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40화 (240/366)

240화

―우우웅.

센의 검을 튕겨내자마자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겨 음파를 내보냈다. 새하얀 소리의 파동이 필드를 휩쓸자 벽에 자잘하게 금이 갔다.

“크윽……!”

센도 뒤로 물러난 후 검에 의지한 채 겨우 서 있었다. 난 당긴 방아쇠에 손가락을 고정한 채 반대편 손에 들린 음파 배트를 내려다보았다. 불투명한 유리를 깎아서 만든 것 같은 생김새였지만 강도는

‘자아로 무기를 뽑을 생각은 왜 못 했을까.’

자아는 소리를 내가 원하는 형태로 바꿔주는 능력이 있다. 쉴드처럼 넓은 방어막을 뽑을 수 있다면 다른 형태로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걸 이제야 알아차렸다.

지금이라도 떠올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적어도 이 전투의 분위기는 완전히 내 쪽으로 넘어왔으니까.

―쾅!

방아쇠를 당긴 채로 센을 향해 배트를 내리쳤다. 아까보다 훨씬 느린 움직임이긴 했지만, 그는 음파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내 공격을 전부 막았다.

‘체력을 소진시켜서 아마테라스 상태를 아예 풀어 버려야 해.’

―쾅, 쾅, 쾅.

위에서 아래, 다시 아래에서 위. 휘두르는 공격에서 찌르는 공격으로 바꿔서 전방 공격 세 번.

변칙적으로 공격하자 센의 집중력이 흐트러졌는지 방어하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무거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의 어깨가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다. 그의 검에 배트를 맞댄 채로 공격을 흘린 후 곧바로 몸을 틀어 센의 어깨를 향해 배트를 높이 들었다.

―쾅!

“윽!”

어깨를 강하게 맞은 센이 고통에 억눌린 신음을 흘리며 뒤로 넘어갔다. 난 허리를 숙여 그의 발목을 향해 배트를 한 번 더 휘둘렀다.

―우득.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자, 이내 뜨거운 기운이 목 뒤쪽에서 느껴졌다.

―콰과광!

광휘가 또다시 내 등을 덮쳤다. 전신에 퍼진 화끈거리는 감각에 눈앞이 잠깐 새하얘진 틈을 타 센이 뒤로 굴러 몸을 일으켰다.

“하아, 하아… 진짜 끈질기군요.”

“말, 했잖아요… 질 생각 없다고.”

―쾅!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센의 검이 발 바로 앞에 꽂혔다. 음파 배트로 쳐낸 후 그의 어깨 쪽으로 방아쇠를 당겼지만, 그가 허리를 숙여 피한 탓에 탄환은 허공을 갈랐다.

―뻐억.

하지만 자세를 낮춘 그의 머리는 정확히 내 무릎 앞에 왔고 난 그대로 다리를 들어 그의 머리를 옆으로 찼다.

―파지직.

그때 그의 몸 주위로 새하얀 스파크가 일었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 있던 후광 역시 깜박거리며 서서히 빛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아마테라스의 지속 시간이 끝나고 있다는 신호였다.

“으아아아!”

―쾅!!

있는 힘껏 그의 복부를 향해 배트를 올려 쳤다. 센이 검으로 아슬아슬하게 받아쳤지만, 확실히 아까보다 힘이 약해진 것이 느껴졌다.

마찰하는 무기를 사이에 둔 채 나와 그의 시선이 맞닿았다. 그의 얼굴은 고통과 당혹감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입가의 미소는 잃지 않았다. 마치 이 상황이 재밌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눈동자만 올려 스크린에 뜬 경기 시간을 살폈다.

[04:58]

경기 시간은 5분도 채 남지 않았다. 이 시간 동안 아마테라스를 해제시킨 후 완벽한 한 방을 만들어내면 승리는 내 것이다.

―탕, 탕, 탕.

배트를 맞댄 채로 그의 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센이 검을 거두고 높이 뛰어올라 탄환을 피했다. 그가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아 땅 위로 착지한 후 곧바로 자세를 잡아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자아로 음파를 내보내 센의 움직임을 잠시 마비시켰고 그 틈에 내가 먼저 배트를 올려 쳤다.

―끼기기긱!!

