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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224화 (224/366)
  • 224화

    ―쿵, 쿵.

    훈련실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복도 가장 안쪽 훈련실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쪽으로 성큼성큼 들어서자 묵직한 타격음이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있다!’

    헌터넷으로 훈련실 예약 현황을 확인한 보람이 있었다. 훈련실 안엔 내가 찾던 세빈이가 홀로그램으로 된 인간형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다. 스크린을 보니 몬스터 등급이 ‘S+’로 설정되어 있었다.

    홀로그램 몬스터는 단도를 들고 세빈이와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단도 끝이 세빈이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치자마자 그가 뒤로 물러났고, 몬스터는 다시 자세를 잡아 세빈이에게 달려들었다.

    ―쾅!

    세빈이는 몸을 숙여 그 공격을 피하더니 '영(影)'으로 몬스터의 왼쪽 발등을 찍었다.

    ―뻐억!

    “와…….”

    세빈이가 몬스터의 오른쪽 발을 밟아 완전히 움직임을 봉쇄한 후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얼마나 세게 친 건지 몬스터의 고개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더니 이내 치지직, 거리며 형체가 크게 흔들렸다.

    ―쾅!

    뒤이어 세빈이는 칼등으로 몬스터의 명치를 쳐올렸고 그것은 금새 안개처럼 흩어졌다.

    [모의 훈련 종료]

    [소요 시간 : 00:11:31]

    [감지된 스킬 : 없음]

    ‘스킬 없이 무기랑 체술로만 해결한 거야?’

    근접 전투로 세빈이를 제압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수치로 직접 확인 하니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역시 근접 전투를 배우기 위해 세빈이를 찾아온 건 옳은 판단이었다.

    ―똑똑.

    유리벽을 두드리자 숨을 고르던 세빈이의 얼굴이 내 쪽을 향했다. 날카로운 검은 눈과 마주치자마자 싸늘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당황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세빈이는 어깨까지 끌어올렸던 소매를 허겁지겁 내리고는 수건으로 얼굴을 벅벅 닦은 후에 빠르게 훈련실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

    “아니, 미안할 건 없는데… 일, 일단 들어와.”

    세빈이가 다정하게 웃으며 훈련실 안으로 이끌었다. 내가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세빈이는 땀 냄새가 날까 봐 신경 쓰였는지, 온몸에 향수를 뿌리고 나서야 내 옆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후각이 비누 냄새에 완전히 마비됐다.

    “근데 여긴 어쩐 일이야?"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응. 알겠어.”

    “뭔지도 안 물어봐?”

    세빈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말을 덧붙였다.

    “네 부탁인데 내가 어떻게 거절하겠어.”

    “…누가 나로 변장하고 보증 서달라고 하면 서주겠네.”

    “에이, 내가 너인지 아닌지는 구별하지.”

    세빈이가 픽 웃으며 눈을 접어 웃었다.

    “아무튼 무슨 부탁인데?”

    “근접 전투를 가르쳐 줘.”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강세빈’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문]

    세빈이는 잠시 고민에 빠진 듯 입을 다물다 이내 내게 물었다.

    “센과의 경기 때문에 그래?”

    “응.”

    “차라리 회피랑 쉴드 연습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아? 파괴력 면에서는 네가 훨씬 우위에 있을 텐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그래.”

    센의 스킬은 강화계 스킬, 신체 능력을 인간 이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근접 전투를 하는 유형의 헌터다. 내가 음파로 중심을 흐트려 놓고 곧바로 공격을 한다고 해도, 내 탄환이 그를 맞힐 보장이 없다.

    몬스터였다면 바주카나 박격포를 망설임 없이 쓰겠지만 상대가 사람이다 보니 내가 쓸 수 있는 무기에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서 길드전 참여했을 때 원래 무기를 쓸 수가 없어서 배트로 싸웠었거든?”

    “…그랬구나.”

    “무기를 직접 맞대면서 싸워 본 적은 진짜로 손에 꼽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

    노블레스 길드와 있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속이 뒤틀리는지 내가 이야기를 할수록 세빈이의 눈빛이 공허해졌다.

    ―텁.

    그런 세빈이의 팔을 잡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네가 싸우는 방식을 머릿속으로 떠올렸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강세빈’이 동요한다.]

