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09화 (209/366)

209화

-쿠구구궁.

녀석이 휘두른 도끼 때문에 결국 기둥 하나가 바닥 위로 폭삭 무너져 내렸다. 흙먼지가 크게 일어 잠시 시야가 가려졌지만,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겨 그것들을 순식간에 흩어지게 만들었다.

“흐읍.”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자아를 입가로 가져왔다.

“연꽃 공격 전에 비스와 제가 집중적으로 공격할 거예요! 밧줄이 잠깐 멈췄을 때 가네샤의 움직임을 최대한 막아 주세요!”

“오케이, 알겠어!”

“알겠습니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모든 생명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용]

-투쾅!

운석처럼 튀어 나간 최민 헌터의 궤적을 따라 불꽃이 일었다. 가네샤는 최민 헌터의 불꽃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팅!

불꽃들은 방공호의 일부였는지 가네샤의 모든 공격을 단단히 막았다. 공격이 막힌 틈을 타 비스가 대낫을 창으로 바꿔 가네샤를 향해 던지자, 창은 더욱 가속해 날아갔다.

-푹.

“쳇.”

창이 가네샤의 손바닥을 뚫긴 했지만 원래 노렸던 목을 꿰뚫지 못해 비스가 아쉬운 티를 냈다.

-우우우웅.

“우극…….”

공격 기회를 만들기 위해 방아쇠를 길게 당기자 가네샤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타다닥.

“아우우-!”

내 머리 위로 빠르게 지나가던 녹두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더니, 이내 입을 쩍 벌려 가네샤를 향해 새하얀 빛줄기를 쏟아 냈다.

-콰과광!!

온몸으로 공격을 맞은 가네샤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나무뿌리가 녀석의 목을 휘감아 바닥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목뼈가 부러지고도 남을 파괴력이었지만, 하미준 헌터의 운이 주사위의 수치보다 높은 탓에 녀석의 움직임을 묶어 두는 것이 전부였다.

-탕, 탕, 탕.

훤히 드러난 녀석의 척추를 향해 방아쇠를 여러 번 당긴 후 구원자의 무기 창고를 열어 대검을 꺼냈다.

대검의 무게 때문에 몸이 녀석의 뒷덜미를 향해 빠르게 떨어졌고, 나는 양손으로 대검을 잡은 채 검날이 정확히 밑을 향하도록 힘을 주었다.

-쾅!!

목 뒤에 새하얀 검이 꽂히기 무섭게 이번에 비스가 들고 있던 창이 녀석의 팔 하나를 완전히 도려냈다. 날아간 팔에 들려 있던 모닥(인도의 전통 음식)이 허공으로 흩뿌려져 달콤한 냄새가 진동했다.

설탕처럼 보이는 가루들이 눈처럼 쏟아졌다. 공기를 살짝 뿌옇게 만들었다.

“회귀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죽어 줬으면 참 좋겠는데 말이지.”

“왜 지의가 희생하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까.”

‘뭐?’

갑자기 귀를 파고드는 하미준 헌터와 세빈이의 음성에 다리가 굳었다. 분명 세빈이는 이곳에 없고, 지금의 하미준 헌터는 내게 그런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너무나 선명하게 들렸다.

‘정신 차려. 이건 98번째 회귀 때 들었던 소리잖아.’

방금 그 음성은 지옥도를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 내가 회귀자라는 것을 밝혔을 때 들었던 말이다. 악몽과 지옥 그 자체라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던 바로 그 기억.

“응! 꼭 와야 해?”

이번엔 내가 기억하는 지유의 마지막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지, 지유……!”

“신지의 헌터!”

-탁!

나도 모르게 지유의 이름을 부르자 순간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뒤쪽으로 몸이 크게 기울었다.

-퍼버벙!!

“읏……!”

뜨거운 공기가 얼굴 위로 쏟아져 폐부까지 깊이 들어차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퍼뜩 들자 검붉은 눈동자가 바로 앞에 있었다.

“괜, 괜찮으십니까?”

“네, 네… 덕분에요.”

최민 헌터였다. 그는 나와 한참 눈을 맞추다 이내 먼저 고개를 들어 시선을 피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고개를 돌려 가네샤가 있던 곳을 바라보자 칼리가 비스를 안고 내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는 화가 났는지 얼굴에 조금의 웃음기도 없었다.

“저 미친 코끼리 녀석이 모닥에 설탕 대신 이상한 걸 집어넣었더군.”

“…그 가루 때문이었구나.”

“그래. 아무래도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 같다.”

미식가의 테이블에 있던 ‘트라우마 파우더’와 비슷했다.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는 불쾌한 감각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머릿속을 비운 후, 비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잠든 것처럼 칼리의 팔에 완전히 몸을 맡긴 채였다.

“비스는 좀 괜찮아?”

“잠깐 기절한 것뿐이다. 내가 일부러 충격을 좀 줬거든.”

-까득.

칼리의 이가 서로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그런 말들을 다시 들을 바에야 차라리 잠깐 기절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

방법은 조금 과격했을지 몰라도 그가 얼마나 비스를 아끼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콰과광!!

가네샤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잠깐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밧줄이 공간을 반으로 가르며 우리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쳇, 저 배 나온 코끼리 놈이……!”

“칼리! 지금 상태에서도 싸울 수 있는 거지?”

-콰직!

칼리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몸으로 보여 주었다. 그의 등 뒤에 달린 팔들이 창과 낫을 동시에 들어 가네샤의 밧줄을 단번에 끊어 놓았다.

“비스가 저 상태라 내 힘을 전부 발휘할 순 없다. 하지만 저놈한테 당할 정도는 아니지.”

“알겠어. 최민 헌터, 지금 바로 방공호 사용 가능할까요?”