센이 양손으로 검을 쥔 채 가로로 돌려 배트를 막았다. 그의 등 뒤에 걸린 후광이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왜 제가 창조자와 함께하는 걸 말리는 거죠?”

“사기꾼이라고, 했잖아요……!”

“제가 그 사기꾼에게 당하든 말든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묻는 겁니다!”

―쾅!

센이 배트를 밟아 바닥에 박아 버리곤 그대로 검 손잡이로 내 갈비뼈를 쳤다.

‘아까 부상 입은 곳을……!’

―탕!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뒤로 휘청거렸지만 곧바로 오른손을 들어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은 센의 종아리를 정확히 맞히고 공기처럼 사라졌다.

센과 나, 둘 다 만신창이였다. 몸은 성한 곳이 없었고 얼굴과 머리도 완전히 흐트러져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본 채 숨만 헐떡거렸다.

“센 씨가 창조자에게 당하는 게 저하고 무슨 상관이냐고요?”

“…네.”

“당연히 상관있죠.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눈앞에서 놓치는 건데.”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아마노 레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문]

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 말에 담긴 의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듯했다.

“이제 누가 죽는 건 지긋지긋해요. 특히나 그 죽음이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보고 싶지 않고요.”

“다, 당신이 어떻게 그걸…….”

“센 씨.”

이를 악문 채 갈비뼈 쪽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아냈다. 허리를 편 채 그를 똑바로 응시하자 어느새 빛을 완전히 잃은 그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직접 싸워서 일본을 지킬 사람이지, 희생으로 지킬 사람이 아닙니다.”

“…….”

“당신의 무기와 사명도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아마노 레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강한 충격]

센의 눈이 커다래졌다. 자신밖에 모르는 일을 사실을 내가 입 밖으로 꺼냈으니 많이 놀랐겠지. 이제는 회귀자가 아니라고 발뺌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남은 경기 시간은 2분! 점수는 센 헌터가 5점 앞선 상황입니다!

―파지직.

그때 속사포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옴과 동시에 센을 둘러싼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아마테라스의 지속 시간이 끝난 것이다. 센은 자신의 무기를 한번 내려다보다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푸흐흐…….”

그는 웃고 있었다. 차분하고 지혜로운 어른의 얼굴에 때묻지 않은 아이 같은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센은 어딘가 모르게 후련해 보였다.

“이래서 선한 사람은 대하기 힘들다니까.”

“…….”

“나를 한 없이 부끄럽게 만들잖아.”

그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검을 잡은 채 다시 자세를 잡았다.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려는 듯 비장한 움직임이었다.

―철컥.

나도 자아를 장전해 그를 향해 겨눴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어.’

―타앙!

내 탄환을 시작으로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날아가는 소리 탄환을 피해 센이 허리를 숙인 채 내 쪽으로 달렸다. 나는 음파를 내보내 그의 움직임을 한 번 끊어낸 후 먼저 그와의 거리를 좁혀 배트로 그의 명치를 쳐올렸다.

“커헉.”

센은 거칠게 숨을 토해내다 곧 검의 궤도를 바꿔 내 손목을 강하게 그었다. 날카로운 고통과 함께 붉은 선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쾅, 쾅, 쾅.

서로를 얼마나 공격했는지, 또 얼마나 공격을 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손가락이 저릴 정도로 빠르게 방아쇠를 당기고 센이 빈틈을 보일 때마다 배트를 휘둘렀다. 그동안 센의 검도 내 팔과 다리를 찢으며 수도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10! 9! 8!”

사람들이 숫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고통은 서서히 무뎌졌고, 쉴 새 없이 상대의 행동을 계산하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멍해진 정신으로 서로를 향해 무기만 휘두를 뿐이었다.

“3! 2! !!”

―쾅!!

“윽!”

“커헉……!”

센의 칼등이 내 가슴을 내려치자마자 내가 쏜 탄환이 그의 쇄골 옆을 맞혔다.

―쿵.

