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06화 (206/366)

206화

“괜찮으십니까?”

“최민 헌터……!”

최민 헌터는 도끼의 잔해를 밟으며 던전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는 나와 하미준 헌터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비스를 보고 눈을 커진 그는 다시 내 쪽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내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민 헌터는 그가 사도 ‘쿠마리’라는 것을 눈치챈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와, 생각보다 일찍 왔네? 다른 사람들은?”

“민지호 헌터와 이상욱 헌터는 지금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이상욱 헌터의 스킬로 게이트 주변을 감싼 상태라 몬스터가 갑자기 거주 지역으로 가지는 못할 겁니다.”

“든든하군. 이제야 본격적으로 공략할 수 있겠어.”

최민 헌터가 도착함으로써 던전을 공략할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 던전 안에 있는 모두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가장 먼저 사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사람은 비스였다.

-텁.

비스의 뒤를 따르려 발을 내딛는 순간, 최민 헌터가 내 팔을 잡았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여 내게 속삭였다.

“쿠마리한테 어디까지 이야기했습니까?”

“사도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안 꺼냈어요.”

눈을 굴려 비스의 눈치를 한 번 살핀 후 말을 덧붙였다.

“비스의 목표는 쿠마리 시스템을 없애는 거고, 저는 그 계획이 성공하도록 도와주고 있어요.”

“그가 창조자의 힘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까?”

“그렇죠.”

최민 헌터가 내 팔을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비스와 거리를 유지한 채로, 최민 헌터에게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칼리라는 신을 소환해서 싸우고 있고, 신을 몸에 빙의시킬 수도 있어요. 저희가 하는 말도 모두 알아들으니까 조심하세요.”

“알겠습니다.”

-끼이이익.

가장 먼저 사원의 앞에 도착한 비스가 양손으로 사원의 문을 밀었다.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열렸다.

사원 내부에는 긴 복도를 따라 줄지어 선 코끼리 석상이 있었다. 벽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촛불이 걸려 있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부는 어두웠다.

“신지의 헌터, 출구 방향이 저쪽 맞지?”

하미준 헌터의 말을 듣고 길을 비추는 자를 확인해 보았다. 반지 위의 초승달이 화살표가 되어 복도 끝을 가리키고 있었다.

“네. 저쪽이에요.”

“재밌는 물건을 들고 다니는구나.”

어느새 나타난 칼리가 내 손을 잡아 길을 비추는 자를 들여다보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 떨었다.

“안쪽으로 갈수록 단내가 진동하는 걸 보니, 분명 저쪽에 가네샤 녀석이 있을 거다.”

“단내? 그거랑 가네샤랑 관련이 있어?”

하미준 헌터가 불쑥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똘똘한 녀석일 줄 알았는데 그것도 모르느냐?”

“내가 그쪽 종교에 대해 아는 거라곤 칼리라는 신이 엄청 아름답고 파괴적이라는 것뿐이거든. 그러니 좀 가르쳐주겠어?”

‘이 인간도 참 대단하다…….’

칼리를 상대로도 전혀 기죽지 않는 듯 하미준 헌터는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고는 칼리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비스가 질색하며 안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칼리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가네샤 녀석은 모닥이라는 간식에 아주 환장한다. 코코넛이랑 설탕으로 만든 것이니 단 냄새가 안 나고 배기겠느냐?”

“한 수 배웠네. 고마워.”

하미준 헌터가 고개까지 숙이며 과장된 제스처로 인사하자, 칼리는 크게 웃으며 다시 비스 옆으로 날아갔다.

-쿵쿵.

복도 안쪽으로 갈수록 달콤한 냄새와 함께 누군가 발을 구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안쪽에 문이 있었군.’

어두워서 아까는 전혀 보이지 않던 문의 코앞까지 다다르고 나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벽 바로 앞에 멈춰선 비스가 나를 슬쩍 돌아보았다.

“아까처럼 실수하면 안 도와준다.”

“알았어, 알았어.”

‘나름의 걱정이겠지?’

일단 좋은 쪽으로 생각한 후 자아를 고쳐 쥐었다.

-쿠구구궁.

이번엔 칼리가 문을 밀었다. 문이 뻑뻑하게 열리며 바닥을 긁었다. 문이 활짝 열리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높은 천장을 가진 넓은 회랑이었다.

벽에는 촛불과 화려한 보석들로 한가득 장식되어 있어 눈이 부실 정도였고, 천장을 떠받치는 기둥들에도 형형색색의 끈이 둘러싸여 있었다.

“호오, 정말로 가네샤로군.”

