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22화 (222/366)

222화

“그럼 한국 헌터 협회 쪽은 어느 분께서 출전하실 예정이신가요?”

식사를 마친 후 차를 마시던 센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내부에서도 정하지 않은 사안이다. 김강희가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뜨자 센이 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시범 경기이다 보니 공격력이 비슷한 수준의 헌터끼리 붙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화제성으로 보나 형평성으로 보나.”

“대전 상대를 직접 조율하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협회장님과 한국의 헌터 분들만 괜찮으시다면 그렇게 진행하고 싶군요.”

센의 시선이 이번엔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스포츠라면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좋을 테니까요.”

하미준 헌터가 생긋 웃으며 이야기하자 모두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강희는 우리를 슬쩍 보곤 다시 센을 바라보았다.

“그럼 전 협회장님께서 제안해 주신 대로 진행하죠.”

“넓은 이해심에 감사드립니다.”

센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예의와 친절이 몸에 완전히 밴 행동이었다.

“음… 저희는 비전투계인 저와 회장님을 제외한 나머지 5명 중에서 뽑아야겠네요.”

“각자의 전투계 스킬 등급을 고려해서 정하면 좋겠네요~”

카렌 씨도 포크로 양갱을 잘라 먹으며 말을 덧붙였다.

“민 씨와 미준 씨가 A급 공격계 스킬, 도윤 씨와 세빈 씨가 S급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그리고 SS급 한~명.”

카렌 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시카와 씨가 나를 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 시종일관 틱틱거리는 태도가 묘하게 신경을 긁었지만, 야마모토 씨가 대신 그에게 눈치를 줘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는 이시카와 씨에게 주의를 준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 쪽은 전투계 스킬로만 따지면 저랑 츠구나가 씨가 A급입니다. 센 님, 사와구치 군과 이시카와 양이 S급이고요.”

“그럼 두 분 고유 스킬은 어떤 계열이죠?”

“저는 함정계, 야마모토 씨는 은신계요. 100% 전투계라고 보기엔 조~금 애매하죠.”

차도윤 헌터의 물음에 카렌 씨가 대답했다. 각자 머릿속으로 최적의 대결 구도를 생각하고 있는 건지 방 안이 조용해졌다. 가끔 포크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 혹시 신지의 헌터도 이번 경기에 참여하시는 건가요?”

그때 야마모토 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는 제게 쏠린 시선에 화들짝 놀라더니 괜히 머리를 정리하며 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DF 1위와 싸우는 쪽은 굉장히 부담이 될 것 같아서… 아하하…….”

그가 나를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센에게만 관심이 있었을 뿐 사실 경기 자체엔 큰 흥미가 없었다. 굳이 경기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센과 접촉할 기회는 많을 테니 이번엔 참여하지 않아도…….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전 신지의 헌터와 겨뤄 보고 싶습니다.”

‘뭐?’

순간 귀를 의심했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잿빛 눈으로 나를 빤히 응시하는 센이 있었다.

“센 님……?!”

“지, 진심이세요?”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카렌 씨와 야마모토 씨가 눈을 크게 뜬 채로 센을 바라보았고 뚱한 얼굴의 이시카와 씨와 사와구치 씨도 입을 쩍 벌렸다. 아마 놀라지 않은 사람은 센 밖에 없을 것이다.

‘날 제거할 생각인가?’

하지만 센은 경기로 위장해서 나를 죽일 만큼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인간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나는 표정을 가다듬고 센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모두 아시다시피 신지의 헌터 이전엔 빛 속성 S급 헌터가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 보니 저 이외의 S급… 아니, SS급의 빛 속성 스킬이 무척 궁금해지더군요. 직접 보고 싶습니다.”

“아… 그렇군요.”

“늙은이의 늦은 호기심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네요.”

그 말을 끝으로 센은 싱긋 미소 지었다. 눈가에 자리한 주름이 깊게 파이며 그가 걸어온 세월을 보여 주었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 이것도 내겐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내게 적극적으로 다가올수록 그의 내면을 파고들 순간이 더 많이 올 테니까.

“다른 분들만 괜찮으시면 제가 센 씨와 경기를 치르겠습니다.”

“하하…….”

김강희가 낮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센을 바라보았다.

“그럼 그렇게 하죠. 이번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되겠어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신지의 헌터.”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나누는 동안 일본 헌터들의 얼굴을 슥 훑었다.

‘당황했네.’

자국 헌터들까지 저렇게 놀랄 정도면 센의 이번 행동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소리다. 경기 결과에 따라 이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변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달그락.

하미준 헌터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한 팀은 정해졌고, 또 출전 원하시는 분?”

“제가 강세빈 헌터와 하겠습니다.”

“오?”

“뭐어?!”

사와구치 씨의 말에 이시카와 씨와 하미준 헌터가 동시에 감탄사를 뱉었다. 이시카와 씨는 아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와구치 씨를 보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찰랑거렸다.

세빈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머쓱한 듯 손으로 목을 매만지며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네, 좋습니다.”

“으으……!”

“네네, 쨩, 자리에 앉아야죠?”

