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08화 (208/366)

208화

“크어어억!”

“아~! 시끄러워 죽겠군!”

가네샤와 거리를 좁히자 녀석의 괴성과 칼리의 신경질적인 음성이 동시에 귀에 꽂혔다.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깎았네.’

가네샤의 몸에 아까는 보지 못한 패인 상처들이 한가득 생겼다.

-타닥.

녹두의 등에서 내려 허공에 착지하자 밑에 있던 하미준 헌터가 내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신지의 헌터! 좀 괜찮아?”

“완전 나았어요!”

“하아…….”

그를 향해 대답하기 무섭게 뜨거운 기운이 피부에 훅 끼치며 최민 헌터가 내 옆으로 날아왔다. 그의 눈에서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일 정도였다.

-쾅!!

그와 어색하게 시선을 주고받기도 잠시, 칼리의 대낫이 또다시 가네샤의 가슴 한가운데에 꽂혔다.

“크아아아악!!”

“어? 커헉!”

“칼리!”

가네샤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더니 순식간에 낫을 뽑아 그대로 집어 던졌다. 칼리도 덩달아 날아가 기둥에 몸을 부딪친 바람에 그의 형체가 잠시 크게 흔들렸다.

-우웅, 우웅.

그때 가네샤의 이마에 쓰여 있던 옴 문자가 사라지고, 가짜 가네샤들도 순식간에 모래가 되어 바닥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저 코끼리 대가리 새끼가……!”

“잠깐!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는 것 같아!”

“뭐?”

가네샤를 향해 달려들던 칼리가 멈춰 섰다.

“지혜를 담을 그릇이 부족한 존재들이여! 내가 너희들에게 다른 선물을 주겠다!”

-쿵!

가네샤가 다시 벽의 중간으로 이동하더니 크게 소리쳤다.

“다들 머리 위 좀 봐!”

그때 하미준 헌터가 외쳤다. 고개를 들자 숫자들이 내 머리 위에서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이게 행운 시험인가?’

다시 오른쪽 눈을 감고 가네샤를 바라보았다.

[*행운 시험 시전 시 가네샤가 적으로 인식하는 생명체의 행운을 계산한다. 주사위를 굴려 생명체의 행운이 주사위의 숫자를 합산한 것보다 낮을 시 해당 생명체를 공격하며, 가네샤 역시 해당 생명체의 공격에만 부상을 입는다.*]

우리들의 행운을 먼저 계산하려는 건지 가네샤의 손가락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양 바쁘게 움직였다.

-철컥.

가장 먼저 계산이 끝난 쪽은 하미준 헌터의 행운이었다. 그의 검은 머리칼 위로 ‘100’이라는 숫자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아하하! 몬스터가 인정한 행운아라니, 딱히 삶에 역경과 고난이 없었나 보구나.”

“하하, 부모님 덕에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자라긴 했지. 그래도 나름의 역경과 고난은 있었다고?”

“대충 보니 연애 관련한 역경과 고난이 있었을 것 같네.”

“제대로 보셨습니다.”

하미준 헌터가 칼리를 향해 여유롭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칼리는 재밌다는 듯 고개까지 젖혀가며 크게 웃었다.

주사위의 숫자 범위가 얼마나 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하미준 헌터가 공격받을 확률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선 적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그의 공격이 가네샤에게 통할 확률도 낮다는 걸 의미한다.

-철컥.

이번엔 내 왼쪽에서 계산이 끝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최민 헌터의 머리 위에 숫자가 나타났다.

[34]

확실히 하미준 헌터보다는 낮은 수치였다. 최민 헌터는 고개를 흘긋 들어 숫자를 본 후 대수롭지 않게 손목을 풀었다.

‘이제 남은 건 나와 비스인데…….’

비스가 있는 기둥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의 머리 위로 숫자들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칼리 님, 빙의 상태로 바꾸겠습니다.”

“내 체력이 걱정되나?”