칼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인간의 몸에 코끼리 머리가 달린 석상이 있었다. 화려한 색깔의 천을 걸친 석상은 네 개의 팔로 도끼, 상아, 줄, 그리고 연꽃과 만두처럼 보이는 것을 담은 접시를 들고 있었다.

우리가 열고 들어온 게이트도 녀석의 뒤쪽에 있었다.

“준비되면 말하거라. 게이트는 내가 손대겠다.”

칼리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 후, 저마다의 방법으로 몸을 풀었다.

‘어떤 녀석인지부터 확인할까.’

녀석과 거리를 둔 채로 오른쪽 눈을 감았다.

[S급 보스 몬스터 ‘가네샤’]

[대지 속성]

- 내려찍기

- 베기

- 포박

- 시작의 소리, ‘옴’

- 행운 시험

- 차투르티 축제

[*시작의 소리, ‘옴’ 시전 시 소리로 만들어진 가짜 가네샤가 소환된다.*]

[*시작의 소리, ‘옴’ 시전 후 가네샤의 체력을 떨어트리면 행운 시험을 시전한다.*]

[*행운 시험 시전 시 가네샤가 적으로 인식하는 생명체의 행운을 계산한다. 주사위를 굴려 생명체의 행운이 주사위의 숫자를 합산한 것보다 낮을 시 해당 생명체를 공격하며, 가네샤 역시 해당 생명체의 공격에만 부상을 입는다.*]

[*체력이 대폭 떨어지면 가네샤가 차투르티 축제를 시전한다. 사원 전체에 강을 생성해 폭발하는 석상을 강 위로 흘려보낸다.*]

시작의 소리 ‘옴’, 행운 시험, 그리고 차투르티 축제. 가네샤는 S급 보스 몬스터답게 세 단계의 전투 페이즈로 나누어져 있었다. 문장 하나하나를 빠르게 훑은 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총 3페이즈로 구성되어 있어요. 1페이즈는 진짜 가네샤를 찾아서 공격하는 것이고, 2페이즈는 행운이 낮은 사람만 공격하는 패턴이네요. 가네샤도 그 사람의 공격만 통하고요.”

“행운이 낮은 사람? 그걸 어떻게 구별할 셈이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 저 몬스터가 알아서 판단하겠지.”

비스의 말에 대답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 3페이즈는 강을 생성해 폭발물을 흘려보내는 패턴이에요.”

“오케이. 대충 파악했어.”

-후웅.

하미준 헌터는 도끼를 휘두르며 몸을 풀고는 나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치유계 헌터가 없으니까 최대한 부상 입지 않는 선에서 확실하게 끝내 보자고.”

“준비됐나?”

모두 칼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녹두도 내 손에 제 머리를 한 번 대곤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시작하지.”

-툭.

칼리가 게이트 앞으로 다가가 손을 댔다.

-끼기긱.

그러자 가네샤가 천천히 눈을 떴다. 3층짜리 건물만 한 거대한 형상이 긴 잠에서 깨듯 조금씩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하미준 헌터와 칼리가 전방에 섰고, 비스는 기둥 뒤로 살짝 몸을 숨긴 채 가네샤를 응시했다. 최민 헌터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위에서 가네샤를 내려다보았다.

-쿠구궁.

가네샤가 우리를 향해 팔을 뻗었다.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쭉 뻗은 팔을 일제히 높이 들더니, 이내 바닥을 향해 떨어트렸다.

-쿵!!

“큿……!”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한 강한 진동과 함께 가네샤가 입을 열었다.

“지혜를 원하는 나의 신도들아! 현자가 되고 싶다면 내게 예를 표하거라!”

-쿵, 쿵, 쿵.

가네샤가 크게 소리치며 들고 있던 도끼의 손잡이로 땅을 두드렸다.

-콰과광.

그러자 같은 손으로 쥐고 있던 밧줄이 갑자기 튀어나와 우리의 진영을 순식간에 헤집어 놓았다.

“이렇게 보니 제법 반갑구나!”

-콰앙!!

칼리가 사원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소리친 후, 들고 있던 낫으로 가네샤의 어깨를 내리쳤다. 꽤 강한 힘이었지만, 녀석의 몸이 더 단단했는지 가네샤의 어깨는 살짝 패일 뿐이었다.

가네샤가 제 어깨에 박힌 칼리의 낫을 잡자마자 칼리는 곧바로 무기를 놓고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낫을 든 가네샤의 팔이 허공을 휘저으며 기둥을 무너트렸다.

-쿠구궁.

“쳇, 성가시게 됐네.”

