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39화 (239/366)
  • 239화

    ―우우웅.

    “큭…….”

    일단 거리부터 벌려야 했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검을 피해 몸을 숙이고 방아쇠를 길게 당기자, 센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 틈을 타 낮말을 듣는 새로 도약했고 허공을 가로질러 그와 멀리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하아, 하아…―.”

    아까는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었고 완벽하게 센이 원하던 그림이었을 것이다.

    센과 나는 근접 무기의 숙련도 자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센은 나와 최대한 거리를 좁혀 내 집중력을 흐트러트린 후 그가 의도한 방향대로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내가 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양손으로 배트를 들게 만든 것부터 오른쪽으로 이동한 것까지 전부 그의 계산 범위 안에 있었겠지.’

    목 뒤가 타는 것처럼 욱신거렸지만 고통을 없애기 위해 스틱스 강을 쓰는 건 아까웠다. 그리고 비겁한 느낌이 들어 쓰고 싶지도 않다.

    ―철컥

    ‘오롯이 내가 가진 힘으로 이기고 싶어.’

    ―타앙!

    일부러 땅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센을 향해 발사했던 탄환보다 훨씬 강한 것으로 쏘자 흙먼지가 치솟았다. 센은 탄환을 피해 빠르게 움직였고 금세 나와 거리를 좁혔다. 낮말을 듣는 새와 함께 뛰어올라 그의 검을 피하자 센이 손을 높이 들었다.

    ‘두 번은 안 당하지……!’

    ―쾅!

    머리 위쪽에서 광휘의 기운이 느껴지자마자 쉴드를 두껍게 소환했다. 빛은 쉴드를 뚫지 못한 채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애꿎은 필드 바닥만 패이게 만들었다. 먼지바람 사이로 보이는 센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탕!

    다시 그의 발 앞으로 방아쇠를 당기자 센이 뒤로 물러나며 검으로 탄환을 튕겨냈다.

    ―탁

    땅 위로 착지한 후 호흡을 가다듬었다.

    ‘역시 공중전은 안 하는 게 좋겠네.’

    광휘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탓에 공중에 있을 때 그 공격을 더 피하기 어려웠다. 낮말을 듣는 새는 급할 때만 잠깐씩 사용하고, 공중에서 싸우는 건 아예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키이잉!

    그때 센이 허공을 가르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방아쇠를 길게 당겨 그의 움직임에 제동을 건 후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그의 다리를 향해 탄환을 쐈다.

    ―쾅!

    음파가 사라지자마자 센이 검을 장대 삼아 자신의 몸을 들어 올렸다. 내 탄환은 그의 기모노 자락을 조금 찢어 놓았을 뿐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그는 그대로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아 내 앞으로 바로 착지했고 이번에도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끼기긱.

    자아를 배트로 바꿔 검을 막은 채로 버텼다. 아까와 똑같은 대치 상황 속, 센과 나는 서로를 보며 숨만 거칠게 내쉬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또 피하면 광휘가 나를 덮칠 것이다. 방금 전과 달리 지금은 그의 공격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지만 내가 자아를 다시 확성기로 바꿔 쉴드를 뽑아내는 것보다 광휘가 내 위로 쏟아지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끼기기긱.

    센이 팔에 더욱 힘을 주어 나를 밀어내려 했다. 파들파들 떨리는 팔에 힘을 주어 버틴 후, 광휘의 공격이 미치지 않을 곳을 생각해 냈다.

    ―푹.

    배트에 힘을 푸는 동시에 센의 품 안쪽으로 몸을 깊게 밀어 넣었다. 그의 검은 자연스레 바닥에 박혔고 난 그의 품에 안긴 것 같은 모양새가 됐다.

    ―앗, 신지의 헌터 센 헌터의 품 안쪽으로 파고듭니다!

    “쯧……!”

    센이 팔을 풀고 주춤하는 사이 자아를 다시 확성기로 바꾸고 그의 옆구리 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나를 보는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타앙!!

    “윽!”

    일부러 빗겨서 맞히긴 했지만 탄환이 센의 옆구리를 스치면서 바닥으로 핏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옆구리를 움켜쥐었고 중심이 오른쪽으로 크게 치우쳤다.

    ―깡!

    그 틈에 배트로 바꾼 자아로 그의 손목을 올려 쳤다. 덕분에 센의 검이 공중을 빙그르르 돌다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쾅, 쾅, 쾅.

    센이 비틀거리며 손을 높이 들자 나와 그 사이로 광휘가 벼락처럼 내리쳐 나를 멀리 떨어트려 놓았다. 센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숨을 고르는 동안 나는 고개를 들어 스크린의 점수판을 살폈다.

