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30화 (230/366)

230화

―쾅!!

“큿!”

미준이 재빨리 옆으로 굴러 피했다. 방금까지 자신이 서 있던 곳은 하시히메의 날카로운 손톱이 박혀 있었다. 하시히메는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미준을 눈으로 좇다 이내 제 역할을 다한 듯 완전히 물이 되어, 지면 위로 쏟아졌다.

“하시히메!!”

―아~ 나왔네요! 츠구나가 헌터의 고유 스킬 하시히메!

―하시히메, 정확히 어떤 스킬입니까?

―츠구나가 헌터의 함정계 스킬로, 공기 중의 수분을 이용한 투명 함정입니다. 그 함정에 닿으면 곧바로 수신 하시히메가 나타나 공격하죠!

―그렇군요! 스킬 설명을 들으니 아까 노멘을 시전했던 것이 하시히메를 설치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나운서와 속사포가 해설 테이블에 올려 놓았던 스킬 설명지를 슬쩍 보곤 능숙하게 대답했다.

[LIVE 실시간 채팅]

[카렌 스킬 왤케 무서워ㄷㄷㄷㄷ]

[조만간 공포 영화 출연할 듯]

[진짜 개무섭다]

노멘에 이어 하시히메의 등장에 채팅창은 순식간에 무섭다는 내용으로 도배되었다.

―철컥

“지은이 보고 있는데 짜증 나게 진짜…….”

카렌이 욱신거리는 몸을 겨우 움직여 크로스 보우를 고쳐 쥐었다. 미준이 전신을 두드려 팬 탓에 온몸이 타는 것처럼 아팠고, 퉁퉁 부은 느낌이 들어 감각이 둔해졌다.

‘그래도 이젠 내가 유리해.’

카렌은 필드 내부에 펼쳐 놓은 자신의 함정들을 눈으로 죽 훑었다. 노멘들이 미준을 몰아세우는 동안 미준의 모든 이동 범위에 하시히메를 설치해 뒀기 때문에 이곳은 곧 하시히메의 영역, 즉 카렌의 영역이 된다.

“얼굴은 안 때렸어. 몸엔 멍 좀 들겠지만 말이야.”

그때 미준이 선심 쓰듯 가볍게 말하곤 도끼를 제 자리에서 던져 받았다. 그 모습에 카렌의 미간이 잠깐 구겨졌지만, 금방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맞받아쳤다.

“아하하~ 역시 미준 씨는 친절하시네요. 저희 팬 분들도 미준 씨가 애인 관계 복잡하고 쓸데없이 돈 X랄만 하는 덩치만 큰 인간이 아니라, 이렇게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 주셔야 할 텐데 말이에요…….”

카렌은 미준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그의 행동에 억지로 끌어올린 미준의 입꼬리도 파르르 떨렸다.

‘저 가식 덩어리는 무조건 이겨야지.’

‘저 카사노바 자식은 무조건 이겨야지.’

두 사람의 머릿속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쾅!!

미준이 다시 카렌의 주위로 굵은 나무뿌리를 뽑아내자, 카렌은 허리에 차고 있던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냈다.

―뚜둑.

그것을 반으로 토막 낸 후 뒤로 물러났고 곧바로 노멘을 시전해 안개 속으로 몸을 숨겼다.

―노멘을 다시 시전했습니다!

―또 한 번의 난전이 예상되는데요. 아, 일단 하미준 헌터 뒤로 이동해 거리를 벌립니다.

―아무래도 방어 태세를 갖춰야 하니…….

―콰과광!!

아나운서가 말을 채 끝마치기 전에 미준의 양옆으로 하시히메가 솟구쳐 나왔다. 하시히메들은 괴성을 지르며 미준을 향해 손을 뻗었고, 미준은 나무 방패로 공격을 막으며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촤아악.

“쳇……!”

하지만 하시히메의 거대한 몸집 때문에 아무리 달려도 그의 팔의 사정거리 안이었다. 하시히메의 손톱이 결국 미준의 등을 할퀴었다.

[하미준 ―4 : 츠구나가 카렌 ―17]

―우웅.

그때였다. 미준의 머리 위로 물방울이 모여들더니 이내 글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浮気者]

―아! 하미준 헌터의 머리 위로 지금 낙인이 새겨진 것 같은데요?

―츠구나가 헌터에게 네 번 공격 당한 대상은 바람둥이의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그리고 방금 하시히메의 공격으로 인해 하미준 헌터가 낙인을 얻었네요.

―낙인이 찍히게 되면 하시히메의 우선 공격 대상이 되니 더욱 적극적으로 회피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속사포가 안타까운 듯 말을 쏟아내자 관중석에서도 탄식이 터져 나왔다.

