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23화 (223/366)

223화

“…네?”

말의 저의를 파악하느라 터질 것 같던 머릿속이 센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정리됐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새하얘졌다.

저 사람이 어떻게 내가 회귀자라는 걸 알고 있는 거지? 스스로 알아냈을 리는 없고, 창조자가 결국 눈치챈 건가?

‘지의야, 정신 차려!’

자아의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표정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하마터면 당황한 티를 내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할 뻔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그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회귀자요?”

“네.”

“…지금 센 씨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아마노 레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심]

‘이 인간도 100% 확신하는 건 아니구나.’

창조자는 나를 ‘여러 세상을 살다 온 사람’으로 규정했다. 레일리와 조슈아, 그리고 비스까지 그렇게 이야기했으니 센도 나를 그렇게 불렀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나를 회귀자라고 불렀다. 비스를 만나고 온 사이에 창조자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전해 들었을 확률이 높아.

나는 차분하게 센을 향해 입을 열었다.

“회귀자라는 게 정확히 뭔지 말씀해 주시면 그게 저인지 아닌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아마노 레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약한 혼란]

그가 동요한 틈을 타 한 번 더 마음을 뒤흔들었다. 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금새 원래대로 돌아왔다.

“저는 회귀자를 동일한 삶을 계속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로 정의합니다."

“그게 저라는 말씀이고요?”

“네.”

"그 증거는요?”

―달그락.

불편한 분위기를 끊어주듯 직원이 메뉴판용 태블릿을 들고 왔다. 대충 가장 첫 화면에 보이는 딸기주스를 시키고 센은 페퍼민트 티를 주문하자 직원이 고개를 숙이며 금방 멀어졌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증거와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 왜 믿는 거죠?”

“…….”

“스스로 생각한 게 아니라면 센 씨가 신뢰하는 누군가가 그렇게 말한 것이겠네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아마노 레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당혹]

연달아 정곡을 찔린 건지 센의 감정은 점점 더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만하면 의심은 좀 줄어들겠군.’

그를 완전히 내 편으로 만들기 전에는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 창조자가 어렴풋이 눈치챈 듯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저는 센 씨가 말씀하시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뭔가 오해하신 것 같네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곤 등을 뒤로 빼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신지의 헌터가 회귀자든 아니든, 묻고 싶은 건 있습니다.”

센이 겉옷을 여민 후 다시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을 덧붙였다.

“신지의 헌터는 무엇을 위해 스킬을 쓰고 있는 건가요.”

라운지로 오면서 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이었다.

―달그락.

직원이 내 앞에 딸기주스를, 센 앞에 페퍼민트 티를 내어주곤 다시 물러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센은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저는 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스킬을 써 왔습니다.”

그는 찻주전자를 들어 컵에 조심스럽게 따랐다.

“몬스터들로부터 사람들과 이 땅을 지키고, 헌터들을 길렀죠.”

“센 씨는 일본 헌터들의 정신 그 자체라고 하니까요.”

“저에겐 과분한 호칭입니다.”

센이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일본 헌터들의 정신은 개인의 선한 의지가 모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는 그걸 도왔을 뿐이고요.”

대화를 하면 할수록, 눈앞의 이 사람이 창조자의 사도라는 걸 믿기 힘들었다. 그가 뱉는 말 하나하나에서 정의로움이 느껴졌고, 자국의 헌터 이야기를 꺼낼 땐 인간적인 다정함까지 보였다.

개인의 바람과 야망을 위해 창조자의 사도가 된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모습이었다.

‘그나마 비슷한 사람을 찾으면 비스겠네.’

처음엔 복수심이었지만 결국 모든 쿠마리들을 위해 창조자에게 소원을 빈 그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저도 센 씨와 비슷한 이유로 스킬을 씁니다. 제가 각성한 이유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역시 정의로우시네요.”

“대부분의 헌터가 그런 생각일 겁니다.”

그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센 씨.”

“네.”

“만약 누군가 센 씨에게 소원을 이뤄 주겠다고 한다면, 어떤 소원을 빌 건가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아마노 레이’가 동요한다.]

흔한 질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도인 그에게 있어 저 질문은 창조자에게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직접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센의 눈썹이 움찔거리더니 곧 부드러운 음성이 귀에 꽂혔다.

“글쎄요.”

“…….”

“더 이상 던전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지 않을까 싶네요.”

―치지직.

[발언 결과 : 거짓]

‘뭐?’

센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 눈앞에 튀어나온 상태창은 그 말이 거짓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센의 정의로운 모습 전체가 거짓이라는 건 아닐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센이 이전에 비슷한 소리를 했을 때도 저 상태창이 나왔겠지.

즉, 저 소원에 대한 이야기만 거짓이라는 뜻이다.

‘아예 직설적으로 이야기할 필요도 있겠어.’

주스로 목을 축인 후 천천히 입술을 뗐다.

“제가 이런 질문을 왜 했는지 아세요?”

“으음, 제 가치관이 궁금하셨던 게 아닐까요.”

―달그락.

센이 찻잔을 내려놓은 후 말을 덧붙였다.