“그럴 리가요. 제 방어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스는 고개를 들어 칼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행운 수치가 낮은 녀석들을 골라서 공격한다고 했으니, 저를 직접 노릴 가능성이 큽니다. 칼리 님이 저를 보호하는 것보다 제가 직접 반격하는 게 나으니까요.”

“흐음, 일리가 있군. 알았다, 비스. 네 말대로 하마.”

-사아악.

칼리가 검은 연기를 남기고 사라지자 비스의 두 눈동자가 더욱 붉게 빛났다. 그가 양손으로 칼리가 들고 있던 대낫을 쥐자, 등 뒤에 생긴 수십 개의 팔들도 저마다 무기를 들었다.

-철컥.

그러자 머리 위의 숫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비스의 행운을 나타냈다.

[15]

100에서 34, 그리고 15. 또다시 절반도 더 넘게 깎였다. 비스의 행운을 확인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머리 위로 옮겨 왔다. 왠지 모르게 이 공간의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럼 대체 신지의 헌터는 몇인 거야?”

“수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더 낮으리란 보장은…….”

-철컥.

최민 헌터가 평소와 다르게 쏟아내던 말을 철컥, 행운 수치가 결정되는 소리에 멈췄다.

‘왜 그러지?’

고개를 들기도 전에 눈에 들어온 하미준 헌터의 넋 나간 얼굴에 나도 모르게 긴장됐다. 서둘러 내 머리 위에 뜬 숫자를 살폈다.

[-100]

“…마이너스라고?”

“행운을 원하는 자만이 오직 내게 닿을 수 있다!”

상황을 이해할 틈도 없었다. 가네샤는 양팔을 번쩍 들며 2페이즈의 시작을 알렸고, 우리는 급히 전투 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자아를 입가로 가져왔다.

“하미준 헌터는 녀석의 움직임을 막는 데 집중해 주세요! 하미준 헌터의 행운 수치보다 녀석의 주사위가 크게 나올 것 같진 않아요!”

“오케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모든 생명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용]

“최민 헌터는 상황에 따라 방공호를 짧게 열어 주시고, 공격도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발언 결과 : 수용]

발언력의 힘을 톡톡히 활용하며 작전 지시를 내렸다. 잠시 패닉이 될 뻔한 분위기가 서서히 질서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비스! 너랑 나는 일단 방어하면서 공격 패턴부터 살피자! 그리고 타이밍이 생기면 한 번에 공격하는 거야, 어때?”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들어주겠다.”

[발언 결과 : 수용]

비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했지만 어쨌든 내 제안을 받아들여 주었다.

-달그락.

가네샤의 머리 위로 세 개의 나무 주사위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 일반적인 정육면체 형태가 아니라 면이 훨씬 더 많이 깎인 주사위였다.

“정이십면체군.”

어느새 공중으로 날아오른 비스가 가네샤의 주사위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주사위를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숫자는 1부터 20까지. 저걸 다 합쳐도 저 느끼한 녀석의 행운에는 한참 못 미치지.”

“그렇네.”

“결국 공격은 너와 나, 그리고 붉은 머리 녀석이 해야 한다.”

-덜그럭.

한참 돌아가던 주사위가 가네샤의 머리 위에서 멈췄다.

[19] [14] [7]

주사위의 총합은 40. 즉, 가네샤는 하미준 헌터를 제외한 모두를 공격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하미준 헌터는 가네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는 것이고.

-콰과광!!

하미준 헌터 주위에 있던 나무뿌리가 가네샤의 양팔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것은 도끼를 든 손 하나를 강하게 옭아매며 녀석을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게 닿고 싶은 불운한 자들이여!”

하지만 녀석은 남은 손으로 밧줄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오직 너희들에게만 나를 허락하겠다!”

-파바박!

가네샤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밧줄들이 뱀의 입처럼 두 갈래로 쩍 벌어졌다. 비스의 낫이 그것들을 토막 낸 틈을 타 최민 헌터의 불꽃이 잘린 단면을 파고들었다.

-콰앙!!

