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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207화 (207/366)

207화

가네샤의 첫 번째 패턴, 시작의 소리 ‘옴’이 시작되었다.

-우우웅.

사원 내부에 정체 모를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귀를 틀어막을 정도의 굉음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신경을 긁는 탓에 나도 모르게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콰과광!

그때 두 개의 가네샤 석상이 우리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공격을 피해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다른 가네샤들이 손뼉을 마주쳐 그들을 짓누르려 했다.

‘더 위험해지기 전에 진짜부터 찾아내야겠어.’

-타닥.

최민 헌터가 녀석들의 눈앞을 빠르게 날아다니며 시선을 끄는 동안, 나는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로 진짜 가네샤를 찾아다녔다.

벽을 따라 빼곡히 줄지어 선 녀석들 가운데, 중앙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글자가 붙어 있는 코끼리 상이 눈에 들어왔다.

“저쪽이에요!”

-콰직!

작살총으로 바꾼 자아의 방아쇠를 당기자, 뾰족한 작살의 끝이 진짜 가네샤의 어깨를 꿰뚫었다. 녀석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떠졌다.

“크아아악!”

“윽……!”

내가 자아를 채 놓기도 전에 녀석이 작살 끝에 달린 끈을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가네샤 쪽으로 몸이 이끌려 저항할 틈도 없이 녀석의 도끼 밑으로 끌려왔다.

“SS급!!”

-쾅!

간발의 차로 자아를 다시 확성기 형태로 바꾸어 쉴드를 뽑았다. 양손으로 쉴드를 받치고 선 채로 거대한 도끼를 막자 온몸의 모든 뼈마디가 징징 울렸다.

‘진짜 더럽게 무겁네!’

이 도끼를 밀어내야 도망갈 틈이 생기는데,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거운 탓에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우득.

“큿!”

억지로 힘을 주어 버티니 결국 오른쪽 어깨에서 뼈가 어긋나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쉴드를 던지다시피 옆으로 밀어 도끼의 궤도를 바꿔 놓았다.

-쿵.

녀석의 도끼가 바닥을 찍자마자 온몸에 힘이 풀려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탁!

그때, 누군가 내 허리를 낚아채 공중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잔뜩 날이 선 듯한 최민 헌터의 옆얼굴이 언뜻 보였다.

“스틱스 강 사용할 수 있습니까?”

“고작 이 정도 부상으로 쓰기엔 아까워요.”

“…….”

-끼리릭.

최민 헌터의 침묵에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자마자 가짜 가네샤들의 고개가 우리를 향했다. 얼마간의 정적이 지난 후, 그들이 들고 있던 밧줄이 일제히 나와 최민 헌터를 쫓기 시작했다.

-우우웅.

멀쩡한 팔로 자아의 방아쇠를 당겨 그것들의 움직임을 막기 무섭게 칼리가 낫으로 전부 찢어 버렸다. 그는 고개를 흘긋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괜찮으냐?”

“응. 어깨가 살짝 빠진 정도라.”

“우리 비스에게 보여 주어라. 스킬은 없지만 응급 처치에는 도가 튼 녀석이니.”

칼리는 그 말을 끝으로 진짜 가네샤를 향해 날아갔다. 그가 가네샤를 상대하는 동안, 하미준 헌터의 나무뿌리가 가짜 가네샤들의 공격을 막아 주고 있었다.

-후웅.

최민 헌터는 전투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기둥 뒤로 날아가 나를 조심히 내려 주었다.

“윽…….”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네, 괜찮아요.”

‘확실히 아프긴 아프네.’

움직일 때마다 오른쪽 어깨가 서서히 부어오르는 듯했다. 애써 웃어 보려 했지만, 이따금 고통이 피어올라 결국 얼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나를 보는 최민 헌터의 표정도 점점 굳어만 갔다.

“로브에 자가 치유 효과 있습니까?”

“네. 녹두 스킬 중에도 치유 효과가 있으니까 금방 나을 거예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최민’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불안]

최민 헌터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그는 전투가 벌어지는 쪽과 나를 번갈아 보며 입술을 잘근거렸다.

-타닥.

그때 허공에서 갑자기 비스가 나타났다. 뜻밖의 등장에 나도 모르게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는 내 어깨를 한 번 보곤 혀를 차더니 최민 헌터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리석은 것. 지금 네가 여기 있어 봤자 이 녀석에게 도움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

“여긴 내게 맡기고 너는 가네샤나 상대해.”

비스가 쏘아붙이자 최민 헌터의 미간이 구겨졌다. 안 그래도 날카로운 인상이 더욱 차가워 보였다.

“최민 헌터.”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최민’이 동요한다.]

“금방 따라갈게요. 걱정 마요.”

“…알겠습니다.”

[발언 결과 : 수긍]

-후웅.

결국 최민 헌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돌려 가네샤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언니이!!’

-쿵.

이번엔 녹두가 내 쪽으로 힘차게 달려와 바로 앞에 착지했다. 녀석은 내 어깨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더니 곧장 배리어를 펼쳐 나와 비스를 감쌌다. 새하얀 빛무리가 내 주위를 맴돌았다.

“저 붉은 머리 녀석, 누가 보면 네 연인인 줄 알겠군. 극성도 이런 극성이 없다.”

“정이 많은 사람이라 그… 윽!”

-뚜둑.

