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쾅!
몬스터의 검이 발 바로 앞에 찍혔다. 저게 내 몸에 닿으면 정전기 수준으로 따끔하다는 것을 알아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근접 전투 상황의 목표가 명확해지니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판단하기 쉬웠다.
―끼기긱.
올려 치는 공격을 몸을 뒤로 빼서 피한 후 위를 향한 녀석의 팔을 위로 한 번 더 밀어 올려 공격을 흘린 후.
―촤아악.
녀석의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린 틈을 타 다리를 걸어 중심을 무너트리기.
―쿵.
내가 유도한 대로 녀석은 그대로 주저앉아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제 탄환만 내보내면……!’
―챙!
“쳇.”
녀석이 뒤로 구르는 동시에 검을 앞으로 휘둘러 나를 밀어냈다. 나도 낮말을 듣는 새를 쓰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녀석과 거리를 벌렸다.
―탕, 탕, 탕.
작은 탄환이 몬스터의 움직임을 따라 날아갔다. 확실히 인간형 몬스터인데다가 S급이라서 그런지, 한 발을 제대로 맞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우웅.
녀석이 벽을 타고 나를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진동하는 공기에 몬스터의 형체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더니 이내 바닥으로 추락했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로 녀석의 몸 위로 착지한 후, 양발로 어깨를 짓누른 상태로 녀석의 등에 대고 탄환을 쐈다.
―파지직!
공기의 울림이 잠깐 멎은 틈을 타 몸을 일으키려 했던 녀석은 내 탄환 한 발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의 훈련 종료]
[소요 시간 : 00:19:18]
[감지된 스킬 : SS급, 공격계]
“후우, 후, 하…….”
다섯 번의 도전 끝에 S급 인간형 몬스터 20분의 벽을 넘겼다. 온몸이 땀 범벅이라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아까 다리 걸었던 거 엄청 멋졌어.”
멀리서 지켜보던 세빈이가 물을 건네주며 말을 붙였다.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것처럼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자 축 쳐진 듯한 몸 상태가 조금 회복된 듯했다.
“센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이없게 당하는 일은 없겠지?”
“응. 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능숙해지는 게 보였어.”
“다행이네.”
세빈이의 말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남은 기간 동안 컨디션 조절하면서 훈련을 반복하면 경기할 때쯤엔 완전히 내 기술이 되어 있겠지.
“시간 내줘서 고마워. 너도 훈련하느라 바쁠 텐데.”
“내가 도움이 됐다는 게 더 기뻐. 언제든지 불러만 줘.”
세빈이가 내민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이유 모를 시선이 느껴져 훈련실 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있었다.
“저 사람들…….”
“이시카와 씨랑 사와구치 씨 맞지?”
일본의 두 헌터가 훈련실 밖 복도에서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사와구치 씨는 평범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지만, 이시카와 씨는 옛날 일본 치마 교복을 입고 있어 눈에 확 띄었다.
“아무래도 할 말이 있는 것 같지?”
“그래 보이네.”
세빈이가 대답하며 인벤토리에서 자동 통역기를 꺼내 귀에 끼웠다. 나도 귀에 통역기를 밀어 넣으며 모의 훈련실을 빠져나와 복도 쪽으로 발을 옮겼다.
―끼익.
육중한 문을 열자 그들이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훈련하러 오신 건가요?”
사회성을 발휘해 물었지만 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이시카와는 치켜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입술만 잘근거릴 뿐이었다.
‘상대하기 엄청 피곤하네…….’
애써 올린 입꼬리가 뻐근할 때쯤 세빈이가 내 뒤로 나타났고, 두 사람의 시선이 세빈이에게로 넘어갔다.
“너희 둘, 무슨 사이지?”
“친구 사이인데.”
이들이 우리와 동갑이라는 걸 센에게서 들었고, 이들도 우리는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라서 그냥 반말을 했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이시카와 네네’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기쁨]
그러자 난데없이 발언력 상태창이 눈앞에 떴다. 상태창 너머로 보이는 이시카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가 슬금슬금 걸렸다.
“후후후… 거 봐라, 사와구치. 이 몸이 말하지 않았느냐? 이 둘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난 애초에 관심 없었어. 너 혼자 상상한 거잖아.”
나와 세빈이가 친구 사이라는 말에 기뻐하는 이시카와를 보자마자 중고등학교 때 세빈이를 좋아했던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적이 이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시카와가 왜 그렇게 내게 날을 세웠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세빈이한테 반한 거였구나…….’
이유를 대충 알고 나니 이시카와의 행동이 불쾌하기보단 이젠 귀여워 보일 정도였다.
“어이 SS급, 왜 웃는 거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티 나는 거짓말을 내가 모를 것 같으냐? 나의 오른쪽 눈에 깃든 마안이… 읍.”
“입 좀 다물어 좀…….”
사와구치가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며 한 손으로 이시카와의 입을 막았다.
“그거 물어보려고 온 거야?”
“물론 아니지. 이 몸의 호기심은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니 말이다.”
이시카와의 기묘한 말투에 슬슬 적응될 때쯤, 그가 세빈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와 대련하지 않겠느냐?”
“아, 음…….”
세빈이가 순간 얼굴을 구기다 곧바로 표정을 가다듬었다. 목을 한번 고르곤 입을 열었다.
“좀 갑작스럽네요. 내일은 어떠신가요?”
세빈이가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묻자 이시카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매섭게 뜬 눈이 호선을 그리며 살짝 웃는 얼굴이 되다, 이내 다시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아니. 나는 오늘 하고 싶다.”
“…….”
“스킬 없이 무기만 들고 대련하는 것이지. 이 몸과 맞붙을 기회를 친히 주는 것이다.”