하지만 그새 다른 손에 있던 밧줄이 허공을 순식간에 헤집어 놓았다.

‘확실히 전에 비해 빨라졌어.’

1페이즈 때 보았던 가네샤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묵직했던 밧줄은 더욱 날카롭고 집요하게 우리를 쫓았다. 하미준 헌터의 나무뿌리를 갈기갈기 찢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서걱.

단도로 바꾼 자아로 밧줄들을 끊어 놓으며 가네샤와의 거리를 좁혔다. 하미준 헌터의 스킬이 녀석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멎게 만드는 그 순간을 노려야 한다.

-쾅!!

“크아아악!”

녀석과 10미터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나타난 비스가 대낫으로 녀석의 눈을 횡으로 베었다.

“흡!”

-퍼엉!!

곧바로 자아를 바주카로 바꾸어 녀석의 머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포탄은 정확히 가네샤의 이마를 관통해 뒤에 있던 벽에 박히고 나서야 사방으로 흩어졌다.

“닿았다! 너는 이 세상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불행한 존재구나!”

“악담 한번 살벌하게 하는군.”

밑에 있던 하미준 헌터가 혀를 차며 가네샤의 양발을 나무뿌리로 단단히 묶었다.

-사라락.

‘연꽃?’

그때 가네샤의 손에 있던 연꽃들이 풍등처럼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퍼버버벙!!

“큿!”

그러더니 곧이어 연꽃들이 폭발해 유리 조각 같은 꽃잎들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꽃잎들을 피해 달렸지만 결국 몇 개는 내 다리를 스쳤고, 화끈거리는 통증 때문에 자동으로 얼굴이 구겨졌다.

“헉……!”

-탕!

고통에 잠깐 집중력이 흐트러진 사이에 연꽃 한 송이가 눈앞에 들이닥쳤다. 간발의 차로 쉴드를 뽑아낸 덕에 꽃잎들은 투명한 쉴드에 빼곡하게 박혔다.

-끼기기긱.

그것들은 어떻게든 쉴드를 부숴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쾅!

쉴드를 발로 차 가네샤를 향해 날려 버린 후 뒤로 물러나 다시 거리를 확보했다.

“괜찮나?”

“어. 움직이기 힘들 정도는 아니야.”

비스는 내 다리를 흘긋 보고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덩달아 고개를 내리니 찢어진 트레이닝복 사이로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괜찮아. 이 정도는 로브 효과로 금방 치료되니까.”

“…이 대범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정말 알 수가 없군.”

-후웅.

비스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다시 비행해 가네샤를 향해 달려들었다.

‘대범함이라…….’

레일리와 조슈아의 파편을 연달아 해결하다 보니 확실히 자신감은 붙었다. 그리고 지금도 비스와 함께 모든 쿠마리를 해방시킬 계획을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고작 이런 상처 따위로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었다.

-차라라락.

가네샤의 움직임이 잠시 멎는가 싶더니 이내 녀석의 머리 위로 또다시 주사위가 굴렀다. 최민 헌터의 푸른 불꽃도 주사위가 돌아가는 동안만큼은 가네샤에게 통하지 않았다.

-철컥.

[4] [5] [16]

총합 25. 이번에 가네샤가 노릴 타깃은 나와 비스였다. 가네샤의 바로 앞에 있던 비스가 몸을 흠칫 떨더니 곧바로 녀석과 거리를 벌려 내 옆으로 날아왔다.

“지금까지 패턴으로 봤을 때 이번 페이즈에서 가네샤의 공격은 도끼, 밧줄, 연꽃이야.”

“밧줄과 연꽃 폭발 사이 조금 텀이 있더군.”

비스는 가네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나는 그런 비스를 흘긋 본 후 다시 가네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밧줄 공격 이후 틈 생겼을 때 한 번에 공격하자, 어때?”

“알아서 그렇게 할 테니 명령하지 마라.”

-콰앙!!

가네샤가 양손으로 도끼를 휘두르는 동시에 두 번째 행운 시험의 막이 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