[LIVE 실시간 채팅]

[이제 15분 남았네]

[하미준 파이팅ㅠㅠㅠㅠㅠㅠ]

[저거 뭐라고 읽음]

[우와 키모노. 바람둥이래]

[미준 누나 아까처럼 다 쓸어버리자 제발제발제발]

―파바박.

하시히메의 공격에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소환된 노멘들이 미준을 향해 크로스 보우의 방아쇠를 당기자 수십 개의 화살이 빠르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콰그작!

미준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물 화살을 나무뿌리로 막은 후, 곧장 노멘들의 다리 쪽으로 도끼를 던졌다. 그러자 가장 앞쪽에 있던 노멘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발목을 감싸더니 곧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쏴아아.

‘젠장. 함정이 안 깔린 곳이 없네……!’

하시히메의 함정에 걸렸다는 걸 알려주듯 또다시 물소리가 들렸다.

“나의 질투심을 자극하지 마!!”

“컥!”

―콰과과광!!

미준이 나무뿌리로 몸을 보호했지만 이번엔 하시히메가 미준의 발밑에서 나타난 탓에 무의미한 방어였다. 하시히메는 미준의 몸을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큐브의 벽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그의 움직임이 잠깐 멎은 틈을 타 화살이 미준의 양팔과 다리를 파고들었다. 아찔한 고통 때문에 미준은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다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하미준 ―9 : 츠구나가 카렌 ―17]

미준의 머리 위로 바람둥이의 낙인이 하나씩 늘수록 노멘으로 가려진 카렌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경기 시간은 어느새 20분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경기 규칙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을 드리자면 경기 시간 안에 상대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종료될 때까지 결판이 나지 않았을 때는 점수를 계산하여 승패를 결정한다는 점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함정을 빨리 제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경기를 지켜보던 세빈이 팔짱을 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완전히 기댔다.

필드 전체에 하시히메가 설치된 이상 미준의 움직임은 자유롭지 않았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노멘들 때문에 제자리에 서서 공격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바스락.

미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 노멘들은 저를 에워싼 채 당장이라도 크로스 보우의 방아쇠를 당길 것 같은 자세를 취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시히메들은 바람둥이의 낙인이 찍힌 자신을 노리고 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얘 스킬이 사람한테만 반응하는 거였나?’

그 순간 미준의 머릿속에 스킬 정보지가 스쳤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그 정보지엔 ‘함정에 닿으면 하시시메가 공격한다’라고만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아직 실험해 볼 만한 방법이 하나 남아 있음을 깨달은 미준이 피식 웃었다.

―어, 하미준 헌터 재킷을 벗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근접 전투를 보여 주려고 하는 걸까요?!

미준이 태연히 재킷을 벗어 자신의 팔에 걸쳤다. 딱 맞게 조였던 넥타이도 느슨하게 풀며 잠시 숨을 골랐다.

[LIVE 실시간 채팅]

[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

[♡♡ 피지컬 미쳤나 봐]

[악마 같은 스타성]

[광배근 쩐다 ㄷㄷㄷㄷㄷㄷㄷㄷ]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쟤 진짜 골 때리네]

‘뭐 하자는 거야……’

노멘들 틈에 숨어서 하시히메를 설치하던 카렌이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카렌!”

“아이씨, 깜짝이야…….”

그때 미준이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카렌은 최대한 숨을 죽인 채 노멘들의 가장 뒤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네 함정, 사람한테만 통해?”

당연히 카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크로스 보우의 방아쇠에 손가락만 건 채로 기습할 타이밍만을 재고 있었다.

‘근데 저 자식 왜 웃고 있지?’

하지만 미준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보자마자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어 심장이 불쾌하게 뛰었다.

―펄럭.

미준이 들고 있던 재킷을 큐브 구석 쪽으로 던졌다. 검은 재킷이 공중을 가르고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지나 싶더니.

―찌이이익!

갑자기 나타난 하시히메의 양손에 의해 무참히 찢겼다.

[LIVE 실시간 채팅]

[저거 에X메스 아님? ㄷㄷㄷㄷㄷ]

[ㅁㅊㄷㅁㅊㅇ]

[부자들 재수 없다]

[내 몇 년 치 연봉이 날아가네]

갈기갈기 찢겨 바닥으로 떨어지는 재킷을 보며 미준이 방긋 웃었다.

“진작 이렇게 할걸~”

―쿵!

미준은 원하는 것을 확인한 후, 도깨비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방망이의 주위로 연둣빛 연기가 모여들자 필드 내는 순식간에 스산해졌다.