하미준 헌터가 혀를 차며 땅에서 나무뿌리를 뽑더니 무너지는 기둥을 잡아 지탱했다.

-타앙!!

혼란스러운 틈을 타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새하얀 탄환은 나무뿌리 너머의 가네샤의 손목에 적중했다. 덕분에 녀석의 손목에서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큭……!”

고막을 터트릴 것처럼 크게 비명을 지르는 가네샤 때문에 당장이라도 귀가 멀어버릴 것 같았지만 겨우 참고 이를 악문 채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투우웅.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겨 주변의 공기를 진동시키고 나서야 그 굉음을 잠재울 수 있었다. 잠깐의 정적이 찾아옴과 동시에, 이번엔 새빨간 불길이 허공을 가로질러 가네샤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퍼버벙.

불꽃의 일부가 되었던 최민 헌터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가네샤의 주위에 자잘한 폭발을 일으켰다. 가네샤는 도끼를 휘두르며 폭발을 막기에 급급했다.

-콰아앙!!

빈틈을 파고든 최민 헌터가 운석처럼 가네샤의 뒷목에 내리꽂히자, 녀석은 잠깐 의식을 잃은 듯 두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

‘지금이다!’

-철컥.

자아를 바주카로 빠르게 바꾸어 양손에 들었다. 최민 헌터가 다시 불꽃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올라 가네샤와 거리를 벌린 그때, 방아쇠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쾅!!

“흡!”

반동으로 몸이 살짝 뒤로 밀리는 동시에 묵직한 포탄이 공기를 가르고 녀석의 머리를 향했다.

-콰과광!!

새하얀 궤적을 남기며 가네샤의 이마를 관통하자, 녀석이 입을 떡 하고 벌렸다.

“크아아악!!”

“호오, 멋진 공격이군.”

어느샌가 나타난 칼리가 네 개의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는 가네샤를 구경거리로 삼으며 키득거렸다.

가네샤의 움직임은 확실히 둔했다. 녀석은 육중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건지, 움직일 생각이 없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1페이즈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공격이 너무나 쉽게 들어갔다.

‘잘하면 페이즈 스킵도 노려볼 수 있겠어.’

자아를 다시 확성기 형태로 바꾼 후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랐다.

“녹두야, 등 좀 빌려줘!”

-후우웅.

녹두는 내 말을 듣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왔다. 나는 녀석의 등에 올라타 자아를 양손으로 쥐었다.

“박격포 떨어트릴 거예요! 휘말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오케이! 최민 헌터, 벽 좀 세워 주겠어?”

“알겠습니다.”

-쾅!

최민 헌터가 방공호의 벽을 높게 세워,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가네샤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켰다.

-끼리릭.

“큭!”

박격포로 바꾸자, 순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중심이 흔들렸지만, 녹두가 나를 단단히 떠받친 덕에 떨어질 일은 피했다.

-철컥.

장전되는 소리를 확인한 후, 포구를 가네샤의 머리를 향하게 둔 채로 그대로 떨구었다.

“녹두야, 더 위로 올라가!”

‘알겠어!’

녹두는 허공을 디디며 가네샤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벌렸다. 가네샤가 눈앞에 바싹 다가온 포구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양손으로 그것을 움켜쥐려 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콰과과광!!

엄청난 폭발이 사원 전체를 집어삼켰다. 흙먼지가 가네샤 주위로 짙게 깔렸다. 벽에 붙어 있던 장식품들은 전부 바닥으로 떨어져 엉망진창이 되었다.

녹두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진동이 멎을 때까지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소란이 조금 잦아들었다.

“신지의 헌터, 괜찮습니까?!”

“전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은요?”

“전부 무사해.”

다행스럽게도 자욱이 깔린 먼지 너머로 최민 헌터와 하미준 헌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도의 숨을 쉰 후, 다시 고개를 돌려 가네샤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이 소린 뭐지?’

뱃고동 소리처럼 낮고 커다란 소리가 먼 곳에서부터 점점 가깝게 들렸다. 먼지가 서서히 걷히며 가네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혜를 얻고 싶은 신도들이여, 이 소리에 귀 기울여라.”

[ॐ]

완전히 드러난 가네샤의 얼굴에 처음 보는 문자가 떠올랐다.

“옴 문자다.”

고개를 내리자 아까까지 침묵을 유지하던 비스가 입을 열었다.

“옴? 아, 그렇다면…….”

“…이제서야 1페이즈의 시작이라는 소리지.”

-쿵, 쿵, 쿵, 쿵.

녀석이 첫 번째 스킬을 썼다는 걸 보여 주듯 눈앞에 수십 개의 가네샤 석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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