경기 종료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나와 센은 동시에 나란히 쓰러졌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운조차 없어 큐브의 천장을 보고 누운 채 숨만 겨우 쉬었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잔뜩 흥분한 해설진의 목소리가 큐브를 뚫고 들어오긴 했지만, 우리의 숨소리가 워낙 크게 들려서 그들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마지막 1분은 말 그대로 얻어맞았다. 서로 방어할 생각도 없이 공격만 미친 듯이 퍼부었던 터라 갈비뼈 몇 대 정도는 부러진 것 같다.

“흐읍…….”

겨우 힘을 짜내 고개를 돌리자 흐릿해진 시야를 뚫고 스크린에 뜬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신지의 ―43 : 센 ―44]

[우승자 : 신지의 (SS)]

‘어……?’

스크린엔 내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떠 있었고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져 나왔다.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깜박거리자 얼마 안 있어 거친 손이 내 어깨에 닿았다.

“축하합니다.”

센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전투의 여파로 그의 손도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어깨에 닿는 열기가 다정하고 따스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픽 샜다.

―텁.

나도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주름진 손등과 그 위의 상처가 느껴졌다. 한 나라를 지켜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지킬 힘을 가진 사람과 잘 어울리는 손이라고 생각했다.

“센 씨.”

“네.”

“당신도 선한 사람이에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아마노 레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놀람]

내 말에 센이 숨을 훅 들이켰다. 눈동자를 굴려 그를 보니 잿빛 눈동자가 평소보다 커져 있었다.

“신지의 헌터가 저를 좋게 봐준 건 고마워요. 하지만 전 이기적인 사람이랍니다.”

“…….”

“창조자가 제게 소원을 들어줄 테니 사도가 되어 달라 했을 때, 저는 주저 없이 소원을 빌었습니다.

큐브의 벽을 타고 배리어 겔의 용해제가 내려오는 동안 센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만약 세상이 정말로 망한다면 제가 태어난 땅만큼은 지켜 달라고요.”

‘그런 거였구나.’

그가 자신을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부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센은 일본을 지킬 사명을 가진 사람이니까 아마 그런 소원밖에 떠올릴 수 없었겠지.

“그 소원은 자기도 들어주기 어렵다며 조건을 걸었죠.”

“그게 센 씨의 목숨인 거고요?”

“네.”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마 자조적인 웃음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가며 이루고자 했던 소원은 자신의 사명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센이 이 세상의 수호자는 아닐지 몰라도 일본의 수호자는 맞는 것 같네.

“신지의 헌터에게도 사명이 있나요?”

“있죠.”

“어떤 건지 여쭙고 싶네요.”

“…자세하게는 말 못 해요. 하지만 센 씨랑 비슷해요.”

“저와 비슷한 거라…….”

센이 숨을 길게 내쉬더니 금방 말을 덧붙였다.

“신지의 헌터 정도의 인물이라면 고작 나라 하나 지키는 거로는 책임이 너무 적을 것 같네요.”

“…….”

“뭐, 이 세상 전체를 지킬 사명이라면 어느 정도 레벨이 맞겠네요.”

‘역시 눈치 빠른 어른이야.’

난 아무런 말 없이 그냥 웃었다. 일본 헌터들의 정신 그 자체이자,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축복을 받은 그가 비로소 인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신지의 헌터, 당신이 이겼으니 전 더 이상 창조자에게 협조하지 않겠습니다.”

―사락.

그가 상체만 일으켜 내게 손을 뻗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그 손과 그를 번갈아 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단순히 내기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당신을 믿어보고 싶어졌거든요.”

센이 살포시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창조자가 썩은 동아줄이라는 걸 알게 해 준 당신을 믿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네요.”

“센 씨…….”

“기대해 봐도 될까요?”

그래, 이 내기에서 이긴 건 창조자의 파편을 파괴하기 위함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신뢰를 얻어 그가 창조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나를 믿어보려 하고 있다.

남은 건 이 사람의 기대에 부응해 주는 것뿐이다.

―텁.

센의 손을 잡자 그가 팔을 당겨 나를 일으켰다. 몸은 여전히 부서질 것처럼 아팠지만 기분은 홀가분했다. 호선을 그린 그의 부드러운 눈매를 보며 나도 미소 지었다.

“와아아!!”

배리어 겔의 용해 작업이 끝났는지 큐브의 문이 열리자 사람들의 함성이 흘러 들어왔다. 마치 우리 둘을 축복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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