‘아이테르의 로브’의 치유 효과와 녹두의 배리어 덕에 어깨의 회복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까진 괜찮았은데 그 과정이 너무 요란했다.

“팔 내놔라. 아파도 좀 참고.”

“알았… 아악!”

-우드득.

비스에게 오른쪽 팔을 넘기자마자 그가 갑자기 팔 전체를 잡아 올리더니 엄청난 소리와 함께 어깨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았다.

“허억, 헉, 야… 너무 세게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제대로 맞춰졌을 거다. 엄살 한번 심하군.”

얼얼해서 눈앞이 순간 새하얗게 물들긴 했지만, 비스의 말대로 어깨 관절 자체는 제대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오른팔의 감각만 어느 정도 돌아오면 적어도 5분 이내로 전투에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마워…….”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만족]

자신이 느낀 감정과 달리 비스의 표정은 평온하다 못해 지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나와 비스가 있는 배리어 안은 고요했다. 이따금 내 관절과 근육이 제 위치를 찾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비스.”

“왜 그러지?”

“혹시 어쩌다 쿠마리가 됐는지 물어봐도 돼?”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가 동요한다.]

비스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아직은 좀 이른가.’

어느 정도 경계심을 푼 것 같아 깊은 얘기를 꺼냈지만, 비스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나 보다.

“얘기하기 싫으면 대답 안 해도…….”

“가세가 기울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던 유일한 선택지이자, 가장 멍청한 선택지였다.”

[발언 결과 : 고백]

말을 돌리려 하자마자 비스가 대답했다. 그는 텅 빈 눈동자로 싸우고 있는 칼리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나도 이곳 토카의 쿠마리 꼬맹이와 별반 다를 것 없었다. 굳이 차이점을 꼽자면 나는 오빠 대신 엄마가 아팠고, 하루에 끼니를 한 번밖에 챙겨먹지 못했다는 것 정도.”

“아…….”

“위로는 오빠가, 밑으로는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우리 집의 유일한 딸은 나뿐이었지.”

-바스락.

비스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붉은 눈은 너무나도 쓸쓸해 보였다.

“6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읽고 쓰는 법도 몰랐고, 또래보다 조금 빠른 눈치와 대범한 성격 말고는 특별한 점도 없었다. 그러니 쿠마리가 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네가 선택한 일이었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가 동요한다.]

비스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픽 웃곤 고개를 끄덕였다.

[발언 결과 : 부정]

하지만 그의 진심은 다른 모양이었다.

“선택은 내가 했다.”

“온전히 네 의지로 했을 것 같지 않아서.”

비스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그건 확실하게 내 선택이었다.”

“…….”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또다시 분노와 원망에 사로잡힐 테니 말이다.”

비스의 행동은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끔찍한 과거와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 말이다.

“전에 말했다시피 각성하고 강제로 은퇴했다. 기억에 의존해서 겨우 집에 돌아갔지만…….”

비스가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이내 다시 말을 덧붙였다.

“가족들은 이미 전부 떠나고 없더군.”

“하아…….”

“쿠마리가 되자마자 선지급됐던 연금만 서랍장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뭐, 가족들도 마지막 양심은 지킨 셈이지.”

-사락.

비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라 내 시선도 위를 향했다. 그는 내게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칼리를 빤히 응시했다.

국가는 그를 외면했고, 가족들은 그를 버렸다. 비스가 느꼈을 비참함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그의 과거에 대해선 캐묻지 않았다.

‘슬슬 전투로 돌아갈까.’

팔을 돌리자 우드득 소리가 몇 번 나더니 금방 어깨가 부드럽게 돌아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배리어의 가장자리에 용맹하게 서 있던 녹두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고마워.”

녀석은 별말 없이 내 이마에 제 머리를 대며 그릉거렸다.

-파아악.

녹두는 배리어를 거두며 자기 등에 타라는 듯 허리를 숙였다. 그 위에 올라타자 금방 눈높이가 쑥 높아졌다.

난 그대로 가네샤 쪽으로 갈까 하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 뒤를 돌아 비스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느낀 그가 나와 눈을 맞췄다.

“비스.”

“왜 그러지?”

머릿속으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고른 후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내가 네 방에서 말했던 거 기억해?”

비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인상을 구기자 너무나도 내가 예상한 반응이라 웃음이 샜다.

“언젠가 사람들이 너한테 고마워할 거라고 했잖아.”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가 동요한다.]

비스가 몸을 움찔 떨었다.

“뭐, 그런 소리를 했던 것 같기도 하군.”

“그 말, 절대로 그냥 한 소리 아니니까 꼭 기억해.”

비스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던전에 뛰어들어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삶을 살았다. 사도가 됐을 땐 쿠마리들을 해방시켰고, 힘을 잃은 지금도 그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동안의 네 노력을 모든 사람들이 알아줄 거야.”

“…….”

[발언 결과 : 혼란]

그는 대답 없이 망토 모자를 깊이 눌러 쓰며 모습을 감췄다. 내 말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분명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비스의 사투에 고마워할 날이 올 거란 것을.

-쿠구궁.

가네샤가 또다시 날뛰기 시작해 사원 전체가 크게 울렸다.

‘얼른 가 볼까.’

-후우웅.

녹두의 목덜미를 끌어안자 녀석이 빠르게 가네샤를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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