    “나를?”

    “응. 내 주변에서 일대일에 강한 사람을 떠올려 보니 네가 가장 먼저 생각났어.”

    세빈이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동안 나는 세빈이의 전투 방식을 흉내 내며 로미나와 싸웠던 때를 떠올렸다.

    실패한 공격을 무리해서 파고들지 않고 경로를 바꿔 빈틈을 파고드는 빠른 판단력, 무기는 물론 온몸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체술과 타고난 전투 센스.

    세빈이의 전투 센스까지 내 것으로 만들 순 없어도 기본기만이라도 제대로 익힌다면 센과의 전투에서 쉽게 지진 않을 것이다.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까 네가 싸우는 법을 가르쳐 줘.”

    [발언 결과 : 매우 기쁨]

    ‘기, 기쁨?’

    왠지는 모르겠지만 세빈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 시선을 피한 채로 입꼬리를 씰룩거리다 이내 눈동자만 굴려 날 쳐다보았다.

    “지의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도와줄 수 있어. 아니 도와주게 해줘.”

    “어, 정말?”

    “응. 나밖에 못 하는 거잖아.”

    “뭐, 그렇지……?”

    차도윤 헌터는 나와 마찬가지로 원거리 특화 공격계이고, 최민 헌터는 체술을 어느 정도 하지만 그렇다고 근접 전투 특화까지는 아니다. 하미준 헌터도 수준급의 근접 전투 능력을 보여 주지만 아무래도 세빈이만큼은 아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신을 차린 후 세빈이를 바라보자 배시시 웃고 있는 얼굴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알려줄게.”

    “고마워. 몸만 풀고 바로 시작해도 될까?”

    “당연하지.”

    세빈이의 가방 옆에 내 가방을 내려놓은 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힘든 훈련이 될 것이 뻔하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수밖에.

    * * *

    ―삐비빅.

    “러닝 끝. 수고했어.”

    “허억, 헉, 허…….”

    바로 체술로 들어갈 줄 알았더니 세빈이는 날 러닝 머신 위에 올리곤 그대로 러닝만 1시간을 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턱 끝까지 차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자 세빈이가 물을 건넸다.

    “너무 쉬면 몸 굳으니까 5분만 휴식하고 바로 넘어갈게.”

    “알았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후 몸을 쭉 늘려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는 동안 세빈이도 머리카락을 고쳐 묶으며 나를 도와줄 준비를 했다. 곱슬기 있는 갈색 머리카락이 목 부근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지금 바로 하자.”

    “더 안 쉬어도 되겠어?”

    “응.”

    곧바로 몸을 일으키자 세빈이가 모의 전투 훈련실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각성하고 나서 얼마 안 됐을 때 방어 훈련한 이후로 처음인가?’

    너무 오랜만에 들어오는 공간이라 조금 어색했다.

    “일단 B급 인간형으로 설정해 놓을게. 네가 평소에 하는 대로 싸워 봐.”

    “알겠어.”

    ―타닥.

    세빈이가 벽에 붙은 화면을 몇 번 두드리더니 금방 훈련 세팅을 마쳤다.

    [모의 훈련 시작]

    [훈련 유형 : 대련]

    [몬스터 등급 : B급]

    [몬스터 유형 : 인간형]

    [몬스터 무기 유형 : 장검]

    “준비됐어?”

    “응. 시작해 줘.”

    ―삐빅.

    [훈련을 시작합니다.]

    [3, 2, 1]

    [훈련 시작]

    ―치지직.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바로 인간형 몬스터가 훈련실 중앙에 소환되었다. 노이즈로 가득한 인간의 형체가 허리까지 오는 긴 검을 들고 나를 마주했다.

    나도 구원자의 무기 창고에서 배트를 꺼낸 후 한 손으로 쥐었다. 안 그래도 근접 무기를 드는 게 익숙하지 않은데 괜히 센과 똑같이 검을 들었다가 순식간에 제압당할 수도 있으니까.

    ―챙!

    몬스터가 먼저 달려들었다. 녀석의 검을 배트로 쳐낸 후 뒤로 물러나자 이번엔 복부를 향해 발이 들어왔다.

    “흡!”

    ―쿵.

