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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231화 (231/366)
  • 231화

    하미준 헌터의 승리에 경기장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한국 관중석은 소리를 지르며 그의 이름을 연신 외쳤다.

    반면 일본 관중석은 쓰러진 카렌 씨를 보며 침울한 얼굴이 되다, 이내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하여간 골 때리는 새끼. 무기를 무슨 기계로 찍는 것처럼 만들어 버리네.”

    미래 씨가 감자 칩을 입에 쑤셔 박으며 중얼거렸다. 표현은 조금 격했을지 몰라도, 나도 그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각성자의 내면을 반영한 무기를 만드는 스킬인 도깨비방망이, 그 스킬을 전투에 활용할 줄은 몰랐다. 아나운서의 말마따나 저거 하나에 못 해도 수백 수천만 원은 들 텐데, 하미준 헌터는 망설임 없이 공격을 쏟아냈다.

    미팅 내내 친절한 태도를 보이던 카렌 씨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하미준 헌터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여러모로 신선했지.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하미준 헌터 님도 아마 엄~청 힘들었을 거예요.”

    “맞아요. 창조계 스킬들은 공격계 스킬 만큼이나 기력 소모가 크다고 하거든요.”

    이번엔 미나와 무하가 차례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말을 덧붙였다.

    “창조계 스킬이 원자재라고 치면 창조계 각성자는 공장 설비라고 했어요. 자신의 모든 기력을 동원해서 창조물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최근에 창조계 스킬 연구에 관심 가지더니 이것저것 많이 읽었나 보네.”

    “헤헤…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 아닌데.”

    무하가 수줍게 웃으며 말하자 미래 씨가 단칼에 부정했다.

    ―이렇게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는데도 필드 벽이, 이야… 끄떡없네요!

    ―역시 대한민국 부산물 연구소의 작품입니다. 자랑스럽네요!

    ―제거 방법도 아주 간단하다고 하는데요, 경화된 배리어 겔 위로 용해제를 분사하기만 하면 됩니다!

    ―심지어 성분도 인체에 무해한 성분이라고 하죠?

    속사포와 아나운서가 배리어의 성능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띠롱, 띠롱.

    그들의 말이 길어질수록 미래 씨의 태블릿이 요란한 알림음을 내기 시작했다. 아마 배리어의 거래를 원하는 여러 나라의 대기업, 또는 헌터 협회들일 것이다.

    해설진들이 배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마칠 때쯤 필드 철거용 차량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럼 저희는 필드 정리 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푸른 눈의 카렌마저 당해 버리다니. 이 녀석들, 얕봐선 안 되겠군.”

    “텐구의 하오리나 빨리 입어…….”

    사와구치가 한숨을 푹 쉬며 이시카와의 어깨에 카디건 형태의 방어구를 걸쳐 놓았다. 이시카와가 카디건에 팔을 끼우며 눈으로는 대기실 테이블 위에 놓인 도윤의 스킬 설명지를 읽었다.

    “천재지변이라… 나의 크림슨 토네이도보다 사정거리는 길 것 같군.”

    이시카와의 말을 듣자마자 사와구치의 움직임이 덜컥 멈췄다. 자신의 소꿉친구가 해외까지 나가서 기상천외한 만행을 저질렀을까 봐 등골이 서늘해졌다. 순식간에 사색이 된 사와구치를 보며 이시카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설마 진짜로 크림슨 토네이도라고 쓴 거 아니지?”

    “마계의 언어인데 너희 같은 평범한 인간들이 어떻게 알겠나. 당연히 내 상태창에 나온 대로 썼다.”

    “하아…….”

    ‘은근히 상식적이라는 점이 어이가 없어.’

    사와구치는 그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이시카와와 함께 도윤의 스킬 설명지를 마저 읽었다.

    “치유계 스킬이 있네. 피격 횟수까지 복구되진 않겠지만 B급이니까 외상은 금방 치유하겠어.”

    “그림자 군주의 대체품으로 선택한 것치고는 아주 마음에 든다. 이 몸의 파트너가 될 만한 인재인지는 직접 싸워 보고 판단해야겠지만 말이야. 아하하!”