“소원에서는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럴 수 있겠네요.”

그를 보며 살짝 웃고 나서 곧장 말을 덧붙였다.

“근데 그것 때문에 물어본 건 아니에요.”

센이 말없이 고개만 살짝 갸웃거렸다.

“누군가 센 씨에게 그런 제안을 했을 것 같아서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아마노 레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강한 혼란]

그의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던 입가는 서서히 밑으로 내려가더니 순식간에 싸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눈치네요.”

“조금은요.”

“…….”

“센 씨가 소원을 빈 대상이 누군지 정도는 알고 있어요.”

“하하.”

센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조용히 웃었다.

“그자가 신지의 헌터에게도 접촉했나 보군요.”

“네.”

“그런데 왜 저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은 거죠?”

한껏 예민해진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제 무기가 말렸거든요. 그 자식이 사기꾼이라고 하더라고요.”

“…무기가?”

“네. 센 씨의 무기는 별말 안 하던가요?”

센의 고개가 제 오른손의 반지를 향했다. 체인으로 연결된 다섯 개의 반지가 각각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은 후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센도 조슈아처럼 무기 비문이나 사명으로 파고들어 볼까.’

센이 잠깐 생각에 잠긴 틈을 타 구원자의 눈동자로 그를 빠르게 훑었다.

[무기 비문 : 너와 나는 네가 태어난 땅을 지킬 유일한 검이다.]

[아마테라스의 의지 : 네가 태어난 땅을 네 손으로 지켜라. (미달성)]

‘태어난 땅을 지켜라…….’

나라에 평생을 바친 사람다운 사명과 무기 비문이었다. 그도 절대자 따위의 힘을 받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킬 사명을 갖고 있었다.

“저는 센 씨보다 오래 살지도 않았고 경험도 더 적습니다.”

“…….”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여 센과 거리를 좁혔다.

“창조자는 센 씨의 바람을 절대 이뤄 주지 못해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아마노 레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강한 혼란]

모든 시간선이 마찬가지였다. 지옥도로 인해 궤멸하지 않은 나라는 없었으며, 지옥도를 한 차례 막은 98번째의 회귀에서도 일본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그 원인엔 센의 죽음이 큰 부분을 차지했고.’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 위를 짓누르는 듯해 숨쉬기 어려웠다.

일부러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그와 거리를 뒀다. 센은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다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럼 누가 제 바람을 이뤄줄 수 있죠?”

“……”

“그와 거래한 건 일종의 보험입니다.”

센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초점을 잃은 것처럼 흐린 눈동자가 나를 정확히 응시하고 있었다.

“불확실하고 보장할 수 없는 미래를 조금이나마 대비할 수 있는 보험이요.”

그의 소원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 가며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라면 분명 그가 태어난 땅, 일본과 관련된 소원일 것이다.

던전을 사라지게 해달라는 소원이 아닌, 오직 일본의 안전만을 위한 소원.

“센 씨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센 씨 본인이에요.”

“…….”

“센 씨의 무기도, 그리고 센 씨가 각성한 이유도 분명 비슷한 이유일 거고요.”

센의 눈이 커다래졌다.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센 씨는 올곧은 사람이에요. 창조자 따위에게 힘을 빌려올 만큼 약한 사람도 아니고요.”

“신지의 헌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비책은 절대자의 힘이 아니라, 당신의 힘이에요.”

[연계 패시브 스킬 발동]

[‘말이 씨가 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비책은 절대자의 힘이 아니라, 당신의 힘이에요’의 씨앗을 각성자 ‘아마노 레이’에게 심겠습니까?]

‘네.’

[각성자 ‘아마노 레이’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비책은 절대자의 힘이 아니라, 당신의 힘이에요’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일본 헌터의 정신, 정의롭고 존경받아 마땅한 어른, 센에게 말의 씨앗을 심었다.

“…나도 이제 정말로 나이를 먹었나 보군.”

그가 중얼거리며 이마를 짚었다. 요동치는 감정과 생각에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곧 표정을 갈무리하고 입을 열었다.

“신지의 헌터는 꽤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

“단순히 창조자와 접촉했다는 것만으로 알기 힘든 정보들도 알고 계신 것 같고.”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했다.

―사락.

얼마 안 있어 그가 검지손가락을 들며 운을 뗐다.

“그럼 저와 한 가지 거래를 하죠.”

“어떤 것이죠?”

“이번 경기에서 저를 이기면 신지의 헌터의 말을 믿고 창조자에게 협조하지 않겠습니다.”

“센 씨가 이기면요?”

“창조자에게 협조하여 제 소원을 실현할 겁니다.”

센이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말을 덧붙엿다.

“그리고 신지의 헌터가 알고 있는 창조자와 관련된 정보를 전부 저에게 이야기해 주시죠.”

시범 경기의 승패에 따라 창조자의 파편 파괴 여부가 달렸다. 그와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미성숙한 사람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반지에 달린 사슬이 서로 부딪혀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텁.

주름과 흉터로 뒤덮인 손을 잡아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었다.

지금부터 5일, 창조자에게서 그를 자유롭게 할 전략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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