―하, 하미준 헌터 지금 고유 스킬인 도깨비방망이를 시전했습니다!

―뭘… 하려는 걸까요? 여기서 새로운 무기를 만들 생각인 걸까요?

―일단은 상황을 좀 지켜봐야겠습니…

―쿵, 쿵, 쿵.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깨비방망이가 미준의 왼손을 그대로 관통해 필드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반응하는 지뢰라서 참 다행이야. 그치?”

―쿵.

도깨비방망이가 미준의 손을 통과할 때마다 그의 손에는 쇠붙이 같은 것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진짜로 뭘 하려는 거지?’

카렌은 이 전투의 흐름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미준을 공격하지도 못했다.

미준이 그 누구도 어떻게 활용할지 몰랐던, 가장 의문스러운 패인 ‘도깨비방망이’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었다.

―쿵.

미준의 방망이질이 열 번이 되고 나서야 멈췄다. 미준은 씩 웃은 후 노멘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 말마따나 돈 X랄 좀 할게?”

―후우웅!

미준이 손에 들고 있던 쇳조각들을 던졌다. 그것들은 사방으로 빠르게 날아가 필드 내부를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이 다리는 건널 수 없다!”

“나를 자극하지 마라!”

그러자 하시히메가 튀어나와 그것들을 잡은 후 그대로 소멸했다.

―표, 표창입니다! 하미준 헌터, 도깨비방망이로 표창을 만들어서 필드 전체에 뿌리기 시작합니다!

―하시히메를 미리 제거하고 전투 시작하겠다는 뜻이거든요, 이건!

필드가 하시히메들로 가득 찼지만 그들의 범위 안으로 들어온 건 오직 미준이 만든 표창뿐이었다. 카렌이 노멘들 틈에 숨어 하나하나 설치했던 하시히메는 작은 표창 하나를 부숴 놓고 제 역할을 다해 버렸다.

―조금 벗어난 얘기긴 하지만 하미준 헌터가 만든 무기는 C급부터 수천만 원을 호가하죠. 저 표창이 어떤 등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 공격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수백억은 금방 넘겠네요.

―허허허… 제가 파이트 클럽 MC로 활동할 때도 별별 상황을 다 보긴 했지만, 이렇게 사치스러운 범위 공격은 처음 봅니다.

[LIVE 실시간 채팅]

[갑자기 에X메스 재킷 찢은 건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정상임?]

[돈 쓰는 급이 다르다 ㅅㅂ]

[힘숨찐 아니고 힘숨부다 힘숨부]

[저 무기만 갖다 팔아도 재벌 1위 될 텐데 왜 안 함?]

[데이트 해야 돼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시히메가 무참히 사라지는 것을 보며 카렌의 넋이 완전히 나갔다. 사방팔방으로 날려버린 표창이 더 이상 하시히메에게 잡히지 않자 그제서야 미준은 땅을 힘차게 차올렸다.

―콰과과광!!

노멘들이 있던 지면 자체를 들어 올리다시피 하여 대지의 보은을 시전하자, 다들 중심을 잃고 크게 휘청거렸다. 미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도끼로 전부 쳐냈다.

“이, 이…….”

그때 노멘 중 하나가 몸을 파르르 떨더니 가면을 집어던지며 미준을 향해 크로스 보우를 겨눴다.

“이 짜증나는 자식아아아!!”

―파바바박.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난 카렌이 방아쇠를 당겨 화살을 쏟아냈다. 하지만 분노에 찬 저격이 제대로 맞을 리 없었다. 미준은 나무 방패로 여유롭게 막은 후 단번에 카렌과 거리를 좁혔다.

“프러포즈 방해해서 미안해, 카렌.”

“너……!”

“근데 스킬 설명지 좀 똑바로 쓰자?”

―뻐억!!

도끼 등이 정확히 카렌의 명치를 쳐올렸다. 카렌은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함을 느끼며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쿵.

공중으로 높이 떴던 그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그가 쓰고 있던 안경이 저 멀리 굴러갔다.

곧이어 두 사람을 비추던 대형 스크린 위로 숫자가 뜨기 시작했다.

[10, 9, 8, 7]

사람들이 목이 터져라 숫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숫자가 0을 향해 점점 줄어갔지만 카렌은 잠에 빠진 것처럼 눈을 감은 채로 미동도 없었다.

―삐이이.

미준의 승리를 알리는 버저 소리와 함께 고척 스카이돔 경기장은 순식간에 함성으로 가득 찼다.

『SS급 비명헌터』

지추 퓨전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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