    이시카와가 고개를 뒤로 젖혀 가며 웃자 그의 긴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사와구치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은 채로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이시카와의 경기까지 30분, 슬슬 경기장 내 더그아웃 쪽으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었다.

    사와구치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이시카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가자. 빠트린 거 없지?”

    “없다.”

    “아니, 있어.”

    “뭐?”

    이시카와가 사와구치를 쏘아보자 그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아.”

    해골이 그려진 검은 털 실내화를 신고 있는 자신의 두 발을 보자마자 이시카와가 머쓱한 듯 사와구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또각.

    사와구치가 소파 옆에 있던 이시카와의 구두를 그의 앞에 놓아 주곤 양손을 내밀었다. 이시카와는 익숙한 듯 그 손을 잡은 후 구두에 발을 구겨 넣었다.

    ―탁.

    구두를 다 신은 후 이시카와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머리카락과 긴 치마자락이 빙그르르 흩날리더니 이내 사와구치를 보며 밝게 웃었다.

    “역시 사와구치 너만큼 이 몸을 잘 챙겨 주는 권속은 없군! 앞으로도 내 옆에 있을 것!”

    “윽…….”

    그의 말을 듣자마자 사와구치는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얼굴과 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제 심장 소리가 이시카와에게 들릴까 봐 숨까지 꾹 참았다.

    “왜 그러지? 이 몸의 오라에 당한 건가? 하, 어쩔 수 없군. 나의 힘이 서서히 폭주할 것 같아서 말…….”

    “아, 어, 얼른 가!”

    “아하하하! 힘이 넘치는구나!”

    사와구치가 양손으로 이시카와를 문 쪽으로 밀자 그는 큰 소리로 웃으며 대기실 밖으로 나섰다. 복도에 있던 협회 직원은 그들을 미소로 맞이해 주며 더그아웃 쪽으로 안내했다.

    ‘눈치 없어서 다행이다.’

    사와구치가 이시카와의 뒤를 따르는 동안, 그는 백 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어어어!”

    그때 이시카와가 제 자리에 멈춰 섰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사와구치가 이시카와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오는 세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림자 군주!”

    “…안녕하세요.”

    “아주 오랜만에 보는구나. 이렇게 보니 정말 반갑다.”

    이시카와가 악수를 청하자 세빈이 그 손을 잡아 위아래로 흔들며 악수를 받아 주었다. 이시카와가 헤벌쭉 웃으며 세빈을 바라볼수록 사와구치의 얼굴엔 그늘이 졌다.

    “경기 준비하러 가시나요?”

    “그렇지, 그렇지. 이 몸의 경기에 전율하도록 해라.”

    “아, 네.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세빈이 텅 빈 눈으로 이시카와를 눈에 담으며 입꼬리만 올려 예의상 웃어 보였다. 영혼 없는 행동마저 이시카와의 눈엔 멋있어 보였는지 카디건 소매를 꽉 잡은 채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눌러 담았다.

    ―툭.

    세빈이 두 사람에게서 벗어날 타이밍을 재던 중, 사와구치가 이시카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가자, 이시카와.”

    “사와구치, 이 몸이 지금 그림자 군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느냐.”

    이시카와가 성가시다는 듯 인상을 팍 구기자 사와구치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는 자신의 갈색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기며 세빈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세빈은 별다른 반응 없이 그의 시선을 묵묵히 받아낼 뿐이었다.

    “이시카와 헌터, 이제 이동하셔야 합니다.”

    “그래. 그럼 다음에 보지, 그림자 군주.”

    “…네.”

    직원의 말에 이시카와가 세빈을 향해 인사한 후 그대로 몸을 돌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쳇.”

    사와구치는 마지막으로 세빈을 한 번 더 노려보며 이시카와의 뒤를 부지런히 따랐다.

    ―또각, 또각.

    이시카와의 구두 소리가 멀어지고 두 사람의 모습이 점이 될 때까지 세빈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예의상 보였던 미소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 * *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기는 세계 헌터 교류전 한일 시범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고척 스카이돔입니다.

