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37화 (237/366)

237화

“허억… 컥!”

갑작스러운 공격에 사와구치가 눈을 크게 뜬 채로 세빈의 손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숨통을 조여오는 커다란 손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저항할수록 세빈의 손이 턱 바로 밑의 여린 살을 파고들었다.

―강세빈 헌터의 기습이 성공적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와구치 헌터, 단검을 다시 소환해 강세빈 헌터의 손을 찌르려 하지만 힘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피격 센서로는 공격이 인정되었습니다! 점수로는 사와구치 헌터가 훨씬 앞선 상황!

[강세빈 ―11 : 사와구치 미나토 ―4]

사와구치가 단검으로 세빈의 손목을 그을 때마다 세빈의 피격 횟수가 빠르게 올라갔다. 하지만 그의 손에 힘이 풀린 상태라 세빈의 피부를 살짝 찢는 수준의 공격에서 그쳤다.

[LIVE 실시간 채팅]

[아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임 ㄷㄷㄷㄷ]

[강세빈 뭔 금강불괴임?]

[1억뷰 확정 ㅅㄱ]

[내가 사와구치였으면 쟤랑 붙는다고 했을 때 걍 기권함]

[공격계 스킬 없어서 밸런스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밸붕이네]

세빈은 피가 줄줄 흐르는 손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와구치를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을 덧붙였다.

“사와구치 씨 눈에 제가 어떻게 보이는진 몰라도, 절 괴물이라고 부른 건 사과하셔야 할 것 같네요.”

“억, 끄흑, 으극……!”

“이시카와 씨가 저를 좋아하는 건 지금 처음 알았네요. 그 마음 받을 일 없으니 안심하세요.”

―쿵, 쿵, 쿵.

사와구치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들리던 관중들의 목소리는 이미 멀어진 지 오래였고 잔뜩 가라앉은 세빈의 목소리만 고막에 꽂히는 듯했다.

‘무서워.’

스스로가 꼴사나웠지만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기절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숨이 부족해 정신이 멀어질 때면 목을 조르는 힘이 귀신같이 줄어들어 세빈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저한테 누굴 좋아해 본 적도 없을 것 같다고 했죠?”

“허윽, 큭……!”

세빈이 사와구치를 제 쪽으로 살짝 들어 올렸다. 사와구치는 힘겹게 숨을 내쉬며 새카만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빈은 싸늘한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고작 자기 마음을 보답받지 못한 것만으로 징징대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네요."

“이 자식이……!”

―우득.

세빈의 손이 사와구치의 목을 한 번 더 세게 움켜쥐자 그의 몸이 힘없이 축 쳐졌다. 잠든 것처럼 기절한 사와구치를 바닥에 둔 채로 세빈은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쓸데없이 너무 많이 이야기했네.’

세빈은 사와구치의 말에 순간 울컥하는 바람에 그 답지 않게 상대의 속을 뒤집어 놓는 대화를 했다.

―10! 9! 8!

스크린에 뜬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빈은 사와구치를 내려다보았다. 우습게도 대화를 하면서 사와구치와 자신이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점이 말이다.

하지만 세빈은 그를 비웃으며 그와 자신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10년 동안 한 사람만 바라보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사와구치와 달리 세빈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오롯이 자신을 봐줄 때까지 20년, 30년, 아니면 100년이 걸린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0!

―세 번째 경기의 승자는 강세빈 헌터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자랑스럽습니다, 강세빈 헌터!

세빈의 승리가 확정되자 사람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필드 안에 있는 세빈에게까지 그 진동이 전해져 그는 입가에 가볍게 미소를 지은 채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붉은 선혈 때문에 실시간 채팅창은 축하와 걱정의 말로 가득했다.

[LIVE 실시간 채팅]

[(폭죽 이모티콘)]

[대한민국의 자랑! 강세빈 헌터 축하합니다!]

[어깨 찔린 사람 맞음?]

[세빈아 빨리 치료 받아ㅠㅠㅠㅠㅠ]

“하여간 강세빈…….”

그리고 대기실에서 지켜보던 지의 역시 걱정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사와구치의 공격을 굳이 피하지 않고 전부 맞으면서 그의 스킬을 시험하는 그의 모습에 가슴이 몇 번이고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지의에게 있어 세빈과 사와구치의 전투는 하나의 학습 교재였다. 지의는 두 사람이 경기 내내 보여 주었던 움직임을 하나하나 눈으로 담으며, 자신이 활용할 수 있을 만한 동작을 머릿속에 쑤셔 박았다.

―똑똑.

지의가 필드 안으로 들어가는 진우의 모습을 지켜볼 때쯤 협회 직원이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신지의 헌터, 경기장 안으로 이동하시겠습니다!”

“네!”

