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키잉!
이시카와의 가위가 내 배트와 맞부딪혔다.
“읏……!”
근육이 있는 몸이 아니라서 가볍게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시카와의 공격은 예상보다 묵직했다. 양팔에서 느껴지는 무게 때문에 순간 다리가 굳었다.
―쿵.
팔을 틀어 가위의 공격 경로를 바꿔 놓자 그것은 바닥에 처박혔다. 배트를 횡으로 휘두르며 방어하는 동시에 이시카와와 거리를 뒀다. 그도 무리해서 달려들지 않고 한발 물러났다.
“느껴지느냐? 이 마검 아포칼립스의 파괴력이!”
“그래, 느껴진다, 느껴져.”
이시카와의 말에 대충 대꾸한 후 이번엔 내가 먼저 그에게 다가갔다.
―챙, 챙.
쇠끼리 서로 맞부딪히는 소리가 훈련실에 울려 퍼졌다. 배트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자 이시카와가 가위를 벌려 날로 배트를 잡았다.
―끼기기긱.
“힘의 차이를 느끼도록 해라!”
가위 날이 배트를 잘라 버릴 것처럼 강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 배트를 빼버리면 뺀 방향으로 내 중심이 쏠리게 되고, 이시카와의 공격으로부터 무방비해지겠지.
‘그렇다면……!’
배트를 쥐던 손을 놓고 자세를 낮췄다.
“뭐, 뭐야!”
이시카와는 제 가위로 주인 잃은 배트를 잡게 되자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부랴부랴 배트를 놓고 무기의 방향을 바꿔 나를 공격하려 했지만.
“흡……!”
―쿵
이미 내 주먹이 그의 복부를 쳐올린 후였다.
“아악!”
“이시카와!”
이시카와가 뒤로 나동그라져 훈련실 바닥을 구르자 사와구치가 그의 이름을 외쳤다. 이시카와는 가위에 의지한 채 금방 몸을 일으키더니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었다.
“하하, 인간 주제에 제법이구나. 이 몸의 마안으로도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어.”
너무 세게 쳤나 싶어서 약간 걱정했는데, 여전히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닌 것 같았다.
―후웅.
금세 내 앞으로 달려온 이시카와가 아까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으로 가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공격 방향에 규칙이 없어 눈앞의 가위 날을 막는 데 급급했다.
―뻐억.
“윽!”
위아래로 움직이던 가위가 갑자기 위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날 등으로 내 옆구리를 강타했다. 얼얼한 통증과 함께 왼쪽으로 휘청거리자 이시카와의 오른손이 기다렸다는 듯 내 멱살을 잡아채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쿵.
완전히 중심을 잃고 바닥 위로 쓰러지지마자 이시카와의 발이 내 어깨를 내리찍으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투웅.
배트로 그의 발꿈치를 밀어내는 동시에 뒤로 굴러 공격을 피했다.
“읏!”
“잘도 빠져나가는군. 이제 봐주지 않겠다!”
―챙, 챙, 챙.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이시카와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불규칙적인 공격이 마구잡이로 퍼부어지자 집중력이 슬슬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공격이 이런 식이었어.’
이시카와는 빠르게 공격을 쏟아내 나의 방어 태세를 흐트려 놓은 후 빈틈을 만들어 중심을 잃게 한다. 그 후 아까처럼 바닥에서 일격을 가하지.
어디까지나 대련이니 발을 쓴 거지 이게 실전이었다면 그때 이시카와는 가위로 나를 찍으려 했을 것이다.
―챙!
양손으로 배트를 휘둘러 가위를 위로 쳐낸 후 뒤로 물러났다. 이시카와는 순간 무기를 놓쳤지만 금방 낚아채 나와 거리를 살짝 벌렸다.
이시카와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이시카와가 속공을 시작하지도 못하게 무기를 날려 버리고 공격하기.
“끝장을 내주마!”
―쾅!
‘스킬을 쓰지 않는 이상 그 방법은 어렵겠지’'
엄청난 힘으로 나를 찍어 누르려는 이시카와의 가위를 겨우 막았다.
