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20화 (220/366)

220화

“오, 꽤 그럴싸한데?”

“와…….”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인 커다란 큐브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감탄사가 나왔다. 파이트 클럽에서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견고하고 거대했다.

같이 들어온 차도윤 헌터와 하미준 헌터, 그리고 세빈이도 저마다 감탄하며 큐브 쪽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저 정도면 충분히 치고받고 싸우고도 남을 거다.”

미래 씨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마지막으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하미준 헌터가 미래 씨 쪽으로 허리를 숙이더니 눈을 크게 뜨며 다시 상체를 들었다.

“너 금연 해? 웬 은단 껌?”

“아이 씨, 뭔 냄새를 맡고 난리야 짜증 나게…….”

“금연할 생각 전혀 없다면서. 무슨 바람이 분 거야?”

“꼬맹이들이 끊으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염병을 떠는데, 그거 듣기 싫어서 그런다 왜.”

“어머. 안 그런 척하면서 은근 애기들 잘 챙겨 준단 말, 아악!”

하미준 헌터가 실실 웃으며 흥미로운 듯한 얼굴을 하자 아니나 다를까 미래 씨가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 때문에 미래 씨의 발에 걸려 있던 슬리퍼가 날아갔고,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것을 주우러 터덜터덜 걸어갔다.

“어! 어서오세요 여러분~”

하미준 헌터와 미래 씨 사이에서 소란이 벌어지는 동안 큐브 뒤쪽에서 아자디바르 남매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자동 통역기를 귀 안쪽으로 더 밀어 넣은 후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네팔 다녀오셨다고 했죠! 어땠어요?”

“멋있는 곳이었어요. 운 좋게 칼리의 창도 직접 만났거든요.”

“맞아, 맞아! 저 뉴스로 보고 진짜 깜짝 놀랐어요!”

미나와 무하가 방방 뛰며 비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빠르게 쏟아내는 이야기로 대강 파악해 보니, 비스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는 듯했다.

-텁.

그 사이에 슬리퍼를 찾아온 미래 씨가 무하의 팔을 툭툭 쳤다.

“됐고, 배리어 테스트나 진행하자고.”

“알겠습니다! 여러분 이쪽으로 와주시겠어요?”

무하가 큐브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큐브 위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큐브의 외벽과 내벽에 길고 가느다란 무언가가 붙어 있었다.

“저어기 기다란 박스 같은 거 보이세요?”

“아, 저 조명 끼우는 것처럼 생긴 거요?”

“네!”

미나가 무하 대신 대답하며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저기서 배리어가 흘러내려 와서 벽면 안팎으로 코팅될 거예요. 이 큐브 크기 기준으로 경화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이고요!”

“그것밖에 안 걸리나요?”

“네! 저희랑 소장님이 밤낮으로 연구한 결과예요!”

미나가 세빈이를 향해 당당하게 말하자 세빈이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A급 헌터분들 모시고 테스트 한 번 진행해 봤는데, 전력으로 공격했을 때도 금 하나 안 갔어요!”

“이야, 그건 정말 대단한데.”

“그래서 이번엔 늬들이 시험해 볼 차례야.”

-딸깍.

미래 씨가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큐브 위쪽에서 불투명한 액체가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럼 DF 순으로 가자. 나부터 시작해서 차도윤 헌터, 강세빈 헌터, 그리고 신지의 헌터로 마무리. 어때?”

“좋아요! 저희 배리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제대로 볼 수 있겠네요!”

무하가 안경을 올리며 눈을 빛냈다. 배리어는 경화될수록 더욱 투명해지더니 어느새 큐브의 벽과 감쪽같이 하나가 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큐브 겉에 무엇이 씐 건지 알 수 없었다.

-삐빅.

미래 씨가 들고 있던 리모컨에서 소리가 나자 미나와 무하가 동시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럼 하미준 헌터부터 부탁드립니다!”

“알겠어. 이게 뭐라고 긴장되네.”

-콰지직.

하미준 헌터가 땅을 걷어차자 굵직한 나무뿌리가 뽑혀 나왔다. 그것들은 용처럼 치솟더니 일제히 큐브를 향해 뻗어나갔다.

-쾅!!

굉음과 함께 뿌리가 큐브 벽을 들이받았다.

“오, 진짜 흠집 하나 안 생기네.”

-쿵, 쿵, 쿵.

하미준 헌터가 중얼거리며 큐브를 몇 번 더 박았지만 배리어에 둘러싸인 큐브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쩌엉!

이번엔 그가 있는 힘껏 도끼를 던졌다. 하지만 그의 무기 역시 배리어를 맞고 튕겨 나와 다시 그의 손안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대단한데?”

“그쵸! A급까지는 무난하게 다 막는다니까요?”

“아, 여기 최민 헌터 데려왔으면 좋았겠네. 그 양반 스킬이 A급 중에서 센 편인데.”

하미준 헌터는 턱을 쓸곤 나무뿌리를 다시 흙으로 돌려놓았다. 헤집어졌던 경기장 바닥이 원상 복구되었다.

“차도윤 헌터랑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해 봐도 될까요? 공격이 한 쪽에서만 오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물론이죠!”

세빈이의 제안에 미나가 흔쾌히 대답했다. 세빈이와 차도윤 헌터가 서로를 마주 보도록 큐브의 양옆에 섰다.

-철컹.

세빈이의 팔찌가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곧 얇고 긴 검이 되어 그의 손안에 딱 들어왔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검은 손들도 위협적으로 일렁거렸다.