지의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센의 스킬 설명지를 챙겨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직원을 따라 경기장 안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자신이 곧 센과 싸우게 된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피부에 닿는 차가운 공기, 필드만을 비추는 조명, 그리고 사람들의 응원 소리. 100번의 회귀를 하는 동안에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것이라 모든 것이 낯설었다.

―쿵, 쿵, 쿵.

지의는 가슴 위에 손을 얹어 자신의 심장 박동을 직접 느꼈다. 일정한 속도의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할 수 있어, 지의야.’

자아가 지의의 긴장을 풀어 주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귀에 달린 자아가 은백색의 빛을 작게 뿜어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지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동료로 만들어야 하는 사도는 이제 센뿐이다. 지의에게 있어 이 경기는 그가 98번째의 회귀에서 저질렀던 과오를 바로잡을 기회이자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한 일 보 전진이었다.

‘반드시 이길 거야.’

그의 갈색 눈동자는 선한 의지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 * *

‘공격계 스킬 한 개와 이동계 스킬 두 개…….’

센은 대기실 소파에 앉은 채 지의의 스킬 설명지를 눈으로 찬찬히 뜯어 보았다. 그리스 타임 어택 방송을 본 덕분에 어떤 스킬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 그는 같은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SS급 고유 스킬인 ‘호령여산’이었다. S급 이상의 상급 스킬이라면 자연스럽게 붙어서 나오는 연계 패시브 스킬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두드렸다.

‘SS급이나 되는데 연계 패시브 스킬이 없는 건 확실히 이상하네.’

그때 센의 무기,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가 입을 열었다. 센은 웅웅거리며 진동하는 반지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뭐든지 100%라는 건 없으니까요. 오히려 일반적이지 않은 존재이니 패시브 스킬이 있는 게 더 이상할 수도 있죠.’

‘레이.’

‘네?’

‘뭘 불안해하는 거지?’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가 센에게 차분하게 말을 붙였다. 제 무기를 내려다보던 센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

그가 센 자신보다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있을 때마다 늘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센은 손으로 반지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 경기에서 제가 이겨야 할지, 져야 할지 솔직히 고민이 되어서요.’

―키이잉.

센이 가슴 위로 손을 얹자 검푸른 빛이 보석이 그의 손안에서 반짝거렸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비책은 절대자의 힘이 아니라, 당신의 힘이에요.”

지의가 맞은 편에 앉아 자신을 보며 이야기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고집스럽지만 올곧고 선했던 눈동자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는 센의 마음을 흔들었고, 결국 창조자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 어린 각성자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그동안 전 뭘 했던 걸까요.’

‘레이.’

‘사기꾼에게 소원을 빌고 영문 모를 돌덩이를 몸에 집어넣은 사람이 된 것이겠네요.’

―텁.

센이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자 그의 손 위로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덮였다. 센이 살며시 눈을 뜨자 자신과 똑같은 형체를 갖고 있는 새하얀 인영이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건 레이의 잘못이 아니야.’

‘…….’

‘난생처음 보는 신에게 소원까지 빌어 가면서 네 사명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잖아.’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센은 왠지 모르게 애처로워 보이는 제 무기를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은 후 상태창을 열어 자신의 사명을 살폈다.

<사명>

[아마테라스의 의지]

[네가 태어난 땅을 네 손으로 지켜라.]

[달성도 : 9%]

[보상 : 고유 스킬 ‘아마테라스’의 지속 시간 무제한]

―까득.

달성도를 확인한 센이 못마땅하다는 듯 이를 갈았다. 80%까지 상승했던 달성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떨어지더니 결국 한 자릿수대가 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그의 무기 역시 입을 꾹 다문 채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일단 경기는 최선을 다할게요. 국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요.’

침묵을 먼저 깬 건 센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뒤 스킬 설명지에 나온 지의의 이름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다음에 이 각성자에게 창조자에 대한 정보를 전부 캐내죠. 정말로 그가 사기꾼이라면 저희도 대책을 세웁시다.’

‘그래.’

―똑똑똑.

센을 데리러 온 직원이 대기실의 문을 두드렸다. 문 너머의 직원에게 대답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남색 기모노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금색 실로 수놓아진 오비도 단단히 묶었다.

―사락.

그러곤 인벤토리에서 남색 하오리를 꺼내 팔을 끼웠다. 옷깃에 달린 새하얀 털이 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거렸다.

‘레이.’

‘네.’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의 부름에 센이 뒤를 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톡.

그의 무기는 제 주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댄 채 중얼거렸다.

‘네가 태어난 땅은 곧 내가 태어난 땅과 같아.’

‘…네.’

‘우리는 함께 그 땅을 지키는 거야.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마.’

‘고마워요.’

―파앗.

무기는 다시 반지가 되어 센의 손가락에 끼워졌다. 센은 자신의 이마를 매만지며 싱긋 웃었다. 무기의 응원 덕분에 아까보다 훨씬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또각.

그는 몸을 돌려 대기실 밖으로 나왔고 더욱 뜨거워진 경기장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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