이시카와 씨는 뭐가 그리 분한지 사와구치 씨를 내려다보며 씩씩거렸지만, 사와구치 씨는 눈을 감은 채로 그의 시선을 무시하곤 자신의 갈색 머리카락만 정리했다.

“그럼 전 이 사람이요!”

“아.”

그러자 이시카와 씨는 곧바로 차도윤 헌터를 가리켰다. 뜻밖의 지목에 차도윤 헌터가 차를 마시다 말고 이시카와 씨를 보았다.

“강세빈과 겨룰 수 없는 건 아쉽지만 너도 이 몸을 충분히 만족시킬 실력은 되겠, 웁.”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

사와구치 씨가 이시카와 씨의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숙였다. 차도윤 헌터는 탐탁지 않은 태도로 이시카와 씨를 보았지만, 그는 더욱 집요한 눈으로 차도윤 헌터를 빤히 들여다볼 뿐이었다.

“아하하, 다들 적극적으로 나오시네.”

하미준 헌터가 웃음을 터트리며 최민 헌터 쪽으로 몸을 살짝 뺐다.

“최민 헌터, 혹시 나갈 생각 있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가겠지만 큰 욕심은 없습니다.”

“그럼 내가 할게.”

하미준 헌터의 고개가 카렌 씨를 향했다.

“우리 카렌이랑 한번 붙어 보고 싶어서 말이죠.”

“어! 저희 통했네요~ 저도 미준 씨랑 겨뤄 보고 싶었어요!”

미소를 한껏 머금은 카렌 씨가 입을 가리며 웃더니 눈만 가늘게 뜬 채로 하미준 헌터를 바라보았다.

“미준 씨한테 이기면 지은이한테 프러포즈나 해야겠네~”

“어머, 괜찮겠어? 내가 프러포즈 방해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그럼 다 결정됐군.”

하미준 헌터와 카렌 씨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쯤 김강희가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전(前) 협회장님과 신지의 헌터, 사와구치 헌터와 강세빈 헌터, 이시카와 헌터와 차도윤 헌터, 그리고 츠구나가 헌터와 하미준 헌터. 이렇게 경기를 진행하죠.”

“야마모토 씨와 최민 헌터는 예비 선수 및 장 내 안전 관리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로써 대전 상대까지 전부 정해졌다. 이제 남은 건 전략과 훈련뿐이다.

‘센에 대해 더 조사해야겠군.’

김강희와 마찬가지로 그도 게이트 오픈 초기에 각성한 1세대 헌터이니 관련된 정보를 찾으면 많이 나올 것이다. 공개된 정보를 가지고 나름의 전략을 짜야겠어.

은근한 신경전과 함께 숨 막히는 식사가 드디어 끝이 났다.

* * *

“사와구치, 방에 있을 거냐?”

“응.”

“하, 재미없는 녀석. 이 몸이 친히 관광 루트를 짰으니 넌 따라오기만 하도록.”

“아니, 방에 있을 거라니까.”

레스토랑 밖으로 나오는 동안에도 이시카와 씨와 사와구치 씨는 투닥거렸다. 뭐, 일방적으로 이시카와 씨가 몰아붙이는 것 같긴 하다.

“그럼 언제든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저희 쪽으로 연락해 주시죠. 훈련실도 마련해 드릴 수 있습니다.”

“환대에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김강희와 센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신지의 헌터.”

“네?”

직원들이 불러준 엘리베이터에 각 소속끼리 나누어서 타려던 중 갑자기 센이 나를 불렀다. 그는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은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1층 라운지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으실지요.”

“아…….”

바로 대답하지 않고 눈만 굴려 다른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나를 대전 상대로 지목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꽤 놀란 듯 보였다.

‘김강희도 반응하고 있고…….’

김강희가 저런 반응을 보이니 센이 김강희와 뭔가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은 확실히 낮았다. 나는 다시 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요. 같이 내려가요.”

“수락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회장님, 한국의 헌터분들 나중에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쿵.

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나머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센과 나는 말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곤 1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초점 없는 잿빛 눈만이 문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이시카와 양과 사와구치 군이 신지의 헌터를 불쾌하게 만든 게 아닐까 걱정이네요.”

“네? 아, 아닙니다.”

“동갑인데도 아직 신지의 헌터나 강세빈 헌터처럼 철이 안 들어서 말이에요.”

센은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투덜거리듯이 이야기했지만 입가에 머금은 미소가 두 사람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센은 1층의 라운지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젊은 헌터들을 보면 늘 놀라게 돼요.”

“그런가요?”

“살기 위해 스킬을 썼던 1세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거든요.”

센이 라운지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창가의 가장 안쪽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센은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100명의 헌터가 있다고 치면, 스킬을 쓰는 목적도 100개가 있는 것 같아요.”

“…….”

“돈, 명예, 자아실현, 관심.”

자리에 앉은 센이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아니면 그것보다 더 큰 대의와 정의.”

그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건지, 아니면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이 있는 건지 이해하느라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게 궁금해서 지금 이 자리를 만든 거예요, 신지의 헌터.”

“…….”

“아니지.”

센이 픽 웃곤 미소를 머금은 얼굴 그대로 말을 덧붙였다.

“회귀자 신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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