차도윤 헌터도 활을 꺼내 든 채 시위를 몇 번 퉁겼다. 금색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리는 걸 보니 ‘천재지변’을 쓸 준비를 하는 듯했다.

“으, 근데 긴장되네요… S급 공격은 처음 받아보는 건데…….”

그런 두 사람을 무하가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하미준 헌터 공격 막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예요.”

“맞아, 왕자님. 자신감을 가져!”

“후…….”

무하가 한숨을 쉴 때쯤 준비가 다 끝났는지 세빈이가 차도윤 헌터를 향해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하나씩 접기 시작한 손가락이 완전히 접힌 순간

-콰과과광!!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세빈이의 그림자가 큐브의 왼쪽 면에 거세게 꽂히고 차도윤 헌터의 화살 비가 오른쪽에서 쏟아졌다.

-쿠구궁!

번개까지 내리꽂혀 큐브 주변으로 먼지바람이 크게 일었다. 겨울바람이 더욱 매섭게 얼굴을 스쳤다.

-휘이이잉.

공격을 마친 후 두 사람이 유유히 먼지바람 속에서 걸어 나왔다.

“너무 전력을 다한 거 아니야? 우리 공주님 왕자님 기죽겠네.”

“기죽는 게 문제냐? 성능을 보는 게 더 중요하지.”

미래 씨의 날카로운 한 마디에 하미준 헌터는 어깨를 으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먼지가 걷히고 큐브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어!”

양손을 꽉 쥐고 큐브를 보던 무하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세빈이와 차도윤 헌터가 공격한 위치를 보니 약간 찌그러지고 금이 간 것이 전부였다. S급 몬스터 하나는 가볍게 잡을 정도의 파괴력이었는데, 배리어는 단단하게 큐브를 보호하고 있었다

“와아아!!”

“막았어요! 막았어요!”

“알았어, 꼬맹이들아. 야, 얼른 뒤쪽으로 가서 마지막으로 시험해보고 테스트 끝내.”

“알겠어요.”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는 아자디바르 남매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 후 큐브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말만 그렇지 미래 씨도 기뻐 보이네.’

고개를 살짝 돌려 미래 씨를 흘긋 보니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어깨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딱 봐도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모양이었다.

“시작할게요! 혹시 모르니까 양옆으로 비켜 주세요!”

내 말에 사람들이 큐브를 사이에 둔 채 좌우로 갈라섰다.

‘바주카나 박격포 형태로는 분명히 부서질 것 같고…….’

-철컥.

확성기 상태의 자아를 들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타앙!!

기본형에서 가장 크게 뽑아낼 수 있는 탄환이었다. 자아에서 빠져나온 탄환은 큐브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콰직!

“아.”

-쨍그랑!

내심 깨지지 않길 바랐는데 내 탄환은 너무나 쉽게 첫 번째 벽을 뚫고 반대쪽을 향해 날아갔다.

-끼기긱!

“어!”

하지만 두 번째 벽은 달랐다. 이미 첫 번째 배리어로 속도를 많이 줄여 놓은 탓인지, 탄환은 반대쪽 벽에 박힌 채로 한참을 머물렀다.

-쩌저적.

그러더니 탄환이 먼저 공기를 진동시키며 사라졌고 큐브 벽에 커다란 금을 만들었다. 완벽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들이 만든 배리어는 SS급의 공격까지도 어느 정도 막아낸 것이다.

“꺄아아악!”

“미나! 소장님!”

“와 나 씨X, 이게 되네…….”

험한 소리가 섞여 있긴 했지만 이 배리어를 만들어낸 세 사람은 경기장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온몸으로 제 감정을 표현했다.

‘이거면 충분해.’

이들의 배리어는 전보다 더 견고해졌고, 훨씬 빠르게 대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했다. 파편이 사라져 힘이 약해진 지옥도쯤은 이들의 배리어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두근, 두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 * *

사전 미팅 하루 전, 인천 공항.

입국장은 기자들과 협회 직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을 밀치기 일쑤였으며, 그중 몇 명은 아예 사다리를 챙겨 뒤쪽에서 촬영 준비를 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소란스럽군.’

경호와 함께 입국장 문 근처에 있던 강희가 그런 기자들을 슬쩍 바라보았다. 세계 헌터 교류전과 함께 시범 경기의 개최를 발표하자 국내는 물론 전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미 길드전으로 헌터들 간의 경쟁에 익숙했던 문화권의 사람들도 교류전에 열광하며 이번 시범 경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찰칵, 찰칵.

입국장의 문이 열리자 기자들이 미친 듯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수십 대의 카메라 렌즈가 향한 곳은 일본 헌터 협회 소속의 헌터들이었다. 그들은 플래시에 잠깐 눈살을 찌푸리더니 곧 적응하곤 그들을 향해 태연히 인사했다.

“어유, 사람이 많네?”

“네네, 눈 좀 떠.”

“내 오른쪽 눈까지 개방하면 이 공항이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하… 진짜 국가 망신이니까 넌 웬만하면 입 열지 마라.”

젊은 헌터들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센이 가장 마지막으로 입국장으로 나왔다. 그들은 양옆으로 갈라서서 센을 맞이했고, 그는 차분히 가운데로 걸어와 기자들 앞에 섰다.

“오랜만입니다, 센 전 협회장.”

강희가 센 쪽으로 걸어 나와 악수를 청했다. 센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아직도 그 호칭을 쓰시는군요. 편하게 센이라고 부르셔도 되는데.”

“저까지 은퇴하고 나면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후후…….”

두 사람이 친근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공항을 빠져나갈 때까지 카메라의 셔터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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