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27화 (227/366)
  • 227화

    [모의 훈련 종료]

    [소요 시간 : 00:10:02]

    [감지된 스킬 : SS급, 공격계]

    “허억, 헉, 후…….”

    10분대를 돌파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에 역습을 허용하는 바람에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한 자릿수에 들지 못했다.

    ―탱그랑.

    배트를 바닥에 내려놓고 대자로 뻗자 땀에 젖은 등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훈련에만 몰두한 지 4일째, 어느새 시범 전의 첫 번째 경기를 하루 앞둔 날짜가 되었다.

    내일부터는 컨디션 조절을 위해 무리한 훈련은 하지 않을 예정이라 오늘까지 최대한 기량을 끌어올려 놓아야 했다.

    ‘그러고 보니 경기 순서가 어떻게 되더라.’

    인벤토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 포털을 열자 이미 상단에 ‘한―일 시범 경기 일정’ 버튼이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12/27 (토) 5:00 PM ~ 7:00 PM]

    ― 1경기 : 하미준 VS 츠구나가 카렌

    ― 2경기 : 차도윤 VS 이시카와 네네

    [12/28 (일) 5:00 PM ~ 7:00 PM]

    ― 1경기 : 강세빈 VS 사와구치 미나토

    ― 2경기 : 신지의 VS 센

    부담스럽게도 나와 센의 경기는 가장 마지막 순서였다. 하미준 헌터 말마따나 하이라이트 경기로 만들 셈인 것 같았다.

    화면을 밑으로 내리니 응원 게시글과 각 헌터들을 분석해 놓은 글이 한가득 있었다. 모든 게시물의 조회수가 어마어마했고, ‘HOT’이라는 아이콘이 붙은 게시물은 댓글만 몇만 개였다.

    한동안 핸드폰 볼 시간도 없이 살아서 시범 경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뜨겁게 반응하고 있는 줄 몰랐다.

    ―똑똑.

    그때 누군가 훈련실의 유리 벽을 두드렸다. 몸을 일으켜 그 주인공을 확인하자 유리 벽 너머의 최민 헌터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훈련실 쪽으로 발을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밀고 들어왔다.

    “미팅 이후로 처음 보네요.”

    “그날 이후로 신지의 헌터가 훈련실에만 계셨으니까요.”

    최민 헌터는 내 앞에 쪼그려 앉더니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기력 회복제]

    효과는 좋지만 맛은 끔찍한 기력 회복제였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받자, 최민 헌터가 아예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준비는 잘 돼 가십니까?”

    “어느 정도는요. 세빈이가 근접 전투를 많이 봐줬거든요.”

    “근접 전투?”

    최민 헌터가 의외라는 듯 살짝 크게 떴다.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거라서 무기나 스킬 사용에 제약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겠군요.”

    최민 헌터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가 준 기력 회복제를 인벤토리에 넣으며 말을 덧붙였다.

    “센은 수십 년간 검을 잡은 사람이니까 어떻게든 저와 거리를 좁혀서 승부를 볼 거예요.”

    “그 공격을 받아치기 위해서 근접 전투 훈련을 하시는 겁니까?”

    “네. 쉽게 당할 순 없으니까요.”

    최민 헌터를 향해 웃자 그도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근데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그는 주위 눈치를 살짝 살핀 후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여 조용히 말을 뱉었다.

    “센의 파편을 먼저 해결하실 생각이십니까?”

    “네.”

    “그럼 미팅 후에 1층 라운지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네.”

    그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어떤 식으로 설득을 하신 겁니까?”

    “센이 먼저 제안했어요. 경기에서 이기는 쪽이 파편의 주도권을 갖기로요. 그리고…….”

    나는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 말을 덧붙였다.

    “절 회귀자라고 불렀어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최민’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강한 충격]

    그는 몸을 뒤로 훅 빼며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그에게 다시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 후 말했다.

    “그냥 짐작만 하는 수준이었어요. 아니라고 이야기하니까 별말 없이 수긍했거든요.”

    “…창조자가 그에게 이야기한 겁니까?”

    “그랬을 확률이 높죠.”

    최민 헌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만하면 오래 숨기긴 했지.’

    ‘여러 세상을 살다온 사람’에서 ‘여러 번의 삶을 산 사람’으로 평가가 바뀔 만도 하다. 창조자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니까.

    “괜찮아요. 파편은 벌써 절반이나 부쉈고 비스 것도 거의 부순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정말로 괜찮은 것 맞습니까?”

    최민 헌터가 역으로 물어왔다. 그의 질문에 괜찮다고 말을 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목이 메여서 입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센이 날 회귀자라고 불렀을 때 머릿속이 새하얘졌었다. 자아가 날 부르지 않았다면 아마 거기서 모든 패를 내보이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갔겠지. 다시금 심장이 빠르게 뛰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죠.”

    “…….”

    “최민 헌터 앞에선 거짓말도 못 하겠네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최민’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죄책감]

    ‘어?’

    농담 삼아 이야기한 건데 최민 헌터의 얼굴이 순식간에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신지의 헌터의 상태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큰 변화가 있을 때는 상태창이 제게 경고를 줘서 알게 된 겁니다. 혹시라도 제 행동이 불쾌하셨다면…….”

