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38화 (238/366)

238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기는 세계 헌터 교류전 한일 시범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고척 스카이돔입니다.

―벌써 마지막 경기만을 앞두고 있는데요, 현장의 열기가 아주 어마어마합니다.

―맞습니다~ 김수진 아나운서, 방금 전에 있었던 강세빈 헌터와 사와구치 헌터의 경기는 어떻게 보셨나요.

―베테랑 헌터를 꿈꾸는 근접 전투계 헌터라면 꼭 봐야 하는 경기로 감히 말씀 드리고 싶네요.

―이야, 극찬이시군요. 저도 동의합니다. 특히 강세빈 헌터의 공격 스위칭 능력이…….

해설진들이 세빈이와 사와구치의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경기장의 한가운데엔 필드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스크린 속의 세빈이의 움직임을 보며 나도 가볍게 몸을 풀었다. 다행히 처음 경기장 안으로 발을 들였을 때에 비해 긴장이 풀린 상태였다.

―팔랑.

어느 정도 관절을 풀어준 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센의 스킬 설명지를 다시 한번 살폈다.

[센]

*속성 : 빛

*사용 스킬

1. S급 강화계 스킬 ‘아마테라스’

― 일정 시간 동안 공격력, 방어력, 회복력, 이동 속도가 대폭 상승한다.

― 시전자의 체력에 따라 지속 시간이 달라진다.

― 재사용 대기 시간은 1시간

1―1. 연계 패시브 스킬 ‘야타노카가미’

―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시신경에 전달한다.

*제 시력을 담당하는 스킬입니다.

2. A급 공격계 스킬 ‘광휘’

― 일직선의 빛을 소환한다.

구원자의 눈동자로 본 정보들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연계 패시브 스킬인 야타노카가미에 대한 추가 정보까지 있었다.

‘역시 눈이 안 보였구나.’

초점 없이 흐린 그의 눈동자를 봤을 때부터 짐작하긴 했지만, 그의 시력은 이미 기능을 다 한 모양이었다. 저 스킬 덕분에 지금까지 현역 헌터 수준의 기량을 보일 수 있는 거겠지.

이 승부의 관건은 아마테라스의 지속시간에 달렸다. 센이 경기 시간 내내 아마테라스를 유지한다면 나에게는 굉장히 불리한 싸움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센의 체력을 소모시켜 아마테라스 상태를 해제시키는 것부터 성공해야 한다.

“신지의 헌터, 스탠바이하시겠습니다.”

“아, 네.”

헤드셋을 쓴 스태프가 내게 신호를 주자 난 더그아웃 밖으로 나와 필드 쪽으로 나아갈 준비를 했다.

“그럼 이번 시범전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경기에 출전할 선수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헌터 협회 소속 신지의!”

아나운서가 내 이름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외치자 경기장이 떠나가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나를 비추고 있는 핀 조명 때문에 눈 뜨기가 힘들었지만 금방 적응하곤 필드 쪽으로 걸어 나갔다.

―신지의 헌터는 세계 최초 SS급 헌터이자 각성 당시부터 DF 랭킹 1위를 차지한 헌터죠!

―맞습니다. 무려 S5라는 엄청난 DF 수치를 갖고 있죠. 그리고 그리스 S급 던전 타임 어택에서 S급 몬스터를 상대로 페이즈 스킵을 만들어 낸 바가 있습니다.

―그때 속사포 씨와 함께 해설을 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하하! 저도요. 4일 연속 중계를 한 경험은 정말 잊을 수가 없었죠.

해설진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금방 필드에 다다랐다. 직원의 안내와 함께 큐브 안으로 완전히 발을 들이자 경기장을 가득 채웠던 관중들의 응원 소리와 진행 목소리가 제법 멀게 들렸다.

―다음 선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일본 헌터 협회 소속 센!

―와아아아!!!

센의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그가 자신의 더그아웃에서 나와 필드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하나로 틀어 올린 백색의 머리카락과 남색 기모노가 더욱 대비되어 멀리서도 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조명을 받은 기모노 위의 금색 실이 신비롭게 반짝거렸다.

―센은 일본 헌터 협회 초대 협회장이자 일본 최초 S급 헌터입니다.

―게이트 오픈과 동시에 각성을 한, 경력 30년의 베테랑 헌터죠!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기량은 현역 때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빛 속성 헌터의 세대 교체 경기라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자, 양 선수 모두 필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센은 필드 안으로 들어와 나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오랜만입니다, 신지의 헌터.”

“안녕하세요.”

센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고개를 살짝 숙여 그의 인사를 받자 직원들이 센서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피격 센서 부착 도와드리겠습니다.”

직원은 파스처럼 생긴 작은 센서를 목 뒤와 양쪽 손목에 붙여 주었다.

“센서에 스킬을 한 번 사용해 주시겠어요? 신지의 헌터의 스킬 외의 타격이 감지되면 피격 횟수가 상승하는 시스템이라 협조 부탁드립니다.”

“아, 네.”

―투웅.

센서를 향해 자아의 방아쇠를 당기자 소리 탄환이 센서를 관통하더니 곧 사라졌다. 직원이 태블릿을 두드리며 무언가를 확인한 후 완료됐다는 말과 함께 필드 밖으로 사라졌다.

―쿵.

필드의 문이 닫히자 벽면을 따라 배리어 겔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사람을 향해 무기를 겨눠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정적을 뚫고 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쳤지만, 어차피 어떤 방향으로든 그에게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없진 않죠.”

“어떠셨나요?”

“…썩 좋은 경험은 아니었어요.”

“하하.”