최민 헌터가 고개를 끄덕이고 칼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쪽이 깨어날 때까지 잠깐 제 스킬 안에 두겠습니다.”

“아까 얼핏 보니 방어 스킬을 쓰는 것 같던데.”

-쾅!!

그때 가네샤가 또다시 밧줄과 도끼를 들었다. 비스가 끊고 남은 세 개의 손으로 그것들을 마구 휘두르며 우리를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다.

“맞아! 그리고 물리적인 힘으로는 절대 깨지지 않아!”

-탕!

방아쇠를 당겨 가네샤의 손목에 맞혔다. 구멍이 난 손목 틈으로 검붉은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러니까 일단 나 믿고 최민 헌터한테 비스 넘겨!”

“허, 알았다 알았어.”

-툭.

칼리는 내 성화에 못 이겼는지 최민 헌터 옆으로 빠르게 이동한 후 그의 팔 위로 비스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럼 부탁하지.”

-쾅!!

최민 헌터가 가네샤의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동안 나와 칼리는 가네샤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아아, 너희들의 불안이 피부에 스민다. 애처롭고 슬프구나!”

-콰과광!!

가네샤가 크게 소리치며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끈을 빼내어 내게 던졌다.

“읏!”

-쾅!

이번엔 진짜로 뱀이었다. 뱀의 날카로운 송곳니는 내 쉴드에 박혔지만 금방 머리를 젖혀 빼더니, 쉴드를 타고 빠르게 올라가 내 쪽으로 넘어왔다.

‘이게 어딜……!’

-콰직.

녹두의 잔뜩 짜증이 난 목소리가 귀에 꽂히자마자 녀석이 뱀의 몸통을 세게 물었다. 그러곤 곧바로 가네샤를 향해 뱉었다.

“잘했어, 녹두야!”

-철컥.

가네샤는 더 이상 우리를 향해 휘두를 밧줄이 없는지 숨을 몰아쉬며 우리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공격 찬스다.’

원래대로였으면 비스와 함께 합동 공격을 했을 타이밍이었지만, 지금은 나와 힘이 약해진 칼리가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배에 힘을 주었다.

“지금이에요! 다들 가네샤를 막아 주세요!”

“오케이!”

“알겠습니다!”

-콰지직.

하미준 헌터의 나무뿌리가 가네샤의 목 뒤를 덮쳐 녀석의 머리를 단단히 고정했고, 다른 뿌리로는 몸 전체를 휘감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펑, 펑, 펑!

이어 최민 헌터가 가네샤의 주위에 불로 벽을 세워 움직임을 완전 봉쇄시켰다.

“칼리!”

“그래, 알고 있다!”

-투웅.

칼리가 대낫을 들고 가네샤를 향해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가네샤는 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틀었지만 제 몸을 옭아맨 것들에 약간의 지체가 생겼다.

-펑!!!

칼리의 낫이 가네샤의 머리를 횡으로 베고 왼쪽으로 몸을 옮기자마자, 바주카 형태의 자아에서 빠져나온 포탄이 녀석의 벌어진 입 안으로 들어갔다.

“크아아아악!!”

“하하하! 턱 날아간 꼴 좀 봐라. 속이 다 시원하구나!”

가네샤가 괴성을 지르며 팔로 나무뿌리를 뜯어내더니 반쯤 날아간 자신의 얼굴을 몇 번이고 더듬었다. 칼리는 가네샤의 피를 뒤집어썼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은 얼굴이었다. 그저 사원이 떠나가라 크게 웃을 뿐이었다.

-쨍그랑!

얼마 지나지 않아 가네샤의 머리 위에 있던 주사위 세 개가 완전히 깨져 공기의 일부가 되었다.

“후, 2페이즈 해결했네!”

“다들 고마워요! 칼리, 너도 고마워.”

“비스가 깨어 있었다면 이미 내 공격으로 상황이 정리됐을 거다.”

칼리는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피로 얼룩진 얼굴 때문에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신지의 헌터! 마지막 페이즈가 뭐였지?”

“아, 다시 확인해 볼게요.”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가네샤를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체력이 대폭 떨어지면 가네샤가 차투르티 축제를 시전한다. 사원 전체에 강을 생성해 폭발하는 석상을 강 위로 흘려보낸다.*]

‘강을 생성해서 폭발하는 석상을 흘려보낸다…….’

강이 어떻게 만들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이동 영역이 점점 좁아질 것은 확실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내려 하미준 헌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사원 전체에 강을 만들어서 폭발물을 내보내는 패턴이에요.”

“어휴, 뚜벅이에게 가혹한 페이즈가 되겠어~”

하미준 헌터는 한숨을 푹푹 쉬며 땅을 걷어차더니 나무뿌리들을 엮어 자신이 디딜 발판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

-쏴아아.

이내 멀리서 물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물방울 하나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감각을 곤두세운 채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기를 기다렸다.

“아아, 내가 사랑하는 차투르티 축제로구나.”

“쯧, 시작이군.”

칼리가 질린다는 듯 혀를 내두르며 양손으로 낫을 고쳐잡았다. 가네샤는 그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중얼거렸다.

“불의 아이야, 우리 비스는 아직도 못 일어난 것이냐?”

칼리가 최민 헌터를 돌아보며 말하자, 최민 헌터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입을 열었다.

“네. 그냥 잠들어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깨워야 하나…….”

-콰광!!

칼리의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굵은 물줄기가 사원의 벽을 뚫고 쏟아져 나왔다. 콸콸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허공에도 물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닥에만 흐를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골치 아픈 페이즈였다.

-철컥.

자아를 더욱 꽉 쥐며 숨을 들이마신 순간.

“자! 축제의 시작이다!”

이 전투의 마지막 패턴, 차투르티 축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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