    “아, 아니에요! 전혀 안 불쾌해요! 괜찮아요!”

    최민 헌터가 또다시 난데없는 고해성사를 시작하려고 하자 그의 양어깨를 잡아 흔들며 허튼 생각을 떨치도록 했다. 그는 약간 주눅 든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이젠 숨길 필요도 없으니까 조금 더 의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담백한 격려에 눈이 살짝 시큰거렸다. 고개를 들고 겨우 눈물을 참은 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고마워요, 최민 헌터. 최민 헌터 같은 사람이 제 동료로 있어 줘서 늘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최민’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설렘]

    그도 내 말에 감동을 받은 건지 고개를 홱 돌리곤 입을 꾹 다물었다.

    “그,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최민 헌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입고 있던 점퍼의 지퍼를 턱 끝까지 올렸다.

    “아, 내일 경기 오시죠?”

    “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이틀 모두 있습니다.”

    “그럼 내일 보겠네요.”

    역사적인 교류전의 첫 번째 경기이자, 아자디바르 남매와 미래 씨가 만든 배리어의 성능을 자랑할 수 있는 특별한 자리다. 갑자기 게이트가 말썽을 부리지 않기만을 바라야겠네.

    “훈련 잘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시고.”

    “알겠어요. 내일 봬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훈련실을 나가는 최민 헌터를 향해 손을 흔들자 가벼운 미소가 돌아왔다.

    ―쿵.

    ‘그럼 나도 훈련을 마저 마무리해 볼까.’

    훈련실 앞쪽에 붙은 리모컨으로 재시작 버튼을 누른 후 몸을 풀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10분대를 돌파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 * *

    “어으, 힘들어…….”

    “무슨 영화제인 줄 알았어.”

    세빈이와 함께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냥 입장하면 될 줄 알았더니 헌터들을 비롯한 VIP들은 포토월 앞으로 끌려와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덕분에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 것만으로 진이 다 빠졌다. 경기장은 배리어 테스트를 하러 왔을 때보다 훨씬 정돈된 모습이었다.

    중앙엔 커다란 큐브 형태의 필드가 설치되어 있었고 주위에 큰 스크린이 있어 경기장 내부를 여러 각도로 보여 주고 있었다. 빽빽하게 찬 관중석의 곳곳에서 태극기와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중계석도 있네.”

    “어디? 와, 준비 제대로 했구나.”

    세빈이가 가리킨 곳엔 방송국 로고가 붙은 부스 형태의 중계석이 쪼르르 모여 있었다. 정말로 스포츠 경기 마냥 모든 준비가 이루어지는 걸 보니 좀 신기한데.

    ―사락.

    그때 VIP석 쪽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야마모토 씨와 사와구치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건네자 야마모토 씨가 친절하게 받아 주었고, 사와구치는 예상대로 고개만 까딱 숙였다. 그들은 우리 옆쪽에 나란히 앉더니 경기장을 둘러보며 저마다 말을 얹었다.

    ―♪♬♪.

    경기가 곧 시작한다는 걸 알리듯 웅장한 음악이 경기장 내부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관중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환호성으로 경기장의 열기가 달아올랐다.

    “어!”

    얼마 안 있어 핀 조명이 필드 바로 앞의 단상을 비췄다. 단상의 한가운데 선 사람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

    ―세계 헌터 교류전, 그 역사적인 첫 번째 시범 경기에 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번 경기 해설을 맡게 된 속사포입니다!

    “와아아!!”

    파이트 클럽 MC로 처음 봤던 속사포였다. 내가 그리스 S급 던전 타임 어택에 도전했을 때, 공중파 방송국 중계를 맡은 이후로 여러 곳에서 러브 콜이 왔다고 하더니 아예 시범 경기 중계 자리까지 꿰찼나 보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잦아들 때쯤 속사포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세계 헌터 교류전은 전 세계 헌터들의 선의의 경쟁을 기반으로 실력 증진을 도모하여 몬스터들로부터 세상을 지키자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허, 어차피 랭킹 줄 세우기나 할 거면서.”

    “사와구치 군?”

    사와구치가 비아냥거리기 무섭게 야마모토 씨의 경고가 들어왔다. 곁눈으로 슬쩍 보니 사와구치가 입술을 비죽거리며 툴툴대고 있었다.

    ―본격적인 경기에 앞서 개회사와 축사가 있겠습니다. 김강희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센 전 일본 헌터 협회장님을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센과 김강희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고 단상을 향해 걸어가자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김강희와 전통적인 기모노 차림의 센이 더욱 대비되어 묘하게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커다란 스크린이 개회사를 읊는 김강희의 얼굴을 비췄고, 그 밑으로는 한국어와 일본어 자막이 동시에 떴다.

    “이 경기를 계기로 세계 각국의 헌터들이 서로 힘을 합쳐 위기에 맞서 싸우는 존재가 되길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센의 축사까지 끝나자 사람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두 사람이 단상에서 내려와 다시 경기장 밖으로 사라지자 속사포가 단상 위로 뛰어 올라왔다. 그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약간 상기된 듯했다.

    ―자,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네!!!”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로 큰 대답에 속사포가 만족했는지 활짝 웃곤 한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세계 헌터 교류전 시범 경기의 첫 번째 막을 화려하게 열어 보겠습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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