    [신지의 ―1 : 센 ―2]

    점수 차는 1점, 남은 경기 시간은 20분. 고작 한 점 앞선 것으로 승리에 가까워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부상의 정도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광휘 때문에 타 버린 목은 쓰라리긴 하지만 금세 적응되었다.

    하지만 발등과 옆구리에 생긴 부상은 센의 전투에 분명히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아마테라스의 지속 시간을 줄이고 그의 기량을 확실하게 떨어트리려면 한 번의 치명상이 더 필요하다.

    ―우우웅.

    방아쇠를 길게 당기자 필드 전체의 공기가 울었다. 아지랑이처럼 센의 형체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고 어느새 그의 손안으로 들어온 새하얀 검 역시 불규칙적인 속도로 반짝거렸다.

    센은 바닥에 꽂은 검에 몸을 기댄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검을 세게 잡았는지 주름진 손등 위로 핏줄이 선명하게 섰다.

    발과 복부에 상처를 입혔으니 그다음으로 노려야 할 건 그의 오른쪽 어깨다. 무기까지 제대로 들지 못하게 되면 그를 확실하게 이길 수 있겠지.

    ‘미안해요, 센. 저도 이 경기에서 무조건 이겨야 해요!’

    ―탕, 탕, 탕.

    다친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기분은 불쾌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머릿속을 뒤흔드는 음파가 사라지자마자 센이 몸을 일으켰지만, 탄환을 발사하자마자 다시 방아쇠를 잡아당긴 탓에 그는 그 자리에 다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퍼버벙!!

    그의 몸 앞으로 광휘가 떨어졌다. 땅을 헤집은 빛줄기는 먼지바람을 일으켜 순식간에 센을 숨겼고, 흙이 워낙 짙게 깔린 탓에 그의 인영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필드는 먼지바람으로 가득합니다! 센 헌터, 부상을 많이 입은 걸로 보였는데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점수 차이긴 하지만, 여전히 신지의 헌터가 조금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진동하는 공기를 타고 해설진들의 말이 들렸다. 필드 내부는 기묘할 정도로 고요해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철컥.

    센이 서 있을 먼지바람의 정중앙을 향해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허공을 가르고 내게서 멀어질수록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탱그랑.

    그때 작은 쇠 구슬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젠장. 지금부터 시작이군.’

    ―휘이잉.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먼지바람이 완전히 걷히자 그 안에서 센이 걸어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마테라스’ 상태의 센이었다.

    ―아마테라스!

    ―드디어 센의 고유 스킬, 아마테라스가 나왔습니다!

    시끄러운 중계를 뒤로 한 채 아마테라스의 축복을 받은 센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머리 뒤로 원형의 후광이 떠 있었고, 새하얀 빛무리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잿빛이던 그의 눈도 어느새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파지직.

    피가 멎지 않았던 옆구리와 발등도 서서히 원 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상승된 회복력으로 얼마나 부상을 치유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확실해 보였다.

    “예상보다 너무 일찍 썼네요.”

    “……”

    “그래도, 뭐.”

    ―쿵!

    “커헉……!”

    “남은 시간 안엔 끝낼 수 있겠죠.”

    ―서걱.

    ‘뭐야?’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센이 코앞까지 와 있었다. 미소를 머금은 그의 얼굴에서 천천히 고개를 내리자 아이테르의 로브 밖으로 배어 나오는 검붉은 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악!”

    ―쾅.

    그가 발로 복부를 걷어찬 탓에 그대로 몸이 뒤로 날아갔다. 순간적으로 호흡하는 법을 잊어 몇 번이고 헛구역질을 났고, 날아갈 뻔한 정신을 겨우 잡아 다시 몸을 일으켰다.

    ―우우웅!!

    눈앞이 새하얘지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센이 내게 달려들기 전에 방아쇠를 길게 당기자 아까보다 훨씬 강한 음파가 필드를 집어삼켰다.

    ‘아까보다 조금 더 세게 내보내는 중이야. 로브가 치유해 줄 때까지 최대한 버텨!'

    ‘알겠어…….’

    자아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긴 한지 새하얀 음파에 아마테라스 상태의 센 마저 휘청거렸다.

    ―콰광!

    “윽!”

    하지만 광휘를 조준할 힘은 남아 있나 보다. 예리한 빛줄기가 내 눈 바로 앞으로 지나가자 난 쉴드로 막아낸 후 뒤로 물러섰다.

    ‘이젠 정말로 방심하면 당한다.’

    손가락을 방아쇠에서 떼면 센은 아까처럼 무서운 속도로 내게 달려들 것이다. 근접 전투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고 내가 잘하는 전투로 이끌어 가야 해.

