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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214화 (214/366)
  • 214화

    낮에 있던 일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새 로열 쿠마리인 디브나 바즈라차르야는 리수아를 죽이려 했던 나를 똑똑히 목격했고,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상식적인 경고를 내게 건넸다.

    ‘도대체 어떻게 본 거지?’

    녀석이 진짜로 신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스킬까지 간파할 순 없을 것이다.

    -끼익.

    침대에서 일어나자 낡은 여관인 걸 티 내듯이 침대의 스프링이 울었다. 그대로 문을 열고 방을 나섰고 여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칼리 녀석을 내 몸에 빙의시켰다.

    “그 아이를 만나러 갈 생각이냐?”

    “그래. 어떻게 나를 본 건지 직접 들어야겠다.”

    -후우웅.

    미지근한 밤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관광객으로 바글거렸던 더르바르 광장도 어느새 한적해져서 고요하기까지 했다. 이 차분한 풍경을 앞에 두고도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5분 정도 날아가자 새로운 사원이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이 나를 바라보았던 그 창문 앞에 서자 낮에 봤던 그 얼굴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끼익.

    ‘열려 있군.’

    열린 틈새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창문을 완전히 열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꼬맹이의 방과 바로 이어진 듯 보였다. 이따금 아이의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방 안으로 들어와 창문을 닫았다. 급하게 지은 건물이라 내가 살던 방보다는 좁았지만 나름 갖춰야 할 건 다 갖춰져 있었다.

    “흐음…….”

    침대 바로 앞에 서서 꼬맹이를 내려다보았다. 단호하게 말하던 그 얼굴은 어디 가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숨을 내쉴 때마다 이불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했다.

    -툭.

    침대 앞에 앉아 꼬맹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녀석이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 해도 어차피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을 테니 대충 쿠마리의 신기 정도로 생각하겠지.

    “으…….”

    꼬맹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칭얼거리다 천천히 눈을 떴고 나를 한참 들여다보며 상황 파악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단번에 몸을 일으켰다.

    ‘소리를 지르진 않는군.’

    녀석은 눈을 크게 뜬 채로 이불을 꽉 잡았다. 함부로 도움 요청을 하지 않는 걸 보니 그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제법 영리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꼬맹이, 어떻게 날 볼 수 있는 거지?”

    “…….”

    “밖에 있는 녀석들의 귀가 신경 쓰이는 거라면 글로 써라. 글 쓰는 법을 모르면 내가 묻는 말에 네, 아니오로 대답이나 해.”

    여관을 굴러다니던 메모지와 펜을 건네자 꼬맹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것을 받아들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디브나 바즈라차르야.]

    녀석이 가장 먼저 쓴 것은 제 이름이었다.

    “이름 밖에 쓸 줄 모르나?”

    녀석은 고개를 젓곤 바로 덧붙여 적었다.

    [꼬맹이 아니고 디브나라고 부르라고.]

    “하.”

    영리한 녀석이 아니라 맹랑한 녀석이었다. 꼬맹이, 디브나의 고집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먼저 터졌다.

    “그래, 디브나. 날 어떻게 본 거…….”

    -스슥.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디브나는 뭔가를 적어 내게 내밀었다.

    [비스 바즈라차르야 맞지?]

    [너 로열 쿠마리였잖아.]

    -쿵.

    고개를 들어 녀석을 보자 확신에 가득 찬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 달, 내가 사라진 한 달은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다. 누군가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지. 하지만 그걸 이 녀석이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두 번째 시험 때, 내가 고른 물건이 네 것이라고 했어.]

    [붉은색 보석 박힌 팔찌.]

    [기억해?]

    기억할 리가 있나. 나는 10년 동안 그저 인형처럼 그들이 입혀 주는 대로 입었을 뿐이니, 그 어떤 것도 내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디브나의 시선에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힘들었다.

    “기억한다. 용케도 그걸 골랐군.”

