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자, 경기는 어느새 중반부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15분이 지났는데요 아주 팽팽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금 전 차도윤 헌터의 카운터 공격 이후로 이시카와 선수가 더욱 적극적으로 공격을 펼치고 있는데요. 차도윤 헌터, 긴장을 놓지 말아야겠습니다.
―쾅!
이시카와가 태풍의 눈을 몸에 두른 채 필드 이곳저곳을 날아다녔다. 극복할 수 없는 속도 차이에 도윤은 금방 따라잡혔지만, 그럴 때마다 천재지변으로 겨우 위기를 넘겼다.
‘슬슬 내 공격에 적응한 것 같은데.’
강한 폭풍으로 이시카와의 몸을 밀어낸 도윤이 곧바로 활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
―파바바박!
폭풍을 뚫고 들어간 화살이 이시카와를 노렸지만 이미 공격을 눈치챈 이시카와가 작은 깃털로 모습을 바꾸었다.
“이시카와 헌터, 쿠노이치를 시전해서 모습을 바꿉니다!”
“아~ 저렇게 작게 변신하면 아무리 차도윤 헌터여도 맞히기 힘들죠.”
깃털은 화살들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가더니 금방 제 모습을 되찾아 그대로 도윤의 바로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도윤은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기겁하며 몸을 뒤로 뺐지만.
―쾅!!
“커헉……!”
이시카와가 휘두른 가위가 도윤의 왼쪽 갈비뼈를 정확히 타격했다. 순간 눈앞이 새하얘진 도윤이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지다,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는 천재지변을 시전했다.
―콰광!
도윤의 주위로 번개가 내리치고 폭풍이 일었다. 가위를 벌리고 무서운 속도로 쫓아가던 이시카와가 급하게 몸을 틀어 천재지변의 사정거리 밖으로 몸을 피했다. 그는 심드렁한 얼굴로 바람 위에 앉아 천재지변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렸다.
[LIVE 실시간 채팅]
[반사 신경 도랏나;]
[방금 도윤이 카운터 좋았다… 번개 때문에 아예 접근을 못 하네]
[네네쨩 힘내―! 지지마! (번역됨)]
[필드 천장에 금간 거 아님?ㄷㄷㄷㄷ 차도윤이 뚜벅이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게임 끝났을 듯]
[다른 헌터들한테 밀려서 그렇지 도윤이도 DF 랭킹 12위잖아]
스크린은 숨을 몰아쉬는 도윤을 비추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고통 때문에 일그러져 있었고, 옆구리를 움켜쥔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으윽…….”
날카로운 고통이 신경을 타고 올라왔다. 최소 두 개 정도는 부러진 것 같았다. 도윤은 아랫입술을 꾹 문 채로 고통을 참다 결국 하늬바람을 사용했다.
―휘이잉.
산뜻한 봄바람이 도윤의 주위에 불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카락이 초록빛 바람을 따라 가볍게 흔들리자 고통이 미세하게나마 줄어들기 시작했다.
―차도윤 헌터의 치유계 스킬, 하늬바람이 필드에 불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아까의 공격으로 갈비뼈가 골절된 게 아닌가 싶네요.
―두 가지 스킬을 동시에 시전하면 기력이 상당히 소비될 텐데 말이죠. 이동계 스킬이 없는 만큼 체력 조절이 더더욱 중요해지겠습니다.
―아~ 말씀드린 순간 천재지변이 사라졌습니다! 이시카와 헌터, 일어나서 공격을 준비합니다!
필드에 짙게 깔린 먹구름이 사라지자 이시카와는 가위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은 후, 바람을 타고 도윤을 향해 빠르게 내려갔다. 거리만 좁힐 수 있다면 이시카와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굴러갈 것이 분명했기에, 그는 키득거리며 더욱 가속하였다.
―쾅!!
도윤의 활과 이시카와의 가위가 강하게 부딪혔다. 몸체끼리 부대끼며 날카로운 소리가 나자 도윤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무기를 한 차례 밀어냈다.