    ―쾅!

    여전히 피가 흐르긴 했지만 일단 손가락을 풀어 음파를 거뒀다. 그러자 센이 한 번의 도약으로 바로 앞까지 다가왔고 그와 동시에 다시 방아쇠를 당겨 커다란 쉴드를 펼쳤다.

    “그 무기로 이 정도로 강한 쉴드를 만들다니…….”

    “큿……!”

    쉴드를 사이에 둔 채 센이 중얼거렸다. 그가 검에 힘을 줘 강하게 짓누르자 쉴드를 지탱한 팔이 후들거렸다. 쉴드 역시 가운데부터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쨍그랑!

    쉴드가 산산조각이 나자 곧바로 몸을 숙였다. 그 탓에 검은 허공을 갈랐고 센의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지금이다!’

    ―탕!!

    “윽!”

    그의 발목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공격을 눈치챈 센이 재빠르게 다리를 들어 피한 후 나를 걷어찼지만, 탄환은 이미 그의 발목을 스친 후였다.

    ―콰아앙!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내 앞뒤로 광휘가 쏟아졌다. 공격하기 위함이 아닌 내 발목을 묶어두려 한 것인지 광휘가 사라지자마자 새하얀 검이 다시 얼굴 앞으로 슥 들이밀어졌다.

    ―끼기긱.

    배트로 바꿀 틈도 없이 확성기로 검을 흘렸다. 공격이 막힌 센은 곧바로 검을 뒤로 뺀 후 이번엔 아래에서 위로 올려 쳤다.

    ―탱그랑!

    센이 검 등으로 자아를 쳐내고는 곧바로 방향을 바꿔 내 팔을 노렸다.

    ―후두둑

    “윽!”

    예리한 날이 팔뚝을 깊게 파고들며 가로로 긴 상처를 냈다. 왼쪽 팔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쓰라려 나도 모르게 이를 아득 갈았다.

    ―쿵!

    배트 형태의 자아를 소환해 센을 향해 휘두르자 그는 검으로 가볍게 그것을 막은 후 다시 나를 걷어찼다.

    “윽, 허억, 큿……!”

    바닥에 엎어진 채로 숨을 토해낼 때마다 시야가 자꾸만 흐려지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로브가 자상들을 치유해주고 있긴 했지만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벌어져 피도 제대로 마르지 않았다.

    ‘속도를 도저히 못 따라가겠어…….’

    센이 아마테라스를 쓰기 전엔 내가 무기를 바꿀 시간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지금은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지금의 그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지금의 그는 태양신 아마테라스, 신을 닮아 있었다.

    ―쿵, 쿵.

    죽음의 공포와는 또 다른 절망감이 몸을 짓눌렀다. 10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안에 그를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또각.

    센이 나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그의 게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미 내 패배를 예상한 듯한 센의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생각해야만 해. 그의 속도를 견디면서 공격할 방법을 떠올려야만 한다고.’

    지금 상황에서 센을 제압할 방법은 확성기 형태의 자아로 음파 공격을 하는 동시에 배트나 탄환으로 유효타를 만드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자아를 둘로 쪼개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하다.

    “그 무기로 이 정도로 강한 쉴드를 만들다니…….”

    공격이 성공했던 순간을 떠올리던 중 센이 내게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생각해보니 단단하게 뽑았던 그 쉴드는 센의 검과 맞부딪혀도 부서지지 않을 만큼 튼튼했지.

    “아.”

    복잡했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정리됐다. 짧은 순간 절망했던 것이 우스워질 정도였다.

    ‘자아와 함께 들 수 있는 무기가 있었잖아.’

    ―또각.

    센이 내 바로 앞에 멈춰 섰다. 피가 눌어붙은 새하얀 버선이 내 시야에 걸렸다.

    “포기하시는 건가요?”

    “…….”

    “…제게 창조자에 대한 모든 정보를 말하셔야겠군요.”

    ―후웅.

    그가 검을 높이 드는 것이 느껴졌다. 단두대 밑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쯤.

    ―쾅!!

    난 그의 공격을 막았다.

    “뭐, 뭐……?”

    그가 말을 더듬으며 내 손에 들린 무기를 바라보았다. 크게 뜬 눈과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입이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끼기기긱.

    그의 시선의 끝엔 자아로 뽑아낸 음파로 만든 배트가 있었다. 음파 배트는 검의 무게를 단단히 받아내고 있었다.

    “센 씨.”

    “크읏……!”

    ―깡!

    센의 검을 튕겨내며 말을 덧붙였다.

    “당신이야말로 창조자랑 이별할 준비를 하셔야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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