    내 말에 녀석은 활짝 웃으며 글씨를 마구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너무 신기하다.]

    [진짜로 비스가 맞구나!]

    [아까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어.]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야?]

    [왜 갑자기 은퇴한 거야?]

    ‘누군가 나를 이렇게 궁금해한 적이 있었나.’

    내가 강제로 쿠마리 자리에서 내려온 후, 사람들이 나의 실종을 인지했을 때 뉴스나 신문에선 나의 행방을 찾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딱 3일 동안만.

    3일이 지나니 나의 실종은 가십거리조차 되지 않았고,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혀 갔다.

    하지만 디브나는 아니었나 보다. 녀석은 기자라도 된 양 내게 질문을 쏟아냈다. 낮에 보았던 차분한 얼굴은 어느새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아까 물었던 말에나 대답하지 그래?”

    “…….”

    “날 어떻게 볼 수 있는 거지?”

    내 추궁에 디브나가 흠칫 몸을 떨더니 곧 손을 움직였다.

    [나 각성자거든.]

    “…뭐?”

    -스슥

    [A급 감각계 스킬이야.]

    [A급까지의 은신계 스킬은 다 보여.]

    [비스, 네 스킬이 A급이거나 그 밑인가 봐.]

    ‘젠장할.’

    이 녀석도 각성자일 줄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 뜻밖의 상황에 머리가 아파 오는데, 디브나는 아무렇지 않게 메모지를 뜯고 뒷장에 글을 마저 적었다.

    [언제 각성한 거야?]

    [혹시 각성해서 쿠마리를 은퇴한 거야?]

    “만약 그렇다면 어쩔 셈이지?”

    “헙.”

    디브나가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을 크게 떴다. 동그래진 검은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 또다시 열심히 글을 썼다.

    [그럼 이제 헌터 되겠네?]

    “하아…….”

    ‘영리하고 맹랑한 줄 알았는데, 그냥 엉뚱한 녀석이었군.’

    녀석과 대화할수록 낮에 봤던 그 모습과 괴리감이 느껴졌다.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은 있지만 그걸 뛰어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뭐, 궁금한 건 해결됐으니 슬슬 돌아가도 상관없을 것 같다. 어차피 디브나도 자신의 스킬을 통해 나를 본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텁.

    자리에서 일어나자 녀석이 내 옷을 잡아당겼다. 그러곤 헌터가 되는 거냐고 물은 메모지를 두드렸다.

    “안 한다. 이 쓰레기 같은 나라를 위해 내가 왜 그런 봉사를 해야 하지?”

    [하지만 쿠마리로 살았잖아.]

    [마음 한구석엔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디브나가 허겁지겁 글을 써서 내밀었다. 정말 이런 마음가짐으로 쿠마리를 하는 녀석이 있다니, 철이 없는 건지 성인군자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픈 엄마의 약값을 위해서 쿠마리를 한 거다. 쥐꼬리만 한 연금의 절반을 가족에게 줬는데, 정작 가족은 날 버리고 도망갔지.”

    “…….”

    “모두가 너 같은 마음가짐으로 쿠마리를 한 게 아니란 말이다.”

    디브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쿠마리를 은퇴한 후 멀쩡히 잘살고 있는 녀석들이 손에 꼽는다는 걸 알고 있냐? 쿠마리였던 아이들 중 대다수의 끝이 어떻게 됐는지는?”

    갑자기 북받친 감정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쿠마리의 존재 자체가 문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왕실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리수아 전 왕을 죽이려 한 거야?]

    디브나가 쓴 글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이 숨을 훅 들이켰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나는 왕실에 반드시 복수할 거다.”

    -탁.

    메모지와 펜을 낚아챈 후 바지 주머니 안에 쑤셔 박았다. 대화 수단을 잃은 디브나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죽이지 않아도 복수할 수 있을 거야……!”

    “뭐, 뭐?”