―쿵, 쿵, 쿵.
하지만 다시 달려든 이시카와가 가위를 휘둘러 도윤의 활을 이리저리 내리쳤다.
묵직한 소리가 필드에 울려 퍼졌다. 도윤의 손도 서서히 저려오기 시작했다.
“네 스킬은 정말로 인상적이다. 날씨를 다루는 엘프 미청년, 존재 자체만으로 날 두근거리게 하는군.”
“…….”
“뭐, 그림자 군주만큼은 아니지만.”
―퍽!
이시카와가 발로 도윤의 명치를 차 뒤로 밀었다. 도윤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뒤로 굴렀고 곧바로 몸을 일으켜 시위를 당겼다.
[차도윤 ―2 : 이시카와 네네 ―15]
예리한 화살의 끝이 이시카와의 손등을 스쳤다. 한두 방울씩 맺히던 핏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시카와는 즐겁다는 듯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쾅!
“나를 더 즐겁게 해 보거라!”
“크윽!”
이시카와가 가위를 벌려 날을 보이게 한 후 한 손으로 휘둘렀다. 아까보다 무게감은 훨씬 가벼웠지만 스치기만 해도 살을 깊게 파고들 것 같은 가위 날 때문에 도윤이 바짝 긴장했다.
[LIVE 실시간 채팅]
[존버 메타 가자!!!!]
[5분만 버티면 점수 승임 버텨라 제발…….]
[걍 스킬 쓰면 되잖아 차도윤 개답답 ㅉㅉ]
[자기 스킬에 휘말릴까 봐 안 쓰는 거지 하여간 방구석 X문가들 X나 설쳐요 진짜]
꽤 길게 이어지는 근접전에 경기를 지켜보는 모두가 두 사람에게서 눈을 떼질 못했다.
―경기 종료까지 이제 4분 정도 남았습니다. 초근접전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데요, 아~ 이거 저도 모르게 자꾸 차도윤 헌터에게 기대를 걸게 되네요.
―하지만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죠. 경기의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이시카와 헌터의 공격 성공률이 매우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아나운서는 혀로 입술을 축이곤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여기서 만약 이시카와 헌터가 차도윤 헌터를 기절시키거나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면 경기의 승패는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피잉!
그때였다. 이시카와의 가위와 활이 맞닿아 있는 상황에서 도윤이 시위를 당겼다. 날렵한 바람 화살이 이시카와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자 이시카와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어떻게든 떨어트려서 천재지변으로 시간을 벌어야 해……!’
―핑! 핑!
도윤은 화살이 날아가는 방향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일단 시위부터 무작정 당겼다. 그의 목적은 오직 이시카와를 떨어트려 천재지변을 쓸 완벽한 타이밍을 만드는 것이었다.
“큿……! 이렇게 무식한 공격을 하는 녀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시카와는 크게 당황했지만 여기서 도윤과 거리를 또다시 두게 되면 자신이 승리할 확률이 크게 줄어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눈앞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걸 바로바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차도윤 ―2 : 이시카와 네네 ―18]
하지만 그중 몇 개는 이시카와의 볼과 어깨 부근을 스쳐 계속해서 실점을 허용했다.
[LIVE 실시간 채팅]
[3분!!!]
[와 저 중2병 독하다 화살에 맞아도 한 번을 안 물러서네]
[오른쪽 눈에 흑염룡 깨어난 거 아님?]
[도윤이 파이팅!!!]
이시카와가 이를 악물고 통증을 버텼다. 마음 같아선 물러서고 싶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악착같이 붙어 주마!'”
―휘이잉!
이시카와가 갑자기 태풍의 눈을 시전하자 도윤이 바람에 휩쓸려 중심을 잃고 옆으로 고꾸라졌다.
―아앗, 차도윤 헌터……!
속사포가 안타까움에 탄식하자마자, 이시카와의 가위 날이 도윤의 활을 잡아 멀리 던져 버렸다.
