건이 너무 다르니까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단순히 전투 위주로만 생각하면 던전 공략 팀을 짜듯이 하면 되지만 파편은 완전히 다른 공간이다. 만약 클리어 조건이 센과 관련된 것이라면 센을 잘 아는 사람과 함께 들어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어.

    ―스윽.

    그때 세빈이가 이불을 내 목 끝까지 끌어올렸다. 포근한 섬유 유연제 냄새가 훅 끼치는 걸 느끼며 시선을 옮기자 세빈이가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일단 내일 생각하자. 마음은 급하겠지만 몸이 회복되는 게 우선이니까.”

    “…응.”

    “신지의 헌터,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괜찮아요. 다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강세빈’이 동요한다.]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최민’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안심]

    일부러 두 사람을 향해 웃자 그들이 조금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푹 주무시고, 무리하지 마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알겠지?”

    “알겠어. 다들 잘 들어가요!”

    최민 헌터가 고개를 숙이며 병실을 나서자 세빈이도 손을 흔들며 복도로 나왔다.

    ―쿵.

    “후우…….”

    정신없이 흘러간 하루였다. 센과 전투를 치른 건 하루 24시간 중 고작 30분인데, S급 던전을 돈 것처럼 온몸이 무겁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야.’

    센과의 내기에서 이긴 것뿐만 아니라 그가 나를 믿어 보겠다고 했다. 완전히 아직 말의 씨앗도 개화하지 않았고 창조자의 파편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가 내게 마음을 열어준 것만으로 이번 경기의 결과는 내 기대 이상이었다.

    세빈이 말마따나 오늘은 일단 자고 내일 센을 만나봐야 할 것 같다. 그를 창조자로부터 자유롭게 하려면 아무래도 준비가 필요할 테니까.

    피곤함에 감겨오는 눈꺼풀을 그대로 두자 점점 정신이 몽롱해졌고 이내 의식이 흐려졌다.

    * * *

    ―쾅!!

    “헉……!”

    난데없는 굉음에 눈이 단번에 떠졌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봤지만 잠들 때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창문 밖으론 가로등이 켜져 있는 텅 빈 거리와 멀리 보이는 하천뿐이었다.

    ‘꿈이었나…….’

    [3:23 AM]

    벽에 걸린 디지털시계를 보니 큰 소리가 들릴 수 없는 시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많이 피곤하긴 했나 보…….”

    ―쾅!!

    기분 탓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 또다시 굉음이 들렸고 이번엔 진동까지 느껴졌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이 병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타닥!

    운동화를 대충 구겨 신고 복도로 뛰어나오자 안쪽 병실 앞에 모인 간호사들이 보였다.

    “지의야?”

    “신지의 헌터!”

    “어, 어?!”

    정신이 없는 와중에 복도 의자에 앉아 있던 세빈이와 최민 헌터가 나를 보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아직까지 병원에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한 탓에 나도 모르게 크게 뜬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쿵!!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다시 병실 안쪽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불길한 예감에 곧바로 복도 안쪽으로 달려가 간호사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무슨 일이에요?”

    “세, 센 환자분 병실에서 소리가 나는데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고 문도 안 열려요……!”

    “문이 안 열린다고요?”

    ―끼긱.

    병실 문고리를 잡자 누군가 반대편에서 단단하게 잡은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문에 귀를 대자 젊은 남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사와구치랑 이시카와인가?!’

    자동 통역기를 뺀 탓에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두 사람이 센의 방에서 무언가와 싸우고 있음은 분명했다.

    ―철컥.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난 곧바로 문고리를 향해 자아를 조준했다.

    “문고리값은 제 앞에 달아 주세요!”

    ―탕!!

    새하얀 탄환이 병실 문을 맞히자마자 문 전체에 금이 가더니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인벤토리에 넣어둔 통역기를 귀에 끼우며 병실 안으로 빠르게 발을 들이던 중 이질적인 물건이 내 눈에 들어왔다.

    ‘붓……?’

    문과 맞닿아 있던 벽에 마치 못처럼 붓이 끼워져 있었다. 설마 문고리가 안 움직인 것도 이것 때문이었나?

    붓에 대한 의문점을 해결하지 못한 채 다시 소란이 벌어지는 병실 안으로 눈을 돌렸다.

    “이, 이게 대체……!”

    그리고 그 안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것은 거대한 액자였다.

    병실의 벽면을 전부 다 덮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 액자 안에 꽃밭 위에 잠들어 있는 센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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