    갑자기 나를 끌어당긴 녀석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귓가에 닿는 여린 숨 때문에 소름이 돋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디브나는 말을 덧붙였다.

    “내일 또 놀러 와. 내가 방법을 알려 줄게.”

    “너…….”

    -똑똑.

    그때 디브나의 수발을 드는 녀석 중 하나가 문을 두드렸다. 디브나는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밀친 후 침대 위로 몸을 뉘었고, 난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후우웅.

    여관 옥상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자 바람 때문에 귀가 울렸다.

    “어차피 스킬 때문에 안 보일 텐데, 왜 그렇게 급하게 나온 것이냐?”

    “아.”

    그리고 그 행동이 바보 같았다는 걸 칼리가 이야기해주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사원을 바라보았다. 허겁지겁 나온 와중에도 창문은 잘 닫아 놓은 내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

    ‘죽이지 않아도 복수할 수 있는 방법…….’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녀석들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이는 것 외에는 복수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습게도 저 일곱 살짜리 아이가 생각하는 방법이 궁금해졌다. 아니, 어쩌면 모두의 관심 속에서 잊힌 나를 기억하고 있는 저 아이 그 자체가 궁금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칼리 외의 이야기 상대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 * *

    [오히려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거야.]

    디브나가 내민 종이엔 어처구니없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고작 이 말을 들으러 다시 녀석을 만나러 왔다는 게 후회될 정도였다.

    “그게 네 복수 방법이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꼬맹이를 보고 있으니 머리가 뒤통수부터 지끈거렸다.

    -스슥.

    하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적었다.

    [생각해 봐.]

    [만약 비스가 라나 왕가를 전부 죽이고 나서 세상에 그게 알려졌다고 쳐.]

    [그러면 사람들은 비스만 비난할 거야.]

    [아무리 억울해도 그렇지 사람을 죽여?! 라고 말할 거야.]

    디브나는 펜을 쥔 손목을 한 번 돌린 후, 다시 바삐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비스가 좋은 일을 마구마구 하다가 그게 알려지면,]

    [저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세상을 위해 봉사하다니! 라고 말하면서 비스를 좋아할 거야.]

    [대신 라나 왕가를 비난하겠지.]

    디브나가 그렇게 쓰곤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순 없지만 제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그들을 죽이고 나서 받을 비난은 예상했어. 그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녀석은 입을 비죽이더니 메모지를 뒤집어 글을 마저 적었다.

    [쿠마리 존재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잖아.]

    [왕실이 무너지면 쿠마리도 전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해?]

    ‘…어?’

    글을 본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왕실이 오랫동안 쿠마리 시스템의 유지를 주장해 왔기에 그 둘을 같은 위치에 두고 생각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왕실과 쿠마리 시스템은 엄연히 다른 존재다. 시험에 개입하지도 않고, 그저 쿠마리가 새로 뽑힐 때마다 그들을 섬길 뿐이다.

    잠깐 풀이 죽었던 디브나는 다시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비스가 정말로 쿠마리를 없애고 싶은 거라면 내 방법이 더 좋을 것 같아.]

    [어때?]

    이번엔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복수심에 눈이 멀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 녀석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목적을 평생 잊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쿠마리를 없애는 것.’

    라나 왕가를 죽이는 것이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 목적이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바스락.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앉은 디브나를 내려다보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녀석의 눈동자에 담겨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속는 셈 치고 해 줄게.”

    “진짜? 헙……!”

    녀석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곤 곧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다행히 관리인의 귀에 들어가진 않은 듯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일은 없었다.

    “네 방법이 정말로 정답인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하니까.”

    내가 말을 마치자 디브나는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의 절반만 한 크기의 작은 손이 마치 동맹을 의미하듯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별걸 다 하는군.’

    -텁.

    녀석의 손을 잡아 힘을 주었다. 뭉근한 열이 맞잡은 손바닥 사이에서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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