    몬스터의 발목을 주먹으로 치자 묵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이 중심을 잃고 옆으로 휘청거렸다.

    ―깡!

    그와 동시에 녀석이 검으로 나를 다시 내리치려 했고 난 배트로 한 번 더 그 공격을 밀어냈다. 곧바로 자세를 잡아 녀석의 턱을 배트로 쳐올리자 홀로그램의 몸이 붕 뜨더니 곧 바닥으로 떨어졌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몬스터와 거리를 좁혀 빠른 난타 공격을 이었다. 그중 몇 번은 헛방이었지만 그래도 녀석을 반대편 벽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다.

    ―쾅!

    녀석의 손목을 내리쳐 칼을 떨어트린 후 곧장 방향을 바꿔 횡으로 머리를 치자 몬스터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치지직.

    [모의 훈련 종료]

    [소요 시간 : 00:03:12]

    [감지된 스킬 : 없음]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클리어를 알리는 안내가 스크린에 떴다.

    “수고했어.”

    구석에 있던 세빈이가 싱긋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 손에 들려 있던 배트를 조심스럽게 가져왔다.

    “손 안 아파?”

    “오랜만에 쥐어서 그런가? 좀 얼얼하네.”

    “인간형이니까 공격에 변칙도 많고, 타격 가능한 범위도 많이 좁아서 그럴 거야.”

    세빈이는 말을 마친 후 훈련실의 중앙 쪽으로 이동했다.

    “재시작 버튼 좀 눌러줄 수 있어?”

    “아, 응.”

    직접 시범을 보이려는 건지 아까 내가 있던 위치에 정확히 섰다.

    ―타닥.

    시작 버튼을 누르자 스크린에 아까와 똑같은 글자가 떴다. 세빈이는 배트를 든 팔을 천천히 풀며 입을 열었다.

    “네 강점은 공기의 진동을 이용해서 상대의 감각을 마비시킨 후 이어지는 탄환 공격이야. 근접전은 어디까지나 그 공격으로 유도하기 위한 중간 단계에 불과해.”

    [훈련을 시작합니다.]

    [3, 2, 1]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지의 네가 근접 전투 상황에서 해야 할 건 딱 두 가지야.”

    “어떤 건데?”

    [훈련 시작]

    ―치직.

    몬스터가 금방 소환되었다. 검을 쥔 녀석이 자세를 잡아 세빈이를 향해 달려 나갔다. 녀석이 아까처럼 검을 위로 들어 아래로 베는 동작을 취했다.

    ―끼기긱.

    세빈이는 그 공격을 쳐내는 대신 배트로 살짝 막아 녀석의 검이 밑을 향하게 했다.

    “하나는 지금처럼 공격을 흘리는 것.”

    세빈이가 뒤로 한발 물러나자 몬스터가 발을 들어 세빈이의 복부를 노렸다.

    ―쿵.

    그러자 세빈이는 배트를 가로로 돌려 양손으로 든 후 몬스터의 발목 뒤를 가볍게 밀어 올렸다. 중심이 완전히 무너진 몬스터가 뒤로 고꾸라지자 세빈이는 배트로 녀석의 가슴을 내리쳤다.

    천장을 보고 누운 몬스터를 한쪽 발로 밟은 채 세빈이는 총을 쏘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그러고는 나를 보고 생긋 웃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중심을 무너트리는 것.”

    “…….”

    “이때 음파로 상대방의 감각을 마비시킨 다음에 탄환을 쏘면 끝나겠지.”

    ―콰그작.

    세빈이가 배트를 검처럼 세우더니 그대로 홀로그램 몬스터의 머리를 찍었다.

    [모의 훈련 종료]

    [소요 시간 : 00:00:58]

    [감지된 스킬 : 없음]

    ‘세빈이 말이 맞아.’

    센과의 근접전을 준비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에게 제압당하지 않고 공격 찬스를 만들기 위함이다. 수십 년간 검을 잡아 온 사람을 어떻게 배트로 이기겠어.

    “할 수 있지?”

    세빈이의 눈동자가 빛났다. 해답이 생긴 듯한 기분에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후련해졌다.

    ―탁.

    세빈이의 바로 앞에 서서 배트를 건네받았다.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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