그 방법을 제외하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내 중심을 잃게 만든 그 순간에 카운터 공격을 하는 것.’
―챙, 챙, 챙.
이시카와의 폭풍 같은 공격을 배트로 겨우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끈질기게 달라붙어 내 빈틈을 만들기 위해 공격 경로에 변칙을 주기 시작했다.
교전이 길어지는 지금 상황에서 일부러 그의 공격을 유도한 다음, 역습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끼기긱.
이시카와의 공격을 힘없이 받아 내며 중심을 잃은 척 왼쪽으로 몸을 휘청거리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전율해라, SS급! 네게 선사할 궁극의 심판……!”
―쩌엉!
“아악!!!”
‘걸렸다.’
배트로 바닥을 찍어 중심을 잡자 밑에서 내 멱살을 잡아채려던 이시카와의 손이 보기 좋게 배트를 박았다.
―뻐억!
이시카와가 비명을 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오른쪽 다리로 그의 머리를 차자 그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더니 몸이 훈련실 벽 쪽으로 굴러갔다.
“하아, 하…….”
실제 헌터를 상대로도 카운터 공격이 먹혔다. 그것도 근접 전투계열 헌터를 눕혔다. 이시카와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앓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진짜로 해냈어.’
몇 시간만의 훈련으로 이뤄낸 성과에 뿌듯해져서 가슴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쾅!!
“이 네네 님을 농락하다니!!”
기쁨을 만끽하기도 잠시, 누워 있던 이시카와가 벌떡 몸을 일으켜 가위를 벌린 채로 내게 달려들었다. 위협적인 날붙이를 피해 몸을 뒤로 빼고 배트를 전방으로 휘두른 그 순간.
“윽?!”
―탱그랑.
가위가 이시카와의 뒤로 날아가더니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잠시 머릿속이 새하얘졌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곤 이시카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간 종료입니다.”
“그, 그림자 군주?!”
“세빈아!”
세빈이가 나와 이시카와 사이에 서 있었다. 지금 보니 이시카와의 양손이 세빈이의 그림자에 결박된 채였고 팔을 앞으로 버둥거리며 그것을 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뚜두둑.
얼마 안 있어 이시카와의 뒤에서 나타난 사와구치가 단도로 그림자를 끊어냈다. 그가 이시카와의 손목과 몸을 살피는 동안 이시카와는 세빈이를 향해 얼굴을 붉히기만 했다.
“제압 방식이 너무 심한 거 아냐?”
그때 사와구치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목소리 중 가장 날이 서 있었다. 이시카와의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손등의 핏줄이 한껏 솟아 있었다.
“이미 대련이 종료됐는데도 공격하려고 했잖아요. 막는 건 당연하죠.”
사와구치가 세빈이를 쏘아봤지만 세빈이도 그 눈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사와구치의 어깨가 흠칫 떨렸고 곧 시선을 피했다.
“괜찮다, 사와구치. 덕분에 그림자 군주의 스킬을 직접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시카와가 팽팽한 긴장감을 끊어 놓았다. 그러더니 이번엔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곤 말을 덧붙였다.
“이번엔 운 좋게 이긴 줄 알거라. 내 마안의 힘을 절반만 발휘했거든.”
“그래, 그래…….”
“그림자 군주, 너도 긴장하는 게 좋을 거다.”
“…….”
세빈이가 말없이 이시카와를 내려다보자 그의 얼굴이 또다시 붉어지기 시작했다.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에서 이시카와가 얼마나 들떠 있는지 보였다.
“어, 언젠가 이 네네 님의 조수가 될지도 모르니, 악! 사와구치!”
“경기 때 보자고.”
사와구치가 이시카와를 거의 들쳐 업곤 그대로 훈련실을 빠져나갔다. 그는 인상을 구긴 채로 이따금 고개를 돌려 세빈이를 바라보곤 했다.
“…정말 폭풍처럼 지나갔네.”
정적을 뚫고 말을 꺼내자 경직되어 있던 세빈이의 얼굴도 부드럽게 풀어졌다.
“아.”
세빈이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소리를 뱉곤 그제야 내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안 다쳤어? 아까 복부 엄청 세게 맞았잖아.”