센이 낮게 웃었다. 내 말에 동의하는 듯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동감해요. 유쾌한 경험은 절대 아니죠.”

“센 씨도 겪어 보셨나요?”

“네.”

그는 털 달린 겉옷의 단추를 잠그며 말을 덧붙였다.

“게이트 오픈 초기엔 전 세계가 무척 혼란스러웠거든요. 각성자를 제압할 각성자가 필요했답니다.”

“센 씨도 그 전투에 참여하셨군요.”

“네. 그때 김 회장을 처음 만났죠.”

짧은 담소가 오갈 무렵 경기장의 스크린에 카운트다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숫자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귀에 꽂혔다.

“뭐, 옛날 얘기를 하려고 물어본 건 아닙니다.”

“…….”

“마치 그때처럼, 제가 최선을 다해서 싸울 거라는 걸 말씀드리려 한 것입니다.”

털이 쭈뼛 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 잊고 있던 긴장감이 다시금 내 몸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저도 질 생각은 없습니다.”

“하하, 늙은이를 상대로 전력으로 나와 주신다니.”

―삐이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센이 반지 위에 손을 올렸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철컹.

그의 손에 새하얀 검이 들렸다. 세빈이의 영(影)과 정반대로 손잡이부터 검날까지 전부 새하얀 검이었다. 은은한 빛무리가 검 주위를 감싸고 있어 나도 모르게 그의 무기에 시선을 뺏길 뻔했다.

‘아직 아마테라스는 사용 전인 것 같네.’

센은 검을 든 채로 천천히 내게 다가올 뿐 큰 변화는 없었다.

―탕, 탕.

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당기자 곧바로 센이 몸을 숙여 피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는 걸 보니 그가 베테랑 헌터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콰과광.

이번엔 센의 광휘가 나를 노렸다. 센이 손을 들자 금색 빛줄기가 사선으로 떨어져 나를 향했고 발 없는 말과 함께 뒤로 물러나 그것을 피했다.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곳은 빛으로 그을러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기의 사이로 센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말 없이 서로를 응시하는 동안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었다.

―쾅!!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은 금방 끝났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무기를 들었고 센이 내게 달려듦으로써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쨍그랑!

내 어깨를 향한 센의 검을 쉴드로 막자마자 쉴드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깨졌다. 센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린 틈을 타 그의 어깨를 뛰어넘었고 방아쇠를 길게 당겨 공기를 진동시켰다.

“읏.”

센의 짧은 신음을 들으며 뒤로 착지하자마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검으로 몸을 지탱한 그의 모습이 보였다.

―후웅!

센의 다리를 향해 탄환을 쏘기 위해 방아쇠를 잠깐 놓은 순간 그가 몸을 돌려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그러자 날카로운 검끝이 아슬아슬하게 내 코끝을 스쳤다. 피격으로 인식되진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늦게 피했다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했다.

―쿵.

센과 나 사이에 쉴드를 세워둔 후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아마테라스 없이도 이 정도라니.’

자아의 힘을 조절하긴 했어도 음파 공격을 온몸으로 버티고 곧바로 기습까지 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테라스까지 사용하면 지금보다 훨씬 날카로운 공격이 들어오겠지.

―끼기긱!

쉴드를 넘고 달려드는 센의 검을 배트로 흘렸다. 무기의 변화에 놀랐는지 센이 멈칫하자 난 그 틈에 자아를 다시 확성기로 바꿔 그의 발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윽!”

“첫 유효타가 나왔습니다~!”

“신지의 헌터 선취점!”

벽 너머로 잔뜩 흥분한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로 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게타를 신은 그의 발등 위로 새빨간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무기가 바뀐다는 걸 제가 잊고 있었네요.”

“알고 계셨군요.”

“그리스 타임 어택전을 정말 인상 깊게 봤으니까요.”

센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자세를 잡더니 곧장 나를 향해 달려왔다.

―우웅.

―탕!

음파 공격의 사이 사이에 탄환을 발사했다. 하지만 센은 음파가 공간을 진동시키는 동안만 움직임이 무거워졌을 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탄환을 피할 땐 평소와 다름없이 매우 민첩했다.

―챙!

그는 탄환 세 개를 연달아 피한 후 마지막으로 날아온 건 검날로 튕겨냈다.

“쳇……!”

―끼기긱!

센의 검과 내 배트가 또다시 맞부딪혔다. 공격을 흘리려 팔에 힘을 푼 순간 그 역시 팔을 드는 바람에 무의미한 시도가 되었다.

―챙, 챙, 챙.

센은 방금 전처럼 내 무기가 바뀔 것을 경계하는 건지 무기를 맞대는 시간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다. 여러 방향으로 검을 휘두르며 나를 필드의 끝 쪽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엄청난 근접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센 헌터의 공격이 휘몰아치고 있는데요……! 신지의 헌터도 잘 방어해 주고 있습니다!

벽과 가까워지긴 했는지 해설진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크게 들렸다.

‘슬슬 역습을 해야 하는데……!’

―깡!

그때 센이 양손으로 검을 쥔 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곧바로 배트를 가로로 돌려 그 공격을 막은 후 오른쪽으로 몸을 틀자 이유 모를 열기가 머리 위쪽에서 느껴졌다.

“윽?!”

―콰과광!!

광휘가 기다렸다는 듯 내 위로 쏟아졌다.

“콜록! 콜록, 커헉……!”

반사적으로 쉴드를 펼쳐 급소는 피했다. 하지만 목 뒤를 정통으로 맞았는지 펄펄 끓는 물을 마구 붓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타닥!

고통스러워할 시간조차 없었다. 센의 검이 새카만 연기를 가르고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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