    ―필드가 새로 설치되는 동안 휴식 시간을 잠깐 가졌는데, 열기가 식기는커녕 아까보다 더 뜨거워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김수진 아나운서, 아까 경기 어떻게 보셨나요?

    ―아, 대단했죠. 엄청난 명승부였어요. 특히 하미준 헌터의 마지막 역습은 정말 길이길이 화제가 될 장면이었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자 경기장의 대형 스크린에 미준이 도깨비방망이로 표창을 한 움큼 뽑아내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다시 봐도 엄청나게 재치 있는 대처였어요.

    ―네티즌분들이 벌써 저 전투에 이름을 붙여 주셨더라고요.

    ―어떤 이름이죠?

    ―12/27 하미준 자본 대첩.

    ―아하하!

    속사포의 말에 아나운서가 크게 웃었다. 관중석에 있던 사람들도 저마다 웃음을 터트리며 핸드폰으로 하이라이트 영상을 다시 시청했다.

    ―우우웅.

    필드 설치 차량이 빠지자 경기 스태프가 아나운서에게 사인을 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마이크를 입 앞으로 가져왔다.

    ―자, 말씀드린 순간 두 번째 경기를 시작할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바로 선수 소개로 넘어가겠습니다~

    어느새 경기장 내부가 어둑어둑해진 탓에 조명으로 비춘 필드와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는 더그아웃만이 눈에 띄었다.

    ―일본 헌터 협회 소속 이시카와 네네!

    이시카와가 호명되자마자 그는 더그아웃에서 날아올라 공중에서 가볍게 한 바퀴를 돌았다.

    ―쾅!!

    그러더니 이내 자신의 무기인 ‘바보의 가위’로 필드 바로 앞을 내리찍으며 강하게 착지했다. 때아닌 등장 퍼포먼스에 관중들이 열광했고 실시간 채팅창 역시 웃음과 놀라움으로 도배되었다.

    [LIVE 실시간 채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 혹시 애니메X트?]

    [흑세라+안대+히메컷 = 찐.]

    [캐릭터 선택창인 줄 알았음]

    ―이시카와 헌터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스킬을 사용할 것으로 보이네요.

    ―앞선 경기와 달리 이번 경기는 양쪽 모두가 S급 공격계 스킬 보유자입니다.

    ―치열한 전투가 예상되는군요. 그러면 바로 다음 선수 소개하겠습니다! 대한민국 헌터 협회 소속 차도윤!

    뜨거운 환호를 들으며 도윤이 더그아웃 쪽에서 차분하게 걸어 나왔다. 청바지에 평범한 아이보리 색상의 목폴라 니트를 입은 그의 모습이 스크린에 잡히자 다른 쪽 스크린에 그의 프로필 정보가 나타났다.

    ―차도윤 헌터 역시 본인이 갖고 있는 스킬을 전부 사용할 예정입니다.

    ―아, 지금 보니 둘 다 바람 속성 헌터네요!

    ―이시카와 헌터의 태풍의 눈은 본인의 주위로 강한 바람을 일으키는 스킬이고, 차도윤 헌터의 천재지변은 원거리에서 지정된 공간에 폭풍과 기상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스킬의 파괴력과 활용적인 측면에서는 차도윤 헌터가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봅니다.

    해설진들의 설명이 울려 퍼지는 동안 두 사람은 필드 안으로 발을 들였다.

    “활을 가진 엘프 미청년이라… 너무 클리셰라서 오히려 아름답군.”

    “…….”

    피격 센서를 몸에 부착하는 와중에도 입을 쉬지 않는 이시카와를 바라보며 도윤이 미간을 구겼다. 도윤은 그가 하는 말 중 단 한 글자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기기만 하면 되니까 상관없겠지.’

    ―탁.

    도윤이 자신의 무기, ‘나팔꽃’을 들었다. 연둣빛 바람이 그의 몸을 훑어 머리카락이 흔들리자 이시카와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자, 모든 준비가 끝난 것 같군요!

    ―그렇다면 카운트다운 시작하겠습니다!

    스크린에 뜬 숫자를 사람들이 일제히 외치기 시작했다. 도윤과 이시카와는 서로를 바라보며 무기를 고쳐 쥐었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경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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