“괜찮아. 멍 조금 들고 말겠지.”
“나중에 한진우 헌터한테 꼭 치료받아, 알겠지?”
“그보다 아까 나 어땠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강세빈’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문]
제3자의 입장에서 본 내 전투가 궁금했다. 세빈이는 내 질문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엄청 멋있었어.”
“아니, 그런 거 말고… 고쳐야 할 부분이나 조금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공격 같은 거 없었어?”
“으음, 아까 마지막 공격 다시 보여줄 수 있어?”
“발로 찼던 거?”
“응.”
―퉁.
배트로 바닥을 지탱한 채 발을 들어 올릴 준비를 하자, 세빈이는 방금 전 이시카와처럼 오른손을 내 배트에 갖다 댔다.
“그 공격 정말 좋았어. 이시카와 씨가 방심한 틈을 노린 거지?”
“아, 응. 어느 정도 공격에 익숙해지니까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머릿속으로 그려졌어.”
“역시 금방 잘할 줄 알았어.”
세빈이는 내 발 쪽으로 턱 짓을 했다. 차라는 신호였다.
‘영 내키지가 않는데.’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발을 들자 세빈이가 고개를 저으며 손으로 내 다리를 툭 내렸다.
“실전처럼 해 봐.”
“…나 진짜 찬다?”
“응. 내가 방심하…”
―쾅!
세빈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있는 힘껏 세빈이의 목을 향해 다리를 들어 올렸지만.
“어, 어?”
“아마 경기 땐, 특히 센처럼 노련한 헌터라면 이런 식으로 대처를 했을 거야.”
검은 그림자가 내 다리를 잡고 있었다. 내 발끝은 세빈이에게 조금도 닿지 않았고 오히려 내 등과 어깨가 무방비하게 노출이 된 채였다.
―탁.
“우왓.”
“그럼 이렇게 다시 기습을 당하겠지.”
세빈이가 한 손으로 날 당겨 가볍게 끌어안고는 얼마 안 있어 풀어 주었다.
생각해 보니 이시카와의 전투는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전투였다. 나와 이시카와 우리 모두에게 패널티가 주어진 상황이었고. 스킬을 쓸 수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시카와는 내게 반격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네 공격이 허술하다는 건 아니야. 그 정도 반응 속도면 누구든 당했을걸.”
“스킬을 쓰면서 싸우는 건 또 다른 이야기구나.”
“그렇지.”
이시카와를 눕히고 느꼈던 뿌듯함이 다시금 사그라들었다. 하루, 아니 몇 시간 훈련했다고 기고만장해지다니. 나도 아직 철들려면 멀었나 보다.
“근데 왜 갑자기 승부욕이 생긴 거야?”
“응?”
세빈이가 땀에 젖은 내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당장 어제만 해도 센이 대결 제안했을 때 그렇게 큰 반응 없었잖아.”
“…….”
“아.”
내가 말없이 웃기만 하자 세빈이가 목소리를 낮추며 조용히 속삭였다.
“혹시 네가 얘기한 종말과 관련된 거야?”
“응.”
“사도?”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세빈이가 숨을 훅 들이켰다. 세빈이한테도 하미준 헌터와 최민 헌터한테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걸 용케도 바로 떠올렸나 보다.
“내기를 했거든. 내가 그 경기에서 이겨야만 그의 파편을 파괴할 수 있어.”
“그래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온 거구나.”
세빈이는 목을 고르더니 다시 평소와 똑같은 톤으로 이야기했다.
“얘기해 줘서 고마워. 내가 더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줘.”
“앞으로 며칠 정도는 더 부탁할 것 같은데 괜찮아?”
“당연하지!”
“깜짝이야…….”
세빈이가 약간 들뜬 목소리로 대답하곤 밝게 웃었다. 눈 앞에 갑자기 반짝거리는 얼굴이 들이밀어지자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이 얼굴을 10년 째 보는 나도 가끔 적응이 안 될 때가 있는데, 이시카와가 봤다면 또 얼굴을 붉혔겠지.
아무튼 남은 시간 동안 근접 전투와 스킬 숙련도를 높이는 데 집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