이시카와는 발로 도윤의 갈비뼈를 찍어 누른 후, 가위를 넓게 벌려 도윤의 목을 사이에 둔 채로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펄럭.
그러고는 높이 날아올라 그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발밑으로 보이는 도윤의 일그러진 얼굴이 이시카와의 마음에 썩 든 눈치였다.
“이 몸을 이기려면 10년은 이르겠구나. 진정한 힘의 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지.”
―쿵!
그때 이시카와가 거대한 망치로 모습을 바꾸었다. 도윤은 허겁지겁 자신의 목 양옆에 꽂힌 가위를 잡아 뽑으려 했지만 이미 쿠노이치를 쓴 이시카와가 도윤의 복부를 향해 빠르게 추락하고 난 이후였다.
“컥……!”
전신을 덮친 끔찍한 고통에 도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갈비뼈가 전부 부서져 폐를 짓누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숨 하나 쉬는 것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LIVE 실시간 채팅]
[아………..]
[………]
[졌잘싸…….]
[1분 남았는데…]
도윤이 가위를 치우는 대신 망치 쪽으로 팔을 옮겼다. 손잡이를 잡아 옆으로 밀어내려 했지만, 그마저 고통스러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10, 9, 8]
스크린에 뜬 카운트다운만 야속하게 줄어들 뿐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진다고……?’
도윤은 숨을 헐떡거리며 천재지변을 쓸 준비를 했다. 자신이 휩쓸리는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쿠구궁.
번개를 머금은 구름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도윤의 주위에 불기 시작했다.
―파아앗.
하지만 이내 제대로 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 채 먼지처럼 흩어졌다.
[0]
“와아아!!”
스크린의 경기의 종료와 함께 이시카와의 승리를 알리자 일본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또각.
그제야 이시카와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도윤의 몸 위에서 내려왔다. 그는 땅에 구두 코를 두드려 고쳐 신은 후 가위를 꺼내 제 어깨에 걸쳤다.
―아… 경기 종료를 30초 앞두고, 이시카와 헌터의 연계 공격이 완벽하게 들어갔습니다. 두 번째 경기는 이시카와 헌터의 승리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시카와 헌터.
―저희 입장에서는 많이 아까운 결과네요. 차도윤 헌터의 공격 흐름도 굉장히 좋았거든요.
―후반부부터 이시카와 헌터가 차도윤 헌터의 공격에 완벽하게 적응하면서 공격 찬스가 많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네요.
속사포와 아나운서가 아쉬운 감정을 내비쳤다. 한국 관중석 역시 아쉬운 듯 머리를 부여잡다 도윤을 향한 격려의 말을 쏟아냈다.
“진짜 아깝다.”
“그러게.”
지의도 도윤을 향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필드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승리를 만끽하는 이시카와를 바라보았다.
‘역시 보통 실력은 아니구나.’
바람과 체술을 이용한 전투는 물론 변신 스킬과의 연계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대련했을 때 이시카와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그는 충분히 지의 자신을 이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시카와 양이 츠구나가 씨의 복수를 해줬네! 안 그래, 사와구치…군?”
야마모토가 즐거운 듯 밝게 웃으며 사와구치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음을 참는 사와구치가 있었다.
‘네네가 기뻐하는 모습, 엄청 오랜만에 보네…….’
그의 시선은 이시카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정말로 마왕이라도 되는 양 필드의 한가운데 서서 양팔을 넓게 벌린 그는 사와구치의 눈에 마냥 귀엽게 비쳤다.
“…사와구치 군?”
“아.”
“괜찮아? 얼굴 엄청 빨간데.”
처음 보는 얼굴에 야마모토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사와구치는 겨우 표정을 정리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탁.
하지만 설렜던 그 기분도 잠시, 이시카와가 헌터석 쪽으로 고개를 돌려 세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돌발 행동에 세빈은 물론 관중석에 있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사와구치까지 눈을 크게 떴다.
식지 않은 경기의 열기와 이시카와가 만든 기묘한 분위기와 함께 교류전 첫 번째 경기의 밤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