이시카와의 고집에 세빈이가 텅 빈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 제안을 받아줬을 때와 받아주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모든 경우의 수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겠지.
반면 이시카와는 신이 난 걸 감추고 있는지 한껏 올라간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시카와.”
“왜 부르지?”
“그 대련 나랑 해도 될까?”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모든 생명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놀람]
내 행동에 이시카와는 물론 사와구치와 세빈이까지 놀랐다.
“이 몸이 너랑?”
“응. 나도 방금까지 대련 훈련하고 있었거든.”
이시카는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차며 미간을 구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말을 덧붙였다.
“일단 오늘은 나랑 하고 세빈이랑은 나중에 하자고, 어때?”
이시카와가 팔짱을 끼며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오더니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한참 올려다보았다.
어차피 이시카와의 목적은 세빈이와 붙는 것이 아니라, 붙는 것을 핑계로 세빈이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걸 것이다. 단언할 순 없지만, 그동안 내가 본 세빈이를 좋아하던 애들은 모두 그랬다.
‘개중에는 나를 통해서 세빈이를 어떻게 해 보려는 애들도 있었지.’
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이사카와는 내 제안이 썩 나쁘진 않았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비록 저 그림자 군주를 상대할 수 없는 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SS급이면 유희 거리는 되겠군.”
“그럼 제안 수락한 거지?”
“그래. 세빈아 여기서 바로 진행해도 되지?”
“어? 어…….”
세빈이가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하며 모의 훈련실 쪽으로 이시카와와 사와구치를 이끌었다. 그러더니 내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괜찮겠어? 하기 싫으면 상대 안 해도 돼.”
“둘이 무슨 대화를 그렇게 하는 거지?”
“가만히 좀 있어, 이시카와.”
세빈이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자 이시카와가 까칠하게 소리쳤다. 곁눈으로 슬쩍 보니 그보다는 상식적인 사와구치가 이시카와의 어깨를 잡으며 그를 말렸다.
‘저기도 친구 사이인가?’
또래라서 붙어 다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스스럼없이 반말을 쓰는 걸 보면 헌터가 되고 나서 만난 사이인 것 같진 않았다.
“지의야. 듣고 있어?”
“아, 응. 근데 괜찮아. 나도 사람이랑 직접 해 보고 싶었거든.”
“…괜히 너 다치게 할까 봐 그렇지.”
세빈이가 고개를 살짝 돌려 이시카와를 바라보았다. 세빈이의 관심은커녕 반감만 산 듯, 그의 검은 눈동자는 빛 하나 깃들지 않았다.
―쿵.
모의 훈련실 문을 닫자 내부는 금세 적막해졌다. 세빈이와 사와구치가 벽 쪽으로 붙어 서는 동안 나와 이시카와는 훈련실의 정중앙에 마주 보고 섰다.
그가 입고 있는 교복 치마는 발목까지 길게 내려와 있어 움직일 때마다 가볍게 흔들렸다.
“네 무기가 확성기라고 하던데, 그걸로 이 몸을 상대할 수 있겠느냐?”
“근접 전투용으로 바꿀 수 있어. 네 무기는 뭔데?”
“두려워해라, SS급. 이 몸은 마왕과 계약하여 얻어낸 무기를 갖고 있다.”
“이시카……! 어휴…….”
사와구치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말릴 사람이 없어서 신이 난 이시카와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검은색 팔찌를 찬 손을 높이 들었다.
―철컹.
팔찌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동안 몸집을 키우더니 곧 익숙한 형체가 되어 이시카와의 양손에 들렸다.
“이것이 나의 마검, 아포칼립스다.”
“가위네.”
“일반인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이 마검은 어둠에 잠식된 인간들만이 그 본 모습을 볼 수 있다.”
허리까지 오는 거대한 가위였다. 가위 날과 끝이 날렵하게 갈려 있어 꽤 위협적으로 보였다.
‘일단 스킬부터 살펴볼까.’
이시카와가 자신의 무기와 스킬에 대해서 떠드는 동안 왼쪽 눈동자로 그의 정보를 빠르게 훑었다.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어둠 속성인 것 같은데 말이지.
[각성자 이시카와 네네]
[바람 속성]
[고유 스킬 S등급]
[S급 공격계 스킬 ‘태풍의 눈’ : 시전자의 신체 주위로 강한 태풍을 일으킨다. 시전자에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연계 패시브 스킬 ‘유유자적’ : 바람을 만들어 비행한다.]
[C급 변신계 스킬 ‘쿠노이치’ : 1분 동안 다른 사물로 변신한다. 변신한 사물과 동일한 성질을 띠며, 동물이나 사람으로는 변신할 수 없다.]
[귀속 무기 : S급 가위 ‘바보의 가위’, 사용자의 능력을 증폭시키며 공격한 대상의 치유력을 급격히 떨어트린다.]
[무기 비문 : 바보와 가위는 쓰기 나름.]
[업 해당 사항 없음]
[사명 해당 사항 없음]
[*구원 해당 사항 없음*]
마검 아포칼립스도, 어둠과 관련된 스킬도 하나도 없었다.
‘사춘기가 늦게 왔구나…….’
사춘기가 제때 오는 것도 축복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다는 걸 직접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준비는 됐나, SS급?”
“응. 세빈아, 10분으로 맞춰 줘.”
“알겠어.”
세빈이가 리모컨을 몇 번 두드리자 스크린에 10분으로 맞춰진 타이머가 떴다.
“딱 10분만이야. 경기 전에 다치면 안 되니까 서로 조심하자.”
“하, 내 힘이 폭주하지 않게 조심해야겠군.”
이시카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배트를 손에 쥐었다.
[3, 2, 1]
[훈련 시작]
―쾅!
스크린의 카운